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의 서문 6
不是河南이면 便歸河北이로다 院臨古渡에 運濟往來로다 불시하남 변귀하북 원임고도 운제왕래
하남지방이 아니면 하북지방으로 돌아감이여, 임제원은 옛 나루터에 임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강의 ; 임제스님이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풍을 드날릴 곳을 말하고 있다. 어느 곳으로 가던지 그 장소가 무슨 문제이겠는가. 황벽스님은 황벽스님대로 나는 나대로 인연을 따라 가고 인연을 따라 머무를 것이다. 어디를 가든 천지만물은 그대로가 모두 무위진인인데.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을 건지고 눈을 열어주면 되는 일인 것을. 실로 그 후 임제스님이 가서 머문 임제원은 하북의 진주 호타하라는 강포구의 도시 오늘의 석가장이란 곳이다. 임제원에는 지금도 그의 탑과 비석이 있다. 강포구에서 나그네들을 강을 건너게 하는 일과 사람들을 제도하는 일의 표현이 같기 때문에 ‘임제원은 옛 나루터에 임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라는 표현은 너무도 절묘하다.
把定要津하니 壁立萬仞이로다 奪人奪境하야 陶鑄仙陀하고 파정요진 벽립만인 탈인탈경 도주선타
요새(要塞)가 되는 나루터를 지키고 있으니 그 절벽의 높이는 만 길이나 되고, 사람도 빼앗고 경계도 빼앗는 수단으로 선타바를 만들어 낸다. 강의 ; 임제스님이 지키고 있는 곳은 불교 최후의 관문이며 요긴한 길목이다. 그 곳을 지나가지 않으면 불교의 세계에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그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부처도 아니며 조사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그 관문의 높이는 만 길이나 되는 높고 높은 요새다.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다 떠난 자리다.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한 경지다.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객관]을 온통 부정해 버리는 방법과 그 자신[주관]마저 부정해 버리는 등등의 수단을 써서 건진다. 때로는 주관과 객관을 모두 부정하고, 때로는 주관과 객관을 모두 긍정하여 받아드린다. 이것을 사람들을 제접(提接)했을 때 네 가지로 구분하여 법을 쓰는 방씩으로 사구(四句) 또는 사요간(四料簡)이라 한다. 때로는 봄바람 같고 때로는 살을 에는 매서운 겨울바람 같다. 이러한 솜씨로 열반경의 선타바와 같은 총명하고 민첩하고 지혜로운 제자들을 길러낸다. |
'임제록(臨濟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록강설/마방의서문8/무비스님 (0) | 2007.08.29 |
---|---|
임제록강설/마방의서문7/무비스님 (0) | 2007.08.29 |
임제록강설/마방의서문5/무비스님 (0) | 2007.08.29 |
임제록강설/마방의서문4/무비스님 (0) | 2007.08.29 |
임제록강설/마방의서문3/무비스님 (0) | 2007.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