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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의심치 말아야 한다. 4대(四大)로 몸을 삼으나, 4대에는 '나(我)'가 없고, 그 '나'에도 또한 주재(主宰)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몸에는 '나'도 없고 '주재'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음(五陰)으로 마음을 삼지만, 이 5음 역시 '나'도 '주재'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 또한 '나'도 '주재'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6근.6진.6식이 화합하여 생멸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18계(十八界)가 이미 공(空)하여 일체가 모두 공하고, 오직 본래의 마음이 있을 뿐, 맑아서 호호탕탕 걸림이 없다. 분별의 양식[識食]과 지혜의 양식[智食]이 있다. 즉 4대로 된 몸은 주림과 질병이 근심거리인데, 알맞게 영양을 공급하여 탐착을 내지 않는 것이 '지혜의 양식'이고, 제멋대로 허망한 분별심을 내어, 입에 맞는 것만 구하면서 싫어하여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을 '분별의 양식'이라 한다.
성문(聲聞)이란 소리를 듣고 깨닫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은 자기 마음 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설법을 듣고 거기에 알음알이를 일으킨다. 혹은 신통(神通)이나 상서로운 모양.언어.동작. 등에 의지하여 보리.열반이 있다는 설법을 듣고 3아승기겁을 수행하여 불도를 이루려 한다. 이것은 모두 성문의 도(道)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을 성문불(聲聞佛)이라 한다. 다만 당장에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단박 깨달으면 될 뿐이다.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행도 닦을 것이 없으면, 이것이 가장 으뜸가는 도이며 참으로 여여한 부처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생기는 것만을 두려워하여곧 도와는 멀어지는 것이니, 생각마다 모양이 없고 생각마다 하염없음이 곧 부처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불법을 모조리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이 없음을 배워야 한다. 구함이 없으면 마음이 나지 않고, 집착이 없으면 마음이 없어지지 않나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곧 부처이니라.
學道人 莫疑 四大 爲身 四大無我 我亦無主 故知此身 無我亦無主 五陰 爲心 五陰 無我亦無主 故知此心 無我亦無主 六根六塵六識 和合生滅 亦復如是 十八界旣空 一切皆空 唯有本心 蕩然淸淨 有識食有智食 四大之身 飢瘡 爲患 隨順給養 不生貪着 謂之智食 恣情取味 妄生分別 唯求適口 不生厭離 謂之識食 聲聞者 因聲得悟故 謂之聲聞 但不了自心 於聲敎上 起解 或因神通 或因瑞相言語運動 聞有菩提涅槃 三僧祈劫修成佛道 皆屬聲聞道 謂之聲聞佛 唯直下 頓了自心 本來是佛 無一法可得 無一行可修 此是無上道 此是眞如佛 學道人 祈 一念有 卽與道 隔矣 念念無相 念念無爲 卽是佛 學道人 若欲得成佛 一切佛法 摠不用學 唯學無求無着 無求 卽心不生 無着 卽心不滅 不生不滅 卽是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