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주해14

通達無我法者 2007. 8. 21. 09:53

〈13-36〉

 ≪주해≫

* 1) 고봉독숙(孤峯獨宿) : 소승(小乘) 수행의 하나.《천태사교의(天台四敎義)》에서는,「독각(獨覺)의 성자(聖者)는 부처님이 안 계신 세상에 태어나 고봉(孤峰)에 독숙(獨宿)하면 우주의 변역(變易)을 관하여 스스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닫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 2) 일식묘재(一食卯齋) : 불교승단의 규율에는 비구들이 오전중에 한번만 걸식(乞食)하고 오후에는 단식(斷食)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불비시식(不非時食)이라고한다. 재()에는 uposatha p.213의 역(譯)으로서 청정(淸淨)을 뜻한다. 묘(卯)에는 십이 시의 하나로서 오전 다섯 시에서 일곱시 사이를 가리킨다.                  * 3) 육시행도(六時行道) : 하루를 여섯 때로 나누어 항상 예배하는 수행. 육시(六時)는 질시(辰時), 일중(日中), 일몰(日沒), 초야(初夜), 중야(中夜), 후야(後夜). .

* 4) 두목수뇌(頭目髓腦) 운운 :《법화경》제바품(提婆品)과 다른 여러 곳에서 보이는 석가 전생(前生)의 이야기. 자신의 육체 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물을 보시한 보시 태자(布施太子)의 고사가 유명하다. 칠진(七珍)은 칠보(七寶)와 같다. 금, 은, 유리, 진주, 마노(瑪瑙), 자거(★p.213 磲), 매괴(玫瑰)를 가리킨다.

* 5) 여시등견(如是等見) 운운 : 불교는 고행(苦行)을 물리치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에고이즘(egoism)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설한다, 여기서 견()은 행동의 뜻. 어떠한 사회적 봉사활동이나 종교적 신심(信心), 고행도 그 밑바닥에는 교묘한 구실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에고이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전통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체 인간의 자연에서 비롯된 대립적 상황에서 야기되는 갈등과 불안을 해소시키려는, 무익하고 덧없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사회의 불화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에고(ego)의 밑바닥까지 철저히 정화시켜야 함을 임제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 6) 내지십지만심보살(乃至十地滿心菩薩) 운운 : 이하의 다음 구절은 모두 「내지」에 이어져서「십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살을 가리킨다. 수행을 완성한 보살도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으면 평상무사(平常無事)한 도인(道人)의 수행력에 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종적(蹤跡)은 족적(足跡).

* 7) 제천환희(諸天歡喜) 운운 : 천지(天地)의 신들이 가호한다는 뜻.《연등회요》20 덕산(德山)의 장에도 같은 구절이 보인다.


〈13-37〉

 ≪주해≫

* 1)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운운 :《법화경》화성유품(化成喩品)의 내용. 하근(下根)의 제자를 위해 석존이 자신의 본지(本地)를 밝힌 것. 무한한 과거에 출현한 대승지통여래에 때에 있었던 인연을 설한 것. 선종(禪宗)에서는 이 구절에 일찍부터 주목하여《백장광록》,《조당집》17의 장(章)에는,「보살은 모름지기 중생들의 근기가 익어지기를 기다리되 마치 닭이 병아리가 쪼기를 기다려서 쪼는 이와 쪼이는 이가 동시에 하는 것과 같이 중생의 근기가 익어야 문득 부처를 이룬다. 그러므로 십겁(十劫)을 지난 뒤에야 위없는 보리를 이룬다 하느니라. 그러기에 경에는「부처님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아시므로 잠자코 앉아 계셨다」라는 대통지승불에 관한 법어를 싣고 있다. 이 밖에도《전등록》4의 천주산(天柱山) 숭혜(崇慧 ? ~779)의 장에도 이에 관한 문답이 실려 있으며, 뒷날《무문관》9칙에 의해 더욱 널리 알려진 공안이다. 광활한 중국의 대지 위에서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깨달음의 삶을 꾸려간 선승(禪僧)들에게 이 십겁이라는 영원속에 묵묵히 앉아 때를 기다렸다는 대통지승불의 웅대한 종교적 비원(悲願)은 어떤 구도적 영감(靈感)을 주웠던 것이다.

* 2) 달기만법무성무상(達其萬法無性無相) : 모든 존재를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본질적인 측면에서도 실체화시키거나 절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3) 십바라밀(十波羅蜜) :〈13-5〉에 보이는 육바라밀에 선교방편(善巧方便), 원(願), 력(力), 지(智)의 4바라밀을 더한 것. 여기서는 이와 같은 열 가지 덕목들이 영원, 청정(淸淨)함을 가리킨다.

* 4) 고인(古人) 운운 : 문수 보살(文殊菩薩)을 가리킨다.《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境界經)》에 보이는 구절. 이 말은 당시 일반화되어 있는 관용구였다.《역대법보기》와《백장광록》에도 인용되어 있다.


〈13-38〉

 ≪주해≫

* 1) 이득작불(儞得作佛) 운운 : 부처가 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본래 불(佛)이라는 것.

* 2) 심생종종법생(心生種種法生) 운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한 구절. 원래 불생불멸인 마음이 움직여 생멸(生滅)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전심법요》,《조주어록》등 많은 선문헌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 3) 일심불생(一心不生) 운운 :《신심명》의 한 구절. 만법(萬法)은 오직 일심(一心)의 현현이라는 것.「무구(無咎)」는 원래《역경》의 말.

* 4) 세여출세(世與出世) 운운 :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것도, 제이의적(第二義的)이것도 없으며, 부처도 법도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음. 심법(心法)을 깨달으면 없었던 것이 새로 출현하는 것도, 어리석어서 잃어버리지 것도 없다. 미오(迷悟)는 일시적으로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

* 5) 시이목전소소령령(是儞目前昭昭靈靈) 운운 :「나의 눈앞에서 명백하면서도 영묘하게 견문각지(見聞覺知)의 활동을 하는 진인(眞人)이란 바로 그대 자신들이다」라는 뜻.「감각문지(感覺問智)」는 견문각지와 동의어이다. 감(鑑)은 눈〔眼〕, 각(覺)은 느낌〔觸〕․감수(感受), 문(聞)은 귀〔耳〕, 지(知)는 의(意)의 활동을 가리킨다. 동일한 구절이〈13-19〉에 실려 있다.

* 6) 조오무간업(造五無間業) 운운 : 그 무엇도 절대시하지 않는 행위. 자심(自心)이외의 일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은 이 일단(一段)의 결론이며 다음 절(節)의 주제이기도 하다.


〈13-39〉

 ≪주해≫

* 1) 오무간업(五無間業) 운운 :《유마경》에도 오무간업에 대한 임제의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때 장로 마하카샤바가 문수사리에게 찬성의 뜻을 펴 말했다.〈대단히 훌륭합니다. 신의 말씀은 훌륭하고 바른 것입니다. 우리들과 같은 사람(성문)이 어떻게 깨달음을 향해 발심(發心)하고 깨달음을 열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다섯 무간죄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발심도 할 수 있고 불법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 2) 무명시부(無明是父) 운운 : 무명(無明)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제일지(第一支)로서 생사윤회의 근원이 되는 근본 미망(迷妄), 임제는 이 무명을 끊어 지멸(止滅)한 것을 아버지를 죽임이라고 이름하고 있다.《증도가》에는,「무명의 정체는 불성(佛性)이다. 우리들의 몸은 환화(幻化)와 같은 공(空)인 줄 깨달으면 바로 법신(法身)이다」라고 되어 있다.

* 3) 탐애위모(貪愛爲母) : 탐애는 번뇌의 근본 원인.

* 4) 처처혹암(處處黑暗) : 일념(一念)의 알음알이도 허락하지 않는 본래청정(本來淸淨)한 공(空)의 경지. 어둠과 빛의 차별이 생기지 이전, 혹암(黑暗)의 평등경(平等境)을 가리킨다.

* 5) 번뇌결사(煩惱結使) : 결사는 번뇌의 작용을 가리키는 이명(異名). 번뇌는 몸과 마음을 속박하고 괴로운 결과를 낳는 것이므로 결()이라 하고, 중생을 따라다니면서 마구 부리므로 사(使)라고 한다.

* 6) 인연공 심공법공(因緣空心空法空) : 이 세 가지를 삼공(三空)이라 부른다. 인공(人空)이란 인간의 신체적․심리적 자아에는 본질적인 실체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으로서 아공(我空) 또는 중생공(衆生空)이라고도 하며, 심공(心空)이란 인연에 의해 생기는 모든 존재 자체가 공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공하다는 입장에서 법공(法空)이 포함되어 삼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7) 일념결정단(一念決定斷) : 일념에 판단하여 끊음. 단()은 물리침〔却〕의 뜻으로 동작의 종지결정(終止決定)을 나타내는 어조.


〈13-40〉

 ≪주해≫

* 1) 공권지상생실해(空拳指上生實解) 운운 :〈증도가〉의 한 구절.「어리석고 어두운 소인배들이여, 빈 주먹과 손가락에 집착하여 착각을 일으키니 손가락을 달이라고 여겨 헛수고를 하는구나. 근(根), 경(境), 진(塵)에서 헛된 것을 꾸미는구나」라고 되어 있다.

* 2) 퇴굴(退屈) : 싫증이 나서 물리서는 것. 현대어의 권태(倦怠). 당대(唐代)의 역경(譯經)에 보인다.《화엄경》18 명법품(明法品),《원각경》등에 보임.

* 3) 유심사급(有甚死急) 운운 : 심()은「무슨」의 뜻. 사급(死急)은 대단히 급한 모양.「무엇을 찾길래 죽을 둥 살 둥 허덕거리는가?」라는 뜻.《전등록》19 운문(雲門)의 장에는,「요즘 어떤이들은 흡사 건달들처럼 머리를 모으고 앉아 옛사람의 말이나 외어서 기억해 두었다가 망상으로 헤아린 뒤에 불법을 알았다고 떠들고 있다. 그리고는 성질대로 부질없는 이야기나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다시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 천리만리 부모와 스승을 버리고 떠나니 무슨 황급한 일이 있어 죽을 둥 살 둥 행각만을 하고자 하는가?」라는 당시의 빗나가 선가의 수행태도에 대한 비판이 보인다.

* 4) 외음박양(倚陰博陽) : 음()에 의지하고 양()에 붙는다는 뜻. 여기서는 고인(古人)의 언어만을 쫓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 5) 막취산승설처(莫取山僧說處) 운운 : 산승(山僧)의 말을 마구 삼키려 하지 말라.

* 6) 일기간도화허공(一期間圖畫虛空) 운운 :《능가경》제 1권과 동일한 내용. 「비유컨대 공화사(工畵師)나 그의 제자가 여러 색깔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는 것같이 나의 설법도 또한 이와 같으나 나는 채색, 붓, 종이를 쓰지 말고 뭇 중생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이와 동일한 내용이 《열반경》고귀덕왕품에 보인다.


〈13-41〉

 ≪주해≫

* 1) 아견유어칙공(我見猶如厠孔) 운운 : 아견(我見)은 임제 자신의 통찰을 전제로 말하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 아래에 나오는 문장에 계속 이어진다. 측공(厠孔)은 변소구멍. 똥, 오줌이 모여지는 곳.

* 2) 문수장검(文殊仗劍) 운운 :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가 설한 계율에 집착하여 죄의식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을 구하려고 문수가 칼을 들어 붓다를 헤치려 했다는 경전의 고사(故事)이다.《대보적경(大寶積經)》105에 보인다. 구담(瞿曇)은 gautama의 음역. 석존의 성(姓). 붓다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앙굴(鴦掘)은 angulimala p.223 의 음역. 지만외도(指★p.223外道)를 가리킨다.《앙굴마라경(央掘魔羅經)》제1권에 실려 있다. 문수가 붓다를 살해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선어록에도 많이 인용되어 있는, 잘 알려진 이야기로서 당대(唐代)의 선승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절관론(絶觀論)》,《조당집》제8권에 조산(曹山)의 장,《백장광록》,《황벽어록》등에 보인다.

* 3) 삼승오성(三乘五性) 운운 : 천태종(天台宗)이나 화엄종(華嚴宗)에서 설하는 교판(敎判). 삼승(三乘)은 스승의 낮은 가르침을 의미하여 오성(五性)은 법상종(法相宗)에서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중생성불의 성질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 보살정성(菩薩定性)․연각정성(緣覺定性)․성문정성(聲聞定性)․삼승부정성(三乘不定性)․무성유정(無性有情), 원돈(圓頓)은 최고 보편의 교의.

* 4) 설유개시상사(設有皆是相似) 운운 : 제이의(第二義)적인 것을 법으로 인정하는 것. 상사(相似)는 모방(imitation), 흉내. 표현로포(表顯路布)는 널리 알리는 공무서, 고지문(告知文). 본래는 전승(戰勝)을 알리는 플래카드.

* 5) 향리허착공(向裏許著功) : 일생을 문자를 구하기 위해 보냄. 리허(裏許)는 외허(外)에 대한 표현. 내면․내부. 허()는 접미사. 착공(著功)은 착력(著力)과 같음.〈13-26〉참조.


〈13-42〉

 ≪주해≫

* 1) 아차불취이해경론(我且不取儞解經論) 운운 :「나는 그대의 학문도, 사회적 지위도, 지식과 교양, 용모도 문제삼지 않겠다. 오직 그대의 진정한 견해만을 요망할 뿐이다」라는 의미. 임제 선사상의 특색인 치열한 인간응시의 안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선언이다.《조당집》3의 등등(騰騰) 화상의〈낙도가(樂道歌)〉에는,「팔만사천 가지의 법문이 많긴 하지만 지극한 깨달음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학문과 지식을 많이 구하는 것도, 총명한 수재도 나는 바라지 않는다」라 되어 있다.

* 2) 승부수라(勝負修羅) 운운 : 지식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아견(我見)으로 다투게 됨. 아수라(Asura)는 전투의 신(神). 인아(人我)는 자타(自他)의 대립.

* 3) 여선성비구(如善星比丘) 운운 :《열반경》가섭품(迦葉品)에 보이는 이야기. 선어록 중《혈맥론(血脈論)》,《증도가(證道歌)》에 인용되어 있다. 선성(善星)은 Suna Ksatra p.226 의 역(譯). 선숙(善宿)이라고도 쓴다. 비구 선성은 십이 부의 경에 정통한 수재였다. 그러나 그는 무인과(無因果)를 주장하며 악행을 저지른 탓으로 산 몸으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공(空)에 집착한 어느 천재적인 니힐리스트(nihilist)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13-43〉

 ≪주해≫

* 1) 흑만만지(黑漫漫地) : 끝이 없는 어둠. 빛이라고는 한점도 없는 어둠. 만만(漫漫)은 끝이 없는 모양을 나타낸다.

* 2) 복열심망(腹熱心忙) 운운 :「가슴은 타오르고 마음은 바빠서 황급히 스승을 찾아다녔다」는 표현. 심()은 심장(心臟), 분파(奔波)는 총총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

* 3) 후환득력(後還得力) : 득력은 속어로서 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뜻. 임제의 경우에는 황벽과 대우 스님의 도움으로 깨우치게 됐다는 뜻.

* 4) 권제도류(勸諸道流) 운운 : 옷과 밥의 안일을 위해 구차하게 살지 말라는 것. 수도인(修道人)의 본분을 강조한 것.

* 5) 우담화(優曇華) : 우담발라화(優曇鉢羅華). 무화과의 일종. 삼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전해진다. 회유한 일에 비유하는 말.

* 6) 이제방문도(儞諸方聞道) 운운 : 문도(聞道)는 단순히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言道〕, 알고〔知道〕, 믿는〔信道〕것을 가리키는 유어(類語).

* 7) 몽연부지(懵然不知) 운운 : 어리석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 8) 용상축답(龍象蹴踏) : 상대가 되지 못함.《유마경》부사의품(不思議品)에 나오는 구절.《역대법보기》에도 인용되어 있다. 용상(龍象)은 최고의 코끼리.

* 9) 지흉점륵(指胸點肋) :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


〈13-44〉

 ≪주해≫

* 1) 부여지리지도(夫如至理之道) 운운 : 심법(心法)의 도리는 논의를 다투거나 소리를 높여 이단(異端)의 사상을 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 갱장(鏗鏘)은 소리 높여 논쟁을 한다는 것. 갱(鏗)은 금석(金石)의 소리. 장(鏘)은 옥(玉)의 소리. 《백장광록》에도,「논쟁하여 승부를 다투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자는 쟁론승(諍論僧)이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임제의 이와 같은 지적 속에는 아마도 인도불교에 있어서의 중관(中觀)․유가(유p.230伽) 양파 간의 논쟁, 가까이는 라사(Lhasa)의 종론(宗論), 신회(神會)의 북종(北宗) 공격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남겨 있을 것이다.

* 2) 언교(言敎) : 교의(敎義).《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제47권에는,「여래세존께서는 어떤 언교(言敎)가 있었는가?」라는 구절이 보인다.

* 3) 낙재화의(落在化儀) 운운 : 불교의 여러 가지 법문은 교화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뜻. 화의(化儀)는 천태종에서 세운 경전 분류의 네 가지. 돈(頓)․점(漸)․비밀(秘密)․부정(不定)의 네 가지가 있다.

* 4) 여원돈지교(如圓頓之敎) 운운 : 대승 최고의 가르침인 원돈(圓頓)의 입장은 결코 화의(化儀)가 아니라는 것.

* 5) 선재 동자(善財童子) 운운 :《화엄경》입법계품(入法界品)의 이야기. 선재 동자가 오십삼 선지식을 찾아 순례한 것은 삼승(三乘), 오성(五性) 등의 단계적인 수행을 설하는 화의법문(化儀法門)을 구하여 다닌 것이 아니고 일념(一念)에 삼승권교(三乘權敎)를 초월한 원돈일승(圓頓一乘)의 교법을 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제 동자는 밖에서 법을 구한 것이 아니고 본래구족한 자기의 마음을 깨달은 것이므로 110성(城)을 지나서 오십삼 선지식을 방문했지만 오십삼 선지식을 한 사람도 밖에서 찾아 구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 6) 일상무운(日上無雲) : 구름과 예〔翳〕는 언교〔言敎〕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에 비유한 것.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도 본래의 빛을 잃는 일이 없다. 오조 홍인(五祖弘忍)은《수심요론(修心要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시 일륜(一輪)에 비한다면 운무(雲霧)가 팔방(八方)에서 뭉게뭉게 일어나서 천지가 캄캄해질 때와 같은 것이다. 일률이 어찌 사라져 버릴 것인가? 어찌 빛이 없어질 것인가? 빛은 원래 소멸하는 일이 없다. 다만 운무(雲霧)에 가려졌을 뿐이다. 사람들의 청정심(淸淨心)도 이와 같다. 반연(攀緣)하는 망념이나 번뇌라는 검은 구름에 덮여 있었을 뿐이다. 의연히 마음을 지키기만 하면 좋다. 망념은 일어나지 않고 열반은, 법일(法一)은 자연히 빛날 것이다.」

  흥인은 부운(浮雲)이 아니라 태양 그 자체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 7) 전즉미륜법계(展則彌綸法界) 운운 : 펼치면 세계를 덮고, 본체로 환귀(還歸)하면 실털 하나도 놓을 공간이 없다는 일심(一心)의 채용(채용)을 나타내는 말.《종경록(宗鏡錄)》98에 보이는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의《절관론(絶觀論)]》의 한 구절.〈10-6〉의「심법무형통관십방(心法無形通貫十方)」의 뜻과 같다.

* 8) 안불견 이불문(眼不見耳不聞) 운운 :《전등록》30의 배도 선사(杯渡禪師)의〈일발가(一鉢歌)〉의 한 구절.

* 9) 고인운(古人云) : 고인은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을 가리킨다.《조당집》3,《전등록》5에 보이는 구절. 남악회양이 육조(六祖)를 찾아뵈었을 때의 이야기.「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고 육조가 묻자 남악은,「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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