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마곡과 양수좌주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47

“경론 굴레 벗어나 마음을 찾다”

수주의 양수좌주는 처음에 마곡보철을 참하였다. 그때 마곡은 양수좌주가 오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호미를 들고 풀을 매기 시작하였다. 양수좌주가 호미로 풀 매는 곳에 왔는데도 마곡은 전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곧장 방장실로 돌아가더니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마곡이 물었다. “누구인가?” 좌주가 말했다. “양수입니다.” 그런데 양수라는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양수좌주는 퍼뜩 깨침을 얻었다. 이에 양수좌주가 말했다. “스님께서는 이 양수를 속이지 마십시오. 제가 만약 스님을 참례하지 않았다면 경론속에 파묻힌 채 자칫 일생을 속아지낼 뻔 했습니다.” 그리고는 강원에 돌아와서 말했다. “그대들의 경지를 나는 이미 다 알아버렸다. 그런데 이 양수의 경지를 그대들은 까맣게 모르고들 있구나.”

 

수주는 안휘성의 한 지역이다. 마곡은 마조의 제자인 마곡보철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경론을 강의하는 좌주가 선사를 참하고서 마음을 깨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아니 모든 선사들은 먼저 경론을 통해서 불법의 대의를 공부하였다. 나아가서 교학적인 소양이 갖추어진 입장에서 마음공부를 위한 선법에 입문라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아직까지 선법의 진정한 맛 내지 참다운 선지식의 인연을 만나지 못했던 좌주로서는 ‘생뚱맞은’ 마곡의 행위에서 오히려 친절한 자비보살의 모습을 터득하였다.

 

마곡은 이미 양수좌주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양수좌주의 깜냥을 파악하고서 미리 낚시줄을 드리워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수는 마곡의 처소에 도착하자마자 역시 좌주답게 예의도 바르게 먼저 마곡선사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찾다가 뒷마당 텃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걸멍도 짊어진 채로 마곡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문후를 여쭙는 인사를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마곡은 눈길한번 주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허리를 펴고 일어나서는 일이 다 끝났다는 듯이 곧장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더니 아예 문까지 걸어 잠그고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양수좌주는 바로 그 의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하듯이 아무말도 없이 뒤따라가서 태연하게 노크를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수라는 이름을 확인시켜드리는 순간 대번에 자신의 이름이 곧 자신과는 별개이면서도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도리를 터득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말씀드리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곧 예전부터 숱하게 불려오던 양수 바로 그 사람이라는 도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양수라는 이름을 양수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양수라는 이름이 아닌 도리를 깨친 것이다.

 

물아일체의 상태 및 그러한 심정을 자각하고 있는 자신을 분명하게 보아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양수라는 명칭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수라는 명칭에 집착할 건덕지조차 남아 있지 않는 양수가 되었던 것이다. 곧 명상(名相)과 실제(實際)가 불이한 도리를 터득하고보니 마곡선사의 그 자상한 마음에 깊이 감읍할 뿐이었다. 이에 방장실의 문 밖에서 선 채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제가 감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의 크나큰 자비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를 더 이상 속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경배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이제껏 강의하던 강원으로 돌아와서는 대중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대들을 안다. 그러나 그대들은 내가 그대들을 아는 도리를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러니 그대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경론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마음을 찾아 노력하길 바란다.” 여기에서 마곡의 호미는 바로 양수좌주의 문자와 언설에 집착하는 번뇌초를 뽑아주는 호미였다. 양수는 그런 도리를 알고서는 기꺼이 그 호미가 작용하고 있는 밭에까지 찾아갔으나 별소득이 없자 방장실까지 찾아가는 정성을 기울였다. 마곡은 양수가 거기까지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방문을 걸어 잠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양수의 진지한 마음을 끝까지 가름질 해주려는 마곡의 노파친절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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