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6장 천태종사상] 5. 중도실상경계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1:27

 

제6장 천태종사상 - 5. 중도실상경계



마하지관(摩訶止觀)은 오략십광(五略十廣)이라 하여 자세히 분류하면 열 항목이 되고 축약하면 다섯 단원이 되는데, 어느 경우나 발대심(發大心)에서 시작하여 귀대처(歸大處)로 종결됩니다. 여기에 인용한 것은 그 마지막 단원인 귀대처를 설명하는 일부분입니다. 귀대처의 요점은, 법계에 시종(始終)이 없음을 알면 크게 밝아 무애자재하다는 것으로, 그 자세한 내용을 ‘지귀(旨歸)’로써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지귀에 대한 설명은 이하에서 언급할 것이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아니라 천태종에서 중도실상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즉 지금까지 천태종의 중요한 여러 교리와 관법을 통하여 그 중도설을 어느 정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도의 실상은 참으로 말과 생각을 떠나고 명칭을 잊어서, 달리 할 말이 없어 할 수 없이 중도니 실상이니라고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지귀(旨歸)하는 세 덕의 적정함이 이와 같으니 어떠한 명자(名字)가 있어 가히 설해 보일 수 있으리요. 이것을 무엇이라고 이름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억지로 중도(中道), 실상(實相), 법신(法身), 지도 아니고 관도 아님[非止非觀] 등이라 하며, 또 다시 억지로 일체종지(一切種智), 평등대혜(平等大慧),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관(觀) 등이라고 하며, 또다시 억지로 수능엄정(首楞嚴定), 대열반(大涅槃), 불가사의해탈(不可思議解脫) 지(止) 등이라 한다. 마땅히 알아라, 여러 가지 모양, 여러 가지 설법, 여러 가지 신통한 힘이 하나하나 모두 비밀장(秘密藏) 가운데 들어가니, 어떤 것들이 지귀이며, 지귀하는 곳은 어디이며, 무엇이 지귀인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가는 곳이 소멸하여 영원히 적정함이 공(空)과 같은 것을 지귀라 이름한다.

旨歸三德이 寂靜若此하니 有何名字하여 而可說示리요 不知何以名之일새 强名中道, 實相, 法身, 非止非觀等하며 亦復强名一切種智, 平等大慧, 般若波羅蜜, 觀等하며 亦復强名首楞嚴定, 大涅槃, 不可思議解脫, 止等이라 하니라. 當知하라 種種相 種種說 種種神力이 一一皆入秘密藏中하니 何等是旨歸며 旨歸何處며 誰是旨歸오 言語道斷하고 心行處滅하여 永寂如空을 是名旨歸니라. [摩訶之觀;大正藏 46, p. 21上, 中]


지귀(旨歸)의 의미는 먼저 ‘글의 뜻이 지향하는 바[文旨所趣也]’로서 지(旨)는 자신이 반야, 해탈, 법신의 세 덕(德)을 향하고, 귀(歸)는 타인을 그 세 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또는 이와 역으로 자신이 세 덕에 들어감을 귀라 하고 타인을 세 덕에 들어가게 함을 지라고도 합니다. ‘세 덕의 적정함이 이와 같다’란, 중도, 실상, 법신 등을 의미하는 반야, 해탈, 법신의 세 가지 덕이 원융하여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새롭지도 않고 낡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도, 중도 하니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이 중도의 근본 사상은 언설(言說)과 심행(心行)이 다 끊어져 절대로 언어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헤아림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이나 문자로 설할 수 없으며, 일승(一乘)이니 삼제(三諦)니 중도니 삼천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어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 “중도(中道), 실상(實相), 법신(法身), 비지비관(非止非觀), 일체종지(一切種智), 평등대혜(平等大慧),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관(觀), 수능엄정(首楞嚴定), 대열반(大涅槃), 불가사의해탈(不可思議解脫), 지(止)” 등입니다. 불가사의해탈이라고 한 것은, 중도라는 것은 단순한 말이지만 그 실상은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묘법이므로 불가사의해탈이라고 이름한 것이지 실제로는 불가득불가설로서 묘한 가운데 묘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비밀장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비밀장도 어찌할 수 없어 억지로 이름붙인 것입니다.


“무엇을 지귀라 하는가”에서 지귀(旨歸)한다, 즉 뜻이 돌아간다고 하니 개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듯이 나아갈 곳이 있는 줄 알면 그 사람은 중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중도실상(中道實相)을 깨치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중도로 지향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실질적으로 모든 거래와 생멸이 끊어졌기 때문에 돌아갈 곳도 지향할 곳도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고 깨칠래야 깨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이것은 어느 정도 중도실상에 가깝게 다가선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안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적정함이 공과 같다”에서 공은 텅 빈 단공(斷空)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비밀장을 공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실상을 뜻하고 중도를 향하는 지귀(旨歸)라 이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누구든지 물을 마셔야 물맛을 알듯이 오직 투철하게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