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과 교의 차별 2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40
“수행은 ‘마음 작용’ 잊는 것”

 

묻는다 : 돈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체법은 마음이 반연하는 모습(心緣相)을 벗어나 있고 망념의 주체와 망념의 객체까지도 벗어나 있다. 그래서 오직 여여한 공덕뿐이므로 그 도리에 들어가는 주체도 없고 또한 청정한 해탈마저도 없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 선문의 도리와 다르다고 하는 겁니까.

 

답한다 : 제불의 경계는 본래부터 망념을 벗어나 있다. 망념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중생이다. 그러나 만약 중생이 일념조차 일으키지 않으면 제불과 동일하다. 또 초지가 곧 불지이므로 삼현(三賢)과 십성(十聖)의 경우도 역시 허공을 날아가는 새의 흔적과 같다. 그리고 만약 증득된 진여를 논하자면 언설을 벗어나 있고 형상을 벗어나 있어 확연하게 텅 비어 집착할 바가 전혀 없다. 그러니 이와 같은 이해를 분명하게 터득하지 못하면 돈교의 수행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수행이란 곧 마음의 작용을 잊는 수행이다.

 

그래서 증득되는 진여가 있고 망념(妄念)은 생겨나지 않고 정념(正念)은 생겨난다. 비록 적멸에는 차제의 계급이 없지만 초신(初信)으로부터 불지(佛地)에 이르는 바가 있어 불지가 곧 초신의 경지이다. 그렇지만 만약 선문의 경우를 논하자면 본래 일념조차 없어 어떤 염(念)도 생겨나지 않는다. 염이 본래 없는데 신위(信位)가 어찌 성립되겠는가. 신위가 성립되지 않는데 불지(佛地)가 어찌 있겠는가. 형상이라는 염(念)조차 볼 수가 없거늘 어떤 형상을 벗어난단 말인가.

 

이런 까닭에 선문은 돈교와 다르다. 마음을 잊고 도리에 계합한다는 것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교(敎)에 의하여 도리를 깨치는 것이다. 마치 대승보살의 경우 부처님께서 소승법을 설하더라도 소승법에 막힘이 없고, 대승법을 설하더라도 대승법에 막힘이 없으며, 이(理)를 설하고 사(事)를 설하더라도 이와 사에 막힘이 없고, 공을 설하고 색을 설하더라도 공과 색에 막힘이 없으며, 진과 속을 설하더라도 진과 속에 막힘이 없고, 인승(人乘).천승(天乘).성문승.연각승.보살승 등 오승(五乘)의 제법과 낱낱 글자와 낱낱 구절과 법신과 가명에 대해서도 원융하게 회통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선에 의하여 도리를 깨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대승법을 설하지만 본래 대승이 없고, 부처님께서 소승법을 설하지만 본래 소승도 없으며, 부처님께서 이(理)와 사(事)를 설하지만 본래 이와 사가 없고, 내지 삼승교와 십이분교 및 삼계의 제법을 설하지만 그것은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과 같아 영원히 종적이 없다. 그래서 저 〈화엄경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돈의 가르침 위에 특별히 하나의 종지가 있다. 그것은 곧 언설을 여의고 뜻을 터득하는 종지이다.’

 

망념 벗어난 제불 경계

일념 없으면 중생도 佛

묻는다 : 어떤 언설을 여의고 어떤 뜻을 터득한다는 것인가.

 

답한다 : 오교(五敎)의 언설을 여의고 오교의 뜻을 터득하는 것이다. 선의 종지가 바로 그것이다.

 

역시 계속하여 교문과 선문의 차이를 논하고 있다. 교문의 경우 진여의 깨침과 해탈을 논하면서 증득되는 진여가 있고 증득하는 지혜의 바탕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문의 경우는 그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궁극에는 그 이해에 대한 작용마저 벗어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때문에 교문의 경우 오승(五乘)을 비롯한 제법과 낱낱 글자와 낱낱 구절과 법신과 가명에 대해서도 원융하게 회통하는 것을 수행의 궁극으로 간주한다. 임제의 삼구에 비추어보면 제이구와 제삼구에 해당한다.

곧 방과 할을 활용하고 눈동자를 굴리며 눈썹을 치켜 뜨는 등 제스처를 활용하고 언설을 통하여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풀어놓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문의 경우는 수행을 통하여 대승법을 설해도 본래 대승이랄 것이 없고, 소승법을 설해도 본래 소승이랄 것이 없으며 이(理)와 사(事)를 설해도 본래 이와 사가 없다. 마치 임제의 삼구에 비추어보면 제일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체의 언설과 제스처를 초월해 있어 주객의 분별을 나누려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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