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수행자의 지계(持戒)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4:54

수행자의 지계(持戒)

인터넷 불교대학/ 혜거

인오미충(人惡尾蟲) 불변정예(不辨淨穢)
성증사문(聖憎沙門) 불변정예(不辨淨穢)


“사람들이 미충은 더럽고 깨끗한 것을 가리지 못함을 싫어하듯이 성현께서는 사문(沙門)들이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못 가리는 것을 싫어한다.”

원효 스님은 비유를 들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싫어하는가? 꼬리를 끌고 다니는 벌레, 즉 미충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벌레가 더럽고 깨끗한 것을 못 가리기 때문이죠. 아무것이나 먹고 아무곳에서 살아요. 요즘은 자비심이 많아서 짐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강아지를 껴안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처님께서는 절에서 가축을 기르지 못하게 하셨죠. 짐승을 좋아하면 짐승의 업을 따라가요. 어렵게 사람의 몸을 받아서 다시 짐승이 될 수는 없잖아요. 짐승에게 자비심을 베풀되 좋아하는 방법은 다르게 하세요. 사람이 자는 방에다 이불을 덮어서 재우고 껴안는 것은 삼가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업이 같이 가버려요. 강아지 업 받아서 뭐하겠어요. 
또 성현은 사문이 제 갈길을 못 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어요. 사람이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못 가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죠. 즉 무엇이 더러운 사람인가? 남의 것을 훔치려고 하는 사람, 남의 여자 훔쳐보는 사람 등 최소한의 옳고 그른 것은 판단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세간훤(棄世間喧) 승공천상(乘空天上)
계위선제(戒爲善梯) 시고파계(是故破戒)
위타복전(爲他福田) 여절익조(如折翼鳥)
부구상공(負龜翔空) 자죄미탈(自罪未脫)
타죄불속(他罪不贖) 연(然) 
기무계행(豈無戒行) 수타공급(受他供給)

“세간의 시끄러운 것을 버리고 천상으로 오르는 데는 계행(戒行)이 훌륭한 사다리이다. 그러므로 계행을 깨뜨린 이가 남을 위하는 복밭(福田)이 되려는 것은 마치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하늘로 오르려는 것과 같으니, 스스로의 죄업을 벗지 못한 이는 다른 이의 죄업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니 계행이 없는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열심히 산다고 해도 갈등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 자리에서 보면 신도님들 모두가 편안해 보이지만 집에 가면 시누이도 보기 싫고, 올케도 보기 싫고 그러죠. 이것이 세간의 시끄러운 것들입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죠. 이렇게 탐나는 모든 것도 세간의 시끄러움입니다. 갈등요소가 많죠. 세속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많아요. 며느리가 제삿날 늦게 오면 ‘바쁜 일이 있었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늦게 왔다고 갈등해요. 안 온 것보다 낫잖아요. 왜 늦게 왔냐, 다 차려놓은 다음에 왔냐 하면서 갈등을 해요. 그렇게 갈등을 하니까 그 다음부터 더 안오려고 해요. 아무 소리 안하면 저절로 미안해서 더 일찍 올 텐데 말이죠. 왜 사람이 같아야 합니까? 불교 공부한 사람은 그런 갈등에서 벗어나야 해요. 뭐든지 집안일 있으면 내가 먼저 한다고 하고, 돈 내는 일도 먼저 해보세요. 다른 사람도 따라오게 돼 있어요. 
누구나 천상에 가고 싶어하죠. 계율을 사다리 삼아 올라갈 수 있어요. 계율만 지키면 그자리가 천상이에요. 계율은 파괴하고 남에게 복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날개부러진 새가 거북이를 짊어지고 허공을 나는 것과 같다고 했죠. 날개 부러진 새가 어떻게 거북이를 등에 지고 하늘을 날 수 있겠어요. 새도 날지 못하죠. 제 몸도 추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돕겠어요. 자기 허물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죄도 사해 주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부터 벗어나라는 뜻이죠. 불교 신도가 되겠다고 생각지 말고 수행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불교는 수행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수행자가 있는 집안 식구들은 모두가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말 한마디로 집안 식구들을 바꿀 수 있으려면 수행을 해야 해요. 
또한 스님 노릇을 제대로 못하면 시주받기가 떳떳치 못하다고 했는데 제 스승이신 탄허 스님은 세속 사람들보다 인색해 보이셨어요. 스님은 “수행자는 빚으로 연결되면 못써, 주고 받고가 끝나야 돼” 하십니다. 또 스님은 한 것만큼만 받지 “더 받으면 더 해야 되니 싫다” 그러세요. 아주 철저하세요. 그런데 요즘엔 인과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요즈음 경제를 말할 때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란 말을 쓰잖아요. 노장님은 제로로하고 돌아가셨어요. 계행이 없이 남의 것을 받을 때는 일이라도 해주고 받으라고 탄허 스님께선 늘 말씀하셨어요. 그냥 받으면 완전히 빚이라는 뜻이죠.

무행공신(無行空身) 양무리익(養無利益)
무상부명(無常浮命) 애석불보(愛惜不保)


“행함이 없는 빈 몸은 고이 기르더라도 이익이 없으며, 항상함이 없는 뜬 목숨은 사랑하고 아끼더라도 보존하지 못한다.” 

행이 없는 빈몸뚱아리는 길러 봐야 소용이 없고 아무리 보양을 잘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에요. 남에게 이익을 못 주는 몸뚱아리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무상한 몸뚱아리,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계절이 바뀌는 자연을 보면서 혹은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이 세상에 움직이는 만법에서 무상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면 사람이 헛 나가지를 않습니다. 물거품 같은 생명체입니다. 운이 좋으면 물거품은 오래 견디고, 운이 없으면 물거품이 팔딱 꺼져요. 우리 몸뚱이를 아무리 사랑하고 아껴도 보존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보존하기 위해 태국 가서 뱀술 마시고, 곰 발바닥에 쓸개까지 먹죠. 전세계에서 한국사람들을 몬도가네라고 불러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래 봐야 무너져 버릴 몸인데 말입니다. 몸뚱어리 끌고 다니는 주인을 보존해야 돼요. 그 주인을 찾는 공부를 해야 돼요. 껍데기 보존하다 보면 더 부작용이 나요. 몸은 그렇게 약을 먹고 몸에 좋다는 것 안 먹어도 신비롭습니다. 앉아보고 서보면 알아요.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발이 저리죠. 계속 누르고 앉으면 피가 안 통해서 아프잖아요. 그런데 몸 자체에서 구제 작전을 벌입니다. 심장이 나서서 피를 보내요. 다리 저리고 몸이 뒤틀리는 힘든 고비를 넘기면 등에서 땀이 나면서 발저린 것이 괜찮아져요. 그냥 놔두면 몸은 저절로 알아서 해요. 그래서 한 시간을 가부좌 틀고 앉아 있으면 한 시간 걸어간 운동효과가 나요. 앉아 있는 게 그렇게 좋은 거예요. 몸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하는 능력이 있어요. 자발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을 약으로 죽이는 거예요.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십년을 앉아 있어도 몸이 스스로 풀어지는 이유를 깨닫지 못해요. 서 있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서서 기도할 때 똑바로 서서 정근해야 돼요. 절하지 마세요. 기도할 때 호흡이 일치해야 돼요. 정근할 때 똑같이 일어서서 하면 수백 사람이 동시에 삼매에 들어가요. 그런데 옆에서 절을 하면 한사람도 삼매 체험을 못합니다. 그 분위기가 깨어지니까요. 기도하는 것도 기도를 할 줄 알고 해야 되는 거예요. 소리만 지르고 계속 몸살친다고 기도가 되는 게 아닙니다. 한 방안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똑같이 이뤄지고 숨쉬는 소리까지 일치해야 상상도 못하는 힘이 생겨요. 절은 정근이 끝나고 하면 됩니다. 참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끝까지 함께 해야지 다리가 저린다고 벌떡 일어나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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