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불립문자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32

“佛日 청정케하는 광명 같은 존재”

 

 

불교의 긍정적 가르침 이해하려면

언어문자 뛰어넘는 사고의 틀 필요

 

세간의 문자법사들은 선자들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척한다고 간주한다. 그러면서 정작 선자들이야말로 불일(佛日)을 청정케 하는 광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나 각범혜홍이 이제 그와 같은 선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겠다. 선자들의 역할이란 교학에서 언설로 설명한 성문의 가르침도 아니고 연각의 가르침도 아니며 보살의 가르침도 아니고 또한 불의 가르침도 아니다. 그것은 곧 조사들을 통하여 대대로 상승해 내려온 최상상선(最上上禪)이기 때문이다.

 

묻는다 : 그렇다면 그와 같은 최상상선의 법문은 도대체 어떤 말로 설명되어 있는가.

답한다 : 가령 다음과 같은 말이 그 예에 속한다. 한 승이 조주에게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조주는 ‘뜨락의 잣나무다’ 라고 답했다. 조주의 이 한마디야말로 대승경전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다.

 

선종에서는 일찍부터 보리달마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도래한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안으로 취급하여 정답(定答)을 부여하지 않았다. 특히 후대에 조사선의 풍토에서는 불교의 궁극적인 물음과 동일하게 다루어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따라서 정해진 답변이 없는 대신에 어떤 답변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학문적인 선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몇 가지로 제시할 수가 있다. 달마에게는 중국에 대승의 선법을 전래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인도에서는 이미 정법이 쇠퇴해져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법안장의 계승자를 중국에서 찾으려는 이유도 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자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나아가서 달마가 중국에 올 무렵은 이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지 5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교 경전에 대한 번역과 그것을 바탕으로 착실하게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대소승에 대한 분별의 안목이 싹터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습선(習禪)을 벗어나 새로운 대승의 선법 및 최상승의 선법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당시 교학자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불교를 소개하는 선자들에 대하여 일종의 도전으로 간주하여 비난은 물론이고 심지어 박해를 가하기도 하였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의 한가운데 달마가 있었다. 때문에 성문의 가르침과 보살의 연각의 가르침과 보살의 가르침 나아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언어문자의 가르침을 통한 교학자의 안목으로는 선자들의 불립문자의 도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뜨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잣나무라고 답변하는 비상식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는 차라리 경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자의 입장은 조주의 그와 같은 답변이 아무런 문제거리도 아니었다. 나아가서 일상의 상식이었다. 왜냐하면 불교의 가르침은 일종의 도그마와 같이 틀에 박힌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쳐부수고 자유로운 사고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고뇌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주는 질문하는 제자에 대하여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곧 지금 그대 앞에 보이는 잣나무처럼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줄을 알아차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속뜻을 알아차렸는가에 대한 여부는 전적으로 질문자 당사자의 몫이다. 조주는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답변을 찾도록 다그치고 있을 뿐이다. 안목이 열린 사람에게는 교학도 선이 되지만 안목이 뜨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선도 도리어 교학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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