청화스님

[제4장 수행의 조도] 제1절 계율론 - 5. 성겁초의 인간

通達無我法者 2007. 4. 20. 21:28

 

 


5. 성겁초(成劫初)의 인간(人間)



성겁초(成劫初)의 인간(人間)이라, 우리 인간은 성겁초에 태어나 지금까지 인간 즉 동업중생(同業衆生)이 점차로 번성해온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성겁초에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설도 불교적으로 조명한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 것이 물론 상징(象徵)이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와 대화할 때에도 자기가 미처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비과학적이라고 비방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들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비유(醫喩)와 상징의 베일(Veil)만 벗겨버리면 내나 성자들이 말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과 상통이 되는 점도 많습니다.


공겁(空劫)이 지나고 성겁(成劫)이 되는데 그러면 텅텅 빈 공겁의 허무 가운데서 어떻게 성겁이 될 것인가? 앞으로 과학적인 우주 발생설도 말씀도 드리겠습니다마는 중생의 공업력(共業力)으로 천지 우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의 업력으로 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텅텅 비어버린 허공세계인데 중생은 어디에 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인가? 공겁이 되면 색() 곧, 물질적인 질료(質料)로 이루어진 중생들은 성불을 못하면 각기 행업(行業) 따라서 색계의 광음천(光音天) 이상이나 저 무색계로 올라가 버립니다. 따라서 이선천(二禪天) 이하에는 중생이 없는 것이지만 무색계(無色界)나 색계(色界)의 광음천(光音天) 이상에는 중생들이 있습니다. 그 중생들은 비록 천계(天界)에 있다 하더라도 아직 중생이니까, 중생이라는 것은 아직 아()가 있고 아가 있으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의 분별이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唯嫌簡擇)이니 단막증애면 통연명백(旦莫憎愛 洞然明白)이라 ' 지극한 도는 별로 어렵지 않는 것인데 오직 간택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미워하고 또는 사랑하는 마음 즉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없다면 통연명백(洞然明白)이라는 말입니다. 신심명(信心銘三祖 僧璨著)에 있는 법어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성불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 높은 천상에 머물러 있으며 괴겁(壞劫)이 되어서 천지가 다 파괴되더라도 괴겁의 재해를 받지를 않으나 아직은 삼계내에 있는 중생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마음이 동력(動力)이 되어 순수한 우주의 기운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움직이는 기운이 바람이 되고 금색구름인 금장운(金藏雲)이 되어 인연따라 결합해서 우주가 구성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의 장() 에너지가 그 진동 여하에 따라서 중성자(中性子)양자(陽子)전자(電子) 등의 소립자(素粒子)가 이루어지고 소립자 등의 결합 여하에 따라서 수소산소 등 각 원소가 이루어져 물질계가 구성되는 원리와도 비슷한 도리입니다. 구사론(俱舍論)이나 기세경(起世經)같은 경을 보면 그렇게 세밀한 것은 아니지만 간단 명료하게 중생의 공업력(共業力)으로 천지 우주가 구성된다고 하였습니다.


成劫初期人間皆是 化生으로서 色界人光明하고 모두 識食이나 에, 地味하여 하기 때문에 地味便隱해서 다시 域度餠함.


성겁 초기의 인간은 다 화생(化生)입니다. 지금 우리 인간은 태생(胎生)이지만 음욕으로 생기지 않으니까 성겁초기의 인간은 화생입니다. 물론 음욕으로 생기지 않은 미물들인 화생도있습니다. 성겁 초기의 인간은 화생으로서 색계인(色界人)과 같이 몸에 광명이 있고 모두 식()을 음식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음식 물질적인 분단식(分段食)이 필요가 없지요. 밥이나 물질적인 음식을 분단식이라 합니다. 본래 갖추고 있는 식() 자체가 불멸(不滅)의 생명이기 때문에 음식이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우주가 생겨나고 지미(地味) 곧 땅 맛이 생기고, 물질이 생기니까 땅 맛이 있겠지요. 아직은 중생이기 때문에 땅 맛이 있으니까 호기심으로 맛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맛을 탐하기 때문에 지미(地味)가 곧 숨어버리고곧 다시 지피병(地皮餠)이 생깁니다.


지피병이란, 땅 껍질에 떡조각 같은 바위옷 같은 모양으로 덮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은 먼저 중생의 공업력으로 지구 덩어리나 삼천대천 세계가 이루어진 다음 이야기 입니다. 괴겁이 지나 공겁이 되어 광음천 밑에 있는 초선천(初禪天)에나 그런 데는 수재(水災), 풍재(屈災), 화재(火災)로 없어져 버렸지마는 저 무색계나 광음천까지는 거기에 살만한 중생이 있는 것입니다. 색계 이상 올라가면 신통을 다하기 때문에 광음천인도 신통자재하여 온 천지가 막힘없이 훤히 보인다는 것입니다.


劫初 光音天人 相謂 我等欲至 閭浮提地 卽來下地 食地肥故 失神足 皆共號呪 自相謂言 我等 窮厄不能復還天上

- 增一阿含經 -


겁초에 광음천 천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이 저 아래에 땅덩어리가 생겼으니까 한번 살고 싶다고 원하는 마음이 통해서, 불성과 계합되어 버리면 다시 태어남을 바라지 않는 불원삼매(不願三昧)이지만 아직은 범부인지라 새로운 것이 보이면 호기심을 내어 저 아래 염부제(闊浮提) 즉 사바세계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바로 땅에 내려가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미(地味)인 땅의 맛을 자꾸만 찍어 먹다가 신통을 잃어버립니다. 광음천 천인들은 몸뚱이가 전부 광명인데 사바세계의 상이 있는 물질을 먹으니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몸이 오염(汚染)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우리 인간은 그와 같이 광명신(光明身)인데 이것 먹고 저것 먹고 자꾸만 먹다 보니까 차근차근 오염되어 광명은 다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신족통(神足通)으로 몇 천리 몇 만리를 마음만 먹으면 갈 수가 있지만 오염된 몸이 무거우니까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프게 부르짖어 보지만 아무리 부르짖어 본들 이미 몸이 무거워졌는데 어떻게 광음천에 올라갈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은 액을 만나 궁해서 다시 천상에 올라갈 수가 없구나' 하고 한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몸이 더럽게 오염되어서 도저히 천상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근본불교인 증일아함(增一阿含經)에 뚜렷이 있습니다.


天地更始 ??空處 了無所有 亦無日月 地涌甘泉 味如蘇蜜 時光音諸天 或有福盡 來生 或樂觀新地 性多輕躁 以指嘗之 如是再三 轉得其味 食之不已 漸生島肌失天妙色 神足光明


- 經律異相- -


천지가 맨 처음에 이루어질 때는 모두가 다 텅텅 빈 허공세계라, 바로 허공무일물(虛空無一物)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해나 달도 없습니다. 땅에서는 맛있는 것만 솟아 나오는데 마치 제호(醍鬪)같이 꿀맛보다 맛있는 것이기 때문에 광음천 하늘에 있는 복이 다한 중생들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광음천에 있더라도 공부가 더 잘된 천인(天人)도 있고 못된 천상 인간도있겠지요. 그런데 이미 복이 다하면 자꾸만 망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염부제(闇浮提) 즉 사바세계가 생겨났다 하더라도 복이 다하지 않았으면 무슨 필요로 염부제에 올려고하겠습니까만 망상이 나와서 그렇게 좋은 천상에 있기가 싫어진 것입니다. 박복(薄福)한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닦으라 해도 마다하지 않습니까?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 꼭 성불한다고 해도 지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복이 다하면 차츰 마음이 망상쪽으로 기우는 것입니다. 복이 다한 천인들이 염부제에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또는 새로운 땅에 호기심이 생겨 내려오는데 성품이 경망하고 진득하지 못하니까 새로운 것에 대해서 검토도 안해보고 훌쩍 내려와 이것저것 맛보고 하겠지요. 자기 손으로 찍어 맛보는데 맛이 있으니까 두번 세번 자꾸만 찍어먹다 보니 그 맛에 맛들어 버려서 먹는 것을 그치지 않고 먹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점차로 거치러운 오염된 피부가 생기고 오염된 살이 생기고 뼈가 생겨서 결국은 광음천에 있던 광명신(光明身)도, 신통도 다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불교가 인본주의(人本主義)니까 우리인간이 천상천하에 가장 위대한 것이다고 합니다. 깨달아서 석가모니 부처님같이 되고 자성(自性佛性)을 깨달아야 위대한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천상보다 못한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마땅히 꼭 성불한다는 기약이 있으니까 어느 천상에 대해서도 손색이 없는 중생이 아니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하면은 사실 천상보다 훨씬 더 못한 것입니다. 신통도 자비도 재주도 그만큼 못 부리는 것이고 안락도 그만 못한 것입니다.


由漸耽味 地味便隱 從斯復有 地皮餠生 競耽食之 -俱舍論 -


地皮餠劫初地味後 地自生하여 하는 것.


그래서 최초 인간이 맨 처음에 땅거죽에 있는 지미(地昧)를 맛들여 탐착하니까 이내 숨어버립니다. 그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탐착하면 결국은 좋은 것은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조금더 물질적인 농도가 더 강한 즉, 떡같은 지피병이 자생적으로 나와서 인간들을 기른다는 것입니다.


林藤劫初人食物로서 地餠復隱하여 이 때에 다시 林藤出現競耽食之함.

-俱舍論 -


또 이런 것을 점차로 탐욕심을 내어 더 먹다 보면 지피병이 나오고 그것도 먹다보면 그것도 숨어버리는데 그 뒤에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임등(林藤)이라, 이것은 먹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지구상에 나타나 서로 피차 먹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기왕 이렇게 먹는 버릇을 붙였으니까 안 먹으면 허출하겠지요.


香도香氣있는 米稻로서 劫初時林藤後 自然地上에서 함.


有非?種 香도自生 衆共取之 以充昕食

- 俱舍論 -


다시 임등이 숨어버린 뒤에 자연이 지상에 나온 것이 향도(香稻)라, 향기가 있는 벼로써 지금같이 씨앗을 뿌려서 이루어진 벼나 보리와 같은 것이 아니고 자생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생들이 다 섭취해서 자기 배를 채운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구사론에 다 있는 법문입니다.


林藤香稻轉次食之 身光漸滅 日月方現

- 寄歸博 -


임등이나 또는 그 뒤에 나온 향기로운 벼나 굉장히 맛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향도를 더욱더 안 쉬고 먹는다면 몸의 광명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몸 광명은 점차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뒤에 어두컴컴하니까 해와 달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얼마나 현실하고 들어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100% 다 믿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일종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적게 먹어야 하는 가를 참고하여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겁초 인간은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생명 자체인 식식(識食)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 모든 것이 결국 식() 아닙니까? 일체가 유심(一切唯心)이라, 일체 만법이 오직 마음 뿐이라 본래로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 정신은 내나 물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죽어지면 몸뚱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 생명 자체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 자체는 불생불멸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밖에서 꼭 얼마만큼의 칼로리가 제공되어야 지탱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버릇 때문에 거기에 최면되어 버린 것이지 우리 식() 자체에, 우리 마음 자체에 불생불멸한 생명의 힘이 갖추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을 부양(扶養)시키는 근본은 결국은 우리 생명 자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식식(識食)이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촉식(觸食)이라, 우리가 좋은 영화나 좋은 예술품이라 명미(明媚)한 풍경을 본다면 밥이나 다른 간식은 잊어버릴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정도가 촉식입니다. 또는 염식(念食)이라, 가사 원력(願力)을 세운다든가 반가운 사람과 곧 만나야겠다는 기대가 있다든가 할 때는 음식이 별로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단식(分段食)이라, 밥이나 물질로 된 음식이 되겠지요. 따라서 분단식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한테 있는 정기를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과거 전생부터서 업을 짓고 대대로 사람으로 전변(轉變)해 왔기 때문에 그런 버릇이 습()이 되어 우리가 금생에는 너무 안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