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능엄경(楞嚴經)

능엄경 강의 18 / 송찬우 교수

通達無我法者 2007. 11. 28. 11:18

 

 
능엄경 강의 18
 
 
   
 
△ 二詳陣衆行以示三觀之相分二

● 初特請行門

阿難及諸大衆聞佛示誨. 疑惑銷除心悟實相. 身意輕安得未曾有. 重復悲淚頂禮佛足. 長?合掌而白佛言. 無上大悲淸淨寶王善開我心. 能以如是種種因緣方便提?. 引諸沈冥出於苦海. 世尊. 我今雖承如是法音. 知如來藏妙覺明心. ?十方界含育如來十方國土淸淨寶嚴妙覺王刹. 如來復責多聞無功不逮修習. 我今猶如旅泊之人忽蒙天王賜與華屋. 雖獲大宅要因門入. 惟願如來不捨大悲. 示我在會諸蒙暗者捐捨小乘. 畢獲如來無餘涅槃本發心路. 今有學者從何攝伏疇昔攀緣. 得陀羅尼. 入佛知見. 作是語已. 五體投地. 在會一心. 佇佛慈旨

△ 2. 여러 수행을 자세히 진술하여 삼관을 실천하는 모습을 두 분야로 보이다.

● 1. 수행문을 특별히 청하다. 
  아난이 모든 대중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인연ㆍ자연에 대한 희론의 의혹이 소멸하였다. 미친 마음이 쉬면 바로 보리실상임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미증유를 얻었다.
  거듭 다시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옵고 길게 꿇고 합장하곤 부처님께 고하였다.
  “무상대비청정보왕(無上大悲淸淨寶王)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훌륭히 열어 주옵시어 이 같은 갖가지 인연방편으로 이끄사 어둠으로부터 인도하여 생사고해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지금 이와 같은 법음을 받들어 여래장묘각명심은 시방세계에 보편하면서 여래의 시방국토청정보엄묘각왕찰(十方國土淸淨寶嚴妙覺王刹)을 함육한다는 이치를 알았습니다.
  그럼 여래께선 다시 다문(多聞)만하고 진실한 수행공부가 없어 진실한 수습공부에 미치질 못한다고 책망하십니다.
  저는 지금 마치 떠도는 나그네가 천왕이 화려한 집을 하사한 은혜를 받았으나 요컨대 큰 집을 얻긴 했으나 문을 의지해서 들어가야만 되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원하옵건대 여래께선 대비의 마음을 버리지 마옵시고 저와 어두운 법회대중들이 소승을 버리고 여래 스스로 증득하신 무여의 열반과 과거에 발심하여 수행했던 길을 보여 주옵소서.
  유학(有學)들로 하여금 어떤 법문으로부터 지난날부터 무시로 일으킨 망상분별심을 조복 받고 다라니를 얻어 삼공여래장이 원만한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으로 깨달아 들어가게 해주옵소서.
  이 말을 끝내고 오체투지하고 법회대중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기다렸다.

[要義] 여기서는 아난이 수행을 청하였다. 아난은 최초에 삼관(三觀)을 청하였는데 앞에서는 나타난 이치 편에서만 관의 자체를 삼았었다. 그러나 지금 아난은 발심수행하여 멀리 무상정각을 성취하려 하고 있다. 이는 실제 수행이 아니면 깨닫질 못한다.
  수행이란 모든 법이 허망한 모습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부처님의 말씀이 모두 수행하는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스물다섯 성인들의 원통(圓通)도 모든 사람들이 상황을 따라서 허망상을 관찰하는 방편일 뿐이다.
  삼관(三觀)은 일진법계의 이치로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 본경문의 뜻의 편에서 허망상을 관찰하는 분야로 분류하였다.

● 二世尊委示行相分二

◆ 初示自利妙圓理行分四 ▣ 初通示迷悟之根分四   ▲初總示發覺初心 
爾時世尊哀愍會中緣覺聲聞於菩提心未自在者. 及爲當來佛滅度後末法衆生發菩提心開無上乘妙修行路. 宣示阿難及諸大衆. 汝等決定發菩提心. 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倦. 應當先明發覺初心

● 2. 세존이 수행하는 모습을 두 분야로 자세히 보이다.

◆ 1. 자리의 오묘하고 원만한 수행이치를 넷으로 보이다.

▣ 1. 미오의 근본을 네 분야로 보이다.

▲ 1. 최초로 깨달으려 발심함을 보이다. 
  이때 부처님께선 법회 가운데 연각ㆍ성문이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향해 깨닫긴 했으나 보리의 마음에 있어서 아직까진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머리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 보리의 마음을 발심한 말법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론를 열어 아난과 모든 대중들에게 선양하려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결정코 보리를 성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켜 모든 부처님이 함께 수행증오한 오묘한 삼마제에 있어서 피로와 권태의 마음을 내지 말고 본각에서 시각(始覺)을 일으킨 최초의 마음에서 진망(眞妄), 이 둘의 결정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 二別示二決定義分二 ◈ 初以不生滅心爲本修因分三
《初示能觀之心 
云何初心二義決定. 阿難. 第一義者. 汝等若欲捐捨聲聞修菩薩乘入佛知見. 應當審觀因地發心與果地覺爲同爲異. 阿難. 若於因地以生滅心爲本修因. 而求佛乘不生不滅無有是處. 以是義故. 汝當照明諸器世間可作之法皆從變滅. 阿難. 汝觀世間可作之法誰爲不壞. 然終不聞爛壞虛空. 何以故. 空非可作. 由是始終無壞滅故

▲ 2. 두 가지 결정적 의미를 두 분야로 따로 보이다.

◈ 1. 생멸하지 않는 마음으로 근본수행인지를 삼아 세 분야로 나누다.

《 1. 주관적으로 관찰하는 마음을 보이다. 
  무엇을 최초 시각을 일으킨 마음에 결정적인 진망 두 의미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첫 번째 결정적인 의미라 함은 너희들이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을 닦아 부처님 지견으로 깨달아 들어가고 싶다면 수행인지(修行因地)의 발심이 과지각(果地覺)과 불생불멸심이 여래장으로 동일하게 합하는지, 아니면 생멸심과는 다른 과지각을 구하는지를 자세히 살펴야만 한다.
  아난아, 수행할 때의 마음이 깨달은 마음과 동일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수행인지에서 인연과 자연이라는 생멸하는 망상심으로 근본수행인지를 삼고 불생불멸한 불승(佛乘)을 구한다면 옳다고 할 곳이 없으리라.
  이러한 의미 때문에 너는 모든 기세간에서 조작이 가능한 생멸법을 조명해 보라. 그 모두를 변화와 소멸을 따를 뿐이다.
  아난아, 너는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한 생멸법을 관찰해 보라. 무엇이 끝내 파괴되지 않더냐. 그럼 허공이 썩어 무너진다는 말은 끝내 듣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허공은 조작이 불가능하여 시종 무너지고 소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생불멸의 깨달음을 구하려면 조작이 없는 무너지지 않는 수행인지라야만 된다.

[要義] “두 가지 결정”이라 함은 반드시 수하는 인심(因心)과 깨달은 과각(果覺)이 시종 서로 일치하는 것을 수행의 기초로 삼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인과가 서로 동일해야만 보리열반의 과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二示所觀之境分三   ◎初示生滅源 
則汝身中堅相爲地. 潤濕爲水. 煖觸爲火. 動搖爲風. 由此四纏. 分汝湛圓妙覺明心. 爲視爲聽爲覺爲察. 從始入終五曇渾濁

《 2. 관찰할 경계를 두 분야로 보이다.

● 1. 생멸의 근원을 보이다. 
  반드시 생멸이 없는 마음으로 수행인지를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너의 한 몸 가운데 견고한 골육의 모습은 지대(地大)라 하고, 윤기 나고 젖는 정액을 수대(水大)라 하고, 따뜻하게 감촉하는 기운을 화대(火大)라 하고, 움직이는 맥박과 호흡을 풍대(風大)라고 한다. 이 모두는 조작이 가능하고 파괴가 가능한 생멸법이다.
  이 지수화풍 사대를 따라서 자기의 실제하는 몸으로 집착하고 스스로 속박을 받는다. 그 때문에 본래 생멸이 끊긴 상주진심이 혼탁한 생멸심을 이룬다.
  이를 따라서 너의 담연하고 원만한 묘각명심이 분야별로 나뉘어 서로가 간격이 막힌다.
  때문에 마음이 안근에 있어선 본다하고, 이근에 있으면 듣는다 하고, 비근ㆍ설근에 있으면 동시에 지각한다 하고, 의근에 있으면 살핀다고 한다.
  원래 그 근본은 하나의 정명(精明)한 마음이었는데 허망하게 육화합(六和合)을 이루었다. 간격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간격이 막혀 일심진여를 미혹한 시초부터 끝내 육근을 이룰 때까지 혼탁한 일이 드디어 다섯이 있게 된 것이다.

[要義] 여기서는 한 몸에서 허망을 드러내 생멸법은 모두가 조작이 가능함을 총체적으로 표시했다.
  마음이 다섯 가지 일로 혼탁하여 청정한 시절이 없다. 지금 이를 밝혀 불과를 취하려 한다면 불생불멸의 마음으로 수행인지심을 삼지 않는다면 반드시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생불멸 상주진심을 본래 혼탁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겠는가. 이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너의 한 몸 가운데서 다섯 겹의 탁한 일이 일어난다고.
  다섯 가지 탁함[五濁]은 오음 망상의 편에서 오탁이라 하였다. 주관적으로 지각하고 살피는 육근이 있으면 지각하고 살펴야 할 육진이 동시에 성립한다. 이를 총체적으로 색음(色陰)이라고 한다.
  육근이 육진을 감정작용으로 받아들이면 수음(受陰)이 되고, 육진을 받아들여 지적분별을 일으키면 상음(想陰)이 되고, 지적분별을 일으키고 나서 육진 모두를 두루 인식하여 염염이 생멸상속하여 단절함이 없는 상태를 의지적 충동인 행음(行陰)이라고 한다.
  수음을 따로 말하면, 안ㆍ이ㆍ비ㆍ설ㆍ신에 해당하고, 상음은 제육식에 해당하고, 행음은 제칠식에 해당한다.
  이미 전칠식이 분별활동을 일으켜 훈습종자와 그 활동이 일어나 여래장성을 훈습하면 망상의 식장(識藏)이 되는데, 이를 식음(識陰)이라고 한다.
  또 이 색음이 시작이고 식음이 끝이 되어 이윽고 다섯 겹의 혼탁한 모습이 있게 되었다.

● 二喩生滅相 
云何爲濁. 阿難. 譬如淸水淸潔本然. 卽彼塵土灰沙之倫本質留?. 二體法爾性不相循. 有世間人取彼土塵投於淨水. 土失留?水亡淸潔. 容貌汨然名之爲濁. 汝濁五重亦復如是

● 2. 생멸상에 비유하다. 
  무엇을 혼탁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맑은 물은 청결함이 그 본연의 성질이며, 흙이나, 재?모래 같은 부류는 서로가 장애하는 형체 덩어리가 있다.
  이 둘은 각자 일정한 자체 성질이 있어 흙을 맑은 물에 던졌다면 머물며 장애하는 성질을 잃고 물은 그 청결한 성질을 잃어, 동시에 혼탁한 모습으로 변한다. 물이 흙의 모습을 용납하면 혼탁하여 맑지를 않기 때문에 혼탁이라고 한다. 너에게 다섯 겹의 혼탁함이 있는 것도 이와 같다.

[要義] 여기서부터는 생멸의 근원을 보여 우선적으로 최초로 발심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결정적인 의미를 수립하고, 불생불멸의 마음을 수행인지의 마음을 삼는데 있어선 우선적으로 다섯 가지 탁한 모습으로 생멸상을 보였다.
  그 의도는 생멸에 나아가서 무생의 이치를 증득하고 오온에 나아가서 법신을 증득하게 하려는 데 있다.
  중생이 미혹으로 전도한 이유는 진여일심을 미혹하여 업식(業識)을 이루었고, 업식에서 일어난 견상이분(見相二分)을 의지하여 색심(色心)이 되었으며, 그 색심을 의지하여 다시 오온(五蘊)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도 우리의 일심이 육근ㆍ육진ㆍ육식의 십팔계로 나뉘었다. 그렇다면 오온이 생사를 일으키는 근본일 뿐이다.
  지금 허망한 오온을 돌이켜 진여 일심으로 귀결하려 하면서 이 오온신심을 떠나서 한다면 다시 닦을 경지가 없게 된다. 때문에 오온을 도에로 깨달아 들어가는 문으로 한 것이다. 이는 땅에서 넘어지면 다시 땅을 의지해서 일어나야 하는 것과도 같다.
  앞서“칠처징심(七處徵心)”에서 “견성(見性)”을 논파함도 허망한 오온신심을 논파했을 뿐이며, 다시 여래장성으로 회귀함도 반드시 오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생이 상속함도 오온이 그 근본이다. 그러므로 지금 수행하는 것도 반드시 오온이 허망상임을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본 경전의 끝 부분에서 오음마(五陰魔)를 열어 보인 것도 오온을 관찰하였으나 그 오묘함을 얻지 못하고 마군이로 타락하기 때문이며, 결론지어 회통함도 오온을 총체적으로 제시하여 그 귀결점을 안게 하였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설법하신 근본 의도는 중생들의 오온신심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는 데 있을 뿐인데, 유독 “능엄경”에만 이 문제가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다.
  때문에 이 경전을 보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그 요점을 얻는다면 이치나 수행에 있어서 모두 귀결점이 있을 것이다.
  전에는 삼공여래장의 이치를 드러내 그것을 삼관의 자체를 삼았고, 지금부터는 삼관수행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三別明生滅 
阿難. 汝見虛空?十方界空見不分. 有空無體. 有見無覺. 相織妄成. 是第一重名爲劫濁. 汝身現搏四大爲體. 見聞覺知壅令留?. 水火風土旋今覺知. 相織妄成. 是第二重名爲見濁. 又汝心中憶識誦習. 性發知見. 容現六塵. 離塵無相. 離覺無性. 相織妄成. 是第三重名煩惱濁. 又汝朝夕生滅不停. 知見每故留於世間. 業運每常遷於國土. 相織妄成. 是第四重名衆生濁. 汝等見聞元無異性. 衆塵隔越無狀異生. 性中相知用中相背. 同異失準相織妄成. 是第五重名爲命濁

● 3. 생멸을 따로 밝히다. 
  아난아. 네가 눈을 뜨고 허공을 볼 때에 허공과 보는 마음이 동시에 시방세계에 보편하나 어디까지가 허공의 한계고 어디까지가 보는 마음의 한계인지를 모른다.
  허공과 보는 마음이 혼란하여 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허공의 처소에 있어선 보는 마음의 실체가 없고, 보는 마음의 처소에 있어선 지각할 허공의 모습이 없다.
  한쪽의 허공과 한쪽의 보는 마음이 분간하지 못하게 면밀하게 서로 짜여 허망하게 혼탁한 모습이 이루어 졌다. 이것은 제일 첫 겹의 혼탁인 겁탁(劫濁)이라고 한다. [보는 마음과 허공이 이미 그렇다면 보는 마음과 색음의 관계도 그러할 것이다. 이는 지수화풍 사대를 실제하는 자기의 몸으로 허망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에 육근과 육진이 상대적으로 성립하여 진성을 요란하고 묘명을 혼탁하게 하였다. 이윽고 색음을 이루어 겁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미 육근ㆍ육진이 상대하면 그 중간에서 반드시 육식이 일어나 목전의 육진경계를 감정작용으로 받아들여 수음(受陰)을 이룬다. 그 때문에 말하길]
  너의 몸은 본래 지수화풍 사대가 없었다. 현세에 최초로 어머니의 태에 의탁함으로 인해 부모의 정액과 피를 움켜쥐어 사대가 점점 자라나 신체가 되었다.
  견문각지(見聞覺知)는 원래 하나의 정명(精明)이여서 형질로 장애함이 본래 없었는데 사대가 에워싸고 막음 때문에 서로가 융통하지 못하고 형질로 장애함이 없는 정명한 하나의 마음이 장애하는 형질을 이루었다.
  또 지수화풍 사대는 원래 완악한 물건이여서 본래 지각 작용이 없었으나 견문각지가 물질을 감정작용으로 두루 빈틈없이 받아들여 이를 자신의 몸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각없던 사대로 이루어진 몸이 지각하는 작용이 있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감정작용으로 받아들이고 한쪽에서 지각없는 물질이 면밀하게 에워싸 두 번째 겹인 견탁(見濁)을 이루었다. [사대는 본래 지각작용이 없는 물질 이였을 뿐이다. 단지 망상과 면밀하게 서로 분간하지 못하게 짜였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모든 자극을 다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중생들 자신의 몸은 실제가 있다는 신견(身見)을 일으키고, 다시 단상유무(斷常有無)의 견해를 일으키고, 내지는 육십이사견(六十二邪見)을 일으켜 진심을 혼탁하게 하였다. 견탁을 수음(受陰)이라고 한 이유는 견문각지를 육수용근(六受用根)이라고 한다. 때문에 견탁이 수음을 의지해서 일어난다.]
  [수음에서 받아 들인 육진이 의식 속에 그림자로 떠올라 육식을 이끌어 내면 그것을 지적작용인 상음(想陰)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또 너의 마음 가운데선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식별하며 다가올 미래를 미리 외우고 익히는 데 이 세 가지는 본래 실체가 없다. 의식으로 인해 이윽고 지견이 일어나면 이 의식은 본래 용모나 지각도 없건만 육진경계 때문에 흡사 용모와 지각이 있는 듯도 하다.
  그러므로 의식이 육진경계를 떠나면 따로의 식 자체의 모습은 없으며, 다시 육진도 지각을 떠나면 역시 육진 자체 성질이 없다.
  때문에 한쪽에서 육진과 한편에서 지각이 주도면밀하게 교대로 짜여 육진을 인식하는 상념으로 그 대상 육진경계를 쉴 사이 없이 탐애한다. 때문에 탁한 모습을 이루어 진실한 성품을 요란하게 하는 것을 세 번째 겹인 번뇌탁(煩惱濁)이라고 한다.
  [전육식(前六識)이 이미 육근ㆍ육진을 인식하면 제칠식이 그것을 분별하고 범주를 정하고 실제의 아(我)로 집착한다. 그리곤 진실한 성품 가운데서 허망하게 망상생멸을 일으켜 염념이 천류하면서 행음(行陰)을 이룬다. 그 때문에 말하기를]
  또 너의 마음이 하루종일 망상으로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면서 잠시도 정지하질 않는다. 실제하는 아(我)의 지견(知見)하고 집착하면 변함없이 세간에서 살고 싶어하고, 선악업이 운행하면 금생에서 내생으로 항상 국토를 옮기도록 재촉한다.
  한쪽은 머물고 싶어하고, 한쪽은 옮기라고 재촉하여 서로 분간하지 못하게 면밀하게 짜여 허망하게 혼탁한 모습을 이룬다. 이 혼탁상이 열반성을 뒤집어 생사의 원인이 되어 삼계에 부침하고 칠취(七趣)에 왕래하면서 진실한 성품을 혼탁하게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겹인 중생탁(衆生濁)이다.
  [육근ㆍ육진ㆍ육식 이 셋은 모두가 활동한 만큼 종자와 그 활동이 있다. 이 활동이 여래장을 훈습하여 망상의 식장(識藏)을 이룬다. 그러면 그 식장엔 제법 종자를 함장하고 집지하여 식음(識陰)이 된다. 그러므로 말하길]
  너희들의 견문각지는 원래 하나의 자체여서 본래 서로 다른 성질이란 없었다. 단지 육진이 서로가 간격을 막아 각자의 문호를 열고 끝없이 다르게 일어났다.
  그러나 이를 안으로 본성에 논한다면 견문각지는 서로가 융통하여 동일한 듯도 하나 외적인 작용을 의거해서 말한다면 육근의 작용은 즉 견문각지는 피차의 간격이 없지를 않아 서로가 서로를 위배하면서 흡사 마음작용이 육근을 따라 다른 듯도 하다.
  이 동일함과 다름, 이 둘 모두가 일정한 준칙을 잃어 서로를 분간 못하게 면밀하게 짜여 허망하게 혼탁상을 이루었다. 이 혼탁상이 여래장을 전환하여 염정인(染淨因)을 따라 진실한 마음을 미혹케 하여 총보주(總報主), 즉 제팔아뢰야식을 이루었다. 이것이 다섯 번째 겹인 명탁(命濁)이다. [명은 제팔식인 난(煖)ㆍ식(識)ㆍ식(息) 셋이며, 일정기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의 연대관계로 유지하면서 단절하지 않게 하는 세력을 명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명탁은 식음을 의지해 있다.
  이상 다섯 가지 탁한 모습은 모두가 진심을 미혹하여 망상을 쫓으면서 이윽고 청결하지 못한 혼탁상을 이루었다. 지금 부처님은 혼탁을 맑게 할 방편을 전수하려고 우선적으로 혼탁이 일어나는 원인부터 제시하였다.]

[要義] 이상은 오탁이 생멸의 근원임을 나타냈고, 이 다음부터는 오탁이 생멸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오탁은 오온을 의지해서 성립한다.
  청정법계에는 중생의 모습이 본래 없었는데 무슨 오탁 등등의 일이 있으랴. 그것은 단지 본래 밝은 마음을 미혹하여 색심이 맺혔으며, 이것이 오온중생이 되고, 바로 진심을 혼탁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다섯 종류의 허망한 망상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모두 미혹과 망상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다음부터선 망상을 돌이켜 진심으로 귀결하는 편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