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15 납자의 본연은 어디에도 끄달리지 않는 것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56
15  납자의 본연은 어디에도 끄달리지 않는 것이다  불감혜근(佛鑑慧懃)스님 / 1059∼1117 
 

  1. 불감 혜근스님이 태평사(太平寺)에서 지해사(智海寺)로 옮겨가게 되었다. 군수(郡守)인 증원례(曾元禮)가 이 말을 듣고 주지 후임으로 누가 마땅할까를 묻자, 불감스님이 수좌 지병(智昞)스님을 천거하였다. 증공(曾公)이 한 번 뵙고 싶어하자 불감스님이 말하였다.
"지병수좌는 강직한 성격이라 세속에는 생각이 멀어 아무것도 좋아하는 것이 없소. 간청해도 들어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스스로 오려 하겠는가?"
증공이 굳이 그를 맞이하려 하자 지병수좌는 "이야말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름을 팔아 잘난 체하는 장로라는 것이군" 하고는 끝내 사공산(司空山)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증공이 불감을 되돌아보며 "부모만큼 자식을 아는 사람이 없군요" 하고는 즉시 모든 산에 명령하여 굳이 청하자 마지못해서 명(命)에 응하였다. 『섬시자일록(蟾侍者日錄)』

2. 불감스님이 불등사(佛燈寺) 수순(守:1077∼1134)스님에게 말하였다.
"고상한 인재는 명예와 지위를 영화롭게 여기지 않으며,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어떠한 곤란에도 꺾이지 않는다. 한편 은혜를 받으면 자기의 힘을 다 바치고 이익을 보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모두가 모자란 사람이나 하는 짓들이다." 『일록(日錄)』

3. 불감스님이 수좌 지병스님에게 말하였다.
"큰스님이라 불리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무엇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면 외물(外物)의 해침을 당한다.
정욕〔嗜欲〕을 좋아하면 탐애심이 생기고, 물욕을 밝히면 분주하게 치닫는 생각이 일어난다. 또한 순종하기를 좋아하면 아부하며 소인에게 영합하고, 승부를 좋아하면 너다 나다 하는 대립이 산처럼 높아지며, 각박하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면 탄식과 원성이 일어난다.
정리해 본다면 모두 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스스로 끊어진다. 평생 얻은 것 중에 이보다 더 나을 게 없으니 그대는 힘써서 후학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 『남화석각(南華石刻)』

4. 스승(오조 법연스님)께서는 근검 절약하여 발우(鉢盂)주머니와 신주머니 하나를 백번 천번이나 꿰맸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셨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두 물건이 같이 관문(關門)을 나온 지가 겨우 50여 년밖에 안되었다. 어떻게 도중에 버리겠는가."
천남(泉南)에 오상좌(悟上座)라는 이가 갈포(褐布)로 만든 좋은 옷을 보내면서 "이것은 바다 건너에서 나는 물건으로,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고 여름에 입으면 시원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선사(先師)께서는 `내게는 추위에는 땔감과 종이 이불이 있고 무더위에는 솔바람이 있다. 이를 쌓아두어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는 끝내 물리치셨다. 『일록(日錄)』

5. 스승께서는 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스님이 입적했다는 소문을 듣고 신위(神位)를 모시고 공양을 준비였다. 그리고는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슬피 통곡하더니 이렇게 탄식하셨다.
"참으로 드문 인재였다. 도의 뿌리만을 볼 뿐 지엽은 찾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이런 사람이 일찍 죽다니! 그의 도를 계승할 만한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질 못했으니 강서(江西)의 총림이 이제부터 쓸쓸해지겠구나." 『일록(日錄)』

6.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운(百雲) 노스님은 평소에 마음이 관대하여 막힘이 없었다. 어떤 일이 바른 이치에 합당한지를 살펴보고 과연 할 만한 것이다 싶으면 뛸듯이 몸소 솔선하였다. 또한 인격과 재능 있는 사람 이끌어주기를 좋아하였으며, 이해타산으로 영합했다 갈라섰다 하는 구차한 짓은 좋아하지 않고, 그저 초연한 마음으로 종일토록 우뚝하게 걸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응시자(凝侍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지키며 가난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납자의 본분이니, 빈부 득실 때문에 지키던 것에서 변심하는 자와는 도를 논할 수 없다." 『일록(日錄)』

7. 도를 생각치 않으면 마음가짐이 넓지 못하고, 항상 안일하게 처신하면 의지가 굳건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옛사람은 갖은 어려움과 험한 일을 격은 뒤에야 진정한 편안함을 누렸다. 이는 대체로 일이 어려우면 의지가 굳건해지고 각고 끝에 사려가 깊어져, 전화위복하는 힘과 모든 외물의 유혹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납자들이 외물을 쫓느라 도를 망각하거나 깨달음을 등지고 미혹을 몸을 던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런 부류는 자기의 못난 점을 꾸미고 남들이 지혜롭게 여겨주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모자란 점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체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다른 사람은 속여도 선지식을 속이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모르며, 몇 사람 정도는 가릴 수 있어도 은폐하지 못할 공론(公論)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똑똑하다 여기는 자는 남에게 어리석게 보이며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남이 그를 고상하게 여긴다.
오직 현명한 자만이 이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은 한도 끝도 없지만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제한된 지혜로써 끝도 없는 일을 빈틈없이 해내자면 생각은 치우치고 정신은 녹초가 되어 결국은 도 닦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

8. 불감스님이 용아 지재(龍牙智才:1067∼1138)스님에게 말하였다.
"전 사람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단박에 뜯어 고쳐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사정에 맞게 개혁해야 원한 없기를 바랄 수 있다.
내가 언젠가도 주지하는 데에 세 가지 비결이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즉 일을 살피고, 능력껏 실천하며, 과감하게 결단함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서 하나만 빠뜨려도 일을 살피는 것이 분명치 못하여 끝내는 사람들에게 변변치 않다는 평가를 받아 주지의 직책을 잘 해나가지 못하게 된다."

9. 절의 주지를 맡은 자는 청정한 지조와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깊은 믿음으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납자들을 맞이해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비루하고 구차한 일을 자신에게서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이 얕보게 된다. 그리하여 비록 옛사람과 같은 도덕이 있다 해도 배우는 사람들이 그를 믿지 못하게 된다. 『산당소참(山堂小參)』

10. 불안(佛眼)스님의 제자로서는 유일하게 고암(高菴)스님만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사람됨이 무엇이든 제 입맛대로 좋아하는 것이 없고 무슨 일에도 파벌로 사람을 발탁하는 경우가 없었다. 맑고 근엄하며 공순하고 조심스러워 시종 명예와 절개로써 자신을 지켜 옛사람의 풍모가 있었으니, 요즈음에는 그와 비교할 만한 납자가 드물다. 『여경룡학서(與耿龍學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