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아비달마구사론 제 17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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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구사론 제 17 권
  존자 세친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4. 분별업품 ⑤
  이와 같이 10업도의 상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렇다면 어떠한 뜻에 근거하여 업도라고 이름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 중의 세 가지는 오로지 도(道)이며
  일곱 가지는 업이고, 도이기 때문[에 업도]이다.
  此中三唯道 七業亦道故
  
  논하여 말하겠다. 10업도 중의 뒤의 세 가지(탐·진·사견)는 오로지 도(道)로서, 업의 길[道]이 되기 때문에 '업도(karma-patha)'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한 것이다.1) 즉 그것과 상응하는 사(思)를 설하여 업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사업은] 그것(탐 등의 의악행)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어나며, 그것이 작용하기 때문에 작용하니, 그것의 세력대로 조작(造作)되기 때문이다.
  
  
1) 탐·진·사견의 세 가지는 그 자체 업(즉 思業)이 아니지만, 사업의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사업에 구체적인 방향을 부여하는 의처(依處) 혹은 길[道]이 된다는 점에서 '업의 도' 즉 업도라고 일컬은 것이다. 이에 대해 비유자는 '탐' 등의 세 가지는 바로 의업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思) 등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부에 의하는 한, '탐' 등의 법은 '사'의 한 유형으로서, 그것들은 모두 마음의 한 상태[分位]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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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앞의 일곱 가지는 바로 업이니, 신업과 어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업의 길이 되기도 하니, 그것들은 바로 '사'가 노니는 곳이기 때문이다.2) 다시 말해 능히 신업·어업을 등기(等起)시키는 '사'는 신업·어업에 의탁하고 그것을 경계로 삼아 일어나기 때문에 업이면서 업의 길이 되므로 업도라는 명칭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10업도)에서 '업도'라고 하는 말은 업의 길이라는 뜻과 업이면서 업의 길이라는 뜻을 모두 나타내니, 비록 동일한 종류[의 의미]는 아닐지라도 한 가지를 다른 명칭으로 삼을 수 있다는 세간의 규정[世典] 중에서도 다 같이 잘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3)
  그리고 이살생(離殺生) 등의 일곱 가지와 무탐(無貪) 등의 세 가지를 업도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여 마땅히 해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근본업도)의 가행과 후기는 어떠한 이유에서 업도가 아닌 것인가?
  이것을 위해, 이것에 근거하여 비로소 그것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앞(본론 권제16, 업도의 상)에서 논설한 것처럼 이것은 거친 품류[麤品]를 포섭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근본)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내외의 현상[物]이 감소하게 되고 증가하게 되는 것이며,4) 그래서 업도로 설정한 것이지만 [가행과 후기는] 이와 달리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5)
  
  
2) 신(身)의 세 가지와 어(語)의 네 가지 업도는 바로 사(思)가 작용하는 의처(依處)가 되기 때문에 또한 업의 길이기도 하다.
3) 오로지 업의 길인 뒤의 세 가지와, 업이면서 업의 길인 앞의 일곱 가지를 다 같이 '업의 길' 즉 업도라고 하는 하나의 명칭으로 설정한 것은, 종류는 달라도 '업'이라는 명칭이 동일하기 때문으로, 세간에는 많은 종류의 마차가 있지만 그것을 모두 마차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寶疏』) 여기서 세간의 규정이란 파니니(Pa ini)의 문법(i.2.64). 즉 '복합어가 다를 때조차도 단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4) 악업도의 근본이 증가하면 안팎으로 도덕적으로 악한 현상이 증가하고 좋은 현상은 감소하며, 악업도의 근본이 감소하면 그 반대이다.
5) 가행과 후기를 소연의 경계로 삼는 경우에도 역시 사(思)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도 마땅히 업도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 첫째 가행은 근본을 위해, 후기는 근본에 의해 비로소 일어나기 때문에, 본론 권제16(p.733)에서 10업도와 묘행·악행의 관계를 설하면서 '거칠게 나타나 알기 쉬운 것을 업도라 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에(가행은 거칠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가행과 후기는 그 증감에 따른 결정적인 영향을 낳지 않기 때문에 업도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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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비유논사(譬喩論師)는 주장하기를, "탐·진 등은 바로 의업이다"고 하였다.
  어떠한 뜻에서 그것을 해석하여 업도라도 이름한 것인가?
  마땅히 그 논사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지만, 역시 이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의업으로서 악취로의 길이기 때문에 업도라 이름한 것이며, 혹은 서로 상승(相乘)하는 것은 모두 업도라고 이름한다."6)
  이상에서 설한 바와 같은 10악업도는 모두 선법의 현기(現起)와는 상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선근은 어떠한 업도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선근이 끊어지고[斷善根] 선근이 이어지는 것[續善根]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오로지 사견만이 선근을 끊으니,
  끊어지는 것은 욕계의 생득선(生得善)으로
  인과를 부정하고 일체의 혹을 연으로 하는 사견에 의해
  점진적으로 끊어지고, 두 가지(선근과 율의)는 함께 버려진다.
  唯邪見斷善 所斷欲生得
  撥因果一切 漸斷二俱捨
  
  [선근이 끊어지는 곳은] 인취의 세 주로서, 남·여와
  견행자(見行者)이고, 끊어짐의 본질은 비득(非得)이며
  선근이 이어지는 것은 의심과 정견 때문으로
  단박에 현기하는데, 역죄(逆罪)를 지은 이는 제외된다.
  人三洲男女 見行斷非得
  續善疑有見 頓現除逆者
  
  
  
6) 즉 탐 등은 업의 길이 아니라 업이라 할 경우, 의업 즉 '사(思)'의 의처(依處)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주 세친은 비유논사를 대신하여 '탐 등은 악취로의 길이기 때문에, 탐과 진이 선후로 일어날 때 서로가 서로를 의처로 삼아 일어나므로 업도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여기서 비유논사는 칭우에 의하면 경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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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악업도 가운데 오로지 상품(上品)의 원만한 사견(즉 極上의 惡邪見)만이 능히 선근을 끊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본론(本論) 중에서 "무엇을 일컬어 온갖 상품의 불선근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불선근으로서 능히 선근을 끊는 것이다. 혹은 이욕(離欲)할 때 최초로 제거되는 것이다"고 설하고 있는 것인가?7)
  불선근이 능히 사견을 인기하였기 때문이다. 즉 사견의 원인[事]이 그 같은 불선근에 있다고 헤아렸기 때문으로,8) 이를테면 불이 마을을 태웠을지라도 그 불은 도적들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러한 도적들이 마을을 태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9)
  그렇다면 이것(상품의 사견)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선근이 끊어지는 것인가?
  이를테면 오로지 태어나면서부터 획득[生得]된 욕계의 선근이 끊어지니, 색계·무색계의 선근은 일찍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시설족론』 은 어떻게 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테면 그 논에서는 "오로지 이 같은 근거[量, 즉 사견]에 의해서만 이러한 사람은 3계의 선근을 끊게 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10)
  상계에서의 선근의 획득이 더욱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설한 것
  
  
  
7) 상품의 원만한 사견만이 능히 단선근(斷善根)의 원인이라면, 탐·진·치의 불선근으로서 선근을 끊는 것과 이욕할 때 제일 먼저 끊어지는 것이 상품 즉 증상(增上)의 불선근이라고 한 『발지론』 권제2(대정장26, p. 925상 ; 한글대장경176, p. 38)의 논설과 상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난문.
8) '사(vastu)'를 원인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6에서 논설한 다섯 종류의 '사'를 참조할 것.
9) 즉 마을은 불에 의해 태워졌지만 그 불의 원인은 도적이기 때문에 도적이 마을을 태웠다고 하듯이, 선근은 상품의 사견에 의해 끊어지지만 사견의 원인이 불선근이기 때문에 『발지론』에서 그같이 설하였다는 뜻.
10) 즉 『시설족론』중에서 사견에 의해 3계의 선근을 끊게 된다고 한 논설은, 그것에 의해서는 욕계 생득선만이 끊어진다고 하는 지금의 주장과는 상위하지 않는가 하는 힐난. 『대비바사론』 권제35(대정장27, p. 183상 ; 한글대장경119, p. 239)에서는 『시설족론』의 '만일 개미알을 해치고서 조금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면 그는 상계의 선을 끊은 것이다'는 논설을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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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로,11) 이 같은 [욕계의] 상속신은 더 이상 그것(상계의 선근)의 그릇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에서 오로지 태어나면서부터 획득된 선근만을 끊는 것인가?
  가행의 선근은 일찍이 이미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다.12)
  어떠한 사견을 인연으로 하여 선근을 능히 끊게 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결정코 인과(因果)를 부정하는 사견이다. 여기서 원인을 부정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묘행(妙行)과 악행을 부정하는 것을 말하며, 결과를 부정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결정코 그것의 결과인 이숙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이러한 두 가지 사견은 마치 무간도와 해탈도의 차별과 같다"고 하였다.13) 또 다른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근을 끊는 사견은 오로지 유루만을 연으로 하지 무루연은 아니며, 자계연(自界緣)으로 타계(他界)를 연으로 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오로지 상응에 수증(隨增)할 뿐 경계(즉 소연)에는 수증하지 않으니,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이다."14)
  이에 대해 여시설자(如是說者)는 "[선근을 끊는 사견은] 일체의 연(緣)과 통하니, 원인에 따라 수증하여 강력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15)
  
  
11) 즉 단선근자에게는 상2계의 선근이 일찍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비달마 본론에서의 '끊어진다'고 함은 더욱 성취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에 근거하여 그렇게 설하였다는 것이다.
12) 여기서 가행의 선근이란 후천적 노력에 의해 획득된 문(聞)·사(思)·수소성(修所成)의 선근으로, 이것은 단선근의 가행위에서 이미 끊어졌기 때문이다.
13) 원인을 부정하는 사견은 무간도와 같고, 결과를 부정하는 사견은 해탈도와 같다. 즉 무간·해탈 두 가지 도에 의해 번뇌를 끊는 것처럼 선근도 인과를 비방하는 두 가지 사견에 의해 끊어진다는 뜻.
14) 사견에는 자계연(自界緣)과 타계연(他界緣), 혹은 유루연(有漏緣)과 무루연(無漏緣) 두 가지가 있다. 즉 자계·타계를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사견을 자계연·타계연이라고 하고, 고제·집제와 멸제·도제를 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사견을 유루연과 무루연이라고 한다.(본론 권제19, p.899 이하 참조) 유여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자계연과 유루연의 사견만이 능히 선근을 끊는다. 그러나 유부의 정의(正義)는 그 모두가 능히 선근을 끊을 수 있다.
15) 여기서 여시설자(eva var ayanti)는 바사(婆沙) 중에서 여러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 중에 정통설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즉 비바사사의 정의에 따르면 유루연·자계연 뿐만 아니라 무루연·타계연의 사견도 역시 단선근의 힘을 갖고 있다. 즉 타계연과 무루연의 사견은 비록 소연에 따라 증성(增盛)하지는 않을지라도 동류인과 변행인에 따라 증성하여 강력한 사견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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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유여사는 "마치 견도(見道)가 견소단(見所斷)의 번뇌를 끊듯이, 9품의 선근은 일찰나의 사견에 의해 단박에 끊어지지 않는다"고 설하였다.
  이에 대해 여시설자는 이같이 말하고 있다. "[사견은] 점진적으로 선근을 끊는다. 즉 9품의 선근과 9품의 사견은 순(順)·역(逆)으로 서로 마주하며 점차적으로 끊어지기 때문으로,16) 마치 수도(修道)가 수소단의 번뇌를 끊는 것과 같다. 즉 하하품의 사견은 능히 상상품의 선근을 끊으며, 나아가 하하품의 선근은 상상품의 사견에 의해 끊어진다. 만약 이와 같이 설할 경우 본론(本論)의 글귀와 부합하니, 이를테면 본론에서 '무엇을 일컬어 미구행(微俱行)의 선근이라고 하는가? 선근이 끊어질 때 최후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버림에 따라 단선근이라 이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17)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글에서 어떠한 이치에서 "무엇을 일컬어 상품의 온갖 불선근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불선근으로서 능히 선근을 끊는 것이다"고 다시 설하고 있는 것인가?18)
  그것은 구경(究竟)에 근거하여 은밀히 이 같은 말을 설한 것으로, 이것(상품의 불선근)에 의해 선근이 끊어지면 더 이상 또 다른 선근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약 일품(一品)의 선근이라도 남아 있을 경우 다른 선근이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선근이 끊어졌다'고 설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끊어짐이 구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선근이 끊어졌다'고 일컬을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상품의 사견만을 설하여 능히 선근을 끊는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러나 유여사는 말하기를, "9품의 선근을 끊으면서는 끝내 중간에 나오는
  
  
  
16) 9품의 선근은 수소단의 번뇌와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끊어지는 것으로, 하하품의 사견에 의해 상상품의 선근이 끊어지며, 나아가 상상품의 사견에 의해 하하품의 선근이 끊어진다.
17)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2(한글대장경176, p. 38). 즉 이미 '최후' 운운하였으므로 일품(一品)에 의해 단박에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
18) 상동. 즉 '상품의 불선근이 능히 선근을 끊는다'고 함은 일품 단(斷)의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가 하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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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추는) 일이 없으니, 견도의 경우와 같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여시설자는 "나오는 것과 나오지 않는 것은 통한다"고 하였다.19)
  유여사는 설하기를, "먼저 율의를 버리고 그 후에 선근을 끊으니, 지말적인 것[末]은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20)
  그러나 여시설자는 이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율의가 바로 이러한 마음의 품류에 의해 등기된 결과라고 한다면 이러한 품류의 마음이 끊어질 때 그러한 율의를 버리게 되니, 결과와 원인의 품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21)
  선근은 어떠한 처소에서 능히 끊어지게 되는 것인가?
  [선근이 끊어지는 곳은] 인취(人趣)의 세 주(洲)로서, 악취에 있을 때에는 끊어지지 않으며, 천취에서도 역시 끊어지지 않는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악취 중에서는 염오와 불염오의 혜(慧)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며, 천취 중에서는 선악의 온갖 업의 과보가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22) 그리고 인취의 세 주라는 말은 북구로주를 제외한 세 곳으로, 그곳(북구로주)에는 극악한 아세야(阿世耶, 즉 意樂)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선근이 끊어지는 곳은] 오로지 남섬부주뿐이다"고 하였다.23)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에 어긋나게 될 것이니, 이를테면 본론에서는 "남섬부주의 사람은 최소한 여덟 가지 근(根)을 성취하
  
  
  
19) 연속적으로 끊어지는 일이 있으면 중간에 중지하는 일도 있다는 뜻. 즉 사견에 의한 단선근은 이미 수도가 수소단의 번뇌를 끊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이치상으로 볼 때 점진적으로 끊어지는 중간에 그 같은 끊어짐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중단하여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2, 앞의 책, p. 59)
20) 이상 단선근의 과정을 마치고, 율의를 버리는 것과 단선근의 관계에 대해 논설한다. 여기서 율의는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기 때문에 근본[本]이 아닌 지말[末]이라고 하였다.
21) 어떤 율의가 이러한 9품의 선근에 의해 인기된 것이라면 선근과 율의는 동시에 버려진다는 뜻.
22) 악취의 염오혜는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선근을 끊을 수 없으며(불염오혜 역시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성도에 들 수 없다), 천취의 경우 선악의 이숙과가 바로 나타나므로 인과를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선근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23) 남섬부주만이 특히 심(尋)·사(伺)가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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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 동주(東洲)와 서주(西洲)도 역시 그러하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24)
  어떠한 종류의 몸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선근이 끊어지는 것인가?
  오로지 남자와 여자의 몸에 의지해서이니, 의지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유여사는 설하기를, "역시 또한 여자의 몸에 의지하여서도 선근은 끊어지지 않으니, 욕(欲)과 근(勤)과 혜(慧) 등이 모두 어둡고 둔중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에 어긋나게 될 것이니, 이를테면 본론에서는 "만약 여근을 성취하면 결정코 여덟 가지 근(根)을 성취하며, 남근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25)
  어떠한 행자(行者)가 능히 선근을 끊는 것인가?
  오로지 견행자(見行者)만이 선근을 끊으며, 애행자(愛行者)는 끊지 않으니, 이를테면 모든 애행자는 악한 아세야가 지극히 가벼이 움직이기[躁動] 때문이며, 모든 견행자는 악한 아세야가 지극히 견고하며 깊기[堅深] 때문이다.26) 이 같은 이치로 볼 때 선체(扇) 따위도 능히 선근을 끊지 못하니, 애행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유형(애행자와 선체 등)의 인취는 악취의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에 능히 선근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27)
  이같이 선근을 끊는다고 함은 그 자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선근을 끊는 것은 비득(非得)을 본질로 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24) 『발지론』 권제15(앞의 책, p. 352). 즉 점차로 명종하는 상태에서 22근 중 안·이·비·설의 4근과 여근·남근은 이미 버렸으며, 단선근자일 경우 신(信) 등의 5근과 3무루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신근(身根)과 의근과 명근 그리고 5수근만을 성취하는 것이다. 곧 아비달마 본론에서 동승신주(비제하주)와 서우화주(구타니주)도 역시 그러하다 하였으므로 그곳에도 역시 단선근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25) 『발지론』 권제16(앞의 책, p. 370) ; 『대비바사론』 권제156(한글대장경124, p. 141). 즉 여근을 성취한 이는 여(女)·신(身)·명(命)·의근(意根)과 낙(樂)·고(苦)·희(喜)·사근(捨根)을 성취하며, 그 밖의 신(信) 등의 5근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였으므로 이는 바로 여근의 몸에서도 선근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증거라는 뜻.
26) 여기서 견행자란 자신의 의견이 맹리(猛利)한 이를 말하고, 애행자란 의견이 확실하지 않고 우유부단한 감정적인 이를 말한다.
27) 선체(성불구자)가 선근을 끊지 못하는 것은 애행자와 동일한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며, 또한 애행자나 선체와 같은 유형의 인취는 악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염오혜와 불염오혜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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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선근을 끊은 상태에서는 선의 득(得)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으로, 비득의 상속이 생겨나 선의 득과 교체되니, 이와 같이 비득이 생겨나는 상태를 선근을 끊는 것, 즉 단선근(斷善根)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선근은 비득을 본질로 한다.
  선근이 이미 끊어져 버렸을 경우 무엇에 의해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인가?
  의심과 '존재한다'는 견해에 의해 이어진다.28) 이를테면 인과에 대해 어느 때 '이것은 혹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낳거나, 혹은 '결정코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는 정견을 낳을 때, 선근의 득(得)이 다시 이어져 일어난다. 즉 선근의 득이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속선근(續善根), 선근을 잇는 것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말하기를, "9품의 선근은 점차적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시설자(如是說者)는 "선근을 단박에 이으며[頓續], 그런 후 후시에 이르러 점차적으로 생기하니[漸起], 마치 병을 단박에 제거하고서 기력이 점차로 증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몸[現身] 중에서 능히 선근을 이을 수 있는 것인가, 이을 수 없는 것인가?
  역시 능히 이을 수 있지만, 역죄(逆罪)를 지은 이는 제외된다.29) 즉 경에서는 그러한 인간(5역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들은 결정코 현법에서 능히 선근을 이을 수가 없으니, 그 같은 이들은 결정코 장차 지옥으로부터 몰하려고 하거나, 혹은 그곳에서 장차 생을 받으려고 할 때 능히 선근을 이을 수 있고, 그 밖의 상태에서는 이을 수 없기 때문이다."30) 여기서 '장차 지옥에 태어나려고 하는 상태'란 이를테면 중유를 말하며, '몰하려고 하는
  
  
28) 즉 선근을 끊는 것[斷善根]은 인과부정의 사견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선근을 잇는 것[續善根]은 '인과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疑], '존재한다'고 확신[有見]할 때 성취된다.
29)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불신(佛身)에 피를 내고, 승가의 화합을 깨트리는 5역죄(또는 무간죄) 중의 한 가지 이상을 범한 이는 무간업을 받기 때문에 현신에 선근이 속기(續起)하지 않는다.
30) 『중아함경』 권제27 「아노파경(阿奴波經)」(대정장1, p.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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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란 이를테면 그가 장차 지옥에서 죽으려고 하는 때를 말한다. 따라서 만약 그가 인력(因力,직접적인 내적 원인의 힘)에 의해 선근을 끊었다면 장차 지옥에서 죽으려고 할 때에 선근을 이을 것이며, 만약 그가 연력(緣力, 간접적인 외적 조건의 힘)에 의해 선근을 끊었다면 장차 지옥에 태어나려고 할 때에 선근을 이을 것으로,31) 자신의 힘과 타인의 힘에 의해 선근을 끊었을 경우에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의요(意樂)는 허물어졌지만 가행이 허물어지지 않은 단선근자는 능히 현세에 선근을 이을 수 있으며, 만약 의요도 허물어지고 가행도 역시 허물어진 단선근자라면 요컨대 소의신이 허물어진 뒤에 비로소 선근을 잇게 된다.32) 그리고 견(見)이 허물어졌을지라도 계(戒)가 허물어지지 않은 단선근자와, 그리고 견도 허물어지고 계도 허물어진 단선근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33)
  선근을 끊었을지라도 사정취(邪定趣)에는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마땅히 4구(句)로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제1구는 이를테면 포랄나(布剌拏) 등이며, 제2구는 이를테면 미생원(未生怨) 등이며, 제3구는 이를테면 천수(天授) 등이며, 제4구는 이를테면 앞에서 언급한 이를 제외한 이들이다.34)
  
  
31) 과거세에 익힌 것을 원인(즉 동류인)으로 하는 사견이 선근을 끊었을 경우, 내세 지옥에서 죽으려고 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고, 사교(邪敎)와 같은 외적 조건에 의해 선근이 끊어졌을 경우 지옥에 태어나려고 할 때, 다시 말해 중유에 있을 때 비로소 깨달아 선근을 잇게 된다. 왜냐 하면 내적 원인에 의한 사견은 견고하여 쉽게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32) 여기서 '의요가 허물어졌다'고 함은 마음 속으로 인과를 부정하는 것을 말하며, '가행이 허물어졌다'고 함은 그러한 생각이 실제로 이행된 것을 말한다.
33) 의요와 가행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견'은 내적 의식판단이며, '계'는 외적인 형식이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는 이미 사견을 갖었을지라고 계를 지키고 있을 경우 능히 현세에 선근을 이을 수 있지만, 두 가지가 모두 허물어졌을 경우에는 소의신이 괴멸한 후 선근을 잇게 된다.
34) 사정취에 떨어지는 자란 역죄를 지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 제1구는 선근을 끊었을지라도 사정취에는 떨어지지 않는 경우로서, 인과를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역죄를 짓지 않은 육사외도의 일인인 푸라나 카샤파(P rana k yapa) 등이 그러하다. 제2구는 선근은 끊지 않았을지라도 사정취에 떨어지는 경우로서, 부왕을 시해한 후 부처님께 귀의하여 인과의 도리를 믿은 아자세왕(미생원) 등이 그러하다. 제3구는 선근도 끊고 사정취에도 떨어지는 경우로서, 제바달다(천수) 등이 그러하다. 제4구 선근을 끊지 않았고 사정취에도 떨어지지 않는 경우로서, 거짓말하는 자 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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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에 따라 선근을 끊는 것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다시 근본업도에 대해 밝혀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설한 선·악의 두 가지 업도 중에서 몇 가지가 함께 생겨나 사(思)와 더불어 구전(俱轉, 즉 찰나등기)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사(思)와 구전하는 업도의 수는
  불선의 경우 한 가지에서 여덟 가지이며
  선의 경우 전체적으로 설하면 열 가지에 이르지만
  개별적으로 설하면 한 가지·여덟 가지·다섯 가지는 제외된다.
  業道思俱轉 不善一至八
  善總開至十 別遮一八五
  
  논하여 말하겠다. 사(思)와 구전(俱轉)하는 온갖 업도 중에서 바야흐로 불선업도는 한 가지로부터 오직 여덟 가지에 이르기까지 '사'와 구전한다.
  한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그 밖의 다른 악업도를 떠나 탐 등의 세 가지 중의 하나가 현기할 때와, 혹은 일찍이 가행으로서 악한 색업을 짓고 불염오심이 나타났을 때 그 중의 하나가 구경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35)
  두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진에의 마음이 현전하여 살생의 업이 구경에 이르거나, 혹은 탐을 일으킨 상태에서 불여취 혹은 욕사행 혹은 잡예어를 성취하는 경우를 말한다.36)
  
  
35) 탐·진·사견 중의 하나가 현기할 때와, 일찍이 사자를 보내어 욕사행을 제외한(욕사행에는 가행이 없기 때문에 제외하는 것임) 여섯 가지 신·어업 중의 한 가지를 짓게하여 업도가 구경에 이르는 순간, 탐 등의 다른 가행의 염오심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한 가지 업도만이 '사'와 함께 일어난다.
36) 내적으로 탐·진·사견 중의 하나가 일어나고 동시에 살생·투도·욕사행·잡예어 중의 하나가 일어날 때, 두 가지 업도가 '사'와 함께 일어난다. 즉 살생은 진에가 현전하여 구경에 이른 것이며, 투도 등은 탐욕이 현전하여 구경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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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진심(瞋心)으로써 다른 이에게 소속된 생(生)을 동시에 죽여서 훔치는 것을 말한다.37)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앞에서 설한 투도의 업도가 탐에 의해 구경에 이른다는 이치는 마땅히 이루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38)
  다르지 않은 마음[不異心]에 의해 지어진 것이 구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와 같이 결택 판석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39)
  혹은 먼저 가행으로서 악한 색업을 짓고 탐 등이 일어날 때 그 중의 두 가지(살생과 투도)가 구경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40)
  네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다른 이를 괴멸시키고자하여 허광어 혹은 추악어를 설할 때, 한 가지의 의(意)업도와 세 가지의 어(語)업도가 함께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41) 혹은 먼저 가행으로서 악한 색업을 짓고 탐 등이 현전할 때 그 중의 세 가지가 구경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42)
  이와 마찬가지로 다섯·여섯·일곱 가지의 업도가 구전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땅히 참답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43)
  여덟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일찍이 가행으로서 그 밖의 여섯
  
  
  
37) 이를테면 진에가 일어나 다른 사람의 닭 등을 죽이고 훔칠 때, 세 업도가 '사'와 함께 일어난다.
38) 바로 앞에서, 또한 본론 권제16에서 투도의 업도는 '탐'으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진에로부터 그것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하는 힐난.
39) 즉 앞서의 경우는 인등기(引等起, 遠因)도 찰나등기도 모두 동일한 탐(不異心)에 의한 투도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인등기는 탐이지만 찰나등기는 진에로, 다른 마음에 근거하여 투도와 살생이 일어났으므로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뜻.
40) 3구전의 또 다른 경우로, 일찍이 사자를 보내어 살생과 불여취를 행하게 하여 그것이 구경에 이르는 순간 자신에게 탐·진·사견 중의 하나가 일어날 때, 세 가지 업도가 '사'와 함께 일어난다.
41) 즉 허광어를 설할 때에는 탐욕·진에 중의 한 가지와 허광어·이간어·잡예어가, 추악어를 설할 때에는 진에·이간어·추악어·잡예어가 구전한다.
42) 예컨대 한 명의 사자를 보내어 살생·투도·허광어 등의 업도를 성취하게 하고, 그 순간 자신에게 탐·진·사견 중의 하나가 일어날 때 네 가지 업도가 '사'와 함께 일어난다.
43) 이를테면 세 가지 의업도 중의 한 가지가 현전할 때, 일찍이 각각의 사자에게 명하여 신·어업도의 일곱 가지 중 네 가지·다섯 가지·여섯 가지를 행하게 하여 그것이 구경에 이르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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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악업(욕사행을 제외한 신·어업)을 짓고, 스스로 욕사행을 행하여 동시에 구경에 이르는 경우를 말한다.44) 그리고 뒤의 세 가지 업도는 자력(自力)으로 현전하며, 반드시 함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홉 가지 내지 열 가지의 업도가 구전(俱轉)하는 일은 없다.45)
  이와 같이 '사'와 구전하는 불선업도의 수가 동일하지 않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나아가 '사(思)'와 구전하는 선업도의 수는 전체적으로 모두 열거하면 열 가지에 이르지만, 개별적으로 드러난 것[顯相]에 근거할 경우 한 가지·여덟 가지·다섯 가지가 구전하는 것은 제외된다.46)
  여기서 두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선한 5식(識)과 아울러 무색정에 근거한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가 현재전할 때를 말하는데, 이 때 산심(散心)의 일곱 가지 선업도(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는 존재하지 않는다.47)
  세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정견과 상응하는 의식이 현재전하는 때로서, 일곱 가지의 선한 색업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48)
  
  
44) 욕사행에는 반드시 탐욕이 구기하기 때문에 여덟 가지이다.
45) 여기서 '뒤의 세 가지 업도'란 탐·진에·사견으로, 이는 각기 성질을 달리하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없다.
46) 현현하지 않는 처중(處中)의 선, 즉 비율의비불율의[隱相]까지 모두 설하면 한 가지 내지 열 가지 업도가 사(思)와 구전하지만, 율의[顯相]에 의거할 경우 한 가지와 다섯 가지와 여덟 가지는 구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선사(善思)는 반드시 무탐·무진과 상응하기 때문에 1구전이 제외된다. 유색의 율의에 포섭되는 업도는 최소한 이(離)살생·이투도·이비범행·이망어의 네 가지와 구기하며, 여기에 선사와 구기하는 무탐·무진이 더해지기 때문에 5구전이 제외된다. 또한 필추율의는 7지(支)를 갖춘 것으로, 악·무기심일 경우 7구전이지만 선심일 경우 여기에 무탐·무진이 더해지기 때문에 8구전이 제외되는 것이다.
47) 이는 별해탈율의를 획득하지 않은 이의 경우로서, 선한 전5식이 일어날 때, 5식은 '견(見)'이 아니기 때문에(본론 권제2 참조) 정견을 제외한 무탐·무진의 두 가지 업도만이 사와 구전한다. 또한 무색정에 근거하여 진지와 무생지가 일어날 때, 무색정에는 수심전의 무표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본론 권제28 참조), 진·무생지는 견(見)이 아니기 때문에(본론 권제26 참조) 오로지 제6의식과 상응하는 무루의 무탐·무진 두 가지 업도만이 '사'와 구전한다.
48) 무탐·무진과 더불어 정견이 일어나는 때로서, 이 때 만약 별해탈율의도 받지 않고 정(定)에도 들지 않았다면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3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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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악·무기심이 현전하는 상태에서 근주·근사·근책 율의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49)
  여섯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선한 5식이 현재전할 때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계(戒,근주·근사·근책 율의)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50)
  일곱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수심전의 색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선한 의식이 정견과 상응하여 현재전할 때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계(戒)를 획득하는 경우와, 혹은 악·무기심이 현전할 때 필추계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51)
  아홉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선한 5식이 현재전할 때 필추계를 획득하는 경우, 혹은 무색정에 근거하는 진지와 무생지가 현재전할 때 필추계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 혹은 정려율의에 포섭되는 진지·무생지와 상응하는 의식이 현재전할 때를 말한다.
  열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수심전의 색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선한 의식이 정견과 상응하여 현재전할 때 필추계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체의 수심전의 색이 존재하고, 또한 정견과 상응하는 마음이 바로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52)
  개별적으로 드러난 상[顯相], 즉 율의에 근거하여 논의할 경우 제외되는 것은 이와 같지만, 감추어진 상과 드러난 상 모두에 의거하여 논의할 경우 제외되는 것이 없으니, 이를테면 율의를 떠나서는 한 가지·여덟 가지·다섯
  
  
  
49) 악·무기심이 일어났기 때문에 무탐·무진·정견의 세 가지 의업은 존재하지 않으며, 근사 등의 율의를 받았기 때문에 세 가지 신업와 한 가지 어업(離허광어)이 구전한다.
50) 선한 전5식이 일어났기 때문에 무탐·무진이, 근주 등이기 때문에 신업의 세 가지와 어업의 한 가지 율의가 구전한다.
51) 산선(散善)의 의식이 일어났으나 아직 정려생율의와 무루율의를 획득하지 않고서 근주 등의 율의를 받을 때, 의업의 세 가지 선근과 신업의 네 가지 율의가 구전한다. 또한 악·무기심으로서, 다시 말해 탐·진·사견을 떠나지 않고 필추율의를 획득할 때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이 구전한다.
52) 수심전의 색이 없이 정견과 상응하는 선한 의식이 현전하고 필추율의를 획득할 때, 혹은 정견과 상응하는 마음이 현전하고 수심전의 색, 즉 정려생율의·무루율의를 획득하는 경우에도 열 가지 선업도가 구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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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의 업도(이는 율의업도가 아니라 처중업도)도 함께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악·무기심이 현재전할 때 한 가지 [악업도] 갈래[支]의 원리(遠離)를 획득하는 경우를 말한다. 다섯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수심전의 색이 없이 선한 의식이 정견과 상응하여 현재전할 때 두 가지 [악업도] 갈래의 원리를 획득하는 등의 경우를 말한다. 여덟 가지가 구전한다고 함은, 이를테면 바로 그와 같은 의식이 현재전할 때 다섯 가지 [악업도] 갈래의 원리를 획득하는 등의 경우를 말한다.53)
  선·악의 업도는 어떠한 계(界)·취(趣)의 처소에서 오로지 몇 가지가 성취되며, 또한 역시 몇 가지가 두루 현행하는 것인가?54)
  게송으로 말하겠다.
  
  불선의 경우, 지옥 중의
  추악·잡예·진에는 두 가지 모두와 통하고
  탐과 사견은 성취될 뿐이며
  북구로주에서는 뒤의 세 가지를 성취한다.
  不善地獄中 麤雜瞋通二
  貪邪見成就 北洲成後三
  
  잡예어는 현행과 성취에 통하며
  그 밖의 욕계에서의 열 가지는 두 가지 모두와 통한다.
  선의 경우, 모든 처소에 존재하는
  뒤의 세 가지는 현행과 성취에 통하고
  
  
  
53) 탐·진·사견을 떠나지 않고 1계(戒)를 받았을 경우. 즉 율의에서는 1지(支)의 악업도를 원리(遠離)하는 일이 없지만 처중(處中, 비율의비불율의)의 선에서는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5구전·10구전의 경우는 무탐과 무진과 더불어 정견이 현재전할 때 2계·5계를 받았을 때를 말한다.
54) 여기서 '성취'란 존재 가능성을 말하며, '현행'이란 실제로 작용하여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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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雜語通現成 餘欲十通二
  善於一切處 後三通現成
  
  무색계와 무상천에서의
  앞의 일곱 가지 업도는 오로지 성취될 뿐이고
  그 밖의 처소의 그것은 성취와 현행에 통하지만
  지옥과 북구로주는 제외된다.
  無色無想天 前七唯成就
  餘處通成現 除地獄北洲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불선의 10업도 가운데, 나락가(那落迦,지옥)에서의 세 가지 업도는 두 종류와 모두 통하니, 이를테면 추악어와 잡예어와 진에의 세 종류는 모두 다 현행할 수 있고 성취될 수 있다. 즉 거기에는 [괴로움이 핍박하여] 서로를 꾸짖기 때문에 추악어가 존재하는 것이며, [원한에 사무쳐] 비탄하고 절규하기 때문에 잡예어가 존재하는 것이며, 몸과 마음이 거칠게 강하고 사나워 조화되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에 진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탐과 사견은 성취될 뿐 현행하지 않으니, 거기에는 애착할만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며, 업의 과보를 바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업이 다하여야 죽기 때문에 살생의 업도도 존재하지 않으며, 재물이나 여인을 갖는 일도 없기 때문에 불여취와 욕사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별도로 추구할 것이 없어 속이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에 허광어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55) 그리고 그곳의 마음은 항상 서로에게서 떠나 있기 때문에 이간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구로주(北俱盧洲)에서 탐·진·사견은 모두 결정코 성취되지만 현행하지 않으니, 그곳에서는 나의 것[我所]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며, 몸과 마음이 유연하여 다른 이를 괴롭히고 해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악의 의요가
  
  
  
55) 즉 허광어와 마찬가지로 별도로 추구할 것이 없어 이간질하는 것 자체가 쓸모없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이간어(離間語)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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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오직 잡예어만이 현행하고 성취되니, 그곳의 유정은 때에 따라 염오심에서 노래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악한 의요가 없기 때문에 살생 등[의 6업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곳에서는 수명의 양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살생이 존재하지 않으며],56) 재물이나 여인을 소유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불여취와 욕사행도 존재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유연하기 때문에 [추악어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울러 [별도로 추구할 것이 없어 속이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에 [허광어와 이간어도 존재하지 않으니], 각기 상응하는 바에 따라 그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洲)의 사람은 어떻게 비범행을 행하는 것인가?57)
  이를테면 그 주의 남녀가 서로에 대해 염오심을 일으킬 때 손을 잡고 서로를 이끌어 나무 아래로 가 나뭇가지가 드리워서 덮어 주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줄 알지만, 나뭇가지가 드리우지 않으면 함께 부끄러워하며 헤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언급한 지옥과 북구로주를 제외한 그 밖의 욕계 중에서의 10악업도는 두 가지와 모두 통하니, 이를테면 천취와 아귀와 방생, 그리고 인취의 세 주에서는 10악업도가 모두 현행하고 성취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차별이 있으니, 이를테면 천취와 아귀와 방생에는 앞의 일곱 가지 업도(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 중 오로지 처중(處中)에 포섭되는 업도만이 존재할 뿐이며, 불율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취의 세 주 중에는 두 가지 종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온갖 천중(天衆)은 비록 천을 살해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혹 어느 때 다른 취(趣)를 살해하기도 한다.58)
  그러나 유여사는 설하기를, "천취도 역시 천을 죽이니,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야만 비로소 그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였다.59)
  
  
56) 북구로주의 수명은 천세로서,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살생의 업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57) 즉 북구로주에서는 여인을 소유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음행을 행하는 것인가? 하는 난문.
58) 천취는 천을 살해하지 않지만 혹 어느 때 아수라 아귀를 살해하기도 한다. 『대비바사론』 권제4(한글대장경118, p. 94)에 아수라와 삼십삼천 사대왕중천이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59) 『대비바사론』 권제172(한글대장경124, p. 514)에서 어떤 이는 아소라(阿素羅)를 천취에 속한다고 하였는데, 그럴 경우 그들이 서로 싸웠다면 천취도 결국 천취를 죽인다는 말이다. 참고로 천인은 머리와 배를 잘라야 더 이상 재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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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선업도에 대해 이미 다 논설하였다.
  선업도 중에서 무탐 등의 세 가지 업도는 3계 5취 중에서 두 가지 종류와 모두 통하니, 말하자면 성취되고 현행한다. 그러나 신·어업의 일곱 가지 업도는, 무색계와 무상천에서는 다만 성취될 뿐이며, 반드시 현행하는 것이 아니다. 즉 성자의 유정으로서 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과거·미래의 무루율의를 성취하며, 무상천의 유정은 반드시 과거·미래의 제4정려의 정려율의를 성취한다.60) 그런데 성자는 어떤 정려지에 의거하여 무루의 율의를 일찍이 일으키고 일찍이 소멸하였더라도 무색계에 태어날 때에는 과거의 그것을 성취하며, 만약 미래세의 경우라면 5지(地)의 소의신에 근거한 무루율의를 모두 성취하게 된다.61)
  그 밖의 계(界)와 취(趣) 중에서 지옥과 북구로주를 제외한 곳에서는 7선업도가 모두 현행할 수 있고 성취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약간의 차별이 있으니, 이를테면 아귀와 방생에는 율의를 떠난 처중의 업도만이 존재하고, 만약 색계의 경우라면 오로지 율의만이 존재하며, 인취의 세 주와 욕계천에는 두 가지 종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불선과 선의 업도에 의해 획득되는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60) 성자로서 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이미 과거세에 7선업도를 성취한 자이기 때문에 미래세 욕계·색계에 태어나더라도 7선업도를 성취하게 되며, 무상천에 태어난 성자도 거기에 들기 전에 제4정려의 정려율의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올 때에도 역시 제4정려의 정려율의를 성취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미래의 무루·정려율의를 성취한다고 설한 것이다.
61) 이는 특히 무색계의 성자가 과거·미래의 무루율의를 성취하게 되는 까닭을 밝힌 것으로, 과거세에 욕계 미지정과 4정려 중의 어느 곳의 소의신을 근거로하여 무루율의를 일으키고 멸하였을지라도 무색계에 태어날 때에는 반드시 과거세에 일으키고 소멸한 무루율의를 성취하니, 무루법은 명종할 때 기사(棄捨)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세에도 이미 과거에 성취하였으므로 욕계와 색계 4정려 중 어느 것에 의해서든 무루율의를 닦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무루율의를 성취하고 있다고 설한 것이다.
[783 / 1397] 쪽
  그 모두는 능히 이숙과와
  등류과와 증상과를 초래하니
  이는 다른 이를 괴롭게 하고
  목숨을 끊고 위엄을 허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皆能招異熟 等流增上果
  此令他受苦 斷命壞威故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먼저 10악업도가 각기 세 가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 대해 분별하리라.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
  이숙과(異熟果)와 등류과(等流果)와 증상과(增上果)의 차별을 말한다. 즉 열 가지 종류의 악업도를 혹은 익히고, 혹은 닦고, 혹은 많이 짓게 되면,62) 그 같은 힘으로 말미암아 날락가에 태어나니, 이것은 바로 이숙과이다. 또한 거기로부터 나온 다음 이 세간으로 와서 태어날지라도 인간의 동분 중에서 등류과를 받게 되니, 이를테면 살생을 행한 자는 수명의 길이가 단축되고, 불여취를 행한 자는 자재와 물자가 모자라 궁핍해지고, 욕사행을 행한 자는 아내가 정숙하지 않게 되고, 허광어를 행한 자는 많은 비방에 시달리게 되고, 이간어를 행한 자는 친구와의 화목함이 깨어지게 되고, 추악어를 행한 자는 항상 좋지 못한 소리[惡聲]를 듣게 되고, 잡예어를 행한 자는 말에 위엄이 있거나 엄숙하지 않게 되고, 탐욕자는 탐욕이 치성하고, 진에자는 미워함이 증가하고, 사견자는 어리석음이 두드러지게 되니, 그러한 품류(즉 사견)는 어리석음이 증성한 것이기 때문으로, 이것이 바로 10악업도의 등류과의 차별이다.
  비록 짧은 수명일지라도 인간 중에 [태어나는 것]은 역시 선업의 결과일 것인데, 어떻게 이것을 살생업도의 등류과라고 설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수명이 바로 살생업도의 등류과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살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수명의 길이가 단축되었다는 것을 말하였을 뿐으로, 살
  
  
  
62) 여기서 '익힌다[習]'고 함은 가행을, '닦는다[修]'고 함은 근본업도를, '많이 짓는다[多所作]'고 함은 후기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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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업도는 인간의 명근을 장애하는 원인이 되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63)
  이 같은 10악업도에 의해 획득되는 증상과란, 이를테면 외적 소유물로서 생활에 필요한 온갖 도구는 살생으로 말미암아 그 윤택함이 감소되고, 불여취로 말미암아 많은 서리와 우박을 만나게 되고,64) 욕사행으로 말미암아 온갖 진애(塵埃)가 많아지고, 허광어로 말미암아 온갖 악취의 더러움이 많아지고, 이간어로 말미암아 사는 곳이 험난해지며,65) 추악어로 말미암아 밭에는 가시나 자갈과 염분이 많아져 농사에 알맞지 않게 된다. 또한 잡예어로 말미암아 시절·기후에 이변이 생겨나며, 탐욕으로 말미암아 과실이 작아지며, 진에로 말미암아 과실이 몹시 맵게 되며, 사견으로 말미암아 과실이 적게 달리거나 혹은 달리지 않게 되니, 이것이 바로 10악업도의 증상과의 차별이다.
  한번의 살생이 지옥의 과보(즉 이숙과)를 초래하고 나서, 다시 인취(人趣)의 수명도 단축(즉 등류과)하게 되며, 나아가 그 밖의 다른 결과(즉 생활자구에 윤택함이 감소하는 증상과)도 초래하게 되는 것인가?66)
  유여사는 말하기를, "바로 한 번의 살생의 업도에 의해 먼저 그 같은 [지옥의] 이숙과를 초래하고서 그 후에 이러한 등류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 다른 유여사는 말하기를, "두 가지 결과(이숙과 등류)는 그 원인이 다르니, 전자는 바로 가행의 결과이고, 후자는 바로 근본의 결과이다.67) 또한 다시 [경에서] 비록 한번 살생이라고 전체적으로 설하였을지라도 근본과 권속(즉 가행)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63) 즉 인간의 목숨으로 태어난 것은 선업의 등류과이고, 여기서는 다만 다른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것은 살생의 등류과라는 것을 말하였을 뿐이라는 뜻.
64) 많은 서리와 우박을 만나게 되면 농사가 황폐하고 과실의 수확이 적어진다.
65) 사는 곳이 험난해지면 친구의 왕래가 끊기게 되니, 이것이 바로 이간어의 증상과이다.
66) 이상의 이숙·등류·증상의 과보는 예컨대 한 번의 살생업도에 의해 초래되는 것인가, 아니면 각기 다른 업도에 의해 초래되는 것인가 하는 난문.
67) 즉 살생의 가행으로 다른 이를 고통스럽게 하였으므로 가행업에 의해 지옥의 이숙과를 받게 되며, 다른 이의 목숨을 끊는 근본업도에 의해 지금의 인간으로 태어나 수명단축의 등류과를 받게 된다. 따라서 한번의 업도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가행업과 근본업에 따라 각각 다른 결과를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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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여기서 설한 '등류과'라고 하는 말은 이숙과와 증상과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약간 서로 유사한 것에 근거하여 일시 '등류'라고 설한 것일 뿐이다.68)
  이러한 10악업도는 어떠한 이유에서 각기 세 가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가?
  바야흐로 첫 번째의 살생의 업도는 다른 이를 죽이는 상태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괴로움을 받게 하고, 목숨이 끊어지게 하며, 위엄을 상실하게 한다.69) 곧 살생을 하면서 다른 이로 하여금 괴로움을 받게 하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의 이숙과를 받게 되는 것이며, 다른 이의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인취 중에서 수명이 짧아지는 등류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위엄을 허물어뜨림으로 말미암아 온갖 외적 도구의 광택이 적어지게 되는 증상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밖의 악업도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치대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선업도가 초래하는 세 가지 결과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살생을 떠나는 것을 혹은 익히고, 혹은 닦고, 혹은 많이 짓게 되면, 이 같은 힘으로 말미암아 하늘 가운데 태어나는 이숙의 과보를 받게 된다. 또한 거기로부터 몰하고서 인간의 동분 중에서 등류과를 받게 되니, 이를테면 살생을 떠난 이는 수명이 길어지는 과보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밖의 선업도의 경우도 위에서 언급한 악업도의 경우와 서로 반대되는 것이므로 이치대로 마땅히 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계경에서 설하기를, "8사지(邪支) 중의 색업은 세 가지로 분별되니,
  
  
  
68) 10악업도가 초래하는 결과를 이숙·등류·증상의 세 가지로 나누었지만, 여기서 등류과는 사실상 이숙과나 증상과와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살생에 의해 단명의 과보를 초래하고, 불여취에 의해 빈곤의 과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은 사실상 등류과가 아니다. 즉 등류과란 동류인과 변행인의 결과로서 동류 상사한 것이지만, 지금 여기서는 다만 유사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등류'라고 설한 것일 뿐이라는 뜻.
69) 여기서 위엄[威, ojas]이란 생물의 온기와 활동의 연원이 되는 것으로서, 정기(精氣)로 번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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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테면 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이 바로 그것이다"고 하였다.70)
  사어와 사업을 떠난 사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비록 그것을 떠나 사명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별도로 설하게 된 이유에 대해 게송으로 말하겠다.
  
  탐으로부터 생겨난 신·어업을
  '사명'이라 하니,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생활자구에 대한 탐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경설과 모순되기 때문에 올바른 이치가 아니다.
  貪生身語業 邪命難除故
  執命資貪生 違經故非理
  
  논하여 말하겠다. 진에와 우치에 의해 생겨난 어(語)와 신(身)의 두 가지 업을 순서대로 일컬어 사어와 사업이라고 하였으며, 탐으로부터 생겨난 신·어의 두 가지 업은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도로 '사명'으로 설정하였다. 이를테면 탐은 능히 온갖 유정의 마음을 앗아가며, 그것에서 생겨난 업을 금하고 방호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정명(正命)을 은근하고 정중히 닦게 하기 위해 앞의 것(즉 사어·사업)을 떠나 그것과는 별도로 한 가지를 설하게 되었던 것이니, 어떤 게송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세속에서는 사견이 제거하기 어려우니
  항상 이견(異見)에 집착하기 때문이며
  출가[道]에서는 사명을 방호하기 어려우니
  자구(資具)가 타인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다.71)
  
  
70) 『잡아함경』 권제28(대정장2, p. 198중 이하). 여기서 8사지란 8정도(正道)에 반대되는 8사도(邪道)를 말하는 것으로, 색업은 그 중에 외적으로 발동(發動)되는 어업·신업을 말한다.
71) 즉 타인의 시물로 생활을 영위하는 출가자의 경우 의식주에 관계된 일체의 생활의 자구(자재와 도구)가 타인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자칫 사명에 이르게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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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유여사는 주장하기를, "생활[命]의 자구를 대상으로 하는 탐욕에 의해 생겨난 신·어의 두 가지 업을 바야흐로 사명이라고 이름할 뿐, 그 밖의 다른 탐에 의해 생겨난 업은 사명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스스로의 희락(戱樂)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는 등의 일은 생활을 자조(資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경설에 위배되는 것으로, 이치는 결정코 그렇지가 않다. 즉 『계온경(戒蘊經)』 중에서 코끼리의 싸움을 구경하는 일 따위에 대해서도 세존께서는 역시 사명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니, 그것은 외적 대상을 그릇되이 향수하여 부질없이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72)
  그리고 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은 이와 반대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앞(본론 권제6)에서 설한 바와 같이 과(果)에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어떠한 업에 몇 가지의 과가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번뇌를] 끊는 도인 유루업은
  5과(果)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무루업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오로지 이숙과만이 제외된다.
  斷道有漏業 具足有五果
  無漏業有四 謂唯除異熟
  
  
  
  
72) 『계온경( laskandhika)』 이란 『유부비나야잡사』 권제40(대정장24, p. 413상)에서 야사(耶舍)비구가 열 가지 비법을 논의하면서 인용하고 있는 『장아함』「계온품처」를 가르키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장아함경』 권제14 「범동경(梵動經)」(대정장1, p. 89중)에서도 세존은 코끼리 따위를 키우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즉 코끼리 싸움 따위를 보는 것도 일종의 탐에 의해 일어나는 신업·어업의 사명이라고 훈계하였기 때문에 가무 등도 사명에 포섭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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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의 유루의 선업·악업에도
  역시 네 가지가 있으니, 이계과가 제외되며,
  그 밖의 무루업·무기업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앞에서 제외된 것이 제외된다.
  餘有漏善惡 亦四除離繫
  餘無漏無記 三除前所除
  
  논하여 말하겠다. 도(道)에는 능히 끊어짐을 증득하는 것이 있고, 아울러 능히 번뇌[惑]를 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 도[斷道]'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으로, 바로 무간도(無間道)를 말한다.73) 이러한 도에는 다시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이를테면 유루도와 무루도가 바로 그것이다.
  유루도의 업에는 5과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즉 이것의 이숙과(異熟果)란 이를테면 자지(自地) 중의 번뇌를 끊는 도에 의해 초래된 참으로 애호할 만한 이숙을 말한다. 등류과(等流果)란, 이를테면 자지 중의 동등하거나 혹은 증성한 후찰나의 온갖 상사법(相似法)을 말한다. 이계과(離繫果)란 이를테면 이러한 도의 힘이 번뇌를 끊음으로서 증득되는 택멸무위를 말한다.74) 사용과(士用果)란 이를테면 [번뇌를 끊는 바로 이 같은 무간]도에 의해 견인된 구유(俱有)·해탈(解脫)·소수(所修), 그리고 단(斷)을 말한다.75) 그리고 증상과란 그 자체 존재[自性]를 제외한 그 밖의 유위법으로, 오로지 앞서 생겨난 법만이 제외될 뿐이다.76)
  
  
73) '도(道)'에는 무간도와 해탈도가 있는데, 전자가 혹(惑) 즉 번뇌의 득(得)을 끊는 대치도라면, 후자는 그 같은 끊어짐을 증득하여 임지하는 대치도이다. 본론 권제23, 주75 참조.
74) 이를테면 미지정에 의한 유루의 무간도는, 후찰나에 그것과 동등하거나 수승한 미지정을 초래하고(등류과), 초정려의 희락을 초래하며(이숙과) , 욕계의 번뇌를 끊고 택멸을 증득한다(이계과).
75) 여기서 '구유'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무간도와 함께 생겨나는 법[俱生法]을 말하며,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무간에 낳아진 해탈도를 말하며, '소수'라고 하는 것은 미래세에 닦는 공덕을 말하며, '단'이라고 하는 것은 택멸을 말한다.(『현종론』 권제23, 한글대장경201, p. 73) 다시 말해 '구유'란 무간도와 동시에 생겨나는 수(受) 등의 상응법과 생(生) 등의 불상응법을, '해탈'이란 무간도에 의해 무간에 인기된 해탈도를 말하며, '소수'란 미래세에 이와 동류의 선을 닦는 것이며, '단'이란 무간도의 힘으로서 번뇌를 끊고 증득하는 택멸(이를 不生사용과라고 함) 등을 말한다.
76) 결과가 선행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과거의 유위법은 증상과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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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아가 번뇌를 끊는 도(즉 무간도) 가운데 무루도의 업에는 오로지 네 가지 과가 있으니, 이를테면 이숙과를 제외한 그것이다.77)
  그 밖의 유루의 선업과 불선업에도 역시 네 가지의 과가 있으니, 이를테면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78) 이는 앞에서 언급한 '번뇌를 끊는 도'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 밖의 것'이라고 한 것으로, 이후의 '그 밖'이라고 하는 말도 이러한 예에 따라 마땅히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그 밖(번뇌를 끊는 도 이외)의 무루업과 무기업에는 오로지 앞에서 제외된 것을 제외한 세 가지 과만이 있으니, 이를테면 앞에서 제외된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과가 바로 그것이다.79)
  온갖 업이 갖는 결과에 대해 이미 모두 분별하였으니, 다음으로 갈래[門]를 달리하여 업이 갖는 과상(果相)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80)
  그 중에서 먼저 선 등의 세 가지 업에 대해 분별하리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선업 등이 선법 등을 결과로 삼음에 있어서
  처음의 업은 네 가지·두 가지·세 가지 결과로 삼고
  중간의 업은 두 가지·세 가지·네 가지 결과로 삼으며
  마지막의 업은 두 가지·세 가지·세 가지 결과로 삼는다.
  善等於善等 初有四二三
  中有二三四 後二三三果
  
  
  
77) 무루도는 이숙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숙과를 초래하지 않는 것이다.
78) 유루의 선업·불선업은 번뇌를 끊는 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계과가 제외되는 것으로, 자지의 가애·비가애의 이숙과와, 동등하거나 수승한 상사법의 등류과와, 선업·불선업에 의해 견인된 구생 혹은 무간생법인 사용과와, 앞서 생겨난 법과 선업·불선업 자체를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유위법인 증상과를 초래한다.
79) 무루업·무기업은 이숙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숙과를 제외하는 것이며, 번뇌를 끊는 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계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80) 이하 3성(性)·3세(世)·제지(諸地)·3학(學)·3단(斷)의 업과 그 같은 법의 인과관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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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가장 마지막 [본송]에서 설하게 되는 '순서대로'라고 하는 말은 그것이 상응하는 바에 따라 앞의 갈래에서도 두루 그 뜻을 나타내야 한다.81)
  바야흐로 선·불선·무기의 세 가지 업이 각기 원인이 되어 그 순서대로 선·불선·무기의 세 법을 몇 가지의 결과로서 갖게 되는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뒤의 것의 예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의 선업은 선법으로써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를 제외한 그것이며, 불선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그것이며, 무기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등류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82)
  중간의 불선업은 선법으로써 두 가지 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그것이며, 불선법으로써 세 가지 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며, 무기법으로써 네 가지 과를 삼으니,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
  여기서 [무기법이 불선업의] 등류과가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83)
  말하자면 [견집소단의] 변행인 불선업과 아울러 견고소단의 그 밖의 불선업은 유신견(有身見)과 변집견(邊執見)의 품류인 온갖 무기법을 등류과로 삼기 때문이다.84)
  
  
81) 여기서 '가장 마지막에 설하게 되는 본송'이란 업(業)과 3성 등의 법의 인과관계를 분별하는 다섯 갈래 중 마지막인 3단업(斷業)의 분별에서의 본송(p.794)을 말한다.
82) 이상에서 각기 이숙과는 무기이기 때문에 제외되고, 원인과 결과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등류과가 제외되며, 이계과는 택멸무위, 즉 선이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83) 무기법이 불선업의 등류과가 되는 경우는 두 가지로서, 첫째 고제·집제 하에 있는 변행의 불선은 고제 하의 유부무기인 유신견과 변집견의 2견을 등류과로 삼으며, 둘째 견고소단의 변행이 아닌 탐 등은 고제 하의 유부무기인 유신견과 변집견을 등류과로 삼는데, 전자는 변행인으로서 획득하는 것이고 후자는 동류인으로서 획득하는 것이다.
84) 불선의 변행(변행인)과 견고소단인 불선의 비변행(동류인)은 유부무기인 유신견과 변집견(등류과)을 낳기 때문에, 유부무기인 유신견과 변집견은 견고소단 등의 불선법(등류과)을 낳기 때문에 등류과를 제외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품류란 유신·변집 2견과 상응하는 심소와, 아울러 구유하는 4상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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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의 무기업은 선법으로써 두 가지 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그것이며, 불선법으로써 세 가지 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
  여기서 [불선법이 무기업의] 등류과가 된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말하자면 유신견과 변집견의 품류인 온갖 무기업 따위는 온갖 불선법을 등류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기법으로써 세 가지 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
  
  3성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3세(世)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과거의 업은 삼세법을 각기 네 가지 결과로 삼고
  현재의 업도 미래의 법에 대해서는 역시 그러하며
  현재의 업은 현재의 법을 두 가지 결과로 삼고
  미래의 업은 미래의 법을 세 가지 결과로 삼는다.
  過於三各四 現於未亦爾
  現於現二果 未於未果三
  
  논하여 말하겠다. 과거·현재·미래의 세 업은 각기 원인이 되어 그것이 상응하는 바대로 과거 등의 법을 결과로 삼는데, 개별적으로 설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세의 업은 삼세의 법으로써 각기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85)
  현재세의 업은 미래의 법으로써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앞에서 설한 바와 같으며, 현재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
  
  
  
85) 이계과는 무위법이기 때문에 3세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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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86)
  미래세의 업은 미래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등류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87)
  그리고 뒤에 생겨나는 업(현재업과 미래업)에 선행하는 결과(과거법과 현재·과거법)가 있다고 설하지 않은 것은, 전법(前法)은 결정코 후법(後法)의 결과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3세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온갖 지(地)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동일한 지(地)에는 네 가지 과가 있으며
  다른 지에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과가 있다.
  同地有四果 異地二或三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지(地, 즉 3계의 9지) 중의 어떠한 지의 업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지의 법으로써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다.88) 그러나 만약 유루업이라면 다른 지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그것이다.89) 만약 무루업이라면 다른 지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으로, [무루의 업은] 계(界)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등류과가 제외된다고 하지 않은 것
  
  
86) 이숙과는 구생·무간에 멸하는 원인에 의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등류과는 앞서 생겨난 원인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각각 제외된다. 그리고 현재법이 과거법을 결과로 삼지 않는 것은, 전법(과거법)은 후법(현재업)에 의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후술)
87) 미래세에는 동류인·변행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인으로 하는 등류과가 제외되는 것이다.
88) 이계과는 지(地)에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즉 무루는 비계지(非繫地)이다.
89) 유루업이 다른 지의 법을 이숙과와 등류과로 삼지 않는 것은, 이숙과는 자지에 의해 초래되는 과보이기 때문이며, 등류과는 원인과 동일한 지에 계속되는 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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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90)
  온갖 지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학(學) 등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유학의 업은 세 법을 각기 세 가지 결과로 삼으며
  무학의 업은 한 가지·세 가지·두 가지 결과로 삼으며
  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닌 이의 업은
  두 가지·두 가지·다섯 가지 결과로 삼는다.
  學於三各三 無學一三二
  非學非無學 有二二五果
  
  논하여 말하겠다. 학(學)과 무학(無學)과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의 세 업은 각기 원인이 되어 그 순서대로 각각 세 가지 법(유학·무학·비학비무학 법)으로써 결과를 삼는데, 개별적으로 설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학의 업은 유학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며,91) 무학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는 것도 역시 그러하며, 비학비무학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등류과를 제외한 그것이다.92)
   무학의 업은 유학의 법으로써 한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증상과이며,93) 무학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
  
  
90) 이숙과는 유루인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제외한 것이며, 무루법는 3계에 계속(繫屬)되지 않으며 9지의 모든 무루법에 대해 동류인이 되기 때문에 등류과를 제외하지 않은 것이다.
91) 유학법은 무루이기 때문에 이숙과가 되지 않으며, 유위의 유학법이기 때문에 이계과도 되지 않는다.
92) 이숙과는 유루를 인으로 하기 때문에 제외하는 것이며, 또한 인(유학업)과 과(비학비무학법)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등류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93) 무학의 업은 수승하고 유학의 법은 열등하기 때문에 등류과가 되지 않으며, 또한 무학의 업은 열등한 유학의 법을 인기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과가 되지 않으며, 이숙·이계과가 되지 않는 것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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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며, 비학비무학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그것이다.
  비학비무학의 업은 유학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바로 그것이며, 무학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는 것도 역시 그러하며, 비학비무학의 법으로써 다섯 가지 결과를 삼는다.
  
  학 등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견소단(見所斷) 등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견소단의 업 따위는
  각기 세 가지 법을 결과로 삼음에 있어서
  처음의 업은 세 가지·네 가지·한 가지 결과로 삼고
  중간의 업은 두 가지·네 가지·세 가지 결과로 갖으며
  마지막의 업은 한 가지·두 가지·네 가지 결과로 삼으니
  이 모두를 순서대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見所斷業等 一一各於三
  初有三四一 中二四三果
  後有一二四 皆如次應知
  
  논하여 말하겠다. 견소단(見所斷)과 수소단(修所斷)과 비소단(非所斷)의 세 업은 각기 원인이 되어 그 순서대로 각기 세 가지 법(견소단·수소단·무단법)으로써 결과를 삼는데, 개별적으로 설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의 견소단의 업은 견소단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며,94) 수소단의 법으로써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며, 비소단의 법으로써 한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
  
  
94) 견소단의 법은 그 본질이 이숙이 아니며, 또한 무위가 아니기 때문에 이숙과와 이계과가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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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면 증상과가 바로 그것이다.95)
  중간의 수소단의 업은 견소단의 법으로써 두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바로 그것이며,96) 수소단의 법으로써 네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계과를 제외한 그것이며, 비소단의 법으로써 세 가지 결과를 삼으니, 이숙과와 등류과를 제외한 그것이다.
  마지막의 비소단의 업은 견소단의 법으로써 한 가지 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증상과가 바로 그것이며, 수소단의 법으로써 두 가지 과를 삼으니, 이를테면 사용과와 증상과가 바로 그것이며, 비소단의 법으로써 네 가지 과를 삼으니, 이숙과를 제외한 그것이다.97)
  그리고 [본송에서] 모두 '순서대로'라고 함은 그것이 상응하는 바에 따라 앞에서 언급한 온갖 갈래에도 두루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로서, 간략하게 설한 법도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온갖 업을 분별함에 있어서 마땅히 다시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니, 본론(本論)에서는 이를테면 마땅히 지어야 할 업[應作業]과 마땅히 지어서는 안 되는 업[不應作業], 그리고 마땅히 지어서도 안 되고 짓지 않아서도 안 되는 업[非應作非不應作業]과 같은 세 가지 업을 설하고 있는데,98) 그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염오의 업이 '마땅히 지어서는 안 되는 업'이지만
  
  
  
95) 비소단법은 무루이고 선이나 이숙과는 무기이기 때문에 이숙과를 제외하는 것이며, 견·수소단법은 유루이나 비소단법은 무루이기 때문에 서로 동류·변행인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등류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또한 견소단법은 무간·구시에 비소단법을 낳지 않기 때문에 사용과를 제외하며, 견소단의 업은 번뇌를 끊는 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계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96) 견소단의 법은 이숙이 아니기 때문에, 수소단과 동류가 아니기 때문에, 이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숙·등류·이계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97) 비소단법은 무루이기 때문에 이숙인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숙과를 제외하는 것이다.
98) 구역에서는 순서대로 여리작업(如理作業), 비리작업(非理作業), 비리비비리작업(非理非非理作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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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는 궤칙을 깨트리는 것도 역시 그러한 업이라고 설하며
  '마땅히 지어야 할 업'은 이와 반대의 것이며
  두 가지 모두와 반대되는 것을 세 번째 업이라고 한다.
  染業不應作 有說亦壞軌
  應作業飜此 俱相違第三
  
  논하여 말하겠다. 어떤 이는 설하기를, "염오의 업을 일컬어 '마땅히 지어서는 안 되는 업'이라고 하니, 비리(非理)의 작의(作意)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온갖 궤칙(軌則)을 깨트리는 온갖 신업·어업·의업도 역시 '마땅히 지어서는 안 되는 업'이라고 이름한다. 즉 존재하는 온갖 것으로서 마땅히 이와 같이 행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고,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착의(著衣)하고, 마땅히 이와 같이 먹어야 하는 일 따위를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마땅히 지어서는 안 되는 업'이라고 하니, 그것들은 세속의 예의(禮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99)
  이것과 서로 반대되는 것을 '마땅히 지어야 할 업'이라 이름한다. 즉 어떤 이는 설하기를, "선업을 일컬어 '마땅히 지어야 할 업'이라고 하니, 여리(如理)의 작의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여사는 "온갖 궤칙에 부합하는 신업·어업·의업도 역시 '마땅히 지어야 할 업'이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모두와 반대되는 것을 세 번째 업(즉 '마땅히 지어서도 안 되고 짓지 않아서도 안 되는 업')이라고 이름하니, 여기에도 역시 상응하는 바에 따라 두 가지 설의 차별이 있다.100)
  
  
99) 즉 온갖 무부무기의 신업으로서 혹은 머물고, 혹은 가며, 혹은 먹고 마시는 등 유정이 지켜야 할 온갖 세속의 예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궤칙을 깨트리는 신업이라고 하며, 형태·말·시제, 그리고 작자 등을 파괴하는 유정의 온갖 무부무기의 어업으로서 다만 세속의 예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모두 설하여 궤칙을 깨트리는 어업이라고 하며, 앞의 두 가지를 등기(等起)시키는 사(思)를 설하여 궤칙을 깨트리는 의업이라고 이름한다.(『현종론』 권제23, 앞의 책, p.79)
100) 즉 염오와 선의 업을 제외한 무부무기의 업을, 혹은 궤칙에 부합하는 것도 혹은 그것을 허무는 것도 아닌 업을 '마땅히 지어서도 안 되고 짓지 않아서도 안 되는 업'이라고 이름한다. 그런데 중현은 세속(世俗)에 의거할 경우 후자(유여사의 설)도 역시 그럴 수 있으나, 승의(勝義)로서 말하자면 전자가 선설이라 평석하고 있다.(『현종론』, 앞의 책, 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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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업[一業]에 의해 다만 한 번의 생[一生]이 인기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여러 번의 생[多生]이 인기된다고 해야 할 것인가? 또한 한 번의 생은 다만 한 가지 업에 의해 인기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다수의 업[多業]에 의해 인기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한 가지 업은 한 번의 생을 인기하며,
  다수의 업은 능히 그것을 원만하게 한다.
  一業引一生 多業能圓滿
  
  논하여 말하겠다. 우리가 종의(宗義)로 삼는 바에 의할 것 같으면 마땅히 '마땅히 한 가지 업에 의해 오직 한 번의 생만이 인기될 뿐이다'고 설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번의 생'이란 말은 하나의 동분(同分)을 나타내는 것으로, 동분을 획득하여야 비로소 그것을 '생(生)'이라고 이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101)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존자 무멸(無滅, Anirudha, 阿那律)은 다음과 같이 스스로 말하였겠는가? "내가 기억하건대 옛날 어느 때 수승한 복전(福田, 無患이라는 독각)에게 한번 먹을 것을 베푼 이숙업으로 말미암아 삼십삼천을 일곱 번 되풀이하여 태어났고, 일곱 번 인간으로 태어나
  
  
  
101) 온갖 유정은 유정으로서의 보편성 즉 동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정이라 불리는 것으로(본론 권제5 참조), 그 같은 동분을 획득할 때 비로소 유정의 생이 현상하게 된다. 그리고 유부에 의하는 한 유정의 생을 현상시키는 보편적 동분은 한 가지 업에 의해 초래되며[一業能引一生], 남녀·빈부·귀천 등의 개별적 동분은 다수의 업에 의해 초래된다[多業能引圓滿一生]. 이 때 전자 즉 총보(總報)를 초래 인기하는 업을 인업(引業, 구역에서는 총보업, k epeka-karma)이라 하고, 후자 즉 별보(別報)를 초래하여 유정의 일생을 다양하게 원만 장엄시키는 업을 만업(滿業, 구역에서는 별보업, parip raka-karma)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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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륜성제(轉輪聖帝)되었으며, 마침내 최후로 위대한 석가의 가문에 태어나 진귀한 재물을 풍족히 하고 많은 쾌락을 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102)
  그는 한 가지 업[一業]에 의해 한번의 생[一生] 중의 크나큰 부귀와 많은 재물 그리고 숙생지(宿生智)를 초래하였고, 이에 편승하여 그 밖의 생을 초래할 복을 지었으며, 이렇게 전전(展轉)하여 마침내 최후신에 이르러 부귀한 집에 태어나 구경(究竟)의 과보(즉 아라한과)를 얻게 된 것으로, 이 모두는 최초의 힘에 의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이같이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한 푼의 금전(金錢)을 가지고서 이리저리 무역하여 천 냥의 금전을 획득하고서 '나는 본디 한 푼의 금전이 있었기에 크나큰 부귀와 즐거움을 획득하였도다'라고 노래하는 것과 같다.(유부의 답)
  또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는 옛날 어느 때 한 번 먹을 것을 베풀면서 다수의 수승한 사원(思願)을 일으켰기에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 중에 태어나기도 하였는데, [그 사원이] 각 찰나에 동일하지 않고 이숙에 선후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업이 능히 다수의 생을 인기하는 것이 아니며, 역시 한번의 생이 다수의 업에 의해 인기되는 일도 없으니, 중동분은 나누어져 차별되지 않는 것이다.103)
  그러나 비록 한 가지 업이 한 가지 동분만을 인기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원만(圓滿)은 다수의 업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인정[許]하니, 비유하자면 화가가 먼저 한 가지 색으로써 그림의 형상을 그리고 난 후에 여러 가지 채색
  
  
  
102) 『광기』나 『보소』에 의하는 한 이 물음은 경부(經部)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즉 동분 내지 제법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량부의 경우, 업은 그 세력에 따라 전변 상속하여 차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생의 산출이 가능하며, 그래서 이와 같은 무멸, 즉 아나율(阿那律, Anirudha)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아나율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천안(天眼)제일로서 십대제자 중의 일인. 그는 일찍이 숙세에서 대기근을 만나 한 그릇의 밥을 무환(無患)이라 이름하는 독각에게 보시한 공덕으로 이와 같은 과보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중아함경』 권제13 「설본경(說本經)」, 대정장1, p. 509상)
103) 유부의 이론상 후생을 초래하는 업은 이숙과 그 시기가 결정된 정업(定業)인데, 만약 한 가지 업이 여러 생을 초래한다면 어느 생에서 그 과보를 인기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에서 혼란이 야기된다. 또한 유부이론상 한 번의 업은 하나의 결과 즉 하나의 동분만을 산출하는데, 다수의 업이 한 번의 생을 낳는다면 한 번의 생에 몇 번의 생사(生死)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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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그려 넣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비록 다 같이 사람의 몸을 받았다 할지라도104) 그 중에는 사지의 몸과 온갖 감관과 모습[形量]과 미모와 힘의 장엄을 갖춘 자도 있고, 혹은 이 같은 온갖 장엄에 많은 결함을 지닌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로지 업력만이 능히 생을 인기하고 원만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일체의 불선과 선의 유루법에도 이숙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도 모두 [생을] 인기하고 원만하게 할 수 있지만, 업이 그 중에서도 수승하기 때문에 다만 업이라는 명칭만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일체의 불선과 선의 유루법) 중에서 업과 구유(俱有)하는 것은 능히 [생을] 인기하고 능히 원만하게 하니,105) 업의 수승함에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업과 구유하지 않는 것이라면 [생을] 능히 원만하게는 하여도 인기하지는 못하니,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두 종류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106)
  게송으로 말하겠다.
  
  두 가지 무심정(無心定)과 득(得)은
  능히 인기하지 않으며, 그 밖의 것은 모두에 통한다.
  二無心定得 不能引餘通
  
  논하여 말하겠다. 두 가지의 무심정(무상정과 멸진정)은 비록 이숙을 갖지만 중동분을 인기할 만한 세력이 없으니, 온갖 업과 구유(俱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득(得) 역시 중동분을 인기할 만한 세력이 없으니, 온갖
  
  
  
104) 여기서 사람의 몸[人身]이란 신근(身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중동분을 말한다. 즉 신근은 만업에 의해 초래되는 별보(別報)이다.
105) '업과 구유하는 것'이란 이러한 업과 상응하는 제 심·심소 및 생(生) 등의 4상(相)과 같은 업과 구유하는 선·불선의 유루법으로서, 업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는 법[一果法]을 말한다.
106) 앞서 생을 인기(引起)하여 원만하게 하는 것은 업뿐만 아니라 유루의 선악법도 그러하다고 하면서 여기에도 역시 '인기'와 '원만' 모두에 통하는 것과 원만하게는 하여도 인기하지 않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하 이에 대해 분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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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과 동일한 과보를 초래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밖의 일체의 법(온갖 불선과 선한 유루법)은 '인기'와 '원만' 모두에 통하는 것이다.
  
  박가범(薄伽梵)께서는 "무거운 장애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업장(業障)과 번뇌장(煩惱障)과 이숙장(異熟障)이 바로 그것이다"고 설하였다.107) 이와 같은 세 가지 장애의 본질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세 가지 장애란 무간업과
  자주 일어나는 번뇌와,
  아울러 일체의 악취와
  북구로주와 무상천을 말한다.
  三障無間業 及數行煩惱
  幷一切惡趣 北洲無想天
  
  논하여 말하겠다. [본송에서] 말한 무간업이란 다섯 가지의 무간업을 말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어미를 해치는 것[害母, 구역은 殺母]이며, 둘째는 아비를 해치는 것[害父, 구역은 殺父]이며, 셋째는 아라한을 해치는 것[害阿羅漢, 구역은 殺阿羅漢]이며, 넷째는 화합된 승가를 깨트리는 것[破和合僧]이며, 다섯째는 악심으로써 부처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惡心出佛身血]이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종류를 일컬어 '업장'이라고 한다.
  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주 일어나는[數行] 번뇌로서, 이를테면 항상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둘째는 맹리(猛利)한 번뇌로서 이를테면
  
  
  
107) 업장(karma vara a)·번뇌장(kle vara a)·이숙장(vik ya vara a)은 모두 무루성도를 장애하고 선근을 장애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장애[障]'라 이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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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의 번뇌를 말한다. 즉 여기서는 오로지 자주 일어나는 번뇌를 '번뇌장'이라 이름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예컨대 선체(扇) 등이 그러한 것과 같다.108) 이를테면 자주 일어나는 번뇌는 억제하고 끊기[伏除]가 어렵기 때문에 '장애'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09) 즉 상품의 번뇌는 비록 맹리하다고는 할지라도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제하고 끊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하품 중에서 자주 일어나는 번뇌는 비록 맹리하지는 않을지라도 억제하고 끊기가 어려우니, 그것은 항상 작용[行]하고 있어 억제하고 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품을 인연으로 하여 중품을 낳고, 중품을 인연으로 하여 다시 상품을 낳으니, 그것을 억제하고 끊을 도가 생겨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번뇌 중에서 품류의 상·하에 따라 다만 자주 일어나는 것만을 '번뇌장'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3악취(지옥·아귀·방생)의 전부와, 인취 중의 북구로주와, 그리고 [천취 중의] 무상천을 일컬어 '이숙장'이라고 한다.110)
  이것은 어떠한 법을 장애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능히 성도(聖道)를 장애하며, 성도의 가행인 선근을 장애한다.
  또한 이치상으로 볼 때 [5무간업] 이외의 다른 결정업도 역시 마땅히 업장 중에 [포섭시켜] 설해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악취와 난생(卵生)·습생(濕生), 그리고 여인의 몸과 제8유(有) 등을 결정코 초래하는 그 밖의 일체의 업이 바로 그것이다.111) 그러나 다섯 가지 인연에 의해 관찰하기 쉽고 알기 쉬운 업만을 별도로 업장 중에 포섭시켜 설하니, [여기서 다섯 가지 인연이란] 이
  
  
108) 선체( a dha, 無根, 즉 생식능력이 없는 이) 등에는 별도의 맹리한 번뇌는 일어나지 않지만 시종일관 미약한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심력이 둔중하여 능히 수행할 수 없다고 한다.
109) 여기서 '억제하고 끊는다[伏除]'고 함은 유루의 7방편(3賢과 4善根)으로써 억제하고[伏], 견도로써 끊는 것[除]을 말한다.
110) 3악취는 고통과 우치 때문에, 북구로주는 무상을 감득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상천은 외도가 최고의 단계로 믿는 바이기 때문에 능히 성도와 그 가행으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한다. 그래서 이를 이숙과로서의 장애, 즉 이숙장이라고 이름한 것이다.(차송 장행 참조)
111) 욕계 경생(經生)의 성자는 여덟 번째 생을 초래하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일곱 번째 생에서 열반에 든다. 따라서 여덟 번째 생을 초래하는 업이란 필시 성도에 들지 못하는 이생의 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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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테면 처(處)와 취(趣)와 생(生)과 과보와 보특가라를 말한다.112) 즉 온갖 업 중에서 오로지 5무간업만이 이러한 다섯 종류의 인연을 갖추고 있어 관찰하기 쉽고 알기 쉽지만 그 밖의 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업장 중에 [포섭시켜] 설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업장 이외] 다른 장애의 폐지와 설정에 대해서도 마땅히 상응하는 바대로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장애 가운데 번뇌장과 업장의 두 가지가 가장 무거우니, 이러한 장애를 갖은 자는 두 번째 생 중에서도 역시 그것을 대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13)
  그러나 비바사사(毘婆沙師)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전자(번뇌장)가 후자(업장)를 능히 인기하기 때문에 후자가 전자보다 가볍다."
  이 같은 [무간업의] '무간'이라는 말은 어떠한 뜻에 근거한 것인가?
  이숙과가 결정되고서 더 이상 다른 업이나 다른 생이 [개입할] 간격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따라서 이것은 오로지 간격이 없다는 뜻에 근거한 명칭이다. 혹은 이러한 업을 지은 보특가라가 이 세상에서 목숨을 마치면 [시간적] 간격이 없이 결정코 지옥 중에 바로 떨어지기 때문에 '무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즉 그러한 업은 무간을 갖기 때문에 '무간'이라는 명칭을 획득하였다. 다시 말해 무간의 법과 화합하기 때문에 '무간'이라 이름한 것으로, 사문성(沙門性)과 화합한 것을 사문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114)
  
  
  
112) 이를테면 결정코 성도를 일으킬 수 없어 성자위에 들지 못하는 악취·난생·습생·여인신·제8유 등을 초래하는 결정업도 이치상으로는 업장에 포섭되어야 하겠지만, 포섭시키지 않은 것은 처(處)·취(趣)·생(生)·과보·보특가라 등의 다섯 인연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5무간업은 어미·아비 등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나며[所起處], 그것을 성취하면 반드시 지옥취에 떨어지며[所歸趣], 차생(次生, 즉 무간생)의 이숙을 초래하며, 비애(非愛)의 과보를 초래하며, 중혹(重惑)이 현행하여 보특가라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업장에 포함시킨 것이다.
113) 이는 논주 세친의 설로서, 업장을 갖은 이의 차생(次生)은 지옥이고, 번뇌장을 갖은 이의 차생은 악취이기 때문에 양자 모두 무겁다고 한 것이지만, 번뇌장이 더 무겁다는 다음의 비바사사의 설과 대비된다.
114) 사문성(sramanya)이란 무루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도를 품은 이를 '사문'이라 한다.(본론 권제24, p.11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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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땅히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니, 세 가지 장애는 어떠한 취(趣)에 존재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간업은 세 주(洲)에만 존재하지만
  여타의 선체 등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은혜가 적고 수치심이 적기 때문이며
  그 밖의 장애는 5취 모두에 존재한다.
  三洲有無間 非餘扇
  少恩少羞恥 餘障通五趣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무간업은 오로지 인취(人趣)의 세 주(洲)에만 존재하며, 북구로주와 그 밖의 다른 취와 다른 계(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 주 안에서도 오로지 여자와 남자만이 무간업을 지을 뿐 선체(扇) 등은 짓는 일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설하였던 그들에게 선근을 끊는 불율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의 역죄(逆罪, 즉 무간죄)가 없는 이유이다.115) 또한 그들의 부모와 그들 자신은 순서대로 은혜가 적고 수치심이 적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의 부모는 그들에 대해 은혜가 적으니, 그들의 신체적 결함[缺身]에 증상연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愛念] 또한 적기 때문이며, 그들도 부모에 대해 참괴심(慚愧心)이 미약하기 때문이다.116) 즉 현전하는 증상의 참괴심이 허물어졌기 때문에 무간죄에 저촉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아귀와 방생이 비록 그 어미를 해치는 일이 있을지라도 무간죄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미 해석하였다.117)
  
115) 선체( a dha, 無根)나 반택가 등에 악계 즉 불율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5 주61) 참조.
116) '참'은 마음의 자재성, 혹은 공덕있는 자를 공경하는 것이며, '괴'는 저열한 법을 혐오하는 것, 혹은 자신의 죄과나 자타의 비방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117) 즉 아귀와 방생에게 있어서도 그들 부모의 은혜가 적으며, 또한 스스로도 수치침이 적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거운 참괴심을 품어야 비로소 무간죄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식에 대해 인간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은혜가 없으며, 자식도 그들에 대해 인간에게 있는 것과 같은 참괴심이 없기 때문에 설사 부모를 죽이더라도 무간죄를 성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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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대덕(大德)은 설하기를, "만약 깨달음이 분명하면 역시 무간업을 성취하니, 총명한 말과 같다"고 하였다.118)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비인(非人)의 부모를 해치더라도 역죄를 성취하지 않으니, 마음과 대상이 저열하기 때문이다.119)
  이상 업장은 오로지 인취의 세 주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별하였다.
  그 밖의 장애는 5취에 모두 존재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숙장의 경우에는] 인취 중에서는 오로지 북구로주에만, 천취 중에서는 오로지 무상처(無想處)에만 존재한다.
  
118) 옛날 영리한 말이 있었는데 그 어미와 교미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에 안면을 가리고 교미하게 하였다. 그 후 말이 이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남근을 자르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가리킨다.(『대비바사론』 권제119, 한글대장경122, p. 442)
119) 여기서 마음은 해칠려는 마음. 즉 비인의 부모(알이나 방생등으로부터 태어나는 경우)는 인간에 대해 능히 은혜를 베풀지 못하며, 인간 역시 비인의 부모에 대해 증상의 참괴심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