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능엄경(楞嚴經)

능엄경 강의 20 終 / 송찬우 교수

通達無我法者 2007. 11. 28. 11:25

 

 
 
능엄경 강의 20 終
 
 
   
 
▲ 三略示妄盡還源分二   ◈ 初當機疑請
阿難白佛言. 世尊. 云何逆流深入一門. 能令六根一時淸淨

▲ 3. 망상이 다하여 근원으로 환원함을 대략 두 분야로 보이다.
◈ 1. 아난이 의심을 청하다. 
  아난이 부처님께 고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생사를 역류하오며 또 하나의 문으로 만 깊이 들어가면 육근이 일시에 청정할 수 있는지요.”
[要義] 의심을 둘로 하였다. 이미 육근이면 망상의 매듭도 여섯인데 어떻게 하나의 근만 망상이 끊기면 육근 모두가 청정할 수가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 二世尊的示分十   《初總明機淺法深
佛告阿難. 汝今已得修陀洹果. 已滅三界衆生世間見所斷惑. 然猶未知根中積生無始虛習. 彼習要因修所斷得. 何況此中生住異滅分齊頭數   

◈ 2. 세존께서 열 분야로 분명히 보여주다.
《 1. 근기는 얕은데 법은 깊음을 총체적으로 밝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고하셨다.
  너는 미록 범부로부터 성위로 들어가 소승초과(小乘初果)를 얻고 성류(聖流)로 들어가 삼계중생 세간 견도위(見道位) 가운데서 팔십팔사(八十八使)의 미혹을 끊긴 하였다. [見惑] 이 견류(見流)는 알았으나 의근 가운데서 종자에서 현행(現行)이 일어나고 현행에서 다시 종자가 형성되 적겁(積劫)토록 상생하고 무시이래로 허망한 습기인 팔십일품사혹(八十一品思惑)은 수도위(修道位)에서 끊는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사혹(思惑), 지말무명(枝末無名)ㆍ계내무명(界內無明)]
  하물며, 이 가운데 무명업상(無明業相)에서 일어나는 생주이멸(生住異滅)에서 미혹을 끊는 그 숫자를 알겠느냐. [근본무명(根本無明)ㆍ계외무명(界外無明)]

[要義] 여기서는 마음의 요전을 광대하게 보여 우선적으로 생사의 흐름을 역류시키는 수행을 보였다.
  견류(見流)는 의근이 법진(法盡)을 마주하여 분별견해를 일으켜 이로 인해 생사에 유전하면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사혹(思惑)은 또는 욕류(欲流)ㆍ유류(有流)ㆍ무명류(無明流)라고 한다.
  “욕류(欲流)”는 전오근(前五根)이 오진경계를 탐애함을 말하며, 이를“사혹(思惑)”이라고 한다. 이 사혹 때문에 욕계에 생사로 유전하여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욕류”하고 한다.
  “유류(有流)”는 인과의 집착을 잊지 못함을 “유(有)”유라고 한다. 이는 색무색계의 사혹인데 이 때문에 색ㆍ무색계에 유전하면 벗어나질 못하기 때문에 유류라고 한다.
  “무명류(無明流)”는 명료하질 못함을 말한다. 즉 삼계사혹 가운데 한 분야의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 무명 때문에 삼계에 유전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류라고 한다.
  이 “삼류(三流)”번뇌를 끊으면 사과(四果)를 증득한다. 제2과로부터 제4과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수도(修道)에 속한다. 그 때문에 “수도위에서 끊고 증득한다”하였다.
  아난은 아집도 아직 다 끊지 못하였다. 하물며 삼계 밖의 견사혹(見思惑)과 함장식(含藏識) 가운데 구생아법(俱生我法)의 미세한 번뇌를 어떻게 알겠는가. 이는 진사무명(塵沙無明)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은 “기신론(起信論)에서 말한 삼세(三細) 가운데 무명업상(無明業相)이 생상(生相)이며, 전상(轉相)ㆍ현상(現相)ㆍ지상(智相)ㆍ상속상(相續相)이 주상(住相)이며, 집취상(執取相)ㆍ계명자상(計名字相)이 이상(異相)이며, 기업상(起業相)이 멸상(滅相)이다.
  “분제(分齊)”는 십주초위(十住初位)로부터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총 사십이위(四十二位)가 있음을 말한다. 또 범무는 생주이멸 가운데 “멸상”을 깨닫고 이승은 “이상”을 깨닫고, 법신(法身)보살은 “주상”을 깨닫고, 등각보살은 “생상”을 깨달음을 말한다. 즉 “미혹을 끊는 분야의 숫자”를 말한다.

 《二令觀六一虛妄
今汝且觀現前六根爲一爲六. 阿難. 若言一者. 耳何一見. 目何不聞. 頭奚不履. 足奚無語. 若此六根決定成六. 如我今會與汝宣揚微妙法門. 汝之六根誰來領受. 阿難言. 我用耳聞. 佛言. 汝耳自聞何闕身口. 口來問義身起欽承. 是故應知非一終六. 非六終一. 終不汝根元一元六
 
《 2. 육과 일이 허망함을 보이다. 
  너는 이미 한 문으로 깊이 깨달아 들어가면 육근이 청정해지는 까닭을 몰랐다. 너는 지금 관찰해 보라. 현재의 육근이 단정적으로 하나인지 아니면 여섯인지를.
  만일 단정적인 하나라고 한다면 이근으로 보아야만 하고, 안근으로 들어야 하며, 머리로 걸어야 하고, 발로 말을 해야만 한다. 정작 지금 그렇질 않은데 어떻게 단정적인 하나라고 하겠느냐.
  또 단정적인 여섯이라고 한다면 몸?입?귀는 각자 자체 성질이 있어 서로가 교대로 대신 작용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미료한 설법을 하는데 너의 육근 가운데서 어느 것이 받아들이느냐.
  아난은 대답하였다.
  “저는 귀를 사용하여 듣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미 단정적인 여섯이라면 너의 귀로 들으면 몸과 입은 서로 상관하지 않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입으로 질문하고 몸으로는 공경을 표시하겠느냐. 역시 단정적인 여섯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본래 단정적인 하나도 아니고 끝내 단정적인 여섯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본성 가운데선 서로 알므로 단정적인 여섯이 아니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서로 위배하며 모르므로 단정적이 하나도 아니다.
  어떻게 너의 육근이 원래부터 단정적인 하나가 있고, 단정적인 여섯이 있으랴.

《三的示眞妄兩妄
阿難. 當知是根非一非六. 由無始來顚倒淪替故於圓湛一六義生

《 3. 진심과 망심을 둘 다 잊음을 분명히 보이다. 
  아난아, 알아야만 한다. 중생이 여섯이다. 또는 하나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무시이래로 일념이 전도되어 육근과 육진이 허망이 망상으로 얼켜 서로가 교대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만하게 상주하고 단연한 성체에서 분별을 허망하게 일으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살피는 작용이 따로 일어난 것이다. 하나다 여섯이다 하는 의미가 이 때문에 일어났다.
 
《四責迷執一
汝須陀洹雖得六鎖猶未亡一

《 4. 미혹하여 하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책망하다.

  때문에 범부는 여섯으로 집착하고 소승은 하나라고 집착하여 원만하고 담연한 성체는 본래 여섯과 하나가 아님을 모른다.
  너는 지금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육진경계로 빨려 들어가진 않는다. 이는 육근의 현재 활동하는 작용이 소멸하였을 뿐 허망한 습기 종자는 그대로 함장식 가운데 남아 있다. 그 때문에 하나라는 집착을 잊지 못한다.
 
《五喩出形名
如太虛空參合?器. 由器形異名之異空. 除器觀空說空爲一. 彼太虛空云何爲汝成同不同. 何況更名是一非一. 則汝了知六受用根亦復如是

《 5. 비유로 그릇의 형태와 허공의 이름을 들어내다. 
  원만하고 담연한 성체는 본래 하나도 여섯도 아님이 허공이 모든 그릇과 섞여 있는 것과 같다. 그릇의 형체는 따라서 망원장단의 차이가 있으면 이윽고 허공의 모습이 다르다 하고, 가령 다른 모습의 그릇만 제거하고 허공을 보면 허공을 하나라 함과도 같다. 이도 다른 모습에 대비해서 하나라고 말한 것인데, 허공에 어찌 하나와 다른 모습이 있으랴.
  그릇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허공이 동일하지 않다하고, 그릇을 제거했기 때문에 허공을 동일하다고 한다. 이는 그릇이 제거되고 머무는 데에 있을 뿐이다. 태허공이 어떻게 너의 말을 따라서 동일함과 동일하지 않음을 이루었으랴. 하물며 그 허공을 하나다, 또는 하나가 아니다 라고 말하겠느냐.
  허공이 이미 그러하다면 너의 육수용근(六受用根)도 역시 이와 같이 망상으로 육근이 맺힌 것으로 인해서 여섯이라 하고, 망상이 소멸함을 따라서 하나라고 한다. 이는 한갓 말일 뿐이다.

[要義] 여기에서는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면 육근이 모두 청정해진다는 의문에 답변하여 본래 하나와 여섯이 없음을 밝혔다.

《 六別示妄源分二   ● 初別顯妄源分六 ▩ 初眼根
由明暗等二種相形. 於妙圓中?湛發見. 見精映色結色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眼體如薄萄朶. 浮根四塵流逸奔色

《 6. 망상의 근원을 따로 드러내어 두 분야로 보이다.

● 1. 망상의 근원을 여섯 분야로 나누어 따로 나타내다.

▩ 1. 안근   이미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육근이 있게 되었는가.
  밝음과 어두움 등 두 종류의 색진이 상대적으로 얽혀 원묘한 성품 가운데서 일념 망상 때문에 담연한 성품에 찰싹 붙어 견정(見精)이 일어났다.
  그 견정은 색진을 비추면서 색진을 휘어잡아 한 덩어리로 결성되어 승의근(勝義根)을 이루었다. 이 승의근은 색법에 속하긴 하나 그래도 청정색근이어서 거칠고 혼탁한 색법에 오염되진 않았다. 이를 청정한 사대(四大)라고 한다. 그 모습은 극도록 미세하여 부처님 천안(天眼)이 아니면 분별하지 못한다.
  그 승의근이 부근진(浮根塵)의 근원이 되어 이를 의지해서 안체(眼體)라고 한다. 그 생김새는 마치 포도넝쿨과도 같다.
  이미 부근진이 있고 나면 밖으로 색향미촉을 의지하고 안으론 지수화풍을 의지하여 승의안근과 부진안근, 이 둘이 맺힌다. 이윽고 견정이 이 안근을 의지하여 색진으로 달려가면서 본성으로 되돌아 올 때가 없다. 이것이 안근이 맺히는 이유다.

▩ 二耳根
由動靜等二種相擊. 於妙圓中?湛發聽. 聽精映聲卷聲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耳體如新卷葉. 浮根四塵流逸奔聲

▩ 2. 이근   동과 정, 이 둘의 성진(聲塵)이 오묘하고 원만한 본성을 서로 교대로 쳐 오묘한 본성이 일념불각이 되어 문정(聞精)을 일으키고 성진을 관조한다. 이윽고 그 성진을 거두어 승의이근(耳根)을 이루는데 이 때의 이근은 색법에 속하긴 하나 아직은 청정색이여 거칠고 혼탁한 색법에 오염되진 않았다. 그 모습은 극도로 미세해서 어리석은 자는 분별하지 못한다.
  승의이근 부근이근의 근원이 되어 이를 의지해서 이근이라는 명칭이 수립된다. 그 이근의 생김새는 마치 나뭇잎을 서로 잡은 것과 같다.
  이미 부근진이 성립되고 나면 막으로 색?향?미?촉 사진을 의지하고 안으로 지?수?화?풍 사대를 의지하여 청정근과 부진근을 형성하여 문정(聞精)이 이근을 의지하여 성진으로 달려간다. 성진을 따르고 유전하면서 그 근원을 추궁할 때가 없는데 이것이 이근이 결성되는 이유다.

▩ 三鼻根
由通塞等二種相發. 於妙圓中?湛發?. ?精映香納香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鼻體如雙垂爪. 浮根四塵流逸奔香

▩ 3. 비근   공간의 막히고 통함 두 종류가 상대적으로 일어나 오묘하고 원만한 본성 가운데서 일념망상을 일으켜 이윽고 취정(?精)이 일어난다. 그 취정이 향진(香塵)을 관조하여 그 냄새를 흡취하여 승의근을 이룬다. 이는 청정사대색이며, 그 모습은 지극히 미세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모른다.
  이 승의근은 부근진이 일어나는 근원이 되어 이로 인해 비근의 자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손톱이 쌍으로 드리운 것과 같다.
  이미 부근진이 있고 나면 밖으로 사진을 의지하고 안으로 사대를 의지하여 비근을 이루고, 취정(?精)이 이를 의지해서 향진으로 달리면 그 근원본성을 되돌아오질 않는다. 이것이 비근이 형성된 이유다.

▩ 四舌根
由恬變等二種相參. 於妙圓中?湛發嘗. 嘗精映味絞味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舌體如初偃月. 浮根四塵流逸奔味

▩ 4. 설근   만이 없고 만이 있는 두 종류가 서로 뒤섞여 오묘하고 원만한 본성에서 일념망상을 일으켜 그 담연한 본성에서 상정(嘗精)이 일어나면 그 미진(味塵)을 관조하여 바로 취하곤 이윽고 승의근을 이룬다.
  이 승의근은 색법에 소속하나 아직은 청정색이여서 혼탁한 색법에 오염되진 않았다. 이것은 청정사대며, 그 생김새는 초생달과도 같다. 그 모습은 미세하여 어리석은 자는 분별하지 못한다.
  승의근이 있으면 그것이 부진근이 의지하는 근원이 되어 이로 인해 승의근을 설근 자체라고 한다.
  이미 부근진이 있고 나면 밖으로 사진을 의지하고 안으로 사대를 의지하여 설근을 이루면 상정(嘗精)이 이를 의탁하여 미진으로 달려가 본성으로 되돌아오질 않는다. 이것이 설근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 五身根
由離合等二種相摩. 於妙圓中?湛發覺. 覺精映觸搏觸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身體如腰鼓類. 浮根四塵流逸奔觸

▩ 5. 신근   상대경과 분리와 합하는 두 종류의 색진이 서로 교제하고 마찰하여 오묘하고 원만한 본성에서 일념망상을 일으켜 담연한 본성에서 지각이 일어나 그 각정(覺精)이 촉진(觸塵)을 분별하면서 그 촉경을 휘어잡아 승의촉근을 이룬다.
  촉근의 근원 청정사대며, 이는 부근진이 의지하는 자체이므로 이로 인해 부진신근이 일어나는 자체라고 한다. 그 생김새는 허리에 찬 북채와 같다.
  이미 부근진이 있고나면 밖으로 사진을 의지하고 안으로 사대를 의지하여 촉진으로 달려가 그 본성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신근이 일어난 까닭이다.

▩ 六意根
由生滅等二種相續. 於妙圓中?湛發知. 知精映法攬法成根. 根元目爲淸淨四大. 因名意思如幽室見. 浮根四塵流逸奔法

▩ 6. 의근   생멸하는 두 종류의 망상이 상속하면서 오묘하고 원만한 본성 가운데 붙어 아는 마음을 이끌어 내어, 지정(知精)이 법진을 관조하고 그 법진을 휘어잡아 의근을 이룬다.
  의근의 근원은 청정사대라고 하며, 이로 인해 사량요별(思量了別)하는 성품이라고 한다. 그것은 마치 밝은 곳에 있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못 보고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은 밝은 곳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 의근은 몸 안에 거처하면서 전오근(前五根)을 사량하고 헤아린다.
  이미 부진근이 있고 나면 안으로 사대를 의지하고 밖으로 사진을 의지하여 법진으로 달려가면서 그 본성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의근이 결성된 까닭이다.

[要義] 여기서는 진실한 본성자체를 미혹하여 육근이 결성되는 원인과 과정을 밝혔다.

● 二總結虛妄
阿難. 如是六根. 由彼覺明有明明覺. 失彼精了?妄發光. 是以汝今離暗離明無有見體. 離動離靜元無聽質. 無通無塞?性不生. 非變非恬嘗無所出. 不離不合覺觸本無. 無滅無生了知安寄

● 2. 육근이 허망임을 총론적으로 결론짓다. 
  아난아. 이처럼 육근을 모두 원담각명체에서 일념불각 때문에 주관적으로 밝히려한 망상 때문에 이윽고 정미하고 명료하게 아는 본성을 잃고 육진 망상이 붙어 육식 망상이 일어났다.
  육근이 원래 육진과 결합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네가 지금 어두움과 밝음을 떠나면 보는 자체가 없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떠나면 소리를 듣는 형질이 없고, 통함과 막힘이 없으면 냄새의 성질이 일어나질 않고 맛과 맛없이 아니면 맛보는 마음이 나올 수 없으며, 분리와 합함이 아니면 촉각이 본래 없고, 생과 멸이 없으면 명료하게 아는 의근이 어디에 의탁하랴.

《七指歸觀心
汝但不循動靜合離恬變通塞生滅明暗. 如是十二諸有爲相. 隨拔一根脫?內伏
 
《7. 관심으로 귀결하다. 
  너는 단지 육근을 돌이켜 움직임ㆍ고요함과, 합함ㆍ분리함과, 맛ㆍ맛없음과, 막힘ㆍ통함과, 생ㆍ멸과 어두움ㆍ밝음, 이와 같은 열둘의 모든 유위상을 현재의 육근 가운데서 하나의 근을 따라 밖으로 육진의 집착을 벗어버리고 안으로 돌이켜 육근을 조복받으라.

《八智起惑忘
伏歸元眞發本明耀. 耀性發明. 諸餘五?應拔圓脫. 不由前塵所起知見

《 8. 지혜가 일어나면 미혹의 집착을 잊는다. 
  육근과 육진이 상대적인 짝을 이루지 않고 육근을 조복 받아 근원 진심으로 되돌아가면 본래 밝은 자성광명이 일어나고, 자성에 광명이 일어나면 나머지 오근의 속박도 원만하게 해탈하여 육진을 따라서 지견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要義] 여기서는 망상을 돌이켜 한 분으로 깊이 들어가면 동시에 육근이 청정함을 밝혀 이로써 속박을 푸는 법을 제시하였다.
  원만한 본성자체는 육근이 본래 없다. 단지 망상과 육진이 교대로 읽혀 육근을 이루었을 뿐이므로 지금 그 속박을 풀려면 허망한 육진을 제거해야 한다.
  단지 육진으로 치구하지 않는다면 육근 가운데 속박이 그 중 하나가 풀리면 나머지 모두가 동시에 풀린다. 이는 가장 간이한 원돈수습 방법이다.
  여기에 이르면 밖으로 육진을 따르지 않고 안으로 육근도 따르지 않게 되어 신령한 광채가 절대 홀로 들어나 육근ㆍ육진을 아득히 벗어나게 된다. 이는 “법화경”에서 말한 “노지백우(露地白牛)”이다.

《九略顯大用
明不循根寄根明發. 由是六根互相爲用. 阿難. 汝豈不知今此會中阿那律陀無目而見. 跋難陀龍無耳而聽. ?伽神女非鼻聞香驕梵鉢提異舌知味. 舜若多神無身覺觸. 如來光中映令暫現. 旣爲風質其體元無. 諸滅盡定得寂聲聞如此會中摩訶迦葉久滅意根圓明了知不因心念

《 9. 간략히 대용을 드러내다. 
  이미 진성을 깨닫고 여기에 이르면 밖으로 열두 종류의 전진(前塵)을 따르지 않으므로 일으킨 진실한 지견은 안으로 밝은 광명이 육근을 따르지 않고 방편으로 육근에 의지해서 광명이 스스로 일어난다.
  이처럼 육근과 육진을 쌍으로 벗어났기 때문에 목전에서 육근이 서로 서로 작용하리라.
  아난아, 너는 왜 모르느냐. 지금 이 능엄회중에서 아나률타는 눈이 없어도 보고, 발난타용은 귀가 없으나 듣고, 극가사신녀는 코로 냄새를 맡지 않으며, 교범발제는 이설(異舌)로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으나 촉각을 일으켜 여래의 광명이 비추면 잠시 나타나게 하나 그의 몸은 바람임으로 그 몸은 원래 없다.
  모든 멸진정(滅盡定)으로 적멸을 증득한 성문들이 모인 이 법회 가운데 마하가섭은 오래전에 의근(意根)이 소멸하여 분별심을 의지하지 않고 명료하게 안다.

[要義] 여기서는 진심을 깨달음을 밝혀 특별히 여섯 사람을 예로 들어 육근이 호용함을 증명하였다.

《十顯妄盡還源
阿難. 今汝諸根若圓拔已. 內瑩發光. 如是浮塵及器世間諸變化相如湯消?. 應念化成無上知覺. 阿難. 如彼世人聚見於眼. 若令急合暗相現前. 六根?然頭足相類. 彼人以手循體外繞. 彼雖不見. 頭足一辯知覺是同. 緣見因明暗成無見. 不明自發則諸暗相永不能昏. 根塵旣鎖. 云何覺明不成圓妙

《 10. 망상이 다하여 진심으로 되돌아 가다. 
  아난아, 지금 네가 모든 육근 원만하게 뽑고 나면 안과 밖으로 밝은 광명이 일어나 이같은 부진근ㆍ승의근과 기세간에 명암색공 등 모든 변화상이 끊는 물에 어름이 녹듯하여 네 생각을 따라 위없는 지각을 성취하리라.
  아난아, 네가 만일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면 육근이 동시에 청정해진다는 의미를 통달하지 못했다면 육근이 서로 서로 장애함 없이 작용하는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세상 사람이 보는 성품이 오직 안근에만 모여서 보다가 급히 두 눈을 감게하면 어두운 모습이 목전에 나타나 육근이 있다해도 캄캄하여 머리와 발이 못보는 것과 같으리라.
  그러나 그 사람이 손을 가지고 몸을 따라서 어루만지면 그는 보지는 못하나 머리와 발을 낱낱이 분별하여 어둠 속에서 지각하는 것이 광명 속에서 눈을 뜨고 지각하는 것과 같으리라.
  그러므로 인연을 의지해서 보는 것은 반드시 광명을 의지해야만 하며, 혹 어두움을 만나면 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광명을 의지하지 않고도 보는 성품이 스스로 발동하면 모든 어두운 모습이 영원히 어둡게 하질 못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진실하게 보는 마음은 밝음이 밝게 하지 못하고 어두움이 어둡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육근과 육진이 이미 녹고 나면 본각의 광명이 원묘함을 이루지 않겠느냐.

[要義] 여기에서는 육근이 호용하는 예를 인용하였다. 이상에서 육근이 호용하는 사리를 모두 자세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성에 본래 갖추고 있음을 모를까 봐 세인을 이끌어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망상이 다하여 근원으로 되돌아감을 대략 나타냈다.
 
▲ 四密示最初方便分二 ◈ 初當機重疑斷滅分二   《初以眞疑妄 
阿難白佛言. 世尊. 如佛說言因地覺心欲求常住. 要與果位名目相應. 世尊. 如果位中菩提涅槃眞如佛性菴摩羅識空如來藏大圓鏡智. 是七種名稱謂雖別. 淸淨圓滿體性堅凝. 如金剛王常住不壞. 若此見聽離於明暗動靜通塞畢竟無體. 猶如念心離於前塵本無所有. 云何將此畢竟斷滅以爲修因. 欲獲如來七常住果

▲ 4. 최초 수행방편을 두 분야로 은밀하게 보이다.

◈ 1. 아난이 단멸인가 하고 두 분야로 거듭 의심하다.

《 1. 진심을 망심으로 의심하다. 
  아난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수행인지(修行因地)에서 생멸심을 의지하여 불생불멸의 과지(果地)를 구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이렇다면 상주진심(常住眞心)을 구하려 한다면 반드시 인지(因地)의 각심이 과지의 각심과 그 명목이 일치해야만 옳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과위(果位) 가운데서 오주지번뇌(五住地煩惱)를 끊고 얻은 보리와 이종생사(二種生死)를 제멸하고 얻은 열반과 불변수연수연불변(不變隨緣隨緣不變)하는 진여와 성각묘명(性覺妙明)하고 본각묘명(本覺妙明)한 불성과 본래 무구백정(無垢白淨)한 암마라식과 청정본연한 공여래장과 전식성지(轉識成智)한 대원경지(大圓鏡智)인 이같은 일곱 종류는 명칭은 다르나 모두가 과지에서 자증한 덕입니다.
  이는 본래 청정하고 원만하기 때문에 그 체성은 견고하여 요동함이 없고, 응결되어 흐르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금강왕 보검이 끝내 파괴되지 않고 견고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보를 얻으려면 반드시 파괴되지 않는 수행인지라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부처님께선 육근 모두가 담연한 이치를 나타내고 그 가운데 하나의 원통근(圓通根)만을 선택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곤 다시 말씀 하시기를 광명과 어두움을 떠나면 보고 듣는 육근의 작용도 없다 하셨습니다.
  만일 보고 듣는 등의 육근의 작용이 광명ㆍ어두움ㆍ움직임ㆍ고요함ㆍ소통함ㆍ막힘 등 육진경계를 떠나서 끝내 따로의 실체가 없다면 여래께서 앞서 칠처징심(七處懲心)에서 분별심은 목전의 육진을 떠나면 본래 없다, 말씀하심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생멸심을 수행인지로 삼으면 상주불변한 과를 얻지 못한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육진을 떠나선 끝내 실체가 없는 육식 분별심처럼 단멸하는 육근을 가지고 수행인지를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상주불변하는 과보를 얻으라 하십니까.

《二以妄疑眞
世尊. 若離明暗見畢竟空. 如無前塵念自性滅. 進退循環微細推求本無我心及我心所. 將誰立因求無上覺. 如來先說湛精圓常. 違越誠言終成?論. 云何如來眞實語者. 惟垂大慈開我蒙?

《 2. 망심으로 진심을 의심하다. 
  세존이시여. 밝음과 어두움을 떠나면 보는 마음이 끝내 공적하다 함은 이는 육근이 육진을 떠나면 그 실체가 없는 것이며, 목전의 육근을 떠나면 분별심 자체가 소멸한다 함은 이는 분별심이 육진을 떠나면 육진도 역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나아가서 심성의 이치를 관찰해 보고 물러나서 육근ㆍ육진을 살펴 이를 순환하기를 거듭하며 미세하게 추구해 보았습니다. 만일 육근을 떠나면 나의 마음은 본래 없고, 육진을 떠나면 마음의 소재가 없으며, 육근과 육진이 이미 녹아 버리면 마음도 육진도 없는 단멸이 됩니다.
  다시 무엇으로써 수행인지심을 수립하고 위없는 과지의 깨달음을 구하겠습니까.
  여래께선 육진이 원만하고 상주함을 말씀하시더니 지금은 다시 육근은 육진을 떠나선 실체가 없다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위배하여 끝내 희론을 이룹니다.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전후의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대자비를 베푸사 저의 몽매하고 비루한 마음을 열어 주소서.

[要義] 여기서는 아난이 부처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단멸의 의심을 내어 질문하였다. 이미 육근ㆍ육진이 소멸해야만 해탈이라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유근 가운데서 원통근을 선택하라고 가르치실까 하고 의심했다.
  그리고 육근은 생멸에 소속한다. 이를 수행에 그대로 사용한다면 이는 생멸인으로 불생멸과를 구함인데 그렇다면 인과의 명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였다.

◈ 二巧示眞常分五   《初責許除疑
佛告阿難. 汝學多聞未盡諸漏. 心中徒知顚倒所因. 眞倒現前實未能識. 恐汝誠心猶未信伏. 吾今試將塵俗諸事當除汝疑

◈ 2. 진여상주를 다섯 분야로 교묘하게 보이다.

《 1. 의심을 제거하라고 책망하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고하셨다.
  너는 호학다문(好學多聞)일 뿐이여서 모든 삼루(三漏)를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내가 앞서 특별히 전도망상이 일어난 처소를 지적하고 드러내어 네가 수행하여 그 종자를 제거함으로써 명언습기(名言習氣)를 버리게 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헤아렸겠느냐. 너의 마음 가운덴 전도가 모든 망상의 근원임을 알았을 뿐 종자습기는 그대로 있어 언어적 설명만 기억했다는 것을 원만한 진상의 의미와 생멸전도의 의미가 목전에 나타나면 너는 실로 몸매한데다 알지도 못한다.
  지금 육근 본성은 진여상주임을 바로 보이려고 하나 너의 어리석은 마음에 또 다시 의심을 품고 일시에 바로 믿지 않을까봐 염려스러울 뿐이다.
  나는 지금 임시방편으로 세속에 알기 쉬운 일로 발휘할테니 너는 반드시 이것을 의지하여 의심을 제거하도록 하라.

[要義] 여기서는 아난이 상주를 단멸로 여김을 배척하였다.

《二擊鐘以驗
卽時如來?羅?羅擊鐘一聲. 問阿難言汝今聞不. 阿難大衆俱言我聞. 鐘歇無聲. 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衆俱言不聞. 時羅?羅又擊一聲, 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衆又言俱聞. 佛問阿難. 汝云何聞云何不聞. 阿難大衆俱白佛言. 鐘聲若擊則我得聞. 擊久聲銷音響雙絶則名無聞. 如來又?羅?擊鐘. 問阿難言爾今聲不. 阿難大衆俱言有聲. 少選聲銷. 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衆答言無聲. 有頃羅?更來撞鐘. 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衆俱言有聲. 佛問阿難. 汝云何聲云何無聲. 阿難大衆俱白佛言. 鐘聲若擊則名有聲. 擊久聲銷音響雙絶則名無聲

《 2. 종을 쳐서 시험하다. 
  즉시 여래께선 라후라에게 명령하여 종을 쳐서 한번 소리나게 하곤 아난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종소리를 듣느냐.”
  아난과 대중은 동시에 말하였다.
  “저희들은 듣습니다.”
  종소리가 멈추자 부처님은 다시 물었다.
  “너는 지금 종소리를 듣느냐.”
  아난과 대중은 동시에 대답했다.
  “듣지 못합니다.”
  그 때 라후라가 종을 다시 한번 치자 부처님은 또 물었다.
  “너는 지금 듣느냐.”
  아난과 대중은 또 말하였다.
  “모두 함께 듣습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듣고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하느냐.”
  “종을 치면 저희들이 듣고, 종을 친 시간이 지나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마저 쌍으로 단절하면 듣지 못합니다.”
  여래는 또 아난에게 종을 치라 명령하시고 아난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말하였다.
  “소리가 있음을 앎니다.”
  잠시 후 소리가 사라지자 부처님은 다시 물었다.
  “너는 지금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느냐.”
  아난과 대중은 대답했다.
  “소리가 없습니다.”
  아난과 대중은 함께 말하였다.
  “소리가 들립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소리를 듣고 무엇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느냐.”
  아난과 대중은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종을 치면 소리가 들리고 종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마저 쌍으로 단절하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三正顯眞常分五   ● 初揀定
佛語阿難及諸大衆. 汝今云何自語矯亂. 大衆阿難俱時問佛. 我今云何名爲矯亂. 佛言. 我問汝聞汝則言聞. 又問汝聲汝則言聲. 唯聞與聲報答無定. 如是云何不名矯亂. 阿難. 聲銷無響汝說無聞. 若實無聞. 聞性已滅同於枯木. 鐘聲更擊汝云何知. 知有知無自是聲塵或無或有. 豈彼聞性爲汝有無. 聞實云無誰知無者

《 3. 진여상주를 다섯 분야로 나타내다.

● 1. 간택하여 판정하다.   부처님은 아난과 모든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하는 말이 교란하느냐.”
  대중과 아난은 동시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말을 교란한다 하시는지요.”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너희들은 듣느냐고 물으면 너희들은 듣는다 말하고 다시 너희들에게 종소리를 듣느냐고 물으면 너희들은 즉시 종소리를 듣는다고 하여, 듣는 마음과 소리에 있어서 각자 분별심이 있어 들음이 있고 없음이 소리가 있고 없음에 소속한다. 그렇다면 듣는 마음도 종소리가 있으면 있다가 종소리가 없으면 따라서 사라지게 된다.
  이는 있는 마음으로써 종소리가 사라지면 마음마저 따라서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 되어, 그 답변이 일정한 준칙이 없게 되는데 이 같은 데도 어찌 교란이 아니겠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져 메아리마저 끊기면 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일 실제로 들림이 없다면 듣는 마음도 이미 소멸하여 고목과 같을 것인데, 종을 다시 치면 너는 어떻게 종소리임을 알겠느냐. 소리가 있고 없음을 아는 것은 소리가 혹은 있다간 없을지언정 어찌 너희들 듣는 마음이 있다가 없어졌겠느냐. 듣는 마음이 실제로 없다면 그 소리가 없다는 것을 누가 알겠느냐.

● 二正示
是故阿難. 聲於聞中自有生滅. 非爲汝聞聲生聲滅今汝聞性爲有爲無

● 2. 정면으로 보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소리가 듣는 마음 가운데서 스스로 생멸할지언정 너의 듣는 마음이 소리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의해 있다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三責迷
汝尙顚倒惑聲爲聞. 何怪昏迷以常爲斷. 終不應言離諸動靜閉塞開通說聞無性

● 3. 미혹을 책망하다.   그런데도 너는 교란전도하여 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미혹했다. 네가 혼미하여 진상근성(眞常根性)을 단멸하는 성진(聲塵)으로 여기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겠느냐.
  이같은 이치를 지금 알았다면 종신토록 이근문성(耳根聞性)이 소리의 진동과 고요함과 그 나머지 제근(諸根)이 공간의 막힘과 소통함을 떠나면 듣는 마음마저 없다고 말해선 안된다.

● 四喩顯
如重睡人眠熟牀枕. 其家有人於彼睡時?練春米. 其人夢中聞春?聲別作他物. 或爲擊鼓. 或爲撞鐘. 卽於夢時自怪其鐘爲木石響. 於時忽寤?知杵音. 自告家人我正夢時惑此春音將爲鼓響. 阿難. 是人夢中豈憶靜搖開閉通塞. 其形雖寐聞性不昏

● 4. 비유로 나타내다.   예를 들어 보자. 침상에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깊이 자고 있을 때 그 집사람이 다듬이질과 절구질을 하였다. 그 사람은 꿈속에 다듬이질과 절구질 하는 소리를 듣고 다른 물건의 소리로 여겼는데 혹은 북치는 소리로 여기기도 하고, 혹은 종치는 소리로 여기도 하였다.
  그는 꿈속에서 스스로 괴이하게 여기곤 그 종소리를 다시 나무나 돌에서 나는 음향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 때 홀연히 잠에서 깨어나 그것은 절구질 하는 소리임을 알고 그 집사람에 고하였다.
  “나는 꿈을 꿀 때 절구질 소리를 미혹하여 북소리로 오인했다.”
  아난아. 이 사람은 꿈속에서 어찌 소리의 진동과 나머지 제근이 열리고 막힘을 기억했겠느냐. 그 형체는 잠을 잤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질 않았다. 그렇다면 듣는 마음. 즉 육근(六根)의 작은 육진을 떠난다 해도 소멸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 五顯結
縱汝形銷命光遷謝. 此性云何爲汝銷滅

● 5. 결론짓다.   깊은 잠에 빠졌을 때만 마음이 소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너의 형체가 소멸하여 생명이 뒤바뀐다 해도 듣는 마음이 어찌 너의 형체를 따라 소멸하겠느냐.

《四總結顚倒
以諸衆生從無始來循諸色聲逐念流轉. 曾不開悟性淨妙常. 不循所常逐諸生滅. 由是生生雜染流轉

《 4. 전도를 총체적으로 결론짓다.   모든 중생이 무시이래로 모든 색진ㆍ성진을 따라 분별심을 쫓아 유전하면서 본성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고 오묘하고 상주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
  때문에 육근에 갖추고 있는 상주하는 성품을 따르지 않고 모든 생멸하는 허망한 육진을 따르면서 일체업을 지었다. 따라서 세세생생에 번뇌로 윤회 모든 세계로 생상유전하게 되었다.

《五指歸觀心分三   ◎初滅塵同覺
若棄生滅守於眞常

《 5. 마음 관찰하자함을 세 분야로 지적하고 귀결시켰다.

● 1. 육진은 소멸하면 본각과 동일하다.
 만일 생멸하는 육진ㆍ육식을 버리고 진여상주하는 마음을 지키면

● 二智起惑亡
常光現前. 根塵識心應時銷落

● 2. 지혜가 일어면 미혹이 없어지다.   본래 있는 진여상주와 광명이 목전에 나타나 육근ㆍ육진ㆍ육식심이 때를 따라 소멸하리라.

● 三塵消覺淨
想相爲塵. 識情爲垢. 二俱遠離. 則汝法眼應時淸明. 云何不成無上知覺

●  3. 육진이 소멸하면 본각이 청정하다.   망상의 모습이 육진이 되었으며[相分] 육식으로 육진을 분별 집착함이 번뇌다.[見分] 이 둘을 멀리 여의면 너의 법안(法眼)이 때를 따라 청명하리니, 무엇 때문에 무상지각을 이루지 못하리오.

[要義] 이상으로 이근(耳根)이 최초 수행방편임을 밝히고, 다음부터서는 수행공부를 말하였다.
  이상에서 미혹과 깨달음의 근원을 모두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