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선문정로 / 무생법인無生法忍

通達無我法者 2008. 1. 30. 14:36
선문정로(禪門正路)

무생법인無生法忍
성문은 부쳐남의 성스런 마음을 모르고 공정空定에 머물러 있고 모든 보살은 공 空(人空)에 빠지지 적寢에 막혀 불성을 보지 못한다. 만약 근기가 뛰어난 중생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를 받고는 말 끝에 분명히 일일 차려 다시는 계급과 지휘를 거치지 않고 본성을 단박에 깨친다.
십지의 대보살도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숭二乘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지혜로운 상근기는 지위와 계급을 초월하여 한 찰나에 구경무심지에 단박 들어가 정각을 이루니, 이것이 다·른 종파에서 뒤따를 수 없는 선문輝門만의 특색이다. “본성을 단박에 깨친다”함은 “본성을 단박에 본다(願本性)’ 는 말과 같은 내용이니, 구경각인 진정한 깨침을 말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보르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은 것이 여래의 청정선이다.

깨침이라 함은 자기 본성을 철저하게 깨침이니 한번 깨치면 영원히 깨쳐서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마치 해가 나타나면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지혜의 해가 나타나면 번뇌의 검은 구름이 없어지고 안의 마음과 바깥 경계가 완전히 없어져서 망상이 생기지 않는다. 망상이 이미 생기지 않으니 이것이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본래 있는 것을 지금 갖는 것이므로 도를 닦고 좌선할 것이 없다.
닦을 도도 없고 일어날 망상도 없는 이것이 바로 여래청정선이다.

망상이 완전히 없어지고 무생無生을 철저히 깨쳐서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 여래청정선 如來淸奠禪을 내용으로 하는 마조馬祖의 돈오賴悟는, 십지를 단박에 뛰어넘은 구경무심의 진정한 깨침(證悟)임이 분명하다. 마조뿐만 아니라 달마達磨의 직계정전인 정안 종사들은 모두 무생법인을 원만히 깨쳐 불과를 이룬 대성인들이다.

선문에서 정통으로 전하는 돈오와 견성은 부분적 깨침(分證)이나 이해적 깨침解惜)이 결코 아닌, 원만한 깨침(圓證)인 증오證悟임이 분명하다.

부처지위에 단박 들어가서 여래의 거룩한 지혜를 스스로 깨침을 여래청전선이라 한다.
마조가 말한 여래선 如來禪은 「능가경 凌駕經」의 구경불지究經佛地를 말한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지금 이 나라에선 선禪있다고 하니 어떤 것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움직이지도 않고 선을 하지도 않음이 여래선이나 선을 한다는 생각이 일어남도 벗어나는 것이다. "
무릇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갖가지 배움과 모든 반연을 물리쳐 버리고 결정코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매우 깊은 법을 들어도 마치 맑은 바람이 잠깐 귓가를 스쳐가듯 다시는 따라가지 않아야 하니, 이것이 "매우 깊이 여래선에 들어가 선을 한다는 생각이 나는 것마저 벗어난다는 것이다.
옛부터 모든 조사는 오직 일심법 一心法만을 전하고 다시 두 가지 법이 없어서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켰으니, 등각과 묘각을 단박에 뛰어 넘어 결코 두 번째 생각에 흘러들지 않는다. 「黃棄--古尊宿語錄三」한 스님이 물었다. ‘가섭이 부처님의 마음 도장를 전해 받았다고 허니 말 전하는 사람0| 아닙니까?’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
"만약 말 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양의 뿔 자취 찾음을 면하지 못한 것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했다. "가섭은 스스로 본래 마음을 깨달아 얻었으므로 양의 뿔을 찾음이 아니다. 만약 여래의 마음을 깨달아서 여래의 뜻을 통해 보며 여래의 모습을 바로 보는 이는, 여래의 심부름꾼에 속하여 말 전하는 사람이 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육조(六禮)는 경전을 모르는데, 어찌하여 가사(法衣)를 전해 받아 조사가 되었습니까?"
스님께서 말했다.
“육조는 당시에 다만 말없이 계합하여 여래의 매우 깊고 비밀한 뜻을 증득하였으므로 그에게 법을 부촉하였다.

여래의 마음과 여래의 뜻을 환히 보아 여래선을 전해 받은 이는 등각과 묘각을 초월한 서른세 분 조사라고 하였으니, 뛰어난 대조사인 마조, 백장, 황벽 3대의 법문은 진실로 종문 만고의 표준이다.
여래선과 조사선이 어찌 두가지이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고 각기 검고 흰 것을 망령되게 갈라놓아 완전히 종지에 어긋남을 면치 못한다.
달마가 멀리 서천 27대의 조사들을 계승하여 여래의 둥글고 지극한 심봉으로 선을 삼았다.
여래선과 조사선이여! 한손을 손바닥과 주먹으로 나눔과 같다.
골수를 엎은 때에는 이미 직지直旨를 잊어버렸고, 연꽃을 들어 보인 곳에서 벌써 단전單傳을 잃어버렸다. 오 烏자 언 焉자를 마馬자로 잘 못 쓰고, 누런 나뭇잎으로 황금이라 한다"고 통탄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앙상仰山 과 향엄香嚴의 문답을 증거로 인용하지만, 이것은 법문을 들어 보인 것으로서 선가에서 서로 법을 내 보이는 것임을 눈 밝은 종사들이 지적한 바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진귀조사설을 높이 제창하여 여러 주장들이 분분하다. 부처님의 전기에 대한 연구가 극도로 발달된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통하여 우리 나라 말고는 진귀조사설은 전혀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잘못 전해진 것이 분명하니 일고의 가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외국학자들의 비웃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므로 그릇된 사상은 단연코 시정해야 한다.

여래선이여! 맹렬한 불꽃 속에서 흰 연꽃이 피어남이요, 조사의 듯이여! 깊은 바다 밑에서 붉은 먼지가 때를 지어 일어나구나.
조사선과 여래선이여! 뿔 부러진 진흙 소가 밤새도록 울부짖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양산이 말하기를 , 사형이 여래선은 깨달았다고 인정히나 조시선은 꿈에도 못보았다고 하겠다 하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虛堂)께서 말했다. "뱀이 대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 스님이 말했다. “양산이 공연히 굴욕을 받았습니다." 스님께서 말했다. "너 역시 벗어나지 못했다.”
기왓장이 대나무 때리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았으나 조사선은 환히 깨치지 못하였다 했고 복숭아꽃을 보고 다시 의심이 없었으나 노형은 분명코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앙산과 현사는 항엄과 영운의 땀 냄새조차 꿈에도 말지 못하였다

웅암應華, 중봉中峰, 허당虛堂은 임제를 바로 전한 정안종사요, 치절編色은 밀암密養의 직계 법손으로서 삼대 명찰언 천동사天童寺, 영은사靈暴寺, 경산사經山寺에 칙령을 받고 주지한 큰 스님들이다.
정통 법맥이신 큰스님들은 한결같이 여래선이 곧 조사선임을 명시하셨으니, 앙산과 현사玄沙의 신기한 기틀과 은밀한 활용은 오직 바른 안목을 갖추어야 엿볼 수 있다. 앙산과 현사의 작용처는 납승이 서로 법을 내보이는 경계(回互時節)이다. 한 스님이 천동각에게 물었다. ‘현사는 무엇 때문에 지당하기는 참으로 지협}나 노형은 분명코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까? 각覺이 말하기를“ 이것은 납승들의 회호시절이다 하였으니, 천동각은 실로 뛰어난 정안종사이다.

부처님은 남이 없음(無生)을 납으로 하고 머뭄 없음을 머뭄으로 한다.
무생을 깨달으면 곧 부처지위인 묘각이다. 한 생각 사이에 단박 뛰어넘으니 어찌 번거로이 논할 바 있으랴

무생이 구경각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망상을 모두 없앰을 근본으로 하는 마조의 무생도 역시 그러하다. 경전에서는 무생법인에 대해 몇 종류를 설하였으나, 묘각 妙覺만이 진정한 무생이다.

분명하게 참마음을 지켜서 허망한 생각0|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무생(無生)이다.
본래 가진 참마음을 재서 뱀이 일어나지 않고,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마음0| 없어지면 자연히 부처님과 똑같다.
허망한 생각이 끊어지므로 바른 생각이 원만히 갖춰지며, 바른 생각이 원만히 갖춰짐으로 적조 寂照의 참 지혜가 생기고, 적조의 참 지혜가 생기므로 만법의 근원을 통달하고, 만법의 근원을 통달함으로 무여열반 無餘涅槃을 증득한다.
중생의 불성은 본래 청정하여 마치 구름속의 해와 같다. 펴므로 분명히 본래 가진 참 마음을 지켜서 망념의 구름이 모두 흩어지기만 하면 자성지혜의 태양이 곧 나타난다.

망념이 다 없어지면 이것이 무생이다. 무생은 곧 성불이며, 바른 생각이며, 적조의 지혜이며. 무여열반이며, 구경무심며, 마조가 말한 돈오觸俉이다. 오조 五祖의 가르침은 마조의 법어와 서로 목 맞으니, 고금의 불조에게 어찌 다른 주장이 있으리오.

단박 깨쳐 무생을 통달하고 나면 모든 영화나 곤욕에 어찌 근심하며 기뻐하리오.
법의 재물을 훼손하고 공덕을 파멸하는 것이 다 이 심心과 의義와 식識에 있다. 그러므로 선문사에서는 허망한 마음을 완전히 물리치고 무생의 지견력知見力에 단박에 들어간다고 한다.

심心은 제8식이고, 의義는 제 7식이며, 식識 제6식을 말한다. 제8식의 미세망상과 제6식과 제7식의 거칠고 무거운 망상을 완전히 없앤 것이 무생이다. 제8식의 미세망상까지 다 없애버린 무생은 즉 견성이며 정각이니, 이것이 원만히 깨치고(圓證), 단박 깨치는 돈증 돈오이다.

식심 識心이 적멸하여 털끝만치도 요동함이 없으면 그것을 무상정각이라 이름한다.

식과 심(識心)은 망상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중생의 식과 심이 전부 멸종F면 정각이 아닐 수 없으니 이것을 무생이니, 무심이니 한다. 선문에서 정통으로 전하는 돈오는 망상이 다 없어진 구경의 무생을 내용으로 하는. 원만한 깨달음(圓證)인 돈오이다. 선문에서 깨침이란 증득함(證)을 생명으로 삼고 이해(解)는 알음 알이이며 사악한 지견이라 하여.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절대로 배척한다. 그 이유는 망상의 헤아림(情解)으로는 심성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며,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