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8장 선종사상] 1. 중도법문 - (3) 백장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1:55

제8장 선종사상

 1. 중도법문

  (3) 백장스님


백장스님은 마조(馬祖)스님의 제자입니다. 마조스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제자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 마조정안(馬祖正眼)을 전해 받은 사람은 백장스님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그의 제자 가운데 후세의 선가(禪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님은 선문에 들어오기 전에 경, 율, 론의 삼장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학다문하였습니다. 어느 날 마조스님이 남강(南康)에서 교화한다는 말을 듣고 마조스님 처소에 찾아가 마음을 기울여 의지하니 마조스님이 보자마자 공손히 맞이하여 입실케 하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현현한 관문을 깨달은 뒤에도 다시 딴 곳에 가지 않고 그곳에서 살았으며 마조스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8년 동안 마조스님의 탑을 모셨습니다.


백장스님의 성격은 겸양하고 하심(下心)을 많이 하여 다른 사람한테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취급을 받았고, 마조스님의 인가를 받아 마조정안(馬祖正眼)을 전했지만 마조스님 생전에는 드러나지 않아서 마조스님이 돌아가신 후 마조스님의 비석을 세우는 데 그 당시 유명한 스님들의 이름이 비문에 모두 올라 있지만 백장스님의 이름은 그 비문에서 빠질 만큼 밀행(密行)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심하면서 숨어 살았지만 공부하는 스님들이 찾아와서 법(法)을 물어보면 외모와는 다르게 해박하게 지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어 곳곳에서 대중들이 모여들게 되어 처소가 협소하게 되었으므로 백장산(百丈山)으로 처소를 옮겼습니다. 여기서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는데 선문에서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이 백장스님부터 시작이 됩니다. 선종(禪宗)이 달마대사부터 시작하였지만 마조스님 때까지도 선종을 표방하는 가람을 특별히 따로 정한 것이 아니라 대개 율종 사찰에 더부살이로 지냈으며, 혹 따로 선가(禪家)를 이루고 사는 사찰도 있었지만 선종에 특별한 규율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래서 백장스님이 백장산에 가서 대중을 많이 거느리고 살게 되니 무질서하게 생활할 수 없었으므로 대, 소승의 경(經), 율(律)을 참작하여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선종 최초의 법규이며 그 이후 천하 총림에서 시행하게 된 거룩한 법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장스님께서 평생 동안 행한 철저한 수행정신은 이루 형용하기 어렵거니와 그 위에 날마다 운력을 할 때 남보다 먼저 나섰습니다.


스님 밑에는 황벽(黃檗)이라든가 위산(潙山)이라든가 하는 천하의 대종사들뿐만 아니라 수백 명이 넘는 우수한 제자들이 함께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찰은 깊은 산 속에 있었으므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낮에는 매일 밭일을 하고 밤에만 앉아서 정진을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백장스님은 연세가 많아도 매일 대중들과 함께 밭에 나와서 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함께 일을 하던 제자들이 늙은 노스님의 일하는 모습이 보기가 민망스러워 일하는 도구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연장을 찾지 못한 스님은 하루종일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고 공양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찾아가서 공양 드시기를 청하니 “내가 아무런 덕(德)도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니 여기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천하에 유명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선(禪)을 참구한다든지 도(道)를 구한다든지 총림(叢林)을 한다든지 할 때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정신이 근본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기본적으로 이행되지 않으면 총림이란 설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우리 대중들은 옆에 있는 사람이 눈만 한번 흘겨도, 아니 무슨 꾸중이라도 하려고 하면 “내가 해인사 아니면 굶어죽는가, 해인사 오기 전에도 여태까지 먹고 살았는데 …….”

이런 사고방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으니 만약 백장스님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한번 돌아보고 정진하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져야 하겠습니다. 백장스님은 서기 814년 당(唐) 원화(元和) 9년 정월 세수 95세로 입적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출가하기 전부터 원대한 포부를 가졌는데 한 일화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더니 갑자기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다.”

“부처님 모습이 사람과 같아서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고는 ‘나도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라는 서원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도 다음 생에서 또다시 사람의 몸을 받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법(佛法) 또한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무쇠를 씹는 것과 같은 불퇴전의 참구심으로 화두를 들어 이생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세워서 불철주야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일체 유, 무(有無)의 제법에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의지하고 머무름이 없는데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대선지식(大善知識)이다. 또한 부처님 한 분만이 대선지식이니 두 사람이 없으며 나머지 사람은 모두 다 외도며 또 마군의 말이니 지금 다만 두 극단[兩頭句]인 일체 유, 무의 대경법(對境法)을 말해 부수는 것이다.

但不依住一切有無諸法하야 亦不作住無依住하며 亦不作不依住知解하면 是名大善知識이요 亦云唯佛一人이 是大善知識이니 爲無兩人하야 餘者는 盡名外道며 亦名魔說이니 如今祗是說破兩頭句인 一切有無境法이니라.


백장스님의 어록(語錄)으로 백장광록(百丈廣錄)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른 조사스님들보다 유독히 드러나게 유, 무의 양변을 여읜 이것이 불법(佛法)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중도(中道)라는 말은 없지만 유, 무 양변을 여의는 것이 중도이므로 그 뜻은 부처님이 유, 무 양변을 여읜 중도를 정등각했다는 것을 바로 전하고 있으며 육조스님이 유촉했던 것, 즉 언제든지 양변을 여읜 중도로써 설법하라는 유촉을 그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처음 유법(有法)의 제법을 여의었으면 그만인데 왜 유, 무 양변을 여읜 여기에도 주하지 말라고 하느냐 하면 실지로 유, 무 양변을 완전히 여의면 주(住)할래야 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생이란 항상 집착이 많기 때문에 유, 무 양변을 여읜다고 하면 양변을 여읜 여기에 머물러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병을 고치기 위하여 유, 무 양변을 여읜 곳에도 주하지 말고, 또 주하지 아니하는데도 주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내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유, 무 양변을 여읜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유, 무 양변을 여읜 사람을 대선지식이라 하고 부처님 한 분만이 대선지식이어서 두 사람이 없으며 유, 무 양변에 머물러 있는, 즉 변견을 가진 사람은 외도이며 그 사람의 말은 마군의 말이니 양변을 여읜 중도의 법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이 백장스님의 근본 입장입니다.


“몸이 가이없는 보살이 여래의 정수리는 보지 못한다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변에서 보고 무변에서 보기 때문에 여래의 정수리는 보지 못하니 지금 일체 유, 무 등의 견해가 모두 없고 또 견해가 없다는 생각도 없으면 여래의 정수리를 본다.”

無邊身菩薩이 不見如來頂上(相)이라 하니 如何오 師云 爲作有邊見無邊見일새 所以로 不見如來 頂上이니 祗如今에 都無一切有無等見하야 亦無無見하면 是名(如來)頂上(相)現이니라.


무변신(無邊身)보살, 즉 몸이 가이없는 보살이라 하면 무변신에 머물러 있음을 말하니 유견(有見)은 넘어섰지만 무견(無見)에 집착한 사람을 경계한 말입니다. 무변신보살이 여래의 머리 위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무변에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변에 떨어진 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다운 여래의 이마 위를 보려고 하면 유변과 무변을 여읜 중도를 성취해야 합니다. 중도를 성취하려면 유, 무 양변을 버려야 하고 또 버렸다는 생각도 없어야 함을 여기에서 철저히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일체 유, 무의 제법에 탐착하여 구하면 있는 바이고 짓는 바가 되어 모두 어긋나니 도리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佛是無求人이니 如今에 貪求一切有無諸法하면 但是所有所作이리 皆背也니 却是謗佛이니라.


실지로 불법(佛法)을 알려면 유, 무 양변을 여읜 중도를 바로 깨쳐야 합니다. 만약 유, 무 제법을 탐착하여 구하게 되면 부처를 비방하는 것입니다.

유, 무가 일체법을 주관한다.

有無가 管一切法하나니라.


무슨 견해 무슨 견해 할 것 없이 모두가 유, 무에 얽혀 이어지니 유, 무의 견해만 없으면 일체의 상대적 견해가 없어지는 것이므로 여기서 유, 무를 대표로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일체 유, 무의 제법에 탐착하여 물들지 아니하면 무생(無生)이라고 한다.

但不貪染一切有無諸法하면 是名無生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무생(無生)은 8지(八地) 자재위보살이나 10지(十地) 등각(等覺)을 벗어난 부처님의 무생(無生)입니다. 왜냐하면 자재위보살들도 침공체적(沈空滯寂)해서 엄격히 보면 무견(無見)에 집착해 있는 사람들이니 유, 무 양변을 완전히 여읠 것 같으면 대원경지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무생(無生)이라고 하고 부처의 지위의 무생입니다.


일체 유, 무 등의 견해가 없으며 또한 견해가 없다는 것도 없으면 바른 견해라고 한다.

都無一切有無等見하야 亦無無見하면 名正見이니라.


유, 무 등의 견해가 없고 없다는 생각도 없음을 바른 견해[正見]라 하니 바른 견해를 완전히 얻으면 이것이 무생(無生)이고 대선지식이고 부처입니다.


일체 유, 무 등의 법과 유, 무 등의 견해가 없어서 낱낱이 삼구(三句) 밖을 벗어나면 여의보(如意寶)라고 한다.

但無一切有無等法하야 有無等見하야 一箇箇透過三句外하면 是名如如寶니라.


무릇 가르치는 말이 모두 삼구(三句)에 서로 관련하니 초선, 중선, 후선이다. 처음에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곧바로 선심(善心)을 내게 하고 가운데서는 그 선심을 부수고 마지막에는 비로소 좋은 선이 된다고 이름한다. 보살은 보살이 아니므로 보살이라 한다 하며 법은 법이 아니므로 법 아님이 아니라고 함과 같이 모두 이러한 것이다.

夫敎語皆三句相連이니 初中後善이니라. 初直須敎渠發善心이요 中破善心이요 後始名好善이니 菩薩이 卽非菩薩일새 是名菩薩이라 하며 法非法 非非法일새 總與麽也니라.


여의(如意)란 내 마음대로 됨을 말하니 여의보란 내 뜻대로 되는 보배, 즉 마음이 무애자재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유, 무 등의 법과 견(見)을 여의었으면 그만이지 다시 왜 삼구(三句)를 말했는가 하면 유, 무 등을 더욱 철저하게 여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보살은’은 초구(初句), ‘보살이 아니므로’는 가운데 구[中句], ‘보살이다’는 후구(後句)입니다. 보살은 보살이 아니라는 것은 부정하는 것이니 쌍차(雙遮)를 말함이고, 보살이 아니므로 보살이라는 것은 긍정하는 것이니 쌍조(雙照)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정과 긍정, 즉 쌍차쌍조한 이것이 내포되지 아니하면 변견에 떨어지고 말기 때문에 특별히 삼구로 나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구(三句)란 쌍차쌍조(雙遮雙照) 차조동시(遮照同時)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이렇게 말하면 여기에 집착하고 저렇게 말하면 저기에 집착하는 병을 철저히 깨뜨리기 위하여 말한 것이니, 이렇게 하여 중도를 성립시킨 것입니다. 언제든지 유, 무 등의 법을 여의는 데 있어서는 삼구가 서로 이어져서 철두철미하게 유, 무 양변을 여의어야 합니다.


일체 유, 무의 제법에 막히지 않고 또 막히지 않음에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지해(知解)도 없으면 이것을 신통이라 한다.

不被一切有無諸法閡하며 亦不依住不閡하며 亦無不依住知解하면 是名神通이니라.


일체 유, 무 등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사구(四句) 밖을 떠나면 비고 비었다 하고 불사약이라 한다.

不納一切有無等法하야 離四句外하면 名空空이며 名不死藥이라 하니라.


일체 유, 무 등의 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옛날과 지금을 주관하면 부처님이 이 사람이고 사람이 이 부처님이며 또 삼매정(三昧定)이라 한다.

不被一切有無等法하야 管自古自今하면 佛祗是人이요 人祗是佛이며 亦是三昧定이니라.


남악 회양스님이 마조스님을 평할 때 ‘그대는 고금에 좋다[善古今]’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여기서 말하는 옛날과 지금을 주관한다는 말과 같이 쌍조(雙照)를 표현한 것입니다. 양변을 부정하고 양변을 긍정하는 쌍차쌍조(雙遮雙照)하는 이것이 부처이며 삼매(三昧)입니다.


일체 유, 무의 제법과 세간, 출세간법을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지해(知解)도 짓지 아니하며 지해가 없음에도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은 부처이며 조용(照用)은 보살에 속한다.

不依住一切有無諸法과 世間出世間法하야 亦不作不住知解하며 亦不依住無知解하면 自心是佛이요 照用이 屬菩薩이니라.


보살이라고 하니까 부처님보다 낮은 것같이 생각하기 쉬운데 낮은 것을 뜻함이 아닙니다. 체용(體用)으로 볼 때 부처님은 체(體)이며 보살은 용(用)으로서 조용(照用)이라는 것은 진여대용(眞如大用)을 말한 것이니 부처가 즉 보살이며 보살이 즉 부처입니다.


먼저 종지를 깨친 사람은 일체 유, 무의 제법상에 구속되지 아니하며 때묻은 옷을 씻은 것과 같으므로 모양을 떠났다고 말하며 부처님이라 이름한다.

先悟宗人은 不被一切有無諸法相拘하야 如浣垢依故로 云離相이며 名佛이니라.


일체 유, 무의 제법에 탐착하여 물들지 아니하면 이것을 사구게를 가진다고 말한다.

不貪染一切有無諸法하면 是名受持四句偈이니라.


일체 유, 무의 제법을 구하면 중생의 무리[衆生數]요, 일체 유무의 제법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하면 중생의 무리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求一切有無諸法하면 是衆生數요 不依住一切有無諸法하면 是名不入衆生數이니라.


다만 지금 일체 유, 무의 제법을 모두 보지도 듣지도 아니하며 이렇게 경을 가지면 비로소 수행의 자격[分]이 있다.

祗如今에 但是一切有無諸法을 都不見不聞하야 與麽持經하면 始有修行分이니라.


다만 지금 일체 유, 무의 제법을 떠나고 또 떠났다는 데서도 떠나 삼구(三句) 밖을 뛰쳐나가면 자연히 부처와 더불어 차이가 없다.

祗如今에 但離一切有無諸法하야 亦離於離 透過三句外하면 自然與佛無差니라.


다만 일체 유, 무의 모든 경계에 구르지 아니하니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이 일체 유, 무 경계의 법을 능히 비추어 부수니 곧 금강(金剛)이다.

但不被一切有無諸境轉이니 是故導師 能照破一切有無境法이 是金剛이니라.


일체 유, 무 등의 법을 떠나며 또 떠남에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지해도 없으면 이 사람은 모든 죄의 때가 쌓일 수 없다.

離一切有無等法하야 亦不住於離하며 亦無不住知解하면 此人은 一切罪垢 不能相累니라.


옳음과 그릇됨, 고움과 추함, 옳은 이치와 그릇된 이치의 모든 지견(知見)을 몽땅 버려서 얽히어 묶이지 아니하여 곳곳에서 자재하면 초발심 보살이 곧바로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고 한다.

是非好醜와 是理非理 諸知見이 總盡하야 不被繫縛하야 處處有在하면 名爲初發心菩薩이 便登佛地니라.


다만 일체 유, 무의 모든 경계에 혹란되지 아니하며 또 혹란되지 아니함에도 의지하고 머무르지 아니하며 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지해도 없으면 이것이 널리 배움이며 부지런히 생각함이며 널리 유포하는 것이다.

但不被一切有無諸境惑亂하야 亦不依住不惑亂하며 亦無不依住知解하면 是名遍學이며 是名勤護念이며 是名廣流布니라.


일체 유, 무 경계의 법에 탐착하고 물들어 일체 유, 무의 경계에 혹란되면 자기의 마음은 마왕이며 조용(照用)은 마군이 백성에 속한다.

貪染一切有無境法해야 被一切有無境惑亂하면 自心은 是魔王이요 照用은 屬魔民이니라.


이와 같이 교외별전을 표방하는 선종에 있어서도 초군정안(超群正眼)을 가졌다는 백장스님이 항상 유, 무를 여의는 중도법문을 했으니 불법의 근본이 중도에 있음을 증명하는 천고만고의 산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선을 해서 부처님 마음을 증득하는 것이고 부처님 마음이라는 것은 중도를 정등각하는 것이지 불법 밖의 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뭣고’ 하는 것을 깨쳐서 중도를 정등각해야 합니다. 말로만 중도 중도 하지 말고 실지로 중도를 깨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