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유가사지론 제 8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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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 제 8 권
  
  
  미륵보살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3) 유심유사 등 3지 ⑤
  
  다음에1) 무엇을 잡염(雜染)을 시설(施設)하여 건립(建立)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세 가지의 잡염(雜染)에 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번뇌(煩惱)의 잡염(雜染)이며, 둘째는 업(業)의 잡염(雜染)이며, 셋째는 태어남[生]의 잡염(雜染)이다.
  번뇌(煩惱)의 잡염(雜染)2)이란 무엇인가?
  올타남(嗢拕南)으로 말하리라.
  
  자성(自性) 또는 분별(分別)과
  인(因)과 위(位) 및 문(門)과
  
1) 유심유사(有尋有伺) 등의 3지(地)를 간략히 5문(門)으로 시설(施說)하여 건립(建立)하는 가운데 다섯 번째로 잡염의 등기를 시설하여 건립[雜染等起施說建立]한다.
2) 잡염등기(雜染等起)의 시설건립(施設建立)은 첫째 번뇌잡염(煩惱雜染), 둘째 업잡염(業雜染), 셋째 생잡염(生雜染)으로 기술되는데, 이하는 첫 번째의 번뇌잡염(煩惱雜染)에 대해서 아홉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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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上品)과 전도(顚倒)의 포섭[攝]과
  차별(差別)과 여러 가지 과환(過患)이라네
  自性若分別  因位及與門
  上品顚倒攝  差別諸過患
  
  마땅히 알라. 번뇌(煩惱)의 잡염(雜染)은 자성(自性)에 의하고, 분별(分別)에 의하고, 원인[因]에 의하고, 위(位)에 의하고, 문(門)에 의하고, 상품(上品)에 의하고, 전도(顚倒)의 포섭[攝]에 의하고, 차별(差別)에 의하고, 과환(過患)에 의하여 해석함을 알아야 한다.
  번뇌(煩惱)의 자성(自性)3)이란 말하자면, 만약 법(法)이 생겨날 때 그 상(相)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적정(寂靜)하지 않게 일어나며 그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적정하지 않은 작용[行]이 상속(相續)하며 구른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여 번뇌(煩惱)의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번뇌(煩惱)의 분별(分別)4)이란 혹은 한 가지를 세우기도 하니, 말하자면 번뇌가 잡염(雜染)의 뜻이기 때문이다. 혹은 견도소단(見道所斷)과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혹은 욕계(欲繫)와 색계(色繫)와 무색계(無色繫)의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며, 혹은 욕계(欲繫)의 기(記) 무기(無記)와 색계(色繫)의 무기(無記)와 무색계의 무기(無記)의 네 가지로 나누기도 하며, 혹은 견고소단(見苦所斷)과 견집소단(見集所斷)과 견멸소단(見滅所斷)과 견도소단(見道所斷)과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다섯 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혹은 탐(貪) 에(恚) 만(慢) 무명(無明) 견(見) 의(疑)의 여섯 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혹은 일곱 가지 수면(隨眠)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첫째는 욕탐수면(欲貪隨眠)이며, 둘째는 진에수면(瞋恚隨眠)이며, 셋째는 유탐수면(有貪隨眠)이며, 넷째는 만수면(慢隨眠)이며, 다섯째는 무명수면(無明隨眠)이며, 여섯째는 견수면(見隨眠)이며, 일곱째는 의수면(疑隨眠)이다.
  
3) 이하는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첫번째로 번뇌의 자성(自性)에 대해서 기술한다.
4) 이하는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두번째로 번뇌의 분별(分別)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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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은 탐(貪) 에(恚) 만(慢) 무명(無明) 의(疑) 견(見) 및 두 가지 취(取)5)의 여덟 가지로 나누기도 하고, 혹은 9결(結)로서 아홉 가지로 나누기도 하는데 첫째는 애결(愛結)이며, 둘째는 에결(恚結)이며, 셋째는 만결(慢結)이며, 넷째는 무명결(無明結)이며, 다섯째는 견결(見結)이고, 여섯째는 취결(取結)이며, 일곱째는 의결(疑結)이며, 여덟째는 질결(嫉結)이며, 아홉째는 간결(慳結)이다.
  혹은 열 가지로 나누기도 하는데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이며, 둘째는 변집견(邊執見)이며, 셋째는 사견(邪見)이며, 넷째는 견취(見取)이며, 다섯째는 계금취(戒禁取)이고, 여섯째는 탐(貪)이며, 일곱째는 에(恚)이며, 여덟째는 만(慢)이며, 아홉째는 무명(無明)이며, 열째는 의(疑)이다. 혹은 1백 스물 여덟 가지의 번뇌6)로 나누기도 하니, 말하자면 위의 열 가지 번뇌가 열 두 가지의 진리[諦]7)를 미혹하게 집착하기[迷執] 때문에 건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열 두 가지 진리[諦]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욕계(欲界)의 고제(苦諦) 집제(集諦)와 색계(色界)의 고제(苦諦) 집제(集諦)와 무색계(無色界)의 고제(苦諦) 집제(集諦)와 욕계(欲界)의 증상(增上)8) 그것의 변지(遍智)의 과(果)9)와 그것의 변지(遍智)에서 드러난 바[所顯]10)인 멸제(滅諦) 도제(道諦)11)와 색계(色界)의 증상(增上) 그것
  
5)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를 말한다.
6) 욕계(欲界)의 4제(諦)에 각각 열 가지 번뇌(煩惱)가 있어서 도합 40번뇌가 있고,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8제(諦)에 각각 진(瞋)을 제외한 아홉 가지 번뇌가 있어서 도합 72번뇌가 있는데, 이를 견도소단(見道所斷)의 번뇌(煩惱)라고 한다. 또한 욕계(欲界)에 여섯 가지 번뇌가 있으며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각각 진(瞋)을 제외한 다섯 가지 번뇌가 있어서 도합 16번뇌가 있는데, 이를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번뇌(煩惱)라고 한다. 이러한 견도소단(見道所斷)의 번뇌 102가지와 수도소단(修道所斷)의 번뇌 16가지를 합하면 모두 128번뇌가 된다.
7)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각각에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4제(諦)가 딸려서 열 두 가지가 된다.
8)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는 모두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증상(增上)이라고 이름한다.
9) 멸제(滅諦)를 말하며 멸제(滅諦)는 도제(道諦)의 변지(遍智)에서 증득한 과(果)이기 때문이다.
10) 도제(道諦)의 체(體)를 말한다.
11) 멸제(滅諦)는 위에서 말한 변지(遍智)의 과(果)를 의미하고 도제(道諦)는 위에서 말한 변지(遍智)의 드러난 바[所顯]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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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변지(遍智)의 과(果)와 그것의 변지(遍智)가 드러난 바[所顯]인 멸제(滅諦) 도제(道諦)와 무색계(無色界)의 증상(增上) 그것의 변지(遍智)의 과(果)와 그것의 변지(遍智)가 드러난 바인 멸제(滅諦) 도제(道諦)이다. 이 가운데 욕계(欲界)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그리고 욕계(欲界)의 증상(增上)의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는 모두 열 가지 번뇌의 미혹된 집착이 있으며, 색계(色界)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및 그것의 증상(增上)의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는 진(瞋)을 제외한 그 나머지 번뇌의 미혹된 집착이 있으며, 색계(色界)에서와 같이 무색계(無色界)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욕계(欲界)의 대치의 닦음[對治修]에서도 여섯 가지 번뇌의 미혹된 집착이 있으니, 말하자면 사견(邪見)과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의(疑)가 제외된다. 색계(色界)의 대치의 닦음[對治修]에서도 다섯 가지 번뇌의 미혹된 집착이 있으니, 말하자면 위의 여섯 가지 가운데 진(瞋)이 제외된다. 색계의 대치의 닦음[對治修]과 같이 무색계(無色界)의 대치의 닦음[對治修] 또한 그러하며, 미혹된 집착과 같이 장애(勝障) 또한 그러하다.
  살가야견(薩迦耶見)12)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13)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14) 그리고 멋대로[任運]15)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5취온(取蘊)을 동등히[等]하여 따르며[隨] 관찰[觀]하고 집착하는 것[執]이다. 또한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16)의 염오(染汚)의 혜(慧)를 체(體)로 삼는다.
  변집견(邊執見)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
  
12) 범어(梵語) Satk ya-d i의 의역(意譯)이다.
13) 범부(凡夫)를 말한다.
14) 살가야견(薩迦耶見)에는 분별기(分別起)와 구생기(俱生起)의 두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분별기(分別起)의 3연(緣)에 대해서 설한다. 그 중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란 삿된 스승[邪師]을 말하고,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듣는 것이란 삿된 가르침[邪敎]을 말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不如理] 작의(作意)란 삿된 사유[邪思惟]를 말한다.
15) 살가야견(薩迦耶見)의 분별기(分別起)와 구생기(俱生起)의 연(緣)을 말한다.
16) 임운구생(任運俱生)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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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멋대로[任運]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5취온(取蘊)을 집착하여 '나의 성품[我性]'이라고 하고 나서 동등히 하여 따르며 관찰하고 집착해서 단(斷)이라고도 하고 상(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또한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염오(染汚)의 혜(慧)를 체(體)로 삼는다.
  사견(邪見)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인과(因果)를 없다'고 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없다'고 하고 진실의 현상[事]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오직 분별(分別)의 염오(染汚)의 혜(慧)만을 체(體)로 삼는다.
  견취(見取)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살가야견(薩迦耶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소의(所依) 소연(所緣) 소인(所因) 구유(俱有) 상응(相應) 등의 법(法)으로 다른 견해[他見]를 비방(比方)하고 동등히 하여 따르며 관찰하고 집착하여 최고[最]로 삼고 으뜸[上]으로 삼으며 제일의 승묘[勝妙第一]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분별(分別)의 염오(染汚)의 혜(慧)만을 체(體)로 삼는다.
  계금취(戒禁取)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곧 그것의 견해와 그것의 견해에 따라서 행하는 계율[戒] 금기[禁] 소의(所依) 소연(所緣) 소인(所因) 구유(俱有) 상응(相應) 등의 법에 대해서 동등히 하여 따르며 관찰하고 집착하여 청정(淸淨)이라 하고 해탈(解脫)이라 하며 출리(出離)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분별(分別)의 염오(染汚)의 혜(慧)만을 체(體)로 삼는다.
  탐(貪)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멋대로[任運]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안팎의 좋아하는 경계[可愛境界]에 대하여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염착(染著)을 체(體)로 삼는 것이다.
  에(恚)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고 정법(正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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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멋대로[任運]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안팎의 좋아하지 않는 경계[非愛境界]에 대하여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증에(憎恚)를 체(體)로 삼는 것이다.
  만(慢)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멋대로[任運]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안팎의 높고 낮음[高下]과 뛰어나고 열등함[勝劣]에 대하여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고거(高擧)17)를 체(體)로 삼는 것이다.
  무명(無明)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그리고 멋대로[任運] 실념(失念)하기 때문에 알아야 할 대상[所知事]에 대하여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의 염오(染汚)의 무지(無知)를 체(體)로 삼는 것이다.
  의(疑)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가까이[親近] 하여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에 의하기 때문에 곧 알아야 할 대상[所知事]에 대하여 오직 분별(分別)의 이각(異覺)18)만을 체(體)로 삼는 것이다.
  번뇌(煩惱)의 원인[因]19)이란 여섯 가지 원인[因]을 말한다. 첫째는 소의(所依)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소연(所緣)에 의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가까이 함[親近]에 의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삿된 가르침[邪敎]에 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자주 익혔기[數習] 때문이고, 여섯째는 작의(作意)에 의하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원인에 의해서 여러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다.
  소의(所依)에 의하기 때문이란 수면(隨眠)에 의해서 여러 가지 번뇌를 일
  
17) 마음을 높이 들어올려 으쓱대는 것을 말한다.
18) 의(疑)는 구하여 찾기[求覓] 때문에 각(覺)이라고도 하지만 혜(慧)와는 구별되기 때문에 이각(異覺)이라고 한다.
19)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세 번째로 번뇌의 원인[因]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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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키는 것을 말한다. 소연(所緣)에 의하기 때문이란 번뇌를 따르는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現前]을 말한다. 가까이 함[親近]에 의하기 때문이란 불선(不善)의 장부(丈夫)를 따라서 배우는 것을 말한다. 삿된 가르침[邪敎]에 의하기 때문이란 정법(正法)이 아닌 것을 들음에 의하는 것을 말한다. 자주 익혔기[數習] 때문이란 먼저 키우고 자주 익힌 힘의 세력에 의하는 것을 말한다. 작의(作意)에 의하기 때문이란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를 일으키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번뇌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번뇌(煩惱)의 위(位)20)란 간략하게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면의 위[隨眠位]이며, 둘째는 전의 위[纏位]이며, 셋째는 분별기의 위[分別起位]이며, 넷째는 구생의 위[俱生位]이며, 다섯째는 연의 위[位]이며, 여섯째는 중의 위[中位]이고 일곱째는 상의 위[上位]이다. 두 가지 연(緣) 때문에 번뇌의 수면(隨眠)이 수면의 대상[所隨眠]이 되니, 첫째는 종자(種子)를 따라 다니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것의 증상(增上)의 현상[事] 때문이다.
  번뇌(煩惱)의 문(門)21)이란 간략하게 두 가지 문(門)의 번뇌에 의해서 시달리는 것[所惱]이니, 말하자면 전문(纏門)과 수면문(隨眠門)에 의한다. 전문(纏門)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적정하지 않음에 머무르기 때문이요, 둘째는 선(善)을 장애(障礙)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악취(惡趣)의 악행(惡行)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넷째는 현법(現法)의 비천(鄙賤)을 섭수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능히 태어남 등의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어떻게 수면문(隨眠門)에 시달리게 되는가?
  말하자면 여러 가지 전(纏)과 더불어 소의(所依)를 짓기 때문이고 태어남 등의 괴로움을 끌어당겨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7문(門)에 의해서 모든 번뇌는 견도[見]와 수도[修]에서 능히 장애가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삿된 해료[邪解了]22) 때문이요, 불해료
  
20)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네 번째로 번뇌의 위(位)에 대해서 기술한다.
21)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다섯 번째로 번뇌의 문(門)에 대해서 기술한다.
22) 4제(諦)를 미혹하는 신견(身見)과 변견(邊見)과 사견(邪見)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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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不解了)23) 때문이요, 해료불해료(解了不解了)24) 때문이요, 삿된 해료에 미혹하게 집착25)하기 때문이요, 그것의 원인의 의지처26) 때문이요, 그것의 두려움의 소생(所生)27)이기 때문이요, 멋대로[任運] 현행(現行)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번뇌(煩惱)의 상품(上品)의 상(相)이라고 하는가?
  번뇌(煩惱)의 상품(上品)의 상(相)이란 맹리상(猛利相)28)과 우중상(尤重相)29)을 말한다. 이 상(相)에도 간략하게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훼범[犯]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태어남[生]에 의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상속(相續)에 의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사(事)에 의하기 때문이고, 다섯째는 악업(惡業)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이고, 여섯째는 구경(究竟)에 의하기 때문이다.
  훼범[犯]에 의하기 때문이란 이 번뇌의 전(纏)에 의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학처(學處)가 훼범되는 것을 말한다. 태어남[生]에 의하기 때문이란 이것에 의하기 때문에 욕계(欲界)의 괴로운 악취(惡趣)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상속(相續)에 의하기 때문이란 탐(貪) 등의 행(行)이 여러 가지 제 근(根)을 성숙시켜 소년(少年)으로 성장했을 때 '열반법(涅槃法)은 없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사(事)에 의하기 때문이란 존중의 밭[尊重田]을 연(緣)하거나 공덕의 밭[功德田]을 연(緣)하거나 작용하지 않는 밭[不應行田]을 연(緣)하여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악업(惡業)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이란 이 번뇌의 전(纏)에 의하기 때문에 뛰어난[增上] 적열심(適悅心)으로써 신(身) 어업(語業)을 짓는 것을 말한다. 구경(究竟)에 의하기 때문이란 이것의 자성(自性)은 (번뇌의) 상품(上品)에 포함되는 것으로 맨 처음 연의 위[]의 대치도(對治道)에 의해서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뇌(煩惱)의 전도(顚倒)의 포섭[攝]30)이란 일곱 가지 전도(顚倒)를 말한
  
23) 무명(無明)을 말한다.
24) 의(疑)를 말한다.
25)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탐(貪) 진(瞋) 만(慢) 등의 견도소단(見道所斷)의 번뇌를 말한다.
26)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에 미혹하는 것을 말한다.
27)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에 미혹하는 것을 말한다.
28) 성품이 매우 치성하고 날카로운 것을 의미한다.
29) 성품이 두첩고 무거운 것을 의미한다.
30)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일곱 번째로 번뇌의 전도(顚倒)의 포섭[攝]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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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첫째는 상의 전도[想倒]이며, 둘째는 견의 전도[見倒]이며, 셋째는 심의 전도[心倒]이며, 넷째는 무상(無常)에 대해서 상(常)이라고 하는 전도이며, 다섯째는 괴로움[苦]에 대해서 즐거움[樂]이라고 하는 전도이며, 여섯째는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에 대해서 깨끗하다[淨]고 하는 전도이며, 일곱째는 무아(無我)에 대해서 아(我)라고 하는 전도이다.
  상의 전도[想倒]란 무상(無常) 고(苦) 부정(不淨) 무아(無我)에 대해서 상(常) 낙(樂) 정(淨) 아(我)의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견의 전도[見倒]란 그 망상분별에 대해서 인가(忍可)하고 욕락(欲樂)하며 건립(建立)하고 집착(執著)하는 것을 말한다.
  심의 전도[心倒]란 그 집착하는 대상[所執著]에 대한 탐(貪) 등의 번뇌를 말한다.
  번뇌에는 간략히 세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혹 어떤 번뇌는 전도(顚倒)의 근본이 되고 혹 어떤 번뇌는 전도(顚倒)의 체(體)가 되며 혹 어떤 번뇌는 전도(顚倒)의 등류(等類)가 된다. 전도의 근본이란 무명(無明)을 말하고, 전도(顚倒)의 체(體)란 살가야견(薩迦耶見)과 변집견(邊執見)의 일부분과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그리고 탐(貪)을 말한다. 전도(顚倒)의 등류(等類)란 사견(邪見)과 변집견(邊執見)의 일부분과 에(恚)와 만(慢)과 그리고 의(疑)를 말한다.
  이 가운데 살가야견(薩迦耶見)은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하는 전도이며, 변집견(邊執見)의 일부분이란 무상(無常)을 상(常)이라고 하는 전도이며, 견취(見取)란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을 깨끗하다[淨]고 하는 전도이며, 계금취(戒禁取)란 괴로움[苦]에 대해서 즐거움[樂]이라고 하는 전도이다. 탐(貪)은 두 가지에 통하니,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고 하는 전도와 괴로움을 즐거움이라고 하는 전도를 말한다.
  번뇌(煩惱)의 차별(差別)31)이란 여러 가지 차별(差別)이 있는 줄 알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결(結) 박(縛) 수면(隨眠) 수번뇌(隨煩惱) 전(纏) 폭류
  
31)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여덟 번째로 번뇌(煩惱)의 차별(差別)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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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暴流) 액() 취(取) 계(繫) 개(蓋) 주올(株 ) 구(垢) 상해(常害) 전(箭) 소유(所有) 근(根) 악행(惡行) 루(漏) 궤(匱) 소(燒) 뇌(惱) 유쟁(有諍) 화(火) 치연(熾然) 조림(稠林) 구애(拘礙)이다.
  위와 같은 등의 종류가 번뇌의 차별(差別)인 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능히 괴로움과 화합하기 때문에 결(結)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선행(善行)에 대하여 바라는 것[所欲]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박(縛)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모든 세간의 증상(增上)의 종자(種子)가 따라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수면(隨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전도하는 물든 마음[染心]이기 때문에 수번뇌(隨煩惱)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자주 일어나 현행(現行)하기 때문에 전(纏)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건너기 매우 어렵고 흐름에 따라서 떠내려가기 때문에 폭류(暴流)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사행(邪行)의 방편(方便)이 되기 때문에 액()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능히 자신을 취하여 끊임없이 상속(相續)하기 때문에 취(取)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해탈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繫)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진실(眞實)의 뜻을 덮기 때문에 개(蓋)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좋은 논밭을 파괴하기 때문에 주올(株 )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자성(自性)이 염오(染汚)이기 때문에 구(垢)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언제나 해(害)를 끼치기 때문에 상해(常害)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고요하지 않은 모습이면서 멀리서 따라오는 것이므로 전(箭)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능히 의지하는 일[依事]을 거두기 때문에 소유(所有)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불선(不善)의 소의(所依)이므로 근(根)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사행(邪行)이 자성(自性)이기 때문에 악행(惡行)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그 마음을 흘리고 흔들기 때문에 루(漏)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수용(受用)하는 것에 만족함[厭足]이 있은 적이 없으면 궤(匱)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바라는 것[所欲]에 항상 부족함[匱乏]이 있기 때문에 소(燒)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능히 줄어듦[衰損]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뇌(惱)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송사[鬪訟]와 다툼[諍競]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유쟁(有諍)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모은 바[積集] 선근(善根)인 땔나무[薪]들을 태우기 때문에 화(火)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큰 세력이 있는 병(病)이기 때문에 치연(熾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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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하는 것이다. 갖가지 자기[自身]라고 하는 큰 나무들이 모여 있기[聚集] 때문에 조림(稠林)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묘한 욕진(欲塵)을 즐겨 집착하게 하고 출세법(出世法)을 증득하는 것을 능히 장애하기 때문에 구애(拘礙)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등의 번뇌의 차별(差別)에 대해서 불(佛) 박가범(薄伽梵)께서는 더욱 강한 것[增强]에 따라 그 갖가지 번뇌문(煩惱門)에서 차별을 건립하신 것이다.
  결(結)이란 9결(結)로서 애결(愛結) 등을 말하며, 자세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다. 박(縛)이란 3박(縛)으로서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한다. 수면(隨眠)이란 7수면(隨眠)으로서 욕탐수면(欲貪隨眠) 등을 말하며 자세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다. 수번뇌(隨煩惱)란 3수번뇌로서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한다. 전(纏)이란 8전(纏)으로서 무참(無慚) 무괴(無愧) 혼침(惛沈) 수면(睡眠) 도거(掉擧) 악작(惡作) 질투(嫉妬) 간린(慳悋)을 말한다. 폭류(暴流)란 4폭류(暴流)로서 욕폭류(欲暴流) 유폭류(有暴流) 견폭류(見暴流) 무명폭류(無明暴流)를 말한다. 폭류와 같이 액() 또한 그러하다.
  취(取)란 4취(取)로서 욕취(欲取) 견취(見取) 계금취(戒禁取) 아어취(我語取)를 말한다. 계(繫)란 4계(繫)로서 탐신계(貪身繫) 진신계(瞋身繫) 계금취신계(戒禁取身繫) 이것을 진실이라고 집착하여 취하는 신계[此實執取身繫]를 말한다. 개(蓋)란 5개(蓋)로서 탐욕개(貪慾蓋) 진에개(瞋恚蓋) 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 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 의개(疑蓋)를 말한다. 주올(株 )이란 3주올(株 )로서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한다. 주올(株 )이 이와 같듯이 구(垢) 상해(常害) 전(箭) 소유(所有) 악행(惡行) 또한 그러하다.
  근(根)이란 3불선근(不善根)으로서 탐불선근(貪不善根) 진불선근(瞋不善根) 치불선근(癡不善根)을 말한다. 루(漏)란 3루(漏)로서 욕루(欲漏) 유루(有漏) 무명루(無明漏)를 말한다. 궤(匱)란 3궤(匱)로서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한다. 궤(匱)가 이와 같듯이 소(燒) 뇌(惱) 유쟁(有諍) 화(火) 치연(熾然) 조림(稠林)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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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애(拘礙)란, 즉 5구애(拘礙)로서 첫째는 그 몸을 연연해[顧戀] 하는 것이요, 둘째는 여러 가지 욕구들을 연연해하는 것이요, 셋째는 즐겨 서로 섞여 머무르는 것이요, 넷째는 가르침[敎]에 수순하는 것이 없는 것이요, 다섯째는 조그마한 선(善)을 얻고도 곧 만족하게 기뻐하는 것이다.
  번뇌(煩惱)의 과환(過患)32)이란 여러 가지 번뇌에는 한량없는 과환(過患)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번뇌가 일어날 때에는 먼저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며[惱亂], 다음으로 소연(所緣)에 대해서 전도(顚倒)를 일으키며, 여러 가지 수면(隨眠)들을 모두 견고하게끔 하며, 등류(等流)의 행(行)을 상속하여 구르게끔 하며, 능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自害]을 끌어당기고 능히 남을 해치는 것[他害]를 끌어당기며 능히 모두를 해치는 것[俱害]33)를 끌어당기게 하며, 현법(現法)의 죄(罪)를 생기게 하고 후법(後法)의 죄(罪)를 생기게 하고 모든 법[俱法]34)의 죄(罪)를 생기게 하며, 그 생겨난 몸과 마음이 우고(憂苦)를 받게끔 하며, 능히 생(生) 등의 갖가지 대고(大苦)를 끌어당기며, 능히 상속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멀리하게 하며, 능히 뛰어난 선법(善法)을 잃게끔 하며, 능히 자재(資財)를 줄어들고 잃게끔 하며, 능히 대중[衆]에 들어가도 무외(無畏)를 얻지 못해서 두려워하고[悚懼] 위의[威]가 없게끔 하며, 능히 천하고 악한 명칭을 세상에 유포하게끔 하며, 항상 지혜 있는 사람[智者]에게 질책[訶毁]을 받으며, 임종할 때에 큰 우회(憂悔)를 생기게 하며, 몸이 무너지고 나서 여러 악취(惡趣)에 떨어져 나락가(那落迦)에 태어나게끔 하며, 스스로의 뛰어난 의리(義利)를 증득하지 않게끔 한다.
  위와 같은 등의 과환[過]은 한량없고 끝이 없다.
  무엇을 업(業)의 잡염(雜染)이라고 하는가?35)
  올타남(嗢拕南)으로 말하리라.
  
32)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아홉 번째로 번뇌(煩惱)의 과환(過患)에 대해서 기술한다.
33) 스스로와 남을 모두 해치는 것을 말한다.
34) 현법(現法)과 후법(後法) 모두를 말한다.
35) 잡염등기(雜染等起)의 시설건립(施設建立)은 첫째 번뇌잡염(煩惱雜染), 둘째 업잡염(業雜染), 셋째 생잡염(生雜染)으로 기술되는데, 이하는 두 번째의 업잡염(業雜染)에 대해서 아홉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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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성(自性)과 또는 분별(分別)과
  인(因)과 위(位) 및 문(門)과
  증상품(增上品)과 전도(顚倒)와
  차별(差別)과 여러 가지 과환(過患)이라네
  自性若分別  因位及與門
  增上品顚倒  差別諸過患
  
  마땅히 알라. 업(業)의 잡염(雜染)이란 자성(自性)에 의하고, 분별(分別)에 의하고, 인(因)에 의하고, 위(位)에 의하고, 문(門)에 의하고, 상품(上品)에 의하고, 전도(顚倒)에 의하고, 차별(差別)에 의하고, 과환(過患)에 의하여 해석함을 알아야 한다.
  업(業)의 자성(自性)36)이란 무엇인가?
  법(法)이 생겨날 때는 조작상(造作相)이 서로 일어나며, 그리고 그것이 생기기 때문에 신행(身行)과 어행(語行)이 그것의 다음[後時]에 조작하여 구르는 것이니, 이를 업(業)의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업(業)의 분별(分別)37)이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두 가지 상(相)에 의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첫째는 보특가라상(補特伽羅相)의 차별(差別)에 의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법상(法相)의 차별(差別)에 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38)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선(善)과 불선(不善)의 열 가지 업도(業道)이다. 소위 살생(殺生)과 이살생(離殺生)39), 불여취(不與取)와 이불여취(離不與取)40), 욕사행(欲邪行)과 이욕사행(離欲
  
36) 업잡염(業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첫 번째로 업(業)의 자성(自性)에 대해서 기술한다.
37) 업잡염(業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두 번째로 업(業)의 분별(分別)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 업의 분별은 두 가지로 기술되는데, 첫째는 보특가라상(補特伽羅相)의 차별(差別)에 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법상(法相)의 차별에 의하는 것이다.
38) 보특가라상(補特伽羅相)의 차별과 법상(法相)의 차별의 둘을 모두 가리킨다.
39) 이살생(離殺生)이란 불살생(不殺生)을 말한다.
40) 투도(偸盜)와 불투도(不偸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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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邪行)41), 망어(妄語)와 이망어(離妄語)42), 이간어(離間語)와 이이간어(離離間語)43), 추악어(麤惡語)와 이추악어(離麤惡語)44), 기어(綺語)와 이기어(離綺語)45), 탐욕(貪欲)과 이탐욕(離貪欲)46), 진에(瞋恚)와 이진에(離瞋恚)47), 사견(邪見)과 이사견(離邪見)48)이다.
  보특가라상(補特伽羅相)의 차별(差別)을 건립하는 것은 경(經)에서 '여러 가지 살생(殺生)이란 내지 ……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살생(殺生)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49) '매우 극심한 폭악[最極暴惡]'이란 살해의 마음이 바로 현전(現前)하는 것을 말한다. '피를 그 손에 바른다[血塗其手]'란 몸의 모양이 변하기 때문에 살생[殺]이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해침이 극에 이르고 해침을 집지한다[害極害執]'란 말하자면 그의 목숨을 끊기 때문이고 뼈마디를 베기 때문이고 목숨을 잇는 것[活命]을 꾀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이 없다[無有羞恥]'란 말하자면 자신의 죄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애민함이 없다[無有哀愍]'란 말하자면 그 비애(非愛)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름이 무계(無繫)라고 하는 출가외도가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1백 유선나(踰繕那) 안의 모든 중생은 그것에 있어서 율의(律儀)이거나 불율의(不律儀)이다'고 말한다. 그것을 대치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모든 유정(有情)에 해당[所]한다'고 말한다.
  곧 그 외도는 다시 다음과 같이 '나무 등의 외부의 물질들 또한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대치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진실로 중생에 해당[所]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50) 곧 진실한 복덕을 멀리 여의는 대치(對
  
41) 사음(邪婬)과 불사음(不邪婬)을 말한다.
42) 이망어(離妄語)란 망어(不妄語)를 말한다.
43) 양설(兩舌)과 불양설(不兩舌)을 말한다.
44) 악구(惡口)와 불악구(不惡口)를 말한다.
45) 이기어(離綺語)란 불기어(不綺語)를 말한다.
46) 탐(貪)과 무탐(無貪)을 말한다.
47) 무진(無瞋) 혹은 무에(無恚)를 말한다.
48) 이사견(離邪見)이란 정견(正見) 혹은 무치(無癡)를 말한다.
49) 이하의 내용은 경(經)에서 설한 내용인 듯 하나 '내지 ……'로 생략되어 있어 정확한 뜻은 알 수가 없다.
50) 무계외도(無繫外道)가 '1백 유선나(踰繕那) 안의 모든 중생은 그것에 있어서 율의(律儀)이거나 불율의(不律儀)이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론인 '모든 유정(有情)에 해당[所]한다'와 무계외도가 '나무 등의 외부의 물질들 또한 생명이 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론인 '진실로 중생에 해당[所]한다'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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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治)를 나타낸 것이고, 또한 진실하지 않은 복덕을 멀리 여의는 대치(對治)를 나타내는 것이다.
  위에서 설한 구(句)들은 가행(加行)의 살해를 나타낸 것이고, 내지 맨 아래의 군다(捃多)51)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중생들에 해당한다는 이 구(句)는 가리지 않고 살해하는 것을 나타낸다. '살생하는 일에서 아직 멀리 여의지 못했다'는 이것은 인연을 만나면 벗어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말하자면 아직 멀리 여의지 못할 때까지는 살생자(殺生者)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들의 약의[諸句略義]는 살생의 모습[相貌]과 살생의 작용[用]과 살생의 인연(因緣) 및 살생의 현상[事用]의 차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약의[略義]는 말하자면 살생의 여실(如實)과 살생의 차별(差別)과 살생 살해할 대상과 살생이라고 하는 이름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구(句)들은 살생주체[能殺生]인 보특가라상(補特伽羅相)을 나타내는 것이지 살생의 법상(法相)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불여취(不與取)'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며, '남의 소유에[於他所有)'란 남에게 소속되어 있는 재물과 곡식 등을 물건을 말한다. '만약 마을에 있으면[若在聚落]'이란, 즉 그52) 물건이 마을에서 모이거나 옮기는 것을 말한다. '만약 조용한 곳[若閑靜處]'이란 그 물건이 조용한 곳에서 생기거나 모이고 혹은 다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곧 이것을 훔친 물건의 수라고 하는 것이다[卽此名爲可盜物數]'란 주지 않고 베풀지 않고 버리지 않은 물건을 말한다. '스스로 집수하면[若自執受]'이란 가져다가 자기의 소유로 하는 것을 말한다. '주지 않은 것을 갖는다[不與而取]'란 그가 혹 자구(資具)가 부족할 때에 가져다가 자기의 소유로 하는 것을 말한다. '주지 않은 것을 즐긴다[不與而樂]'란 도둑질을 즐겨 받아 행하는[受行] 일을 말한다. '주지 않고 베풀지 않고 버리
  
51) 범어 Kunta의 음사어이다. 이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개미알[蟻卵]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다리가 부러진 개미[折脚蟻]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범어의 음(音)을 그대로 두었다.
52) 남에게 소속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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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않은 것을 바란다[於所不與不捨不棄而生希望]'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서 자기의 소유로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빚을 갚는 법[酬債法]처럼 그 물건의 주인이 먼저 준 것이 아닌 것이면 이를 주지 않은 것[不與]이라고 하며, 만약 그 물건의 주인이 그 물건을 취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지 않은 것이면 이를 베풀지 않은 것[不捨]라고 하며, 만약 그 물건의 주인이 사람들에게 원하는대로 수용하도록 버린 것이 아니면 이를 버리지 않은 것[不棄]이라고 한다.
  '자신을 위하여 취한다[自爲而取]'란 말하자면 주지 않은 것을 취하기 때문이요, 주지 않은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탐하여 취한다[饕餮而取]'란 말하자면 주지 않고 베풀지 않고 버리지 않은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누명을) 벗지 않은 것을 취한다[不淸而取]'란 말하자면 다투는 물건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이긴 물건이라는 누명을 벗지 않았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않은 것을 취한다[不淨而取]'란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이겼지만 과실(過失)과 번뇌[垢]에 물들어졌기 때문이다. '죄가 있는 것을 취한다[有罪而取]'란 말하자면 현법(現法)과 후법(後法)의 좋지 않은 결과[非愛果]를 섭수(攝受)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 않은 것을 취함을 멀리 여의지 않았다면[於不與取若未遠離]'이란 앞에서 살생상(殺生相)에서 말한 내용과 같으며, 나머지 업도(業道)의 내용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에 약의(略義)란 이것을 훔치기 때문에 불여취(不與取)가 성립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 곳에서 그 차별과 같이 여실하게 강제로 빼앗았다면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이53) 과실을 얻는 것이니, 이를 총의(總義)라고 한다. 또한 여기에서도 불여취자(不與取者)의 상(相)을 나타낸 것이지 불여취(不與取)의 법상(法相)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욕사행(欲邪行)'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며, '부모들에게 수호받는다[於諸父母等所守護]'란 마치 부모가 자기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기 위하여 더욱 힘써 수호하고 시시때때로 관찰하여 다른 사람과 더러운
  
53) 불여취(不與取)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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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만약 그들54)이 돌아가실 경우는 다시 친 형제자매의 수호를 받게 되며, 혹은 이들도 없으면 다시 다른 친척들의 수호를 받게 되며, 이들도 없으면 가족(家族)에게 손해를 끼칠까봐 곧 스스로 수호하게 되며, 혹은 그의 시부모가 자기의 아들을 위하여 더욱 힘써 수호하는 것을 말한다.
  '벌로 다스림이 있다[有治罰]'란 말하자면 국왕이나 집행자[執理者]가 형벌을 다스리는 법으로써 수호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다[有障礙]'란 말하자면 문지기가 수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간략하게 아직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은 사람을 세 가지로 수호하는 것을 나타냈으니, 첫째는 존중하는 사람으로부터 친척과 권속[親眷屬]과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수호하는 것이고, 둘째는 왕과 집행자가 수호하는 것이고, 셋째는 문지기가 수호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처첩[他妻妾]'이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사람을 말하며, '다른 사람에게 소속된[他所攝]'이란 다른 사람에게 아직 시집가지 않은 사람으로서 세 가지 수호에 의해서 수호받는 사람을 말한다. '흉한 속임에 의한다면[若由凶詐]'이란 교란(矯亂)하고 나서 사행(邪行)을 행하는 것을 말하며, '강력에 의한다면[若由强力]'이란 부모들에게 대항하여 공연(公然)히 강제로 핍박[强逼]하는 것을 말하며, '은복에 의한다면[若由隱伏]'이란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몰래 서로 기뻐하며 음행을 행한다[竊相欣欲而行欲行]'란 둘씩 교합하는 것을 말한다. '곧 이 일이 도리가 아닌데 욕심으로써 사행을 행한다[卽於此事非理欲心而行邪行]'란 길이 아니고[非道]55) 적당한 곳이 아니고[非處]56) 적당한 시기가 아닐 때[非時]57)에 자기 아내와 첩에게 잘못[罪失]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 약의(略義)란 말하자면 간략하게 그것58)의 소행(所行)과 소행
  
54) 부모(父母)를 가리킨다.
55)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산문(産門)이 아닌 입과 그 밖의 길을 통해 교합하는 것이며, 둘째는 음행의 횟수가 다섯 번을 넘는 것이며, 셋째는 일정한 법도를 지나쳐서 온갖 남(男)과 불남(不男)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56) 절이나 혹은 길가 등을 말한다.
57) 임신했을 때 혹은 수유기(授乳期)일 경우이다.
58) 욕사행(欲邪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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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의 차별과 욕사행(欲邪行)을 현시(顯示)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여러 가지 망어들[諸妄語]'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또는 왕[若王]'이란 왕가(王家)을 말하며, '또는 그의 시자[若彼使]'란 집행자[執理家]를 말하며, '또는 다른 사람[若別]'이란 장자(長者)나 거사(居士)를 말하며, '또는 대중[若衆]'이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말하며, '또는 크게 모인 대중 [若大集衆]'이란 4방(方)의 인민[人衆]들이 모인 곳을 말한다. '이미 알았거나[若已知]'란 앞의 세 가지 것에 따라서 경험한 말[語言]을 말하며, '이미 보았거나[若已見]'란 일찍이 보았던 대로 경험하게 되는 말[語言]을 말한다. '자인에 의하거나[若由自因]'란 어떤 경우는 두려움이 원인이 되고 어떤 경우는 미착(味著)이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자인(自因)에 의하는 것과 같이 타인(他因) 또한 그러하다. 두려움이 원인이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죽이고 결박하고 형벌로 다스리고 내쫓고 꾸짖는 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미착(味著)이 원인이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재물과 곡식과 값진 보배 등을 위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망어를 한다[知而說妄語]'란 말하자면 생각을 숨기고 욕심의 견지[欲見]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약의(略義)란 의지처[依處]에 의하고, 이설(異說)에 의하고, 인연(因緣)에 의하고, 괴상(壞想)에 의하여 망어(妄語)를 설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이간어(離間語者)'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며, '파괴하기 위하거나[若爲破壞]'란 말하자면 파괴하려는 의요(意樂)에 의하기 때문이며, '거기에서 말을 듣고 나서 이곳에서 널리 말하고 여기에서 말을 듣고 나서 거기에서 널리 말한다[聞彼語已向此宣說聞此語已向彼宣說]'란 말하자면 들은 것과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것이며, '화합을 파괴한다[破壞和合]'란 말하자면 기꺼이 별리(別離)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인의 별리[隨印別離]'란 말하자면 어긋나게 하고도 능히 기쁨이 다시 생기기 때문이다. '흔쾌히 화합을 파괴한다[憙壞和合]'란 말하자면 이미 생긴 별리(別離)를 기뻐함에 마음이 물들기 때문이다. '락인의 별리[樂印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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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離]'란 말하자면 어긋남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 다시 생기는데 있어서 마음이 물들기 때문이다. '잘 이간어를 말한다[說能離間語]'란 말하자면 혹은 들은 것이 아닌 것이거나 혹은 다른 방편에 의한 것이다.
  이 가운데 약의(略義)는 이간(離間)의 의요(意樂)와 이간(離間)의 아직 무너지지 않은 방편[未壞方便]과 이간(離間)의 이미 무너진 방편[已壞方便]과 이간(離間)의 염오심(染汚心)과 다른 방편[他方便]을 간략하게 현시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에 '추악어(麤惡語)'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이 가운데에서는 시라지(尸羅支)에 포함되기 때문에 어무요동(語無擾動)이라고 이름하며, 문구(文句)가 아름답고 매끄럽기 때문에 열이(悅耳)라고 이름하며, 뛰어난[增上] 욕해(欲解)가 일어나게 되고 거짓[假僞]이 아니고 아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칭심(稱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고, 증익(增益)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時機)에 따라 의리(義利)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가애(可愛)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열반의 궁전에 나아가기 때문에 선수(先首)라고 이름하며, 문구가 가히 음미할 만하기 때문에 미묘(美妙)라고 이름하며, 잘 문구를 해석하기 때문에 분명(分明)이라고 이름하며, 드러나게 나아감이 있기 때문에 이가해료(易可解了)라고 이름하며, 정법(正法)을 섭수하기 때문에 가시공로(可施功勞)라고 이름하며, 애미심(愛味心)에서 일으킨 것을 여의기 때문에 무소의지(無所依止)라고 이름하며, 도량(度量)을 넘지 않기 때문에 비가염역(非可厭逆)이라고 이름하며, 상속하며 광대해지기 때문에 무변무진(無邊無盡)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무요동어(無擾動語)로부터 무변무진어(無邊無盡語)에 이르기까지는 간략하게 세 가지의 말에 포함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 시라율의에 포함되는 말[尸羅律儀所攝語]은 말하자면 한 가지59)이며, 둘째 같이 환희하는 말[等歡喜語]은 말하자면 세 가지60)이며, 셋째 설법어(說法語)는 말하자면 그 나머지 것이다. 곧 이 마지막 것61)에 또한 세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59) 어무요동(語無擾動)을 말한다.
60) 열이(悅耳)와 칭심(稱心)과 가애(可愛)를 말한다.
61) 설법어(說法語)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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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첫째 나아가는 것이 원만한 말[所趣圓滿語]은 처음의 것62)을 말하며, 둘째 문사가 원만한 말[文詞圓滿語]은 그 다음의 두 가지의 것63)을 말하며, 셋째 방편이 원만한 말[方便圓滿語]은 그 나머지 것64)을 말한다.
  또한 미래세(未來世)에 애락(愛樂)할 만하기 때문에 가애어(可愛語)라고 이름하며, 과거세(過去世)에 애락(愛樂)할 만하기 때문에 가락어(可樂語)라고 이름하며, 현재세(現在世)의 사(事)와 영수(領受)에 애락(愛樂)할 만하기 때문에 가흔어(可欣語) 혹은 가의어(可意語)라고 이름한다. 곧 같이 환희하는 말[等歡喜語]은 무량중생가애가락가흔가의어(無量衆生可愛可樂可欣可意語)라고 이름하는 줄 알아야만 한다. 곧 설법어(說法語)는 삼마희다어(三摩呬多語)라고 이름하며, 곧 시라지에 포함되는 말[尸羅支所攝語]은 무회(無悔) 등에 의해서 점차로 삼마지(三摩地)를 이끌 수 있는 말을 말한다.
  이 가운데 독석어(毒螫語)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로서 진에[瞋]의 독을 쫓기 때문이며, 추광어(麤獷語)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말로서 고촉(苦觸)이 일어나기 때문이며, 그 밖의 추악어(麤惡語)는 앞의 백품(白品)과 반대되는 것인 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기어(綺語)'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삿되게 죄를 드러낼 때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삿되게 죄를 드러내는 것[邪擧罪]은 때에 맞지 않게 말하기 때문에 비시어(非時語)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진실이 아닌 것[非實]을 말하기 때문에 비실어(非實語)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 것[無義]을 끌어다가 말하기 때문에 비의어(非義語)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추악한 것[麤獷]을 말하기 때문에 비법어(非法語)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진에(瞋恚)를 품고 말하기 때문에 비정어(非靜語)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삿되게 법을 설할 때에는 바르게 사려한 것[正思慮]을 선설(宣說)하지 않기 때문에 불사량어(不思量語)라고 이름하며, 듣는 사람을 이기기 위하
  
62) 선수(先首)를 말한다.
63) 미묘(美妙)와 분명(分明)을 말한다.
64) 이가해료(易可解了)와 가시공로(可施功勞)와 무소의지(無所依止)와 비가염역(非可厭逆)과 무변무진(無邊無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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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선설(宣說)하기 때문에 불정어(不靜語)라고 이름하며, 때에 맞지 않게 말하고 앞과 뒤의 뜻이 맞지 않게 말하기 때문에 잡란어(雜亂語)라고 이름하며, 이치[理]와 원인[因]에 맞지 않는 것을 선설(宣說)하기 때문에 비유교어(非有敎語)라고 이름하며, 상응하지 않은 것을 끌어다가 비유로 삼기 때문에 비유유어(非有喩語)라고 이름하며, 더러움[穢染]을 드러내기 때문에 비유법어(非有法語)라고 이름한다.
  또한 노래하고 웃고 재미있게 놀 때 등과 그리고 춤과 음악과 익살과 광대놀이 등을 구경할 때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無義語]을 끌어다 쓰게 된다.
  이 가운데 약의(略義)란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이 3시(時)의 기어(綺語)65)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에 '여러 가지 탐욕들[諸貪欲]'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맹리한 탐욕 때문에[由猛利貪]'란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소유(所有)에 대하여 탐욕이 왕성하기 때문에 자기의 소유로 하려고 하여 결정적인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재물에 대해서[於財]'란 말하자면 세속의 재물의 종류이며, '도구[具]'란 말하자면 수용하는 바[所受用]의 자구(資具)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물건[物]이라고 이름한다. '무릇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반드시 내게 소속시키겠다[凡彼所有定當屬我]'란 이것은 탐욕이 일어나는 행상(行相)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가운데에 약의(略義)는 탐욕의 자성(自性)과 탐욕의 소연(所緣)과 탐욕의 행상(行相)을 현시(顯示)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에 '진에심(瞋恚心)'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악의로 분별한다[惡意分別]'란 말하자면 다른 유정(有情)에게 진에(瞋恚)의 왕성한 힘[增上力]에 의해서 손해를 입히려 하고 결정적인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죽여야겠다[當殺]'란 말하자면 그66)의 몸을 상해(傷害)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쳐야겠다[當害]'란 말하자면 그의 몸을 괴롭히고자 하는 것이다. '손해를 입히겠다[當爲衰損]'란 말하자면 그의 재물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그에게 스스로 갖가
  
65) 앞에서 말한 비시어(非時語) 등과 불사량어(不思量語) 등과 노래하고 웃을 때 하는 무의어(無義語)를 말한다.
66) 다른 유정(有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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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근심을 얻게 하겠다[彼當自獲種種憂惱]'란 말하자면 그가 스스로 재물을 잃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약의(略義)는 앞의 내용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음에 '여러 가지 사견들[諸邪見]'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킨다[起如是見]'란 이것은 설한 바 이치[所說義]에 대해서 스스로 마음으로 인가(忍可)하고 욕락(欲樂)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운다[立如是論]'란 이것은 설한 바 이치[所說義]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여할 것도 없고 사랑하며 기를 것도 없고 제사지낼 것도 없다[無有施與無有愛養無有祠祀]'란 세 가지 의요(意樂), 즉 첫째 재물의 의요[財物意樂]와 둘째 청정의 의요[淸淨意樂]와 셋째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요[祀天意樂]를 베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불의 천신[火天]에게 공양하는 것을 '제사지내는 것[祠祀]'이라고 한다. 또한 계율을 닦는데서 생기게 되는 선[戒修所生善]의 능치(能治)와 소치(所治)가 없음을 나타내고, 시여에서 생기게 되는 선[施所生善)의 능치(能治)와 소치(所治)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묘행(妙行)도 없으며 악행(惡行)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세 가지의 선(善)의 능치(能治)와 소치(所治)의 소득과(所得果)는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묘행(妙行)과 악행(惡行)의 두 가지의 업과(業果)와 이숙(異熟)은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유전(流轉)의 의지처의 연[依處緣]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세상에도 없고 다른 세상에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의탁할 바 연[所託緣]67)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종자의 연[種子緣]68)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유전(流轉)의 사부(士夫)69)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화생(化生)의 유정(有情)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67) 탁태(託胎)의 연(緣), 즉 어머니를 가리킨다.
68) 아버지를 가리킨다.
69) 중유(中有)의 유정(有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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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유전(流轉)의 대치(對治)와 환멸(還滅)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간에는 참된 아라한(阿羅漢)이 없다…… '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미 각각 다르게 번뇌적정(煩惱寂靜)에 나아가기 때문에 정지(正至)라고 이름하며, 모든 유정들에게 사행(邪行)을 여의고 전도가 없는 행[無顚倒行]을 행하기 때문에 정행(正行)이라고 이름한다. 인시(因時)를 이 세간[此世間]이라고 이름하며, 과시(果時)를 저 세간[彼世間]이라고 이름한다. 스스로 사부(士夫)의 힘으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自然)이라고 이름한다.
  통혜(通慧)70)는 여섯 번째 것을 말하며, 이미 증득한 것은 견도(見道)에 의한 것을 말하며, 구족(具足)이란 수도(修道)에 의한 것을 말하며, 현시(顯示)란 스스로 아는 것[自所知]이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하기 때문이다. '나의 생이 이미 다했다[我生已盡]'는 등은 다른 곳71)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 약의(略義)란 인을 비방하는 것[謗因]과 과를 비방하는 것[謗果]과 공용을 비방하는 것[誹謗功用]과 진실한 것을 비방하는 것[謗眞實事]을 현시(顯示)하는 것이다. 공용(功用)이란 종자를 심는 공용[殖種功用]과 임지의 공용[任持功用]과 오고 가는 공용[來往功用]과 태어남의 업을 받는 공용[感生業功用]을 말한다. 또한 약의(略義)에 차별(差別)이 있으니, 인(因)과 과(果), 또는 유전(流轉)의 연(緣)과 유전(流轉)의 사부(士夫)를 비방하는 것을 현시(顯示)하는 것이며, 또한 그 대치(對治)의 환멸(還滅)을 비방하는 것을 현시(顯示)하는 것이다. 또한 '유전을 비방하는 것[誹謗流轉]'이란 인(因)을 비방하지만 자상(自相)을 비방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아야만 하며, '환멸을 비방하는 것[謗還滅]'이란 그것72)의 공덕(功德)을 비방하지만 보특가라(補特伽羅)를 비방하지 않는 것인 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백품(白品)의 모든 것은 앞의 내용과 반대되는 것인 줄 알아야만 한다.
  
70) 6통(通) 가운데에 여섯 번째의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71) 『본론(本論)』 제 83권(卷) 등을 지칭한다.
72) 환멸(還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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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차별(差別)에 대해서 나는 지금부터 설하겠다. 말하자면 욕사행(欲邪行)과 반대되는 것 중에 '여러 가지 범행들[諸梵行]'이란 이것은 총구(總句)이다. 이것은 세 가지 청정(淸淨)에 의해서 청정을 얻는[得淸淨] 줄 알아야만 한다. 첫째는 시분이 청정한 것[時分淸淨]이요, 둘째는 남을 믿는 것이 청정한 것[他信淸淨]이요, 셋째는 정행이 청정한 것[正行淸淨]이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행하고 영원토록 행하기 때문이다[盡壽行故久遠行故]'란 이것은 시분이 청정한 것[時分淸淨]과 싸우는 곳[諍處]을 깨끗하게 씻기 때문에 청(淸)이라고 하는 것이며, 어기는 것[違越]이 없기 때문에 정(淨)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남을 믿는 것이 청정한 것[他信淸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떤 경우는 청(靑)은 있는데도 정(淨)이 아닌 것이 있으므로 4구(句)로 지어야만 한다. 초구(初句)는 실제로 다툼[諍]에서 이기게 되는 훼범(毁犯)을 말하고, 두 번째 구[第二句]는 다툼에서 져서 훼범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세 번째 구[第三句]는 다툼에 이기게 되어도 훼범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네 번째 구[第四句]는 실제로 다툼에서 졌어도 훼범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애염의 몸[愛染身]으로 모읍(母邑)을 접촉73)하지 않기 때문에 '생취를 멀리 여읜다[遠離生臭]'고 하는 것이며, 둘씩 교합하는 더러운 일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음욕을 멀리 여읜다[遠離婬欲]'고 하는 것이며, 그 밖의 손을 접촉하는 등의 방편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不淨]을 내지 않기 때문에 '비애(鄙愛)가 아니다'고 하는 것이며, 범행(梵行)을 수지(受持)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외법을 멀리 여읜다[遠離猥法]'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정행이 청정함을 구족한 것[正行淸淨具足]이라고 하는 것이다.
  약의(略義)는 곧 이 가운데 있는 줄 알아야만 한다.
  또한 망어(妄語)와 반대되는 것 가운데에 '믿을만하다[可信]'란 말하자면 맡길 수 있을만하기 때문이며, 맡길 만하다 함[可委]은 말하자면 기탁(寄託)
  
73) 성교(性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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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만하기 때문이며, '마땅히 건립할 수 있다[應可建立]'란 말하자면 그들이 다투는 일 중에서 마땅히 바른 증거[正證]가 되는 것을 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이는 일이 없다[無有虛誑]'란 위탁[委寄]한 것에 대해서 속임이 없기 때문이며, 사기치지 않기[不欺罔] 때문이다.
  이 가운데에 약의(略義)는 첫째 욕해의 섭수[欲解攝受], 둘째 임지의 섭수[任持攝受], 셋째 작용의 섭수[作用攝受]의 세 가지 섭수를 현시하는 것이다.
  다음에74) 법상(法相)의 차별(差別)을 건립(建立)이란, 즉 살생(殺生)과 이살생(離殺生) 등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살생(殺生)이라고 하는가?
  다른 중생에 대해서 살생의 욕락[殺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를 죽이려는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곧 그를 끝내 죽이는 것까지의 모든 신업(身業)을 말한다.
  무엇을 불여취(不與取)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소속된 물건에 대해서 투도의 욕락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것을 훔치려는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곧 그것을 끝내 훔치는 것까지의 모든 신업(身業)을 말한다.
  무엇을 욕사행(欲邪行)이라고 하는가?
  행하지 않아야 할, 길이 아니고[非道] 적당한 곳이 아니고[非處] 적당한 시기가 아닐 때[非時]에 가까이 하려고 하는 욕락[習近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게 욕사행(欲邪行)의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욕사행을 범하는 것까지의 모든 신업(身業)을 말한다.
  무엇을 망어(妄語)라고 하는가?
  다른 유정에게 생각을 숨기고 말하려고 하는 욕락[覆想說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게 위증(僞證)의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위증하는 것까지의 모든 어업(語業)을 말한다.
  
74) 업잡염(業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 가운데 두 번째의 업(業)의 분별(分別)은 두 가지로 기술되는데, 이하는 그 두 번째인 법상(法相)의 차별에 의한 것을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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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이간어(離間語)라고 하는가?
  다른 유정에게 파괴하려는 욕락[破壞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게 파괴할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파괴하는 것까지의 모든 어업(語業)을 말한다.
  무엇을 추악어(麤惡語)라고 하는가?
  다른 유정에게 거친 말을 하려는 욕락[麤語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게 거친 말의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거친 말을 하는 것까지의 모든 어업(語業)을 말한다.
  무엇을 기어(綺語)라고 하는가?
  꾸민 말을 하려는 욕락[綺語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게 상응하지 않는 말[不相應語]의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상응하지 않는 말을 하는 것까지의 모든 어업(語業)을 말한다.
  무엇을 탐욕(貪欲)이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해서 자기 소유로 하려는 욕락[己有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해서 자기 소유로 하려는 욕락의 결정적인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그것에 대해서 소유하는 것까지의 모든 의업(意業)을 말한다.
  무엇을 진에(瞋恚)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해치려고 하는 욕락[害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그에 대해서 해치려고 하는 욕락의 결정적인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그에 대해서 해치는 것까지의 모든 의업(意業)을 말한다.
  무엇을 사견(邪見)이라고 하는가?
  비방하려는 욕락[誹謗欲樂]을 일으키고 염오심(染汚心)을 일으키어 곧 비방하려는 욕락의 결정적인 방편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그를 비방하는 것까지의 모든 의업(意業)을 말한다.
  무엇을 이살생(離殺生)이라고 하는가?
  살생(殺生)에 대해서 과환의 욕해[過患欲解]를 일으키고 뛰어난 선심[勝善心]을 일으키어 그것을 그치게 하는 방편[靜息方便]을 일으키는 것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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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 끝내 그것을 그치게 하는 것까지의 모든 신업(身業)을 말한다.
  이살생(離殺生)이 위와 같듯이 이불여취(離不與取)에서부터 이사견(離邪見)이 이르기까지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이 가운데 차별은 말하자면 불여취(不與取)에서 과환의 욕해[過患欲解]를 일으키고 내지 사견(邪見)에서 과환의 욕해[過患欲解]를 일으키고, 뛰어난 선심[勝善心]을 일으키어 그것75)을 그치게 하는 방편[靜息方便]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끝내 그것을 그치게 하는 것까지의 모든 의업(意業)이다.
  위와 같은 열 가지는 간략하게 세 가지가 되니, 이른바 신업(身業)과 어업(語業)과 의업(意業)이다. 곧 이 세 가지는 폭넓게 풀이하면 열 가지가 되는 줄 알아야만 한다.
  업(業)의 인(因)이란 무엇인가?76)
  첫째 탐(貪), 둘째 진(瞋), 셋째 치(癡), 넷째 자신[自], 다섯째 다른 것[他], 여섯째 다른 것을 따라 구름[隨他轉], 일곱째 애미하는 것[所愛味], 여덟째 포외(怖畏), 아홉째 손해를 끼침[爲損害], 열째 희락(戲樂), 열한째 법상(法想), 열두째 사견(邪見)의 열 두 가지의 상(相)이 있는 줄 알아야만 한다.
  업의 위(位)란 무엇인가?77)
  말하자면 간략하게 설하여 연위(耎位) 중위(中位) 상위(上位) 생위(生位) 습기위(習氣位)의 다섯 가지가 있는 줄 알아야만 한다. 연위[耎位]의 불선업(不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방생(傍生)에 태어나며, 중위[中]의 불선업(不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아귀(餓鬼)에 태어나며, 상위[上]의 불선업(不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나락가(那落迦)에 태어난다. 연위의 선업(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인간[人]에 태어나고, 중위의 선업(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욕계천(欲界天)에 태어나며, 상위의 선업(善業)에 의하기 때문에 색(色)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난다.
  
75) 불여취(不與取)로부터 사견(邪見)에 이르기까지를 가리킨다.
76) 업잡염(業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세 번째로 업(業)의 인(因)에 대해서 기술한다.
77) 업잡염(業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네 번째로 업(業)의 위(位)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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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연위(耎位)의 불선업(不善業)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연품(耎品)의 탐(貪) 진(瞋) 치(癡)를 인연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엇을 중품(中品)의 불선업(不善業)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중품(中品)의 탐(貪) 진(瞋) 치(癡)를 인연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엇을 상품의 불선업(不善業)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상품(上品)의 탐(貪) 진(瞋) 치(癡)를 인연으로 삼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선업(善業)은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를 인연이으로 삼는 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생위(生位)의 업(業)이라고 하는가?
  이미 생겨나서 멸하지 않은[已生未滅] 앞에 나타난[現在前] 업(業)을 말한다.
  무엇을 습기위(習氣位)의 업(業)이라고 하는가?
  이미 생겨나서 이미 멸해버린[已生已滅] 앞에 나타나지 않는 업(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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