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36 근본을 체득하여 지말을 바르게 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23
36  근본을 체득하여 지말을 바르게 하다   자득 혜휘(自得慧輝)스님 / 1097∼1183
 

 1. 일반적으로 납자가 진실하여 정도(正道)를 행한다면 어리석어도 받아들여야 하며, 아첨하면서 삿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지혜로와도 끝내 해로움이 된다.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재능이 있다 해도 끝내 자기 뜻을 펼 수가 없으리라. 『견간당기(見簡堂記)』

2. 대지(大智)스님께서는 특별히 `청규(淸規)'를 창안하여 말법 비구의 부정한 폐단을 고치셨다. 이것을 앞사람들이 받들고 계승하며 조심스럽게 실천하여 교화에 조리와 본말이 있게 되었다.
소흥(紹興) 말년(1162)까지도 총림에는 노덕들이 계시어 법도를 지키며 잠시도 좌우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었으나 근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근본 실마리를 잃고 기강(紀綱)이 기강답질 못하니, 비록 기강은 있다 하나 어떻게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벼리〔綱〕 하나만 들면 숱한 그물코〔目〕가 쫙 펴지듯 한 기미만 해이해도 만사가 무너진다"고 했던 것이다.
위태롭도다. 기강은 진작되지 못하고 총림도 일어나지 못하는구나. 옛사람은 근본을 체득함으로써 지말을 바르게 하였다. 그래서 법도가 근엄하지 못할까 염려하였을 뿐 납자가 자기 직분을 잃을까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바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정에 입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곳곳의 주지들은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것과 혼돈하고 지말로써 근본을 바로 잡으려 한다. 웃사람이 이익에 구차하여 정도(正道)를 시행하지 않으므로, 아랫사람도 이익을 훔치며 의(義)를 행하지 않아서 상하와 빈주(賓主)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으니 어떻게 납자가 정도로 향하고 총림이 잘 될 수 있겠는가. 『여우시랑서(與尤侍朗書)』

3. 훌륭한 옥도 광석째로 다듬지 않으면 기왓돌과 다름 없고, 훌륭한 말도 달려보지 않으면 둔한 말과 함께 섞여 있다. 광석은 쪼개서 윤을 내고 말은 달리게 해서 시험해 보아야만 옥인지 돌인지, 명마인지 둔마인지가 분간된다.
납자로서 덕이 훌륭한데도 아직 발탁되지 않았을 때는 빽빽한 사람들 가운데 뒤섞여 있는 것이니 어떻게 구별해 내겠는가. 요컨대 고명한 인재가 공론으로 그를 추천하여 직책을 맡겨 재능을 시험하고 임무의 완성을 따져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용렬한 무리들과는 아득히 다를 것이다. 『여혹암서(與或庵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