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2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36
02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다  원통 거눌(圓通居訥)스님 / 1009∼1071
 

 1. 대각 회연스님이 과거 여산(山)에 갔을 때, 원통 거눌(圓通居訥:1009∼1071)스님이 한 번 보고 바로 대기(大器)라고 확신하였다. 어떤 사람이,"어떻게 그런 줄을 아셨읍니까?"하고 묻자, 거눌스님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마음이 정대(正大)하여 치우치지 않고 모든 행동이 고상합니다. 더우기 도학(道學)을 이뤄 의로움을 실천하며, 말은 평이하나 이치를 극진히 하니, 일반적으로 타고난 품격이 그러하고도 그릇을 이루지 않는 자는 드문 것입니다." 『구봉집(九峯集)』

2. 인조(仁祖) 황우(皇祐) 초년(皇祐 12年 즉 1049年)에 조정에서 환관을 파견, 비단에 조서를 적어서 거눌스님을 큰 절인 효자사(孝慈寺)에 머물도록 청하였다. 거눌스님은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고 소문(疏文)을 올려 대각스님을 추천하는 것으로 조정의 부름에 응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성스러운 천자께서 도덕을 높이 드러내시어, 그 은혜가 샘물이나 돌에게까지도 미쳤읍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사양하시는지요?"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외람되게도 승려의 무리에 끼어들긴 하였으나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요행히 숲속에 안주하여 거친 밥을 먹고 흐르는 물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비록 불조(佛祖)의 경지라 해도 하지 않으신 일이 있는데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읍니까? 선철(先哲)도 `큰 명예는 오래 간직하기 어렵다'고 하셨으니 나는 평생을 자족할 줄 아는 뜻을 실천할 뿐, 명성과 이익으로 자신을 얽어매지는 않겠읍니다. 마음이 넉넉하다면 언제인들 만족스럽지 않겠읍니까?"
그러므로 동파(東坡)도 언젠가 말하기를, "편안한 줄 알면 영화롭고, 만족한 줄 알면 부자다"라고 하였다. 원통스님은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고, 훌륭하게 시작하여 훌륭하게 마치는 일을 체득했다 하겠다. 『행실(行實)』

3. 절름발이의 생명은 지팡이에 있으니 지팡이를 잃으면 넘어지고, 물을 건너는 사람의 운명은 배에 있으므로 배를 잃으면 익사한다. 보편적으로 스스로 도를 지키지 않고 외부의 세력을 믿고 이를 대단하게 여기는 수행자는 하루아침에 그가 기대고 있던 배경을 잃으면 모두가 넘어지고 빠져죽는 난리를 면치 못한다.[여산야록(廬山野錄)

4. 옛날 백장 대지(百丈大智:720∼814)스님께서는 총림(叢林)을 세우고 법도를 정하셨다. 이는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의 바르지 못한 폐단을 고쳐보고자 했을 뿐, 상법·말법시대의 납자가 법도를 도적질하여 백장의 총림을 무너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스님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다스렸다. 그러다가 대지스님 후로는 높고 널찍한 집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피폐시켰다. 그러므로 "안위(安危)는 덕에 달렸으며, 흥망은 운수에 달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실로 받들어 행할 만한 덕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총림이 필요하겠으며, 기댈 만한 운수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법도를 사용하겠는가? 『야록(野錄)』

5. 원통스님이 대각스님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은 싹트기 전에 마음을 다스렸고, 혼란해지기 전에 미혹한 마음〔情念〕을 막았으니, 미리 대비하면 큰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중으로 문을 잠그고 목탁을 치면서 도둑에 대비하였는데, 이는 『주역(周易)』의 예괘(豫卦 )에서 원리를 취한 것이다.
일은 미리 하면 쉽고, 갑자기 하면 어렵다. 훌륭한 분〔賢哲〕들에게 평생의 근심은 있었을지언정 하루아침의 근심이 없었던 이유가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구봉집(九峯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