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제 눈에 안경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12

“진리 터득은 개인 안목의 차이”

 

화엄경을 강의해 오던 지좌주(志座主)가 물었다. “선사께서는 무슨 까닭에 ‘칙칙하게 널려 있는 푸른 대나무는 진여이고 지천으로 피어 있는 노란 꽃은 반야 아님이 없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법신이란 형상이 없지만 푸른 대나무에 상응하여 형상을 드러내고 반야는 분별지가 없지만 노란 꽃에 응대하여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저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은 법신 아님이 없다. 이제 좌주는 그 도리를 알겠는가.” 좌주가 말했다. “그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만약 견성한 사람이라면 그렇다 말해도 알아들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알아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서 설명하는 것일 뿐 시비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견성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푸른 대나무라고 말하면 푸른 대나무에 집착하고 노란 꽃이라 말하면 노란 꽃에 집착하며, 법신을 말해도 법신에 막히고 반야를 말해도 반야를 알지 못한다. 때문에 모두가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만다.” 이에 좌주가 예를 드리고 물러갔다.

 

지좌주는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선사는 마조도일의 제자인 대주혜해이다.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은 일상의 온갖 현상을 가리킨다. 진리는 일상의 생활속에 고스란히 본래부터 그대로 드러나 있고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개개인의 안목일 뿐이다. 따라서 진리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어느 상황에서나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좌주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도 선사들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단 것에 대하여 지좌주는 일종의 항의를 하고 있다. 이런 것을 가리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말한다.

 

진여.법신 형체와 모습 없어

분별심 버려야 견성 이룰 것

이에 선사는 다음과 같이 일깨워준다. 곧 그런 도리를 아는 것은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도리이다. 그런데도 굳이 칙칙하게 널려 있는 푸른 대나무는 진여이고 지천으로 피어 있는 노란 꽃은 반야 아님이 없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말하자면 푸른 대나무는 그저 푸르고 곧을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을 한다. 노란 꽃은 그저 노란 색이고 예쁜 모습일 뿐이다. 꽃 자신이 노랗다고 예쁘다고 뽐내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들 알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를 보고 푸르다고 말하고 꽃을 보고 노랗다고 말하는 것은 본래의 대나무와 꽃을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인간의 깜냥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푸르다고 하면 푸르다는 것에 집착하고 노랗다고 하면 노랗다는 것에 집착을 해버린다. 대나무를 푸르다고 하건 빨갛다고 하건 대나무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분별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꽃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굳이 대나무를 푸르고 꽃은 노랗다고 주장할 거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을 듣고도 지좌주는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러자 이제 대주선사는 부득이하게 견성한 사람의 경우와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를 들어 설명을 한다. 견성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의 근기에 따른 설명을 할 뿐이지 언설과 형체와 작용에 대한 시비의 분별심을 가지고 논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대나무는 그대로 대나무일 뿐 더 이상 시시비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견성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대나무는 대나무이고 꽃은 꽃이라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대나무는 누가 뭐래도 대나무이고 꽃은 무가 뭐래도 꽃일 뿐이다. 그래서 그렇게 간주하지 않는 사람과는 언제나 시비논쟁이 일어난다.

 

정작 대나무와 꽃은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가른다. 정작 진여와 법신은 형체가 없고 모습이 없다. 그것은 시비를 초월하고 분별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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