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유가사지론 제 7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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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 제 7 권
  
  
  미륵보살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3) 유심유사 등 3지 ④
  
  숙작인론(宿作因論)1)이란 마치 어떤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다음과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과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경(經)의 내용과 같다. '무릇 여러 세간(世間)의 모든 사부(士夫)의 보특가라(補特伽羅)가 받게 되는 것[所受]'2)이란 현재에 받게 되는 괴로움[苦]을 말하고, '모두 숙작(宿作)이 원인[因]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숙악(宿惡)3)이 원인이 되기 때문을 말하며,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옛 업[舊業]을 토해내기 때문'이란 현법(現法)에서 스스로 고행(苦行)을 다하는 것을 말하며, '현재(現在)의 새로운 업[新業]이 짓지 않은 인[不作因]으로 인하여 해(害)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란 여러 가지 불선업(不善業)을 말하며, '이와 같이 이후에 다시는 유루(有漏)가 없다는 것'은 한결같이[一向] 선성(善性)이기 때문에 이후에 번뇌[漏]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번뇌[漏]가 없기 때문에 업(業)이 다했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악업(惡業)을 말하며, '업(業)이 다했기 때문에 괴로움[苦]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숙인(宿因)4)에서
  
1) 16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 여섯 번째로 숙작인론(宿作因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숙작인론(宿作因論)의 삿된 주장을 기술한다.
2) 이하 ' '의 내용은 경(經)의 설을 풀이하는 것이다.
3) 전생(前生)에 지은 악행(惡行)을 의미한다.
4) 전세(前世)에서 만든 업인(業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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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었던 것과 현재의 방편(方便)에서 부르게 되는 고뇌(苦惱)를 말한다. '괴로움을 다하였기 때문에 괴로움의 궁극[苦邊]을 증득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남은 생[餘生]의 상속하는 괴로움이 다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무계외도(無繫外道)5)가 이와 같은 계탁[計]를 짓는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그 외도들은 위와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이치란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성품[性]을 관찰(觀察)하는 것과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다.
  현법(現法)의 사부(士夫)의 작용(作用)을 보아서 결정(決定)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세간(世間)을 보니, 비록 바른 방편[正方便]을 갖출지라도 괴로움[苦]를 부르고 비록 삿된 방편[邪方便]을 갖출지라도 즐거움[樂]에 이르기 때문에, 그들은 '현법(現法)의 사부(士夫)의 작용에 의해서 그것을 원인[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도(顚倒)이어야 한다. 그들의 소견(所見)은 전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숙작(宿作)이 원인이 된다'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그들은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운다.
  이제6) 그것들을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현법(現法)의 방편(方便)에서 초래되는 괴로움은 숙세에 지은 것[宿作]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는 것인가, 현법의 방편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숙세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먼저 말한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옛 업[舊業]을 토해 내기 때문'이라고 한 것과 '현재의 새로운 업[新業]은 짓지 않은 인[不作因]으로 인하여 해(害)를 당하지 않기
  
5) 니건타불달라(尼健陀弗怛羅)라고도 음사되며, 무참외도(無慙外道)를 말한다.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이 외도(外道)를 이계자(離繫子)라고 한다. 이 외도는 나형(裸形)으로 고행(苦行)하면서 물질적 계박(繫縛)을 여의고 내심(內心) 또한 계박(繫縛)을 여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한다.
6) 16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 숙작인론(宿作因論)에 대해서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숙작인론(宿作因論)의 삿된 주장을 논파(論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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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이라고 한 것과 '이와 같이 이후에 다시는 유루(有漏)가 없다는 것'과 내지 …… 라고 하는 자세한 설명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현법의 방편을 원인으로 한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무릇 여러 세간의 모든 사부의 보특가라가 받는 것은 모두 다 숙세에 지은 것[宿作]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현법(現法)의 방편(方便)의 괴로움은 숙세에 지은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현법의 사부(士夫)의 작용을 원인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이론은 이치에 맞는[如理] 설(說)이 아니다.
  나는 이제 실답게[如實] 인상(因相)을 말하겠다.7)
  어떤 경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이 오직 숙세에 지은 것만이 원인이 되니,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자기의 업[自業]의 증상력(增上力) 때문에 여러 악취(惡趣) 혹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어떤 경우는 다시 어떤 괴로움[苦]이 섞인 원인[雜因]에서 생기는 것이 있으니,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삿되게 왕(王)을 섬기다가 좋은 결과[樂果]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에 이르는 것과 같다. 왕을 섬김과 같이 여러 가지 말에 의함과 장사에 의함과 농사에 의함과 위협하여 도둑질함[劫盜]에 의함도 이와 같다. 어떤 경우는 다른 유정(有情)에게 손해(損害)의 일을 짓는데도, 만약 복(福)이 있는 사람은 복락(福樂)을 획득하고, 복(福)이 없는 사람은 공용(功用)을 시설할지라도 대가가 뒤따르는 일이 없다.
  어떤 경우는 다시 새롭게 지은 것이 다른 것[餘有]을 끌어당기는 업(業)과 같이 어떤 법(法)은 순수한 현재의 공용(功用)의 원인에 의하여 얻는다.
  어떤 경우는 정법(正法)을 청문(聽聞)하고 법에 대하여 잘 관찰[覺察]하거나, 다시 위의업로(威儀業路)를 일으키거나, 다시 공교업처(工巧業處)를 수학(修學)하는 이와 같은 종류는 오직 현재의 사부(士夫)의 공용(功用)에 비롯[因]하는 것이다.
  자재 등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 론[自在等作者論]8)은 어떤 사문(沙門)이나
  
7) 이하는 숙작인론(宿作因論)에 대한 정의(正義)를 밝힌다.
8)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일곱 번째로 자재등작자론(自在等作者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자재등작자론(自在等作者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자재등작자론(自在等作者論)이란 대자재천(大自在天)을 만물(萬物)의 창조자(創造者)라고 주장하는 자재천외도(自在天外道) 등의 이론을 말한다. 여기서 '등(等)'이란, 『成唯識論』에서는 대범(大梵) 시(時) 방(方) 본제(本際) 자연(自然) 령(靈) 아(我) 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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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문(婆羅門)이 '무릇 여러 세간의 모든 사부(士夫)의 보특가라(補特伽羅)가 받게 되는 것의 그 일체는 혹은 자재천[自在]의 변화가 원인이 되며, 혹은 그 밖의 장부(丈夫)의 변화가 원인이 된다'고 하는 이와 같은 견해[見]를 세우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자재천 등의 불평등의 인[不平等因]9)을 설하는 논자(論者)들이 이와 같은 계탁[計]을 짓는 것이다.
   무슨 인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見]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에 의하기 때문이다. 가르침[敎]란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고 이치[理]란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성품을 관찰(觀察)하는 것과 같으니, 자세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다.
  그들은 현재의 인과(因果) 속에서 세간(世間)의 유정(有情)들은 욕망[欲]대로 구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 왜냐 하면 현재의 세간의 유정을 보면 그 인시(因時)에는 깨끗한 업[淨業]을 닦으려 하지만 본래의 욕망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악(惡)을 지으며, 그 과시(果時)에는 선취(善趣)의 좋은 세계[樂世界]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만 본래의 욕망대로 되지 않고 악취(惡趣) 등에 떨어지며, 의지[意]로는 좋은 것[樂]을 받겠다고 하는데도 욕망하는 바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기 때문에 그들은 '세간의 모든 물질은 반드시 달리 작자(作者)와 생자(生者)와 변화자(變化者)가 있어서 그 물질의 어버이[父]로 삼아야 하리니, 말하자면 자재천 혹은 그 밖의 분들이다'고 하는 생각[思]을
  
9) 자재천외도(自在天外道) 등에서는 자재천(自在天)이라는 하나의 인(因)으로부터 만물이 생긴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인(因)은 하나이지만 과(果)는 다(多)이어서 인과가 상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평등인(不平等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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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짓는다.
  이제 그대들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10)
  올타남(嗢拕南)으로 말하리라.
  
  공능(功能)에 체성(體性)이 없음과
  소속[攝] 소속되지 않음[不攝]은 상위(相違)하며11)
  작용이 있음[有用]과 작용이 없음[無用]이
  원인이라고 하기 때문에 과실(過失)이 되네
  功能無體性  攝不攝相違
  有用及無用  爲因成過失
  
  자재천 등의 변화(變化)의 공능(功能)12)은 업(業)의 방편(方便)을 원인[因]으로 한다고 하는 것인가, 원인이 없다[無因]고 하는 것인가?
  만약 업(業)의 방편(方便)을 원인으로 한다고 한다면 이 공능은 업의 방편만을 원인으로 하고 다른 세간에 그렇지 않다고 하게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원인이 없다[無因]고 한다면 이 공능은 원인이 없으면서도 있게 되고 세간의 물질에 그렇지 않게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대자재천[大自在]은 세간의 소속[攝]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墮]인가, 소속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소속[攝]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 자재천은 곧 세간의 법[世法]과 동일한 것인데 두루 세간을 생기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약 소속되지 않았다[不攝]고 한다면 곧 벗어난 것[解脫]인데 세간을 생기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작용이 있기 때문에 세간을 변화시
  
10)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자재등작자론(自在等作者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11) 자재천(自在天)을 세간에 소속된다[攝]고 하는 것도 소속되지 않는다[不攝]고 하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12) 만물을 화현(化現)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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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켜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것인가, 작용이 없이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작용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작용하는 데에 자재함이 있지 않은데도 세간에 자재함이 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약 작용이 없다고 한다면 필요한 것이 있지 않은데도 세간을 만들어 내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출생(出生)하는 것은 오직 대자재천만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인가, 또한 다른 것들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대자재천만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이는 곧 대자재천이 있을 때에만 곧 출생(出生)이 있게 되고 출생이 있을 때라야만 대자재천이 있게 되는데, 출생은 대자재천만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다른 것들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이는 욕락(欲樂)만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 것인가, 욕락(欲樂)을 제외한 또 다른 것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 것인가?
  만약 욕락(欲樂)만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이 욕락은 대자재천만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 것인가, 또한 다른 것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 것인가?
  만약 대자재천만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대자재천이 있을 때라야 욕락이 있게 되고 욕락이 있을 때라야 곧 대자재천이 있게 되니, 곧 무시(無始)로 항상 출생이 있게 되므로 이 또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다른 것을 취하여 원인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이 원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으며, 또한 그 욕락[欲]에 자재함이 있지 않으면서도 세간의 물질에 자재함이 있게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공능(功能) 때문에, 소속[攝] 소속하지 않음[不攝] 때문에, 작용이 있음[有用]과 작용이 없음[無用] 때문에, 원인의 성품[因性]이 되기 때문에 모두 다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如理] 설(說)이 아니다.
  해침을 정법으로 삼는 론[害爲正法論]13)이란 어떤 하나의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만약 저 사당[祠] 안에서 주술(呪術)을 먼저 외우고 여러
  
13)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여덟 번째로 해위정법론(害爲正法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해위정법론(害爲正法論)의 삿된 주장을 기술한다. 해위정법론(害爲正法論)이란 희생(犧牲)시킴을 정법(正法)으로 하는 이론, 즉 살생(殺生)하는 것을 선업(善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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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生命)들을 해치며 제사지내는 사람과 해침[害]을 당하는 자들이나 돕는 사람들의 이와 같은 모두가 다 생천(生天)하게 된다'고 하는 이와 같은 견해[見]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인연 때문에 그 외도(外道)들은 위와 같은 견해[見]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가?
   이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이론(理論)으로서 아첨[諂]과 속임[誑]으로 일으키는 것이며 도리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건립(建立)한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투는[諍競] 악겁(惡劫)이 일어났을 때 바라문(婆羅門)들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바라문법(婆羅門法)을 어기고 고기를 먹기 위하여 헛되이 이러한 계탁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14) 이 주술(呪術)의 방책[方]은 법(法)의 자체(自體)라고 하는 것인가, 법(法)의 자체(自體)가 아닌데서 생겼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법(法)의 자체(自體)라고 한다면 그 살생(殺生)을 떠나서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결과[所愛果]를 얻을 수 없어서 그 비법(非法)을 전환하여 정법(正法)으로 삼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법(法)의 자체(自體)가 아니라고 한다면 자체가 좋아하는 결과의 법이 아닌데 다른 좋아하지 않는 결과의 법을 돌려서 버릴 수 있다[轉捨]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기술하고 나서, 즉 '마치 세간의 독(毒)이 주술(呪術)에 걸려들면 해(害)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주술의 방책 또한 그러하다'고 구제[救]를 말한다.
  이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술(呪術)의 방책[方]이 외부의 독(毒)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또한 내부의 탐(貪) 진(瞋) 치(癡)의 독도 그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14)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해위정법론(害爲正法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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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인가?
  만약 그치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곳이거나 어떤 때라도 탐(貪) 진(瞋) 치(癡) 등이 고요하게 그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그치게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서 '마치 주술의 방책이 외부의 독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또한 비법(非法)의 업(業)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주술의 방책은 두루 작용한다[遍行]고 하는 것인가, 두루 작용하지 않는다[不遍行]고 하는 것인가?
  만약 두루 작용한다[遍行]고 한다면 스스로 친애(親愛)하는 것을 먼저 제사[祀]에 쓰지 않는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약 두루 작용하지 않는다[不遍行]고 한다면 이 주술의 공능(功能)이 곧 결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주술(呪術)의 공능(功能)은 원인만을 전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결과도 또한 전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원인만을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결과에 공능이 없게[無能]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결과도 또한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전변(轉變)하는 것과 같이 곧 양(羊)들을 사랑할만한 묘색(妙色)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양들의 몸을 없애 버리고 나서 비로소 천신(天神)을 취하게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술을 짓는 사람은 역량[力能]과 자비로움[悲愍]이 있다고 하는 것인가, 없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 생명을 죽이지 않고서는 그를 데리고 천상(天上)에 왕생(往生)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약 없다고 한다면 그 짓는 주술로 갖출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원인[因]에 의해서, 비유(譬喩)에 의해서, 결정적이 아님에 의해서, 결과[果]에 공능이 없음[無能]에 의해서, 주술자(呪術者)에 의해서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如理] 설(說)이 아니다.
  나는 이제 비법(非法)의 상(相)을 말하겠다.15) 다른 것을 해치고 현재[現]
  
15) 이하는 해침을 정법으로 삼는 론[害爲正法論]에 대한 정의(正義)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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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실[過]을 대치하지 않는 업(業)을 비법(非法)이라고 하며, 또한 여러 가지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모두 이 업(業)은 좋지않은 결과[不愛果]를 받는다고 아는 업과, 또한 일체지자(一切智者)는 결정코 불선(不善)이라고 말하는 업과, 또한 스스로 바라지 않는 바의 업과, 또한 염오의 마음으로 일으키게 되는 업과, 또한 삿된 주술의 방책을 기다려서 효험[功驗]을 갖추는 업과 자성(自性)이 무기(無記)인 업(業)의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다 비법(非法)이다.
  변 무변론[邊無邊論]16)이란 어떤 한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세간의 여러 가지 정려(靜慮)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세간에 궁극이 있다는 생각[有邊想] 궁극이 없다는 생각[無邊想] 궁극이 있기도 하고 궁극이 없기도 하다는 생각[俱想] 궁극이 있는 것도 궁극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不俱想]에 머무른다'고 하니, 자세한 설명은 경(經)의 내용과 같다. 이것에 의해서 '세간은 궁극이 있으며, 세간은 궁극이 없으며, 또한 세간은 궁극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세간은 궁극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는 이와 같은 견해[見]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연(因緣)과 계탁하는 사람[能計者]에 대해서는 이미 말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단(斷)의 변제[邊際]에 의하여 세간의 궁극[世邊]을 구할 때나 괴겁(壞劫)을 기억[憶念]한다면 세간에 대해서 궁극이 있다는 생각[有邊想]을 일으키게 되며, 만약 성겁(成劫)을 기억[憶念]한다면 세간에 대해서 궁극이 없다는 생각[無邊想]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방역(方域)이 두루 하고 넓은 것에 의해서 세간의 궁극[世邊]을 구할 때에는 어떤 경우 아래로 무간(無間)17)을 지나쳐도 다시는 얻을 것이 없으며 위로 제 4정려(靜慮)를 지나쳐도 또한 얻을 것이 없으며 옆으로 일체처(一切處)에서도 궁극의 끝[邊際]도 얻을 것이 없으므로 이 때 곧 위와 아래에 대해서는 궁극이 있다는 생각[有邊想]을 일으키고 옆의 처소에 대해서는 궁극이 없다는 생각[無邊想]을
  
16)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아홉 번째로 변무변론(邊無邊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변무변론(邊無邊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17)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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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으킨다. 만약 이 주장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 있다면 단지 다른 문장에만 의할 뿐이고 뜻에는 차별이 없으니, 곧 세간에 대해서 궁극이 있지도 않고 궁극이 없지도 않다는 생각[非有邊非無邊想]을 일으킨다.
  이제 그대에세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앞의 괴겁(壞劫)이래로 다시 세상의 일어남이 있다고 하는 것인가, 일어남이 없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있다고 한다면 세간에 궁극이 있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약 없다고 한다면 세간이 머무르는 것도 아닌데 세간의 궁극을 생각함도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것18)으로부터 옴이 있기 때문에, 그것19)으로부터 옴이 없기 때문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如實] 설(說)이 아니다.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20)이란 말하자면 네 가지 불사교란외도(不死矯亂外道)21)인데 경(經)에서 자세히 설한 내용과 같은 줄 알아야 한다.
  그 외도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최승의 생도[最勝生道]22)에 의하는 선(善)과 불선(不善)을 묻거나 결정의 승도[決定勝道]23)에 의하는 고(苦) 집(集) 멸(滅) 도(道)에 대해서 물으면, 곧 스스로 말하기를 '죽지도 않고 산란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며, '처소에 따라서 죽지 않는 정거천[淨天]에 의지하면 산란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으면 곧 그 질문한 내용에 대해서 교
  
18) 성겁(成劫)을 가르킨다.
19) 괴겁(壞劫)을 가르킨다.
20)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번째로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21) 불사교란(不死矯亂)이란 정확히 표현하면 불사불란(不死不亂)이라고 해야 한다. 그 현상이 천(天) 장수(長壽)일 경우에는 상주불사(常住不死)라고 하며 이미 제리(諦理)를 보아서 무루정(無漏定)을 얻었을 경우에는 불란(不亂)이라고 한다. 또한 이 외도들은 불사(不死)의 이유에 대해서 물었을 때 해답이 궁하면 교란(矯亂)하는 대답으로써 이를 회피하고 만약 교묘한 교답(矯答)을 얻으면 곧 생천(生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22) 인(人) 천(天)으로 태어나는 데에 뛰어난 인(因)을 의미한다.
23) 열반(涅槃)하는 데에 뛰어난 인(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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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矯亂)하는 말을 하며, 어떤 경우는 다른 일을 핑계삼는 방편으로 이를 회피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묻는 사람의 말만을 따르면서 되풀이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첫째는 깨달음이 아직 열리지 않은 불사란자(不死亂者)이며, 둘째는 증득한 법에 대해서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키는 자이며, 셋째는 깨닫고 나서 진리를 체득[開悟]했으나 아직은 결정적이지 않은 자이며, 넷째는 열등[羸劣]하고 우둔한 자이다.
  또한 첫째는 망어(妄語)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이 그의 무지(無知)를 알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 증득한 것[自所證]에 대해서 아직 무외(無畏)를 얻지 못한지라 다른 사람의 힐문(詰問)을 두려워하고 망어(妄語)를 두려워하며 사견(邪見)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나는 증득한 것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사견(邪見)을 두려워하고 망어(妄語)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의 힐문(詰問)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나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는 다른 일을 거짓으로 핑계삼아 교란(矯亂)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넷째는 다른 사람의 힐문(詰問)만을 두려워하여 '최승(最勝)의 생도(生道)와 결정(決定)의 승도(勝道)에 대해서 모두 다 요달(了達)하지 못했으며 세간의 문자(文字)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하고, 분명하게 '나는 우둔하여 도무지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질문만 하여 그의 말에 따라서 되풀이하면서 그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이론을 일으키는 인연(因緣)과 계탁하는 자[能計者]와 아울러 그 주장을 논파하는 것은 모두 경(經)에서 설한 내용과 같다.
  그 외도(外道)들은 두려움[怖畏]이 많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힐문(詰問)하게 되면 곧 첨곡(諂曲)으로써 교란(矯亂)을 하니, 이러한 견해[見]는 악견(惡見)에 포함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이론[論]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닌 것이다.
  무인견론(無因見論)24)이란 말하자면 정려(靜慮)에 의지하고 심사(尋思)에 의지하는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하리니, 경(經)에서 자세히 설한 내용과
  
24)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한 번째로 무인견론(無因見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무인견론(無因見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이 이론가들은 무상천(無想天)에서 죽어서 숙주통(宿住通)을 얻어서 그 출심(出心)을 기억하지만, 전 단계[前位]는 알지 못한 채 세간에 태어났기 때문에 무인(無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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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저 외도들은 심사(尋思)에 의지하여 '나[我]와 세간(世間)은 모두 원인 없이 생기는 것[無因生]이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간략하게 말하면 먼저 상속(相續)하지 않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안팎[內外]의 현상[事]은 무량한 차별로 갖가지로 일어나고 혹은 다시 어느 때 공(空)하여 과보(果報)가 없는 인연들을 보고서 '세간을 보건대, 인연 있는 것이 없더라'고 말하고, 혹은 어느 때 홀연히[欻爾] 큰 바람이 일어났다가도 순식간에 고요히 그치고, 혹은 어느 때 폭우로 강물이 가득 찼다가도 순식간에 곧 바로 말라서 없어지며, 혹은 어느 때 울창한 과실나무가 무성하다가도 순식간에 바람이 불어서[颯然] 앙상하게 되는 이와 같은 것에 의하여 원인은 없다[無因]는 견해[見]을 일으키고 원인이 없다[無因]는 이론[論]을 세운다.
  이제25)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의 숙주념(宿住念)은 무체(無體)를 기억[念]한다고 하는 것인가, 자아(自我)를 기억한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무체(無體)를 기억한다고 한다면 일찍이 익히지도 않았고 일찍이 인식[識]을 겪지 않았던 무체법(無體法)을 수념(隨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도리(道理)에 맞지 않는다. 만약 자아(自我)를 기억한다고 한다면 먼저 없었던 나에 대해서 나중에 갑자기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세간의 안팎[內外]의 물질들이 갖가지로 일어나고 혹은 홀연히 일어나는 것은 원인이 없다고 하는 것인가, 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인가?
  
25)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 무인견론(無因見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무인견론(無因見論)의 삿된 주장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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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원인이 없다고 한다면 갖가지로 일어나는 것이 홀연히 일어나고 어떤 때는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아(我)와 세간(世間)은 원인이 없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므로 도리(道理)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체(無體)를 기억[念]하기 때문에, 자아(自我)를 기억하기 때문에, 안팎[內外]의 물질들은 갖가지로 달라지는 인연(因緣)에 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갖가지로 달라지는 인연에 의하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단견론(斷見論)26)이란 어떤 한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이 '내지 내가 추색(麤色)의 4대(大)로 만들어진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을 때에는 병(病)이 있고 종기[癰]가 있으며 화살[箭]이 있지만 내가 죽은 이후에는 멸하고 무너져서 있을 것이 없으니, 이때 나는 완전히 단멸(斷滅)하는 것이다. 욕계(欲界)의 천(天)들과 색계(色界)의 천(天)들이 이러하듯이 무색계(無色界)의 공무변처(空無邊處)에 포함되는 것과 내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포함되는 것도 이와 같다'고 이와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경(經)의 내용과 같다. 말하자면 일곱 가지27)의 단견론(斷見論)을 주장하는 자는 이와 같은 계탁[計]을 짓는 것이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그 외도들은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에 의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이치란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내지 자세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다.
  그들은 '만약 내가 죽은 뒤에 다시 몸이 있다면 업(業)을 짓지 않아도 과의 이숙[果異熟]을 얻어야 하며, 만약 나의 체성(體性)이 모두 다 영원히 없다면
  
26)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두 번째로 단견론(斷見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단견론(斷見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27) 욕계(欲界)의 인(人)과 욕계(欲界)의 천(天)과 색계(色界)의 천(天)의 네 가지 공처(空處)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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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業)의 과(果)인 이숙(異熟)을 받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니, 도리에 모두 맞지 않은지라 이 때문에 '나의 몸은 죽고 난 뒤에 멸하고 무너져서 있는 것은 없으니, 마치 와석(瓦石)과 같이 한번 깨지면 도로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그것도 이와 같은 도리인 줄 알아야 한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운다.
  이제28)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온(蘊)이 단멸(斷滅)한다고 하는 것인가, 내[我]가 단멸(斷滅)한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온(蘊)이 단멸한다고 한다면 온(蘊)의 체(體)는 무상(無常)하여 인과(因果)가 전전(展轉)하여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는데 단멸(斷滅)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내'가 단멸한다고 한다면 너희들이 앞서 말한 '추색(麤色)의 4대(大)로 만들어진 몸에 병(病)이 있고 종기[癰]가 있으며 화살[箭]이 있으며, 욕계(欲界)의 천들과 색계(色界)의 천들이 이러하듯이 무색계(無色界)의 공무변처(空無邊處)에 포함되는 것과 내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포함되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온(蘊)의 경우에 단멸(斷滅)하기 때문에, 아(我)의 경우에도 단멸(斷滅)하기 때문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論]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공견론(空見論)29)은 말하자면 어떤 한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시여(施與)할 것도 없고, 사랑하며 기를 것[愛養]도 없으며, 제사지낼 것[祠祀]도 없으며, …… 세간(世間)에는 참된 아라한(阿羅漢)도 없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 다시 '일체제법(一切諸法)에는 체상(體相)이 없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그 외도들은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28)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단견론(斷見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29)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세 번째로 공견론(空見論)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공견론(空見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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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가르침과 이치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이치란 어떤 한 사람이 성품을 심사(尋思)하고 내지 …… 라고 설명한 것과 같다.
  또한 세간(世間)의 정려(靜慮)들에 의하여 세간의 시주(施主)가 한 평생 동안 끊임없이 보시(布施)를 행했는데도 이로부터 목숨이 끊어져서 빈궁(貧窮)하고 부족한[匱乏] 하천한 집에 태어나는 것을 보고는 그는 '반드시 시여(施與)할 것도 없고, 사랑하며 기를 것[愛養]도 없으며, 제사지낼 것[祠祀]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어떤 사람이 한 평생 동안 묘행(妙行)을 행하거나, 혹은 악행(惡行)을 행하기도 하다가 그가 목숨이 끊어져서 악취(惡趣)에 떨어져 나락가(那落迦)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선취(善趣)에 왕생하기도 하고, 혹은 천상(天上)의 즐거움의 세계[樂世界]에 태어나는 것을 보고, 그는 '반드시 묘행(妙行)과 악행(惡行)은 없으며, 또한 묘행과 악행의 두 가지 업(業)의 과(果)인 이숙(異熟)도 없다'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다시 어떤 한 찰제리의 종성[刹帝利種]이 목숨이 끝난 후에 바라문(婆羅門) 폐사(吠舍) 술타라(戌陀羅)의 종성(種姓)들 속에 태어나고, 혹은 바라문이 목숨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 찰제리(刹帝利) 폐사(吠舍) 술타라(戌陀羅) 등의 여러 종성(種姓)에 태어나며, 폐사(吠舍) 술타라(戌陀羅) 등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되는 것을 보고서 그는 '반드시 이 세간의 찰제리(刹帝利) 등은 저 세간의 찰제리 등의 종성(種姓)으로부터 오지 않으며, 또한 저 세간의 찰제리 등은 이 세간의 찰제리 등의 종성으로부터 가지 않는다'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또한 다시 욕심을 떠난 자[離欲者]가 하지(下地)에 태어나는 것을 관찰하여 보며[觀見], 또한 어머니가 죽고 나서 딸로 태어나고 딸이 죽고 나서 다시 그 어머니로 되기도 하며, 아버지가 죽고 나서 아들이 되고 아들이 도로 아버지가 되는 것을 보며 그는 부모(父母)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고 나서 '세간에는 필히 정해진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혹은 다시 사람의 몸이 무너져서 목숨이 끊어지고 혹은 무상천[無想]에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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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기도 하고, 혹은 무색천[無色]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열반(涅槃)에 들기도 하는데 그 태어나는 곳[生處]을 찾아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결정코 화생중생(化生衆生)은 없구나. 그것의 처소(處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혹은 자신(自身)에게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키고 나서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마침내 생이 생겨나는 것[生相]을 보고는 그는 '세간에는 반드시 참된 아라한이 없구나'는 생각을 하며, 위와 같이 …… 라고 한다.
   다시 무슨 인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우기도 하면서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체상(體相)은 없다'고 하는가?
   여래(如來)께서 설하신 깊고 깊은 경[甚深經] 속의 상사(相似)하고 깊고 깊은 말을 떠난 법은 여실하게 바르게 깨달아 알지 않았기[不覺] 때문에, 또한 안립한 법상(法相)에 대하여 정리(正理) 그대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공견(空見)을 일으켜서 그는 '결정적인 제 온(蘊)의 체상(體相)은 없다'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제30)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태어나면서 받는 업[生所受業]과 뒤에 받는 업[後所受業]이 있다고 하는 것인가, 모두가 다 태어나면서 받는 것[生所受]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모두 있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서 말한 '시여(施與)할 것도 없고, 사랑하며 기를 것[愛養]도 없으며, 제사지낼 것[祠祀]도 없으며, 묘행(妙行)도 없으며, 악행(惡行)도 없으며, 묘행과 악행의 업(業)의 과(果)의인 이숙(異熟)도 없으며, 이 세간(世間)도 없고 저 세간도 없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뒤에 받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로 지은 정(淨)과 부정(不淨)의 갖가지 행한 업(業)이 있는데도 그가 목숨이 끊어지고 나서 그가 태어날 때에 단박에 일체의 정(淨)과 부정(不淨)의 업(業)의 과(果)인 이숙(異熟)을 받는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30)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공견론(空見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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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무릇 그31) 태장(胎藏)과 그32) 종자(種子)로부터 태어나는 자들은 여기에서 부모(父母)라고 하는 것인가, 부모가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부모(父母)라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부모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태장과 그 종자로부터 태어나는 것인데도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때에는 이때 아들과 딸이 되지 않으며, 만약 아들과 딸이 될 때에는 이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정하지 않는 과실은 없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곳에 생(生)을 받는 중생이 있는데, 천안(天眼)으로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가,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화생중생(化生衆生)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곧 상욕(想欲)을 여읜 자33)와 색욕(色欲)을 여읜 자34)와 3계욕(界欲)을 여읜 자35)를 없애는 것[撥無]이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라한(阿羅漢)의 성품[性]은 있는데, 그것에 대하여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인가, 없으면서 일으킨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세간(世間)에는 반드시 참된 아라한(阿羅漢)이 없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없다고 한다면 바르지 않는 사유(思惟)의 전도(顚倒)를 일으켜서 스스로 아라한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참된 아라한이다고 하는 것이니, 역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원성실상법(圓成實相法)과 의타기상법(依他起相法)과 변계소집상법(遍計所執相法)은 있다[有]고 하는 것인가, 없다[無]고 하는 것인가?
  
31) 어머니를 가르킨다.
32) 아버지를 의미한다.
33)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난다.
34) 무색계천(無色界天)에 태어난다.
35) 열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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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체상(體相)은 없다'고 말한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없다고 한다면 전도(顚倒)도 없어야만 하고 염(染) 정(淨)도 없어야만 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이 태어난 이후에 받는 것[生後所受]이 있기 때문에, 불결정(不決定)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生處]이 있기 때문에, 증상만(增上慢)이 있기 때문에, 3종상(種相)이 있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헛되이 최승을 계탁하는 론[妄計最勝論]36)이란 어떤 한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바라문은 가장 뛰어난 종류(種類)이지만 찰제리(刹帝利) 등은 하열(下劣)한 종류이다. 바라문은 희고 깨끗한[白淨] 색(色)의 종류이지만 찰제리 등은 검고 더러운[黑穢] 색(色)의 종류이다. 바라문의 종성[婆羅門種]은 청정(淸淨)을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종류는 그렇지 않다. 바라문들은 범왕(梵王)의 아들로서 대범왕의 입과 배로부터 태어나며, 범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범왕이 변화(變化)한 것이며, 범왕의 자손[體胤]이다'는 이와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쟁겁(鬪諍劫)37)의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계탁[計]을 한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바라문들은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고 이치란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내지…… 하는 것과 같다.
  세간에서 참된 바라문은 성품[性]과 계율을 갖추기 때문에, 명리(名利)와 공경(恭敬)을 탐익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계탁을 하는 것이다.
  이제38)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다른 종
  
36)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네 번째로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에 대하여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37) 세계가 괴겁(壞劫)의 기간에는 사상(思想)이 혼란하고 견해가 달라서 서로 투쟁하는 하나의 시기가 있는데, 이를 투쟁겁(鬪諍劫)이라고 한다.
38)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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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39)만이 부모로부터 태어난다[生産]고 하는 것인가, 바라문(婆羅門)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다른 종류만 이라고 한다면 세간(世間)에서 현재 바라문들을 보니,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데 그대들이 현재의 현상[現事]을 비방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바라문도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바라문들은 가장 뛰어난 종류이며, 찰제리(刹帝利) 등은 하열한 종류'라고 한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40)
  부모로부터 생산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불선업(不善業)을 짓고, 선업(善業)을 짓고, 신(身) 어(語) 의(意)의 악행(惡行)을 짓고, 신(身) 어(語) 의(意)의 묘행(妙行)을 지으며, 현법(現法)에서 좋고[愛] 좋지 않은[不愛] 결과[果]를 받는 것도 (이와 같다).41)
  곧 후세(後世)에 여러 악취(惡趣)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선취(善趣)에 태어나기도 하여42) 3처(處)43)가 현전하면 피(彼) 차(此)가 있어서44) 피(彼) 차(此)에 의하여45) 모태(母胎)로 들어가고 이로부터 태어나는 것도 (같다).
  세간(世間)의 공교처(工巧處)나 작업처(作業處)가 선(善)이거나 불선(不善)이거나 간에 (이와 같으며)46), 왕(王)이거나 신하[臣]이거나 기첩(機捷)이
  
39) 바라문(婆羅門)을 제외한 그 밖의 계급의 성(姓)을 말한다.
40) 바라문(婆羅門)만이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첫 번째로 모든 종족은 부모에서 태어나는 것[生産]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41)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두 번째로 모든 종족은 업(業)을 지는 것이 같음에 의하여 논파하고 있다.
42)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세 번째로 모든 종족은 업에 따라서 생을 받는 것[受生]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43) 의탁하여 태어나는 데에는 세 가지 인연(因緣)이 필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부모가 함께 음행(淫行)을 행함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어머니의 몸이 수태하기 적합한 때이어야 하고, 셋째는 중유(中有)가 현전(現前)해야만 한다.
44) 부모(父母)가 모두 염착심(染著心)이 있어서 피차(彼此)의 남녀가 서로 연애(戀愛)하는 것을 의미한다.
45) 부모(父母)의 조적(調適)한 때를 의미한다.
46)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네 번째로 모든 종족은 생업(生業)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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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나 증진하여 만족하는 사람이거나 간에 (이와 같으며)47), 왕을 보살펴서 모시는 사람이거나 보살피지 않는 사람은 노(老) 병(病) 사(死)의 법(法)이거나 노(老) 병(病) 사(死)가 아닌 법(法)이거나 간에 (이와 같으며)48), 범주(梵住)를 닦고 나서 범세(梵世)에 태어나거나 다시 그렇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으며)49),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수습하거나 수습하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으며)50), 성문(聲聞)의 보리(菩堤) 독각(獨覺)의 보리 무상(無上)의 보리를 깨닫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다)51).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뛰어난 종류(種類)로부터 태어나는 이를 뛰어남[勝]이라고 하는 것인가, 계율과 다문[戒聞]52)등에 의하여 (뛰어남)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53) 뛰어난 종류(種類)로부터 태어나는 것에 의한다고 한다면, 그대들의 이론[論]에서 말하길 '제사[祠祀]에서는 지계와 다문[戒聞] 등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표준[量]으로 삼는다'고 하는 이러한 말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지계와 다문[戒聞] 등에 의한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바라문들은 가장 뛰어난 종류[類]이며, 그 나머지는 하열한 종류이다'고 한 것은
  
47)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다섯 번째로 모든 종족은 증상(增上)에 의지하는 것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48)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여섯 번째로 모든 종족은 왕에게 고록(顧錄)되는 것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49)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일곱 번째로 모든 종족은 범주(梵住)를 닦음과 닦지 않는 것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50)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여덟 번째로 모든 종족은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고 닦지 않는 것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51)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아홉 번째로 모든 종족은 성문(聲聞) 등의 보리 또는 그렇지 않는 것이 같음으로 논파하고 있다.
52) 바라문들은 그들의 논서에서 '제사지낼 때, 제사문(祭祀文)을 지계(持戒)와 다문(多聞)에 출중한 사람을 뽑아서 표준[量]으로 삼아서 읽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53) 망계최승론(妄計最勝論)의 잘못을 열 가지로 논파(論破)하는 데에 그 열 번째로 모든 종족은 계문(戒聞)등에서 같음에 의하여 논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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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생산(生産)에 의하여, 업(業)을 지음에 의하여, 생을 받음[受生]에 의하여, 공교업처(工巧業處)에 의하여, 증상(增上)에 의하여, 그54)에게 고록(顧錄)됨에 의하여, 범주(梵住)에 의하여, 각분(覺分)을 수습함에 의하여, 보리(菩堤)를 증득[證]함에 의하여, 지계와 다문[戒聞]의 뛰어남에 의하여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論]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헛되이 청정을 계탁하는 론[妄計淸淨論]55)이란 어떤 한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이 '만약 내가 해탈하면 마음[心]에 자재(自在)를 얻으며 관(觀)에 자재(自在)를 얻는다. 여러 천(天)의 미묘(微妙)한 5욕(欲)을 굳게 집착[堅著]하고 섭수(攝受)하며 재미있게 즐기며 뜻대로 수용(受用)하는 이것을 곧 현법열반(現法涅槃)의 제 1의 청정(淸淨)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는 이와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56)
  또한 어떤 외도(外道)는 '만약 욕(欲)의 악(惡) 불선법(不善法)을 여의게 되면 초정려(初靜慮)에 구족하게 머무르게 되며 내지 제 4정려(靜慮)에 구족하게 머무르게[具足住] 된다. 이것을 또한 현법열반(現法涅槃)의 제 1의 청정(淸淨)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57)
  또한 어떤 외도는 '어떤 중생(衆生)이 손타리가하(孫陀利迦河)에서 몸[支體]을 목욕하면 모든 악들이 모두 다 없어진다. 손타리가하(孫陀利迦河)에서 이와 같듯이 바호타하(婆湖陀河) 가야하(伽耶河) 살벌저하(薩伐底河) 긍가하(殑伽河) 등에서 몸을 목욕해도 그러하여 제 1의 청정(淸淨)임을 알아야 한다'는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58)
  
54) 왕을 가리킨다.
55)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다섯 번째로 망계청정론(妄計淸淨論)에 대하여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망계청정론(妄計淸淨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56) 5현법열반(現法涅槃)을 집착하는 것 가운데 첫 번째로 천(天)의 욕진(欲塵)을 중시하는 외도(外道)의 설을 기술한다.
57) 5현법열반(現法涅槃)을 집착하는 것 가운데에 4정려(靜慮)의 희열을 중시하는 외도(外道)의 설을 기술한다.
58) 물[水] 등이 청정하다는 외도(外道)의 설을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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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어떤 외도는 구계(狗戒)를 지킴으로써 청정하게 된다고 계탁[計]하고, 어떤 외도는 우계(牛戒)를 지키며, 어떤 외도는 유묵계(油墨戒)를 지키며, 어떤 외도는 노형계(露形戒)를 지키며, 어떤 외도는 회계(灰戒)를 지키며, 어떤 외도는 자고계(自苦戒)를 지키며, 어떤 외도는 분예계(糞穢戒)등을 지킴으로써 청정하게 된다고 계탁한다.59)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주장하는 외도와 물 등이 청정함을 주장하는 외도가 위와 같은 계탁[計]을 짓는 것이다.
   그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에 의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으며, 이치란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내지 ……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여러 가지 종임자재(縱任自在) 욕자재(欲自在) 관행자재(觀行自在)를 얻는 것을 승청정(勝淸淨)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실하게 종임자재(縱任自在) 등의 상(相)을 알지 못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괴롭힘[自苦身]으로써 악(惡)으로부터 해탈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 악을 벗어나는 것[過惡]을 짓는 것을 악을 벗어나는 해탈이라고 계탁한다.
  이제60) 그것을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묘오락(妙五樂)을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있다는 것은 탐욕[欲貪]을 여읜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여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이미 여의었다고 한다면 세간의 5욕[世五欲]을 재미있게 즐긴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아직 여의지 않았다고 한다면 해탈청정(解脫淸淨)이라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초정려 내지 제 4정려를 구족하게 머무르게 되는 사람들은 그들은 이미 모든 탐욕(貪欲)을 여읜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직 여의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59) 헛된 계 등을 만들어 이를 청정하다고 하는 외도(外道)의 설을 기술한다.
60)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망계청정론(妄計淸淨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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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모든 것을 여의었다고 말한다면 단지 제 4정려에 이르기까지 구족하게 머무른다[具足住]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모든 탐욕을 아직 여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구경(究竟)의 해탈청정(解脫淸淨)이라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안[內]이 청정하기 때문에 구경(究竟)의 청정이라고 하는 것인가, 밖[外]이 청정하기 때문에 구경의 청정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안[內]에 의한다고 한다면 강에서 목욕하여서 청정을 얻는다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밖[外]에 의한다고 한다면 안으로는 탐(貪) 진(瞋) 치(癡) 등의 일체의 더러움[垢穢]를 갖추고 있는데 단지 밖의 더러움[外垢]을 제거하는 것을 곧 청정이라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깨끗한 물건[淨物]을 집수(執受)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인가, 깨끗하지 않은 물건[不淨物]을 집수(執受)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깨끗한 물건을 집수함에 의하여 청정을 얻는다고 한다면 세간에서는 모두 개[狗] 등은 깨끗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데도 너희들이 구계[狗] 등을 집수하여 청정을 얻는다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집수함에 의한다고 한다면 제 몸[自體]이 깨끗하지 못한데 다른 것으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구계(狗戒)등을 받아 지키는[受] 사람들은 몸[身] 등이 사악(邪惡)한 행(行)을 행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인가, 몸 등이 정묘(正妙)한 행을 행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사악한 행을 행하는 것에 의한다고 한다면 사악한 행을 행하면서도 청정이라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정묘한 행에 의한다고 한다면 구계(狗戒) 등을 지키는 것도 마땅하지 않는데 그것들61)에서 능히 청
  
61) 구계(狗戒)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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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을 얻는다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지 않음에 의해서, 안팎[內外]에 의해서,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는 것을 받아 지님[受]에 의해서, 사행(邪行)과 정행(正行)에 의해서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論]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헛되이 길상을 계탁하는 론[妄計吉祥論]62)이란 어떤 한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이 '만약 세간은 해와 달이 조금씩 가려지거나 별들이 궤도[度]를 잃으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성취되지 않으며, 만약 그것들이 수순하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성취된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서[精勤] 해와 달과 별들에게 공양하고 불에게 제사지내며 주문을 외우며 띠[茅草]를 잘 깔고 항아리에 빈라과(頻螺果)63)와 향거(餉佉)64) 등을 가득 채운다'는 이와 같은 견해見]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論]을 세우는 것이다. 역산(曆算)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계탁을 짓는다.
   그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위와 같은 이론을 세우는가?
   가르침[敎]과 이치[理]에 의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앞에서 말한 내용과 같으며 이치란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성품[性]을 심사(尋思)하고 내지 ……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세간의 정려를 획득한 것에 의거하여 세간이 모두 아라한(阿羅漢)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신의 부락(富樂)65)을 얻으려고 하여 결과를 성취하길 비는 사람들은 곧 찾아가서 청문(請問)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실하게 업과(業果)가 연(緣)과 상응하여 생기는 도리(道理)를 알지 못하고 단지 세간의 해와 달이 조금씩 가리워 지고 별들이 궤도대로 움직일 때 중생의 깨끗하고 깨끗
  
62)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열 여섯 번째로 망계길상론(妄計吉祥論)에 대하여 기술한다. 이하는 먼저 망계길상론(妄計吉祥論)의 삿된 주장[邪執]을 기술한다.
63) 범어 Bimba의 음사어로서 길상과(吉祥果)라고 의역(意譯)된다. 하늘에 제사지낼 때에 사용하는 것이다.
64) 여패(蠡貝)을 말하며, 인도인들은 이것을 길상(吉祥)의 도구로 믿는다.
65) 물질적인 풍부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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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 못한 업[淨不淨業]의 과보(果報)가 성숙한다고 보고, 그들은 곧 해와 달 등이 짓는 것이라고 계탁하며, 다시 이러한 일을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분명한 주장[顯說]을 건립한다.
  이제66) 그대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세간의 흥하고 망하는 일은 해와 달이 조금씩 가려지는 것과 별들의 궤도 등이 짓는다고 하는 것인가,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업[淨不淨業]이 짓는다고 하는 것인가?
  만약 해와 달이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실제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복(福)과 비복(非福)의 업을 지음에 따라서 흥하고 망하며 괴롭고 즐거운 등의 과(果)를 부르는 것을 보게 되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약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업[淨不淨業]이 짓는 것이라고 한다면 해와 달이 짓는 것이라고 계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위와 같이 해 등이 짓는 것에 의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업에 의하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이치다운 설(說)이 아니다.
  위와 같이 열 여섯 가지의 이론(異論)은 두 가지의 부문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發起]을 관찰하고 바른 도리[正道理]에 의하여 추구하는 것을 관찰하여도 모든 종류에 있어서 모두 다 도리에 맞지 않는다.
  
66) 열 여섯 가지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 가운데에 망계길상론(妄計吉祥論)에 대하여 기술하는 중, 그 두 번째로 그들의 삿된 주장[邪執]을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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