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서암스님-생활선 "이뭣고"

通達無我法者 2007. 5. 9. 15:41
-월간정토에서 서암스님을 찾아뵙고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큰스님 글을 좋아하는데 한 말씀 해주세요."

참선하는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없어. 좋고 싫은 것이 다 떨어져야 참선이지.
참선하면서 뭐 좋아한다 그런 것은 참선 냄새도 못 맡은 것이지.

그래도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온갖 껍데기 속에 사니까 피로를 느껴서
결국은 참선으로 안 들어올 수가 없지. 그래서 다들 참선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해 봐야 전부 괴로운 것뿐이거든. 편안한 것이 없어.
편안한 자리가 참선이야. 안전 지대지.

일체 시비 장단이 없어. 좋고 싫고, 깨끗하고 더럽고, 옳고 그르고, 온갖 시비 장단이
다 떨어진 세계거든. 시비 장단 속에 사는 것이 세상살이잖아? 그렇기에 피로한 것이고,
피로하니까 조용한 것을 구하지. 그래서 언젠가는 참선의 세계에 다 가게 되어 있어.
안 갈 수가 없는 거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움 투성이라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해.
그래 요새 젊은이들이 자살율이 많아. 그 자살하는 것도 연구를 하더군.
얼마나 자살을 많이 하면 그러겠어? 참선을 하면 자살 안하고
편안한 세계에 드는 것이지. 다 쉬어 버리니까.

애착이 하나만 붙어도 고야. 그런데 다 쉬었으니 편안할 것 아니야?
뭐든 가지려 하면 다 고야. 다 쉬어. 다른 것 없어. 취하면 고야.



"큰스님 법문을 듣다 보니 이뭣고 화두를 든다는 것도 무슨 의미인지 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뭣고를 안다고 하면 이뭣고를 모르는 거야. 이뭣고가 뭐냐 말이야?
모른다는 소린데. 이뭣고란 모른다 소리야. 모른다 소리가 화두거든. 모르거든.
아는데 모른다 하면 부아가 나지만 도무지 몰라. 아는 것이 없어.
아는 것은 몇 푼어치 안 되거든.

그래 아는 것 이야기하라 하면 전부 쩔쩔매. 아는 것이 어디 있어?
하나도 아는 게 없어. 그러니 저절로 이뭣고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편안하지 알면 괴로워.
아무것도 모르면 편안할 것 아니야?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면 이뭣고 그 자리가 바로 성불하는 자리야.
이뭣고 해서 뭐 얻는 것이 아니야. 모른다 소리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걸리는 것이 뭐 있어? 모르는데. 아는 데 문제가 있어.
아는 데. 이래 알고 저래 알고, 서로 싸우고 찌그럭거리고… 그게 다 알기 때문에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본색이야.
참말로 아무것도 모르면 그 사람은 해탈이야. 아무 고통이 없지.
모른다 해도 그 모르는 줄 알고 있으면 벌써 모르는 게 아냐.
그러니 따지고 보면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아무것도 모르면 고통이 어디 있어? 근본은 모르는 거야.
알기 때문에 괴로운 거지, 모르면 괴로운 것도 없지.
그렇지? 100% 모르면 그 사람이 해탈이야. 화두가 따로 없어. 모른다 그거야.

몰라. 몰라져? 모르면 어떻게 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거려. 아니까 끄덕끄덕거리지.
그러니 고통을 못 놓지. 아무것도 모르고 다 쉬어 버려. 그러면 뭐 고통도 없잖아.
다 쉬어. 그것이 참말로 아는 거야.

우리가 그냥 안다는 것은 아는 데 걸려 가지고 옳게 아는 것이 아니야.
벌써 그 아는 데 걸리면 해탈 자재가 아니잖아? 부자유지.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도 벌써 부처에 걸리니 고통이야.
뭐 하려고 하는 것이 고통 아니야?
뭐 안 하기가 쉬울 것 같아도 이게 참, 그 제일 쉬운 것이 제일 어렵지.

참선은 자꾸 물어 들어가는 거야. 그래 그렇게 모르게 되어야 해.
첫번에 모른다 해도 그것은 모르고 아는 게 있는 것이거든.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 거라.
모르겠다 하는 것이 벌써 모를 줄 아는 거거든. 알면 안 되거든.
정말로 모르게 딱 막혀 가지고 그렇게 들어가면 거기가 밝다 말이야.

그러니까 무심히 자꾸 이뭣고 하다 보면 밤중에 등불 없이도 환하게 밝아져.
화두 하나만 일념으로 들어가면 생각이 집중되고 환한 빛이 난단 말이야.
이 몸뚱이는 오욕락에 많이 빠질수록 더 탁하고
그 행이 맑은 사람일수록 정신도 맑거든.
그러니까 흐트러지고 먼지가 많이 들어가면 탁한 몸이 되고,
그 먼지가 가라앉아 명경지수처럼 맑아지면 환하니 비추지.

생각도 온갖 생각이 겹치고 겹치고 이 세상의 때가 껴 가지고 탁한 중생이 되는 거라.
그래 무라, 아무 생각을 안 하면 본래 마음, 이 몸 받기 전에 있는 본래 마음을 알게 되지.
그 본래 마음을 아는, 그 자리는 나고 죽는 것도 없고,
어디서 생긴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야.
무시 무종으로 본시 있는 거라.

모든 게 끊어진 자리 본시 그 자체는 밝아.
그렇게 꿈을 깨면 환한, 그 우주 전체가 바로 자기야. 우주 전체가.
중생은 본시 있는 그 자리를 모르고 자기가 지은 업에 끌려 가지고 멋대로 보고 산단 말이야.
지몸 지가 가두듯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세계를 자꾸 가둬 놓는단 말이야.
그것을 탁 터 버리면 이까짓 육체와는 상관없는, 자기가 본시 없는 그 자리지.

견성 오도하면 우주 전체가 자기라.
우주 전체가 자기 아닌 것이 없으니 뭐라 할 상대가 없잖아?
내 광명이나 저 사람 광명이나 광명은 방해가 안 돼.
어둠은 방해가 되지만 환한 빛은 천 개 만 개 보탠다 해도
방해가 안 되고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어.
그것이 마음의 광명이야.

부득이 마음이라 그러는 거지.
마음이라 해도 그것은 벌써 아니지. 마음이 아니지.
일체의 언어도단, 일체 인간의 사량이 닿지 않는 곳.
그것을 자기가 꿈을 깨듯 자기가 스스로 알 일이지.
그래 '이뭣고' 그게 모른다는 소리야.
우리가 안다고 하지만 아는 데 걸린 것은 몇 푼어치 아는 게 아니야.
참말로 아무것도 모를 때 자기 세계가 비추이는 것이지.

참선은 아는 세계에 걸리지 말고 몰라야 해.
모른다 소리가 참말로 남 아는 소리보다 나은 것이야.
철저히 모르는데... 그러면 자기가 어디 있냐 말이야.
자기가 있을 수 없잖아.

부증생 부증멸이라. 본시 그 근본자리.
거기서 몸뚱이를 받아 나가지고 백 년 동안 요것을 나인 줄 아는 거라.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이
자기란 것을 뚫고 나오라는 것이 참선하라는 소리야.
그래 이뭣고지. 뭘 알아 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모른다는 소리야.
내가 아는 것 가지고는 안 돼.

그냥 몰라. 자꾸 모른다고 들어가 아무것도 모르게 되면
자기가 알던 것도 모르고 생각도 모르면서도 의문이 일어난단 말이야.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참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