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법화경(法華經)

제 3 장 비유품(譬喩品)(3)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09:40

제 3 장

비유품(譬喩品)(3)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의심도 후회도 없어져 부처님 앞에서 친히 성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증명(수기)을 받았지만, 여기 있는 일천 이백의,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사람들은 옛날 가르침을 받아
배우고 있을 적에, 항상 부처님으로부터, ‘나의 가르침은 능히 생, 노, 병, 사의 인생고에서 해탈시켜
마음의 평안한 경지(열반)를 파헤치도록(구경토록)하는 것’ 이라 듣고 그 가르침에 의해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천 이백의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배워야 할 것을 모두 다 배운 사람과 아직 배우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이미 나[我]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여의고, 사물의 존재(있다)나 소멸(없다)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스스로는 이미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하여 왔으나,
지금 세존으로부터, 전에 듣지 못하던 가르침을 듣고는 모두가 그 까닭을 생각치 못해 당혹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사부 대중을 위하여 가르침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셔서,
현재 처해 있는 마음의 혼란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앞서,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과거의 사연을 들어 말씀하거나 적절한 말로 이론적으로 설명하거나,
갖가지 방편으로써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모두가 다 결국에는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니라’ 하고 가르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설하여 온 모든 가르침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을 위한 가르침이었느니라. 그러나 사리불이여, 내 이제 다시 비유를 들어
이 뜻을 분명하게 밝히리니,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 비유에 의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라.

사리불이여, 어느 나라의 한 마을에 큰 장자[大長者]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한량없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니, 논밭과 가옥은 물론 부리는 사람(하인)도 많았느니라. 그런데 그의 집은
매우 크고 넓었으나 출입하는 대문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며 집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느니라.

그 집은 매우 낡아서 벽과 담장은 군데군데 무너지고 기둥뿌리는 썩었으며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나 차츰 집 전체로 번져가고 있었느니라. 그때,
그 집안에는 장자의 귀여운 여러 아이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집 주위에서 큰 불이 난 것을 보자,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비록 이 불타는 집에서 이미 나와서 안전한 곳에
있지만, 아이들은 이 불타는 집안에서 놀이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애는 불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떤 애는 알았건만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불이 곧 몸에 닿아서 그 고통을
한없이 받으련만,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집 밖으로 나오려는 생각조차 않는구나.’

사리불이여, 거기서 장자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 ‘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들을 모두
옷 담는 상자나 책 담는 궤짝 따위에 담아 단숨에 들고 나올까?’ 하였으나 다시 생각하기를,
‘이 집에는 문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데다 더욱이 매우 좁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데다,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서 일방적으로 담아 오다가
혹시 떨어져 불에 타지나 않을까? 그러므로 우선 어린이들에게 이 집이 불에 타고있어 무섭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금 빨리 뛰어 나오지 아니하면 불에 타서 죽는다고 알려 주어야지.’

이렇게 생각한 장자는 그 여러 아이들에게, ‘빨리 나오느라’고 소리쳤느니라.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는 아버지는 애가 타서 좋은 말로 타이르고 달래었지만, 그러나 그 어린
자식들은 조금도 변함없이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믿지도 아니하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거니와 나오려고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며, 또 불이 어떤 것이며 집이란 어떤 것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다만 이쪽 저쪽으로 내달리고 놀면서 아버지를 힐끔힐끔
바라보며--아버지가 무어라고 말하기는 하는데--거의 문제삼지 아니하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장자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또 하였느니라.

‘이 집은 이미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타고 있으니, 저 자식들을 지금 구해내지 아니하면 반드시 불에
타고 말 것이다. 그러하니 내 이제 교묘한 수단(방편)을 가지고 아이들로 하여금 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어야지 다른 방법이 없구나.’ 그러고 아버지는 아이들이 제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으리라.

진귀한 것이라든가 재미있는 것이라든가, 장난감 따위에는 반드시 마음이 끌리는 법임을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좋아하여 가지고 싶지만 좀체로 얻기 어려운 장난감이 여기 있다.
지금 얻지 못하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리라. 양(羊)이 끄는 수레, 사슴[鹿]이 끄는 수레, 소[牛]가
끄는 수레들이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가지고 놀도록 하여라. 너희들은 불타는 이 집에서 빨리 나와서
너희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도록 하여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겠노라.’

그때 여러 자식들은 아버지가 말하는 진귀하고 좋아하는 장난감이 항상 마음속 어딘가에 바라고
있던 것과 꼭 들어 맞았으므로, ‘빨리 가야지’ 하고 서로 밀치며 앞을 다투어 그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왔느니라.

그때, 장자는 모든 자식들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와 함께 네거리에 앉아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보자, 다시 꺼리는 마음이 없이 흐뭇하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러자
여러 자식들은 제각기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주신다던 양이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를 빨리 주십시오.’ 하고 졸라대는 것이었느니라.

사리불이여, 그때, 장자는 여러 자식들에게 모두 똑같이 크고 훌륭한 수레를 골고루 나누어주었느니라.
그 수레는 크고 높았으며 여러 가지 보배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느니라. 주위에는 난간을 두르고
사면에 풍경을 달았고 수레 위에는 아름다운 비단으로 휘장을 쳤는데 모두 진귀한 보배로 꾸몄으며,
또 보배로 된 줄을 얽어 수레의 처마 끝에서 사방으로 드리웠고 많은 화려한 영락을 매달아 두었느니라.
수레의 바닥에는 부드러운 요를 겹겹이 깔았고, 붉고 아름다운 베개가 놓여있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타고 갈 수 있도록 하였으며, 수레에는 흰 소를 메웠는데 빛깔이 싱그럽고 깨끗하였으며
몸이 충실하고 큰 힘을 가지고 있어, 걸음은 침착하고 반듯했고 바람처럼 빨랐는데 수레의
전후좌우에는 많은 시종들이 호위하였느니라. 그런데 왜 이 장자가 모든 아이들에게 흰 소가 끄는
훌륭한 수레[大白牛車]를 주었을까? 그것은 이장자의 재물은 무한하여 창고마다 대백우차가
가득 차 있었으며 또 장자는 이런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느니라.

‘나의 재산은 한량없는데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작은 수레를 아이들에게 준다고 해서야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일이겠나. 이 어린것들은 모두 나의 자식들인데다 어느 자식이 특별하게 더
귀엽다던가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차별 없이 골고루 이 칠보로 꾸민 많은 수레를 평등하게
나누어주어도 남을 정도의 많은 수레를 가지고 있는 터에, 내 귀여운 자식들에게
어찌 주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는 것이었노라.

이때, 아이들은 이 훌륭한 수레를 각각 타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가졌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본래 원하던 것을 얻은 것이 아니었느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장자가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모든 아이들에게
큰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평등하게 나누어준 것이,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아니하는지?“

사리불이 이때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장자가 자기 자식들로 하여금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 그 생명을 보전시킨 것만으로도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목숨이 건져지는 것이 이미 좋아하는 장난감을 얻은 것과 같사온데 더욱이 이 장자가
장난감을 준다고 한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오도록 하는 자비의 방편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거짓말이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록 이 장자가 가장 작은 수레마저 주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역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장자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수레를 주겠노라’고 말한 것은, 처음부터 방편을
가지고 아이들을 불 속에서 나오도록 해주려는 생각에서 말한 것이므로 불 속에서 실제로 나오게
하였으면, 그것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장자는 ‘나에게 한량없는
재산이 있기 때문에, 듬뿍 아이들에게 나누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자’고 생각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값진 큰 수레를 준 것이므로, 약속이 틀렸다거나 거짓말을 하였다고 할 수 없나이다.“

이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래, 잘 말하였노라. 바로 네 말과 같다.

사리불이여, 부처님도 또한 이 장자와 같아서 일체 세간의 아버지이니라. 그러기에 부처님은
이 장자처럼 모든 두려움과 쇠약함과 번민과 근심과 미혹과 무지 등의 어려움으로부터 영원히 떠나
남음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그 지혜의 작용과 두려움 없이 법을 설하는 힘을 성취하였으며
큰 신통력과 큰 지혜의 힘을 모두 갖추었으니, 필경에는 방편과 지혜를 완성하여 일체중생을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하여 행복을 안겨 주겟노라는,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그 행을 계속하며,
조금도 태만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고 항상 그 행이 중생을 위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며,
모두에게 이익을 주느니라.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덕과 힘을 가진 부처님이, 왜 썩고 낡은 집에 큰 불이 일어난 것처럼 괴로움이
가득찬 이 세상에 출현하는가 하면, 중생이면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과, 근심하고 슬퍼하며 번민하고,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와 탐욕과 성냄과 충동적인 행동 등의 괴로운 세계로부터 건져내고 그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라.

모든 중생들의 사정을 보면, 한결같이 삶에 대한 괴로움, 늙음에 대한 괴로움, 병에 대한 괴로움,
죽음에 대한 괴로움을 비롯하여, 한없는 근심, 슬픔, 고통, 번민에 시달리며,또 눈, 귀, 코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망과 금전과 물질에 대한 욕망 때문에 갖가지 고통을 받고 있으며,
모든 것을 깊이 탐내고 집착하여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기 때문에 현세에서는 이와같은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만일, 하늘에나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빈궁하고 가난하여 많은 고생을 하며,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괴로움이나,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괴로움 등 갖가지의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중생은 이러한 고통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그저 일시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여 향락에 빠져, 불이 몸에 가까이 다가올지라도 그것을 느끼지 못해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도 아니하며 싫어하는 마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탈하고자하는 소망조차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이 삼계의 불타는 집 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당장 큰 고통을 당할
터인데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구나.

사리불이여, 부처님은 중생의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나는 일체 중생의 아버지이므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뽑아 없애주고,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는 것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어 참으로 자유자재한 인생을 살도록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느니라.

사라불이여, 여래인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만일 내가 부처님만이 갖는 신통력과 지혜의 힘만을 중요시하고 방편을 무시하여,
단번에 부처님의 지혜?십력?무소외 등의 높은 경지를 중생에게 찬탄한다면, 결코 이 중생들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또 인생의 갖가지 괴로움 속에 있어, 다시 말해,
불타는 집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므로 어찌
높고 깊은 부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이여, 마치 지금 이야기한 장자는 매우 큰 힘을 몸과 팔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쓰지 아니하였으며 은근히 방편을 써서, 아이들을 불타는 집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내어 그들에게
보배로 된 큰 수레를 나누어주듯이,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비록 십력과 무소외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쓰지 아니하고 큰 지혜에 바탕을 둔 방편에 의해, 괴로움의 세계에서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건져내 주려고 우선 성문에 대한 가르침(성문승), 연각에 대한 가르침(연각승),
보살에 대한 가르침(보살승)의 세가지 가르침(삼승)을 설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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