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정로(禪門正路)
모든 부처님만이 분명하게 불성을 불 수 있다
불안佛眼으로 보기 때문에 명명백백하다
불성을 분명히 봄으로 명행족明行足이라 한다
어두운 무명의 굴을 타파하고, 긴 밤의 혼미한 꿈에서 깨어나서 밝은 대낮같이 확연히 비추어야만 참 성품을 바로 본다. 십지성인이라도 미세한 무명이 바른 안목을 가려서 어두운 밤에 물건을 보듯 꿈속의 미망에 있으므로, 정각正覺이 아니며 견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뇩보리, 즉 무상정각을 성취해야 불성을 바로 본다는 불조 정전正傳의 철칙에 따라. 구경각인 불지 이에는 단연코 견성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견성이 이렇게도 어려우므로. 부처님 이후로 견성하여 도를 깨친 이가 얼마나 될는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경각인 견성은 중생의 근본무명,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완전히 끊기만 하면 된다.
중생의 부처성품은 불가사의하여서. 부처와 조사의 훌륭한 가르침에 따라 실답게 수행하면 오역십악五述十惡의 극중죄를 지은 사람도 이 생에서 견성할 수 있다고 부처와 조사가 다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함은 이를 말함이다. 오직 당사자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으로 옛부터 선문의 정안종사들 가운데 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완전히 끊어서 구경의 무심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종푼에서는 미세망상을 제8마계摩界라 히여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극력으로 배척하였고, 채8마계인 근본무명을 타파해야만 정안으로 인정한다. 불조의 혜명이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두 운으로 불성을 훤혀 본다
모든 부처님은 마치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불성을 분명히 본다
모든 부처님은 정定과 혀鷹를 균등히 지니므로 마치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아무 걸림 없이 불성을 분명히 본다
정과 혜가 균등한, 대적광삼매大寂光三味에 있는 여래의 지위가 아니면 불성을 분명히 보지 못하니, 견성이 곧 성불이며 무상정각이다.
크게 깨달으신 여래깨서 대열반에 들어간다.
이 대열반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매우 갚은 선정이다
만약 불성을 바로 보면 번뇌를 완전히 끊을 수 있으나 이것을 대열반이라 한다.
만약 불성을 분명히 바로 보면 그것을 대열반이라 한다. 이 대열반은 코끼밑바닥까지 닿을 수 있으니, 큰 코끼리란 모두 부처님을 말한다.
중생의 불성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다 그러므로 불성을 바로 보아 나고 죽음을 벗어나서 대열반을 얻는다
모든 부처님의 깊고 깊은 선정인 대열반, 즉 무여열반은 오직 불성을 바로 보아야만 성취된다. 이것은 견성이 곧 여래이며 대열반이기 때문이다.
「얼반경」에서 말하기를 “금강같이 단단한 한없는 보배창고는 증감이나 경함이 없다.”고하였으니 그러므로 원교圓敎하 한다.
지자智者 대사는 「화엄경」,「법화경」, 「열반경」등을 원교圓敎라고 판정하였다.
「열반경」은 여래가 마지막에 쇠신 궁극의 설법이므로 원교라 한 것이며, 증득하신 불과는 원교인 가장 높은 지위로서 무여열반이다.
다시 원하노니, 모든 중생이 문수보살등처럼 온갖 번뇌를 영원히 부수고 불성을 분명하고 ’ 바르게 보게 하여지이다.
문수보살과 모든 보살은 이미 무한한 세워레 성스런 도를 닦아서 부처 성품을 분명히 발게 알았다.
무상정각을 이룬 여래위, 즉 부처자리(佛地)만이 분명하게 불성을 본다 함이 부처님의 혜명이다. 문수 보살이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고 하는 이유는 문수는 이미 부처가 되고서 방편상 출현한 보살이기 때문이다. 즉 문슈: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부수어 이미 정각을 이루고서, 과거에 용종상여래,대신여래,보상여래,환회장마니보적여래 등으로 출현한 큰 힘을 갖춘 보살이므로, 분명하게 불성을 본 분이다.
문수 이외에“모든 보살들”이라고 말한 것도 문-수와 같은 큰 힘을 갖춘 보살을 가리킨다.
무엇을 “분명히 본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자기 손바닥네 있는 아마륵과를 보는 것과 같다.
위 없는 도와 보리와 열반은 오직 여래만이 분명히 알고 밝게 보고 바르게 깨달으며 모든 보보살들도 그러하다
손바닥의 아마록과를 분명히 보는 것처럼 불성을 분명히 보는 것은 오직 부처님뿐이라 함은 세존께서 누누히 말씀하신 바이다. 여기에서 “여러 보살들”이라고 한 것은 문수보살 같은 큰 힘을 갖춘 보살이다.
아뇨보리와 대열반을 만약 분명히 알고 밝게 보고 바르게 깨달으면 그를 보살이라 해야한다
무상정각인 아욕보리와 여러 부처님의 깊은 선정인 대열반을 알고 보면 부처지위인 여래다. 여기서 ‘보살’ 이라고 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힘을 갖추고 방편으로 나타난 깨친 후의 보살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성을 일고 보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들 보살이라 부른다
불성을 밝게 보면 이를 보살이라 한다.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보며, 불성을 봄으로 대열반을 얻으니, 이는 보살이 청정하게 지니는 계이다.
여기서 말한 보살도 불성을 밝게 본 대열반의 보살로서 큰 힘을 가진 보살이다.
대열반은 부처님과 보살만 보는 것이니 그러므로 대열반이라 한다.
불과를 이룬 여래만이 대열반을 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보살’도 십지까지의 지상地上보살이 아니고, 불과를 이루고 큰 힘을 가진 보살임은 다시 말할 것 없다.
부처님인 세존을 큰 사문 또는 큰 바라문이라 부른다
몸0| 큰 중생이란 모든 부처님과 큰 힘을 기전 보실이다 위없이 큰 지해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큰 중생이라 한다.
불과를 이룬 여래, 즉 바른 깨달음을 얻은 세존과 대력보살을 큰 바라문 또는 큰 중생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내용상 바른 깨달음을 말함이지 실제로 바라문이나 중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부르던지 바른 깨달음을 가리킴에는 변동이 없다.
이와 같이 불성을 분명하게 본 여래세존을 방편상 보실이라고 표현하여도. 불성을 분명히 본 여래세존임에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
참된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열반이요, 열반은 곧 다함이 없음이요, 다함이 없음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결정적인 것이요, 결정적인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해탈, 여래, 열반, 불성 및 아뇩보리는 체는 같으나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리하여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거나 불성을 분명히 보면 무상정각을 얻은 여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음이라 부르며 힘이 없으므로 나옴이 없음이라하며, 업을 지음이 없으므로 지음 없음이라 하며 번뇌와 업을 쳐부수므로 안온이라 하며, 번뇌로 일어난 업의 불길이 영원히 꺼지므로 멸도라 하며, 거칠고 섬세한 마음을 떠남으로 열반이라 하며, 시끄러움을 떠남으로 적정이라 하며, 나고 죽음을 영원히 끊으므로 병 없음이라 하며 일체가 텅비어 없으므로 있는 바 없음 이라한다 선남지여! 보실이 이 깊은 관을 짓는 그 때 불성을 분명하게 정견한다”
남이 없음, 함이 없음 내지 열반,병 없음 동은 명칭은 각각 다르나 여래께서 깨친 똑같은 내용이다.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영원히 끊고 구경의 대무심지에 도달한 깊고 깊은 현묘한 경지를 나타낸 명칭들이다.
고요함과 비춤이 함께 융합하며 선정과 지혜가 균등하게 되는 이 구경의 삼매에서만 견성이며 성불이다. 어느 부처님과 정안종사도 무생과 무위 등을 철저하게 깨치지 않고서 견성하거나 도를 이룬 분은 없다.
「대열반경」에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함’서‘번뇌를 완전히 끊음’서‘번뇌를 끊어 없앰 번뇌를 영원히 깨뜨림’등을 견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번뇌는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총괄한 것으로「기신론起信論」에서 “미세한 무명을 영원히 여원을 심성을 본다고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지보살도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하였으므로 견성이 아니라고 하였으며, 부처 지위에서만 영원히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모든 부처님만이 견성이라 한 것이다. 이 미세한 번뇌를 멀리 여원,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부처 지위에서의 견성을 무심, 무념, 대열반, 구경각, 여래지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금의 불조가 이구동성으로 견성은 구경각인 무상정각이며, 무여열반인 대열반이며, 부처님임을 입이 아프도록 말씀하셨다. 이로써 견성이 원만하고 완전한 깨침, 즉 구경각인 대무심지임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납자는 부처님과 조사들이 남기신 법만 따를 뿐이요, 그밖에 이단의 잘못된 주장은 정법의 기치 아래 단연코 배제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만이 분명하게 불성을 불 수 있다
불안佛眼으로 보기 때문에 명명백백하다
불성을 분명히 봄으로 명행족明行足이라 한다
어두운 무명의 굴을 타파하고, 긴 밤의 혼미한 꿈에서 깨어나서 밝은 대낮같이 확연히 비추어야만 참 성품을 바로 본다. 십지성인이라도 미세한 무명이 바른 안목을 가려서 어두운 밤에 물건을 보듯 꿈속의 미망에 있으므로, 정각正覺이 아니며 견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뇩보리, 즉 무상정각을 성취해야 불성을 바로 본다는 불조 정전正傳의 철칙에 따라. 구경각인 불지 이에는 단연코 견성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견성이 이렇게도 어려우므로. 부처님 이후로 견성하여 도를 깨친 이가 얼마나 될는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경각인 견성은 중생의 근본무명,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완전히 끊기만 하면 된다.
중생의 부처성품은 불가사의하여서. 부처와 조사의 훌륭한 가르침에 따라 실답게 수행하면 오역십악五述十惡의 극중죄를 지은 사람도 이 생에서 견성할 수 있다고 부처와 조사가 다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함은 이를 말함이다. 오직 당사자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으로 옛부터 선문의 정안종사들 가운데 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완전히 끊어서 구경의 무심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종푼에서는 미세망상을 제8마계摩界라 히여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극력으로 배척하였고, 채8마계인 근본무명을 타파해야만 정안으로 인정한다. 불조의 혜명이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두 운으로 불성을 훤혀 본다
모든 부처님은 마치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불성을 분명히 본다
모든 부처님은 정定과 혀鷹를 균등히 지니므로 마치 손바닥의 아마륵과를 보듯 아무 걸림 없이 불성을 분명히 본다
정과 혜가 균등한, 대적광삼매大寂光三味에 있는 여래의 지위가 아니면 불성을 분명히 보지 못하니, 견성이 곧 성불이며 무상정각이다.
크게 깨달으신 여래깨서 대열반에 들어간다.
이 대열반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매우 갚은 선정이다
만약 불성을 바로 보면 번뇌를 완전히 끊을 수 있으나 이것을 대열반이라 한다.
만약 불성을 분명히 바로 보면 그것을 대열반이라 한다. 이 대열반은 코끼밑바닥까지 닿을 수 있으니, 큰 코끼리란 모두 부처님을 말한다.
중생의 불성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다 그러므로 불성을 바로 보아 나고 죽음을 벗어나서 대열반을 얻는다
모든 부처님의 깊고 깊은 선정인 대열반, 즉 무여열반은 오직 불성을 바로 보아야만 성취된다. 이것은 견성이 곧 여래이며 대열반이기 때문이다.
「얼반경」에서 말하기를 “금강같이 단단한 한없는 보배창고는 증감이나 경함이 없다.”고하였으니 그러므로 원교圓敎하 한다.
지자智者 대사는 「화엄경」,「법화경」, 「열반경」등을 원교圓敎라고 판정하였다.
「열반경」은 여래가 마지막에 쇠신 궁극의 설법이므로 원교라 한 것이며, 증득하신 불과는 원교인 가장 높은 지위로서 무여열반이다.
다시 원하노니, 모든 중생이 문수보살등처럼 온갖 번뇌를 영원히 부수고 불성을 분명하고 ’ 바르게 보게 하여지이다.
문수보살과 모든 보살은 이미 무한한 세워레 성스런 도를 닦아서 부처 성품을 분명히 발게 알았다.
무상정각을 이룬 여래위, 즉 부처자리(佛地)만이 분명하게 불성을 본다 함이 부처님의 혜명이다. 문수 보살이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고 하는 이유는 문수는 이미 부처가 되고서 방편상 출현한 보살이기 때문이다. 즉 문슈: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부수어 이미 정각을 이루고서, 과거에 용종상여래,대신여래,보상여래,환회장마니보적여래 등으로 출현한 큰 힘을 갖춘 보살이므로, 분명하게 불성을 본 분이다.
문수 이외에“모든 보살들”이라고 말한 것도 문-수와 같은 큰 힘을 갖춘 보살을 가리킨다.
무엇을 “분명히 본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자기 손바닥네 있는 아마륵과를 보는 것과 같다.
위 없는 도와 보리와 열반은 오직 여래만이 분명히 알고 밝게 보고 바르게 깨달으며 모든 보보살들도 그러하다
손바닥의 아마록과를 분명히 보는 것처럼 불성을 분명히 보는 것은 오직 부처님뿐이라 함은 세존께서 누누히 말씀하신 바이다. 여기에서 “여러 보살들”이라고 한 것은 문수보살 같은 큰 힘을 갖춘 보살이다.
아뇨보리와 대열반을 만약 분명히 알고 밝게 보고 바르게 깨달으면 그를 보살이라 해야한다
무상정각인 아욕보리와 여러 부처님의 깊은 선정인 대열반을 알고 보면 부처지위인 여래다. 여기서 ‘보살’ 이라고 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힘을 갖추고 방편으로 나타난 깨친 후의 보살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성을 일고 보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들 보살이라 부른다
불성을 밝게 보면 이를 보살이라 한다.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보며, 불성을 봄으로 대열반을 얻으니, 이는 보살이 청정하게 지니는 계이다.
여기서 말한 보살도 불성을 밝게 본 대열반의 보살로서 큰 힘을 가진 보살이다.
대열반은 부처님과 보살만 보는 것이니 그러므로 대열반이라 한다.
불과를 이룬 여래만이 대열반을 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보살’도 십지까지의 지상地上보살이 아니고, 불과를 이루고 큰 힘을 가진 보살임은 다시 말할 것 없다.
부처님인 세존을 큰 사문 또는 큰 바라문이라 부른다
몸0| 큰 중생이란 모든 부처님과 큰 힘을 기전 보실이다 위없이 큰 지해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은 큰 중생이라 한다.
불과를 이룬 여래, 즉 바른 깨달음을 얻은 세존과 대력보살을 큰 바라문 또는 큰 중생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내용상 바른 깨달음을 말함이지 실제로 바라문이나 중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부르던지 바른 깨달음을 가리킴에는 변동이 없다.
이와 같이 불성을 분명하게 본 여래세존을 방편상 보실이라고 표현하여도. 불성을 분명히 본 여래세존임에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
참된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열반이요, 열반은 곧 다함이 없음이요, 다함이 없음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결정적인 것이요, 결정적인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해탈, 여래, 열반, 불성 및 아뇩보리는 체는 같으나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리하여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거나 불성을 분명히 보면 무상정각을 얻은 여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음이라 부르며 힘이 없으므로 나옴이 없음이라하며, 업을 지음이 없으므로 지음 없음이라 하며 번뇌와 업을 쳐부수므로 안온이라 하며, 번뇌로 일어난 업의 불길이 영원히 꺼지므로 멸도라 하며, 거칠고 섬세한 마음을 떠남으로 열반이라 하며, 시끄러움을 떠남으로 적정이라 하며, 나고 죽음을 영원히 끊으므로 병 없음이라 하며 일체가 텅비어 없으므로 있는 바 없음 이라한다 선남지여! 보실이 이 깊은 관을 짓는 그 때 불성을 분명하게 정견한다”
남이 없음, 함이 없음 내지 열반,병 없음 동은 명칭은 각각 다르나 여래께서 깨친 똑같은 내용이다.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상을 영원히 끊고 구경의 대무심지에 도달한 깊고 깊은 현묘한 경지를 나타낸 명칭들이다.
고요함과 비춤이 함께 융합하며 선정과 지혜가 균등하게 되는 이 구경의 삼매에서만 견성이며 성불이다. 어느 부처님과 정안종사도 무생과 무위 등을 철저하게 깨치지 않고서 견성하거나 도를 이룬 분은 없다.
「대열반경」에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함’서‘번뇌를 완전히 끊음’서‘번뇌를 끊어 없앰 번뇌를 영원히 깨뜨림’등을 견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번뇌는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총괄한 것으로「기신론起信論」에서 “미세한 무명을 영원히 여원을 심성을 본다고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지보살도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하였으므로 견성이 아니라고 하였으며, 부처 지위에서만 영원히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모든 부처님만이 견성이라 한 것이다. 이 미세한 번뇌를 멀리 여원,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부처 지위에서의 견성을 무심, 무념, 대열반, 구경각, 여래지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금의 불조가 이구동성으로 견성은 구경각인 무상정각이며, 무여열반인 대열반이며, 부처님임을 입이 아프도록 말씀하셨다. 이로써 견성이 원만하고 완전한 깨침, 즉 구경각인 대무심지임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납자는 부처님과 조사들이 남기신 법만 따를 뿐이요, 그밖에 이단의 잘못된 주장은 정법의 기치 아래 단연코 배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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