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3. 감수작용에 대한 관찰 - 1. 느끼는 대로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0:41

1. 느끼는 대로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감수하는 것에 대하여 감수한 것을 관찰하여 머물 것인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을 느끼면 '나는 즐거움을 감수한다.'고 알아차리고, 괴로움을 느끼면 '나는 괴로움을 감수한다.'고 알아차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감수하면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감수한다.'고 알아차린다.

혹은 육체의 괴로움을 느끼면 '나는 육체의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아차리고, 또한 정신의 괴로움을 느끼면 '나는 정신의 괴로움을 느낀다.'고 알아차린다.

혹은 육체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받으면 '나는 육체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받는다.'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에 대하여 감수작용을 관하여 머물고, 또한 밖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에 대하여 감수작용을 관하여 머물고, 또한 안팎의 모든 느낌에 대하여 감수작용을 관하여 머문다.

혹은 감수작용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하여 머물고, 또한 감수작용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감수작용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지함이 없이 머물고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 대하여 감수작용을 관하여 머문다.

해설
우리의 주관이 객관 세계를 대하면, 그것으로부터 받는 자극에 의해 어떤 감수작용이 일어나서 괴롭거나 즐거움, 또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느낌에 매달려서 스스로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런 감수작용은 주관인 나 자신과 객관인 대상의 세계에 의해서 일어나며, 주관과 객관의 조건이 바뀌면 사라진다. 그러나 이런 감수작용을 통해서 우리의 정서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감수작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듯 감수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실체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주관과 객관에 의해 받아들여진 감수작용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것에 대한 부정이나 긍정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감수작용은 이것과 저것의 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서 그것을 긍정하고, 인연으로 인해 있게 되었으니, 인연에 의해 없어질 것이므로 부정할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긍정 속에 부정이 있으므로 집착이 없고, 부정 속에 긍정이 있으므로 그대로 머문다. 이렇게 함으로써 괴로움을 극복하고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괴로움이 느껴지면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감지하여 마음을 괴로움에 집중하면 나와 그것이 하나가 되어 괴로움이 사라진다. '나'라는 존재가 대상에 대한 느낌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므로, 이것과 저것이 하나가 되면 괴로움이나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감수된 느낌에 마음을 집중하여 그것이 생겨나게 된 법과 사라질 법을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을 멀리해서는 안 되고, 그것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괴로움을 피하려고 하면 더욱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괴로움은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즐거움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느낌을 거역하지 말고, 또한 그에 집착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비구의 수행목표이다. 괴로울 때 괴로워하되 마음이 아프지 않고, 즐거울 때 즐거워하되 즐거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