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38 안을 다스려 밖을 대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25
38  안을 다스려 밖을 대하다   할당 혜원(轄堂慧院)스님/1103∼1176
 

 1. 할당 혜원(堂慧遠)스님이 혹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그릇은 원래부터 크고 작음이 있어 실로 교육으로만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포대가 작으면 큰 것을 담지 못하고, 짧은 두레박 줄로는 깊은 우물을 긷지 못한다" 하였고, "올빼미는 밤엔 이도 훔켜잡고 가을날 새털 끝도 살피지만, 낮에 나오면 눈을 부릅떠도 언덕과 산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니, 이는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옛날 원정 남당(遠靜南堂)스님은 동산(東山)스님의 도를 전수하여 심오하게 깨달았다고 매우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주지하는 일에 있어서는 가는 곳마다 떨치지 못하였다.
스승 원오스님께서 촉(蜀) 지방으로 돌아가시면서 각범(覺範)스님과 함께 원정 남당스님을 대수(大隨)에서 방문하였는데, 그가 경솔하고 덜렁거려서 모든 일이 해이하여 폐지된 것을 보면서도 원오스님께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되돌아오는 길에 각범(覺範)스님은 말하였다.
"원정스님과 스님께서는 함께 참구했던 도반이었는데도 한 마디도 깨우쳐 주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선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 응하여 대중에 임하는 요점은 법령을 우선하는 데 있다. 법령이 행해지는 것은 그의 지혜와 능력에 있고, 지능이 있고 없는 것은 그의 본래 분수인데 가르친다 해서 되겠는가."
그러자 각범스님은 알았다는 듯이 턱을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호구기문(虎丘記聞)』

2. 도를 배우는 인재라면 요컨대 우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런 뒤에 자기를 바르게 하고 상대도 바로잡을 수 있다. 그 마음이 바르고 나면 만물이 안정되니 마음이 다스려졌는데도 몸가짐이 흐트러졌다는 자는 이제껏 보지 못하였다.
불조의 가르침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미치며 가까운 곳에서 먼 데로 이른다.
성색(聲色)이 밖에서 현혹하면 사지가 병들고, 허망한 감정이 안에서 발동하면 마음 속에 병이 든다. 마음이 바른데도 사물을 다스리지 못하거나, 몸가짐이 올바른데도 다른 사람 교화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가.
이는 마음이 근본이 되고 만물이 지엽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튼튼하고 알차면 지엽이 풍성하고, 뿌리가 메마르면 지엽도 말라 죽는다. 훌륭하게 도를 배우는 자라면 먼저 안을 다스려 바깥을 대적하고, 바깥을 탐하느라 안을 해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을 인도하는 요점은 마음을 청정히 하는 데 있으며, 남을 바로잡는 것은 원래 자기부터 바로잡는 데 있다. 마음이 바로되어 자기가 바로 섰는데도 만물이 따라서 교화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여안시랑서(與顔侍郞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