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질의응답과 회향법어] 제1절 질의응답(質疑應答)

通達無我法者 2007. 4. 20. 22:07

 

 

제7장 질의응답과 회향법어(廻向法語)

 

제1절 질의응답(質疑應答)


 

 


1. 釋迦世尊의 修道 成道相은 方便인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금생(今生)에 대각(大覺)을 성취하셨지만 과거 전생(前生)에 이미 등각(等覺)을 성취한 보살로서 금생에는 단순히 방편(方便)으로 중생제도를 위해서 출현하셨다는 법문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 또는 부처님께서는 과거 등각보살이 아니고 금생에 6년 고행과 수도를 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인가? 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과거세에 많이 닦았다 하더라도 격세즉망(隔世卽忘)이라, 생을 달리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전생에 공부를 많이 하였으면 그 종자가, 잠재의식에 공부한 훈기가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더 그 공부 훈기가 빨리 개발은 됩니다마는 그래도 한번 생을 바꾸면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숙세(宿世)의 업() 또는 원력(願力)으로 금생의 몸을 받으면 색() 곧 물질에 가려지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과거세에 등각보살로 되셨다 하더라도 금생에 실제로 애쓰고 6년 고행 수도하여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리변(理邊)으로 본다면 우리 중생들 모두가 본래 부처 아닙니까? 따라서 일의적(一義的)인 의미에서 볼 때에는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니 모두 한결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 곧 법계(法界)요 부처님뿐인데, 차별적인 사변(事邊)으로 생각할 때는 생을 한번 바꾸면 깨달음을 위해서 다시 고행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개인적인 정진에 국한되지 않고 일체 중생을 위한 귀감이기도 합니다.



2. 極樂世界는 法藏의 果報로서 建立되었는가?



그 다음에 법장(法藏)보살의 과보로서 극락 세계가 건립이 되었다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범부적인 차원으로 정토경전(淨土經典)을 본다면 이해 못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조금도 과장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실대로 말씀하시고 조금도 속이는 말씀은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극락세계의 모든 공덕 장엄도 역시 엄연한 사실인데 다만 그 의미 해석이, ‘원래 없는 극락세계를 법장 보살이 비로소 난행ㆍ고행의 수행으로 하여 이룩하였다. 그야말로 무량겁 동안 수행하고도 오겁(五劫) 사유(思惟)라, 오겁의 오랜 세월 동안에 공부정진한 공덕으로 극락세계를 건립(建立)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문자 표현으로만 해석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마는 우리가 리적(理的)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리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시방세계가 바로 적광토(寂光土), 극락세계인데 우리 중생이 법장 보살같이 수행을 하지 않으면 증득(證得)을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부중생은 극락세계를 감득(感得)을 못하니까, 법장 보살이 극락세계를 건립하였다고 상징적으로 표현을 해도 어폐(語弊)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상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우리 인간이 이렇게 있듯이 천상계도 분명히 현상적인 가상(假相)으로 있는 것인데 다만 인간 중생이 업에 가리어 못 볼 따름입니다. 그것을 감득할 만한 정도의 삼매(三昧)에 들면 바로 볼 수가 있는 것이고 느끼는 것입니다. 또는 천상에 갈 만큼 공덕을 심으면 내세에는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전생에 인간 공덕을 세워서 인간으로 왔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나 천상이나 자연계나 삼계(三界欲界色界無色界) 현상은 모두가 다 무상(無常)이요 공()이며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은 허망한 가상(假相)의 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 극락세계만이 불생불멸한 실상(實相)세계입니다.



3, 極樂世界는 西方에만 있는 것인가?



육조단경(六祖檀經)에서 6조 스님 말씀이 서방(西方) 정토(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관해서 비판적인 말씀을 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동쪽에서 죄를 지으면 참회정진의 공덕으로 서쪽의 안락세계에 태어날 것인데 서쪽에서 죄를 짓고 참회정진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방은 극락세계가 아닌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내용의 법문입니다.


서방, 동방에 대해서 우리가 집착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인들이 이런 것을 몰라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 중생들이 상()에 집착하여 본질적인 도리를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서쪽을 지명했던 것인가? 그것은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니 만물의 시초를 상징하고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이니 모든 것의 결말, 성취를 상징하여 이상화(理想化)하여 말한 것입니다.

정토경전(淨土經典)이 2백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합니다. 본래는 내 자성(自性)이 부처고 삼천대천 세계가 바로 부처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방대한 정토 법문이 다 한결같이 실상세계인 극락세계의 장엄과 중생성불을 위한 거룩한 법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토경전의 내용이 절대로 진실이고 사실인 것인데 다만 중생이 미혹되어 그저 ‘마음이 부처다’고 해서는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지방입상(指方立像)이라, 중생 차원의 방위를 가리키면서 형상을 세워서 중생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정토경을 보면 아미타불의 키는 육십만억 나유타 유순(由旬)이라 하였는데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이 크다는 말이며 극락세계 또한 무량무변한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극락세계의 생명적 인격화가 바로 아미타불이며 부처님의 부사의 공덕으로 중생교화의 선교방편 따라 그때그때 크고 작게 장엄신을 나투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등의 정토경을 보면 같은 경 내에 방편과 진실이 아울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방편만 집착해서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관무량수경에 시방여래(十方如來)는 바로 법계신(法界身)이라, 시방여래는 바로 법계를 몸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법계를 몸으로 하나, 여래의 심심미묘한 부사의 공덕과 자비원력으로 필요한 때는 바늘 구멍만한 모양으로 나투기도 하고 동시에 수억 수만의 화불(化佛)을 나투어서 우리 중생에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명을 다하여 공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활연히 마음이 열리면서 부처님의 광명신(光明身)을 증득(證得)함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 광명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부처다,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는 말에 국집하는 사람들은 부처님 상호를 말하면 상에 걸린다고 굉장히 비판을 합니다마는 부처님 경계라는 것은 그러한 상호까지도 바로 부처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란 원래 이름도 없고 상()도 없는 바로 우주의 생명 자체이지만 인연에 따라서는 무한의 가상(假相)을 나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사의 하고 무량공덕 아니겠습니까?



4. 實相觀과 禪과 念佛禪은 어떤 관계인가?



선()이란 가상(假相)과 가명(假名)을 여의고 불심(佛心) 곧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본체를 참구(參究)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 체성(體性)을 여의지 않으면 비단 화두참구(話頭參究)뿐만 아니라 관법(觀法)이나 염불(念佛)이나 주문(呪文)이나 다 한결같이 참선(參禪)입니다. 따라서 근본 체성을 떠난 공부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중도실상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를 관찰하고 상념하는 염불이 바로 실상염불(實相念佛)인데 그것이 또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염불선(念佛禪)인 것입니다.

일체 모든 화두도 이러한 본래면목 자리, 진여불성 자리를 분명히 참구하고 그 자리를 증득하고자 하는 의단(疑團)이 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선()과 염불에 대해서 대강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성미타 유심정토(自性彌陀 唯心淨土)라, 우리 본래면목이 바로 아미타불이요 마음이 청정하면 현실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이니 염불도 근본 성품을 안 여의고 한다면 곧바로 참선이요, 참선과 염불이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른바 진여(眞如)나, 실상(實相)이나 중도실상의 본래면목 자리는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경지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는 부사의한 부처님 광명이 충만한 경계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여실상의 경계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업장이 녹아짐에 따라서 점차로 진여불성의 광명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도 한결 밝아지고 어두운 표정도 말끔히 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가행정진(加行精進)을 계속하면 업장의 멸진(滅盡)에 따라 본래 부처인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5. 공부 境界에 대하여



공부 경계(境界)에 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공부할 때에는 여러 가지 경계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은 바로 우주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에는 지옥도 있고 아귀도 있고 축생도 있고 천상도 있고 또는 극락이 다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십법계(十法界) 곧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간ㆍ천상ㆍ성문ㆍ연각ㆍ보살ㆍ부처 등 일체 만법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본래로 다 갖추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닦아 나가면은 잠재의식에 들어 있던 업의 종자들이 업장 따라 그에 상응한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과거 전생에 경험했던 것도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불쑥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러는 우리 영식(靈識)이 맑아져서 방안에 있는데도 저만치 바깥까지 투시해서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영식이 맑아지면 누구나가 가지가지의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경계라도 집착하면 병이 되고 나쁜 경계라도 집착하지 않으면 무방한 것이니 자성(自性) 곧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고 정진해 나가면 필경에는 불생불멸한 진여법성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6. 無明의 始初는 무엇인가?



그 다음에 무명(無明)의 시초(始初)는 무엇인가?


무명이란 원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명이라는 것이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다만 우리가 진여불성을 깨닫지 못해서 무명이 생깁니다. 무시무명(無始無明)이나 근본무명(根本無明)이나 같은 뜻입니다. 근본무명은 시초에 분별하는 한 생각입니다. 부달일법계고 홀연염기 명위무명(不達一法界故 忽然念起 名爲無明)이라, 평등 무차별한 청정법계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문득 일어나는 분별심을 무명이라 합니다. 따라서 무명은 일체 현실세계의 온갖 번뇌와 망상과 생사윤회의 근본입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번뇌인 무명은 정견(正見) 곧 반야바라밀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7. 宗祖에 대하여



종조(宗祖) 문제입니다. 보조(普照) 국사가 조계종의 종조인가? 태고보우(太古普愚) 국사가 종조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런, 우리 공부에 조도(助道)가 되지 못하는 문제 등으로 시비를 가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는 양쪽 다, 종조로 결정하는 문제는 반대 입장입니다. 저는 석가모니 한 분을 교주(敎主)로 하고 달마 스님이나 또는 6조 혜능 스님이나 또는 보조국사 태고선사를 위시하여 역대 정평있는 도인들을 모두 다 위대한 선지식으로 숭상을 합니다. 어느 특정인을 또, 중국에 가서 누구한테 법을 받고 안 받고 하는 그런 문제가 저한테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후대인들이 보조국사가 더 법이 높은가? 또는 태고 보우선사가 높은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원효 스님이 높은가, 의상 스님이 높은가, 우리는 지금 추상적으로 단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만을 명명백백한 우리 교조로 하고 그 외에는 우리의 소중한 선지식으로 숭배하고 배울 것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8. 金陀 스님의 行化는?



그 다음에는 금타 화상의 행적이라던가, 공부 경계라던가, 또는 열반상이나 그런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금타 스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대략 말씀드리면 스님께서는 20세 이전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송만암(宋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송만암 스님은 종정을 지내셨고 또 불교전문학교 교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그래서 근래에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 스님의 사형(師兄)이 됩니다. 출가한 뒤 강원(講院)도 졸업하고 그 당시의 불교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26세경 과학이나 수학 등 신학문(新學問)을 공부하여 현대사회를 제도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잠시 동안 환속하였다고 합니다. 30세 때 재입산하여 50세에 입적(入寂)하였습니다. 39세에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깨달음을 얻고 읊은 오도송(悟道頌)도 남아 있습니다.

   

그뒤 내장사 벽련암에서 백양사 운문암(雲門庵)으로 옳겼는데 금타 스님은 개성(個性)도 출중한 분이고 소신(所信)이 확실한 분이기 때문에 은사 송만암 스님과는 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약간 불편한 관계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운문암 생활은 순수하게 참선(參禪)을 위주하여 일체 불공도 사절하고 식생활은 아침 죽 공양, 점심 때 공양하고 철저한 오후불식(午後不食)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체 경비는 대중 전원 탁발(托鉢)로 충당하였습니다.

   

금타 스님의 열반(涅槃)은 대중들이 탁발 나간 부재중(不在中)에 시봉 몇 사람만 남아있을 때 열반에 들게 되었습니다. 금타 스님 사리(舍利)에 관해서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물 항아리를 묻고 장치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만한 계제가 되지 못하여 유감스럽게도 사리는 수습하지 못하였으며, 백양사 큰절 스님들 말로 화장터에서 사흘 동안이나 베폭 너비의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금타 스님께서 부처님 정법(正法)을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하고 여실(如實)하게 증득(證得)하여 부처님 법의 정수를 시기상응(時機相應)하게 기록으로 정리하였다는 사실에 우리 후학들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타 스님의 유저(遺著)인 금강심론(金剛心論스님의 유고를 모아 편집함)에는 근본불교의 핵심으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에 필수적인 근본선정(根本禪定)인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역설과 각 경론(經論)의 모든 수행법과 수행의 위차(位次)를 종합 회통(會通)하여 해탈16지(解脫十六地)로서 수행차서(修行次序)를 정립하였으며 동서(東西) 문자를 종합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에 요긴한 조도(助道)가 되는 관음문자(觀音文字)를 창제하였고 그리고 현대의 역사적 위기인 유물풍조와 기술 만능시대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유심적(唯心的) 불교 우주관의 확립 등의 독창적인 희유한 교설들은 비단 우리 후학들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도법문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인류사회의 지도원리로서 찬연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9. 淸華 스님에 대하여



그리고 저한테 대해서 어떻게 살아 왔는가? 어떻게 공부했는가? 물어 왔는데, 저는 내세울게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선 저는 수행자로서 아직 대각(大覺)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세속적으로도 무슨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잘난 것도 아니며 두드러진 경륜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산 저산으로 다니면서 참선 공부만 했다는 사실 밖에는 없어서 내세울 것은 정말로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경계에 관해서는 불가향인설(不可向人說)이라, 자기 공부하는 경계는 스승한테 경책받기 위해서가 아닌 한, 다른 이에게 말하지 말라는 불조(佛祖)의 경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점검 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지 부질없이 얘기하면 망언(妄言)이지요. 따라서 구태여 망언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장장 7주야(晝夜) 동안 참, 지리한 동안인데 횡설수설한 제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도 빠짐없이 경청(傾聽)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 자리에서 대담(對談)하는 것도 5백생(五百生) 인연이라는데 여러분과 저는 필시 다생겁래(多生劫來)로 동수정업(同修淨業)한 소중한 도반(道伴)들이시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희유한 인연에 대하여 다시금 감사의 합장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