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양좌주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45

선법 도리 깨치고 할 일 찾아

 

서산의 양좌주는 24권의 경론을 강의하였다. 하루는 마조를 참배하였는데 마조가 물었다. “듣건대 그대는 경론을 많이 강의했다고 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는가.” 양좌주가 답했다. “마음을 가지고 강의합니다.” 마조가 물었다. “마음은 곡예사와 같고 뜻은 꼭두각시와 같은데 어찌 경론을 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양좌주가 답했다. “마음이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인들 어찌 강의할 수 있겠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허공은 강의할 수 있느니라.” 그러자 양좌주는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에 마조가 양좌주를 불러세우자 좌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마조가 말했다. “이게 무엇인가.” 그 소리에 좌주가 대오하였다. 그리고는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좌주가 사찰로 돌아와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일생동안 공부해오면서 나를 능가하는 자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마조의 질문을 듣고서 평생동안 해온 공부가 얼음녹듯이 끝나버렸다.”

 

양좌주는 강서지방 남창의 대안사에 주석하던 좌주였다. 양좌주는 경론을 강의하던 좌주였던만큼 수많은 강의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불법에 대한 대단한 긍지심을 지니고 있었다. 좌주(座主)는 학덕이 높아 사찰의 대중을 거느리는 자 내지 혹은 교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조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중국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이다. 조사선법을 널리 전개하고 수많은 제자를 제접하여 그 선풍은 강서종 내지 홍주종이라 불렸다. 제자들의 기량을 잘 파악하여 각각의 능력에 따른 가르침을 베풀었기 때문에 강서의 선풍을 마조의 잡화포(雜貨鋪)라 하였다.

 

이에 당시 호남지방에서 마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석두의 진금포(眞金鋪)와 더불어 강호(江湖)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마음이 곡예사 내지 꼭두각시와 같다는 말은 <능가경>에 나오는 비유이다. 종종 주체성이 없이 남의 부림을 당하는 노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마조 가르침 받은 후 ‘안목’ 열려

경론 강의하던 대안사 떠나 은둔

 

서산의 양좌주는 마조의 가르침을 받고는 후에 대중을 해산시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였기 때문에 그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경론을 강의하면서 높은 학덕을 자랑하던 좌주가 마조의 한마디에 마음을 깨치고 선법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처음에 교학을 접했다가 선법의 도리를 터득하고 선문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양좌주는 일찍이 경론을 통하여 불법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좌주는 불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그 마음을 요지부동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경론을 강의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고 경론을 이해하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며 밥 먹고 옷 입는 행위도 자신의 마음이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으로 믿고 남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런데 마조의 질문은 참으로 의외였다. 좌주의 그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그토록 맹신하던 그 마음이 허공과 같이 아무런 실체가 없고 곡예사와 같이 남의 연출을 지시받아 춤추고 노래하는 마음이라면 과연 무슨 주인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아가서 바로 그와 같은 마음이 강의를 하고 밥을 먹으며 옷을 입는다는 마조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였다. 좌주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바로 그 자리를 회피하고 싶었다. 그 틈을 살피고 있던 마조는 곧장 ‘좌주여!’ 하고 불러세웠다. 그 순간 좌주는 좌주라는 명칭에는 실체가 없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이 이미 그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도리를 터득할 수 있었다.

 

 소리와 명칭이 아무런 것도 아니면서 단순히 아무런 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좌주에게는 ‘좌주’라는 소리와 명칭과 아울러 마조가 자기에게 가한 일격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양좌주는 좌주이면서 정작 좌주가 아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선법의 도리를 깨우치고는 마조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자신이 공부해오던 교학 이외에 새로운 안목이 열리고보니 더 이상 이제야 자신이 할 일을 찾았던 것이다. 이에 좌주는 할 일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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