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태원부 좌주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3:54

“좌선하면 모든 선악 사라져”

 

태원부가 좌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양주의 효선사에서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어떤 선자가 눈 때문에 발목이 잡혀 머무르면서 그 강의를 듣게 되었다. 법신의 묘리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는 부분에 이르러 그 선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태원부가 말했다. “저는 경전에 의거하여 뜻을 해석하고 있는데 웃으시는 걸 보니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이에 선자가 말했다. “좌주가 법신이 뭔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에 웃은 것이오.” 태원부가 물었다. “어느 부분의 해석이 잘못된 겁니까.”

 

선자가 말했다. “다시 한 번 해석해 보시오.” 태원부가 말했다. “법신의 도리는 허공과 같다. 그래서 종으로 삼세에 통하고 횡으로 시방에 걸쳐 있다. 그러니 인연따라 작용하면서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선자가 말했다. “좌주의 설법이 틀리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대는 다만 법신의 형상작용만 말하고 있을 뿐이지 법신의 본래속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네.” 태원부가 말했다. “청하건대 선자께서는 저에게 한 말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선자가 말했다. “잠시 강의를 그만두고 밤중에 좌선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선악이 일시에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이에 태원부는 선자의 가르침을 따라서 초야부터 오경에 이르도록 좌선을 하였다. 오경의 시각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는 홀연히 깨침을 터득하였다.

 

언설 통해 법신이란 명칭 지녔지만

그 자체가 법신 아니니 집착말아야

출처가 전등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선문염송집에 보이는 내용이다. 선자는 협산선회이고 좌주는 수주에서 화정선자(華亭船子)로 불리웠다가 선법에 귀의한 덕성선사이다. 이 부분도 역시 교학을 공부하다가 선법으로 돌아선다는 이야기이다. 선종에서 중시되었던 경전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열반경>은 불성의 개념과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주제로 하여 선문에서 늘상 언급되고 강의되었던 경전이다.

 

강사였던 태원부 좌주는 법신의 의미에 대하여 법신의 도리는 태초부터 변함이 없고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으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도 누구에게나 구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시간적으로는 삼세에 통하고 공간적으로는 시방에 걸쳐 있으면서 중생의 인연을 따라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작용하면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학 가운데 <화엄경>의 다음과 같은 게송의 내용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두루하여/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타나시네/

인연따라 모든 곳에 나타나시니/

일체의 시공이 깨침의 자리라네//

 

그렇다면 여기에서 선자가 태원부 좌주에게 말하고 있는 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법신을 일종의 대상적인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법신은 언설을 통하여 법신이라는 명칭을 지니고 있지만 언설 자체가 법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언설에 대한 집착과 그 법신이라는 개념에 머물러 있어서는 결코 법신을 터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신의 개념을 통하여 접근하면서 법신의 개념을 넘어서는 선정수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좌주는 이미 법신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그 의미를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저녁부터 새벽녘에 이르도록 가열찬 좌선수행을 지속하였다. 우선 초야에는 법신을 법신으로 받아들여 그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받아들인다. 중야에는 법신과 법신을 궁구하는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하여 그 개념을 초월한다. 나아가서 후야에는 자신이 법신을 궁구하고 있는 줄을 생생하게 알고 느끼고 있으면서 더 이상 법신에 장애되지 않는 탈락을 경험한다. 법신조차 탈락함으로써 비로소 법신이 되는 도리가 자신에게 현성해 있었다.

 

그것이 곧 새벽을 알려주는 시보소리에 활연대오할 수 있었다. 태원부 좌주는 이미 교학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로 인연이 없는 곳에 결과가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각스님 / 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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