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禪要)

제십구편

通達無我法者 2008. 2. 18. 17:02

해제일에 대중에게 보이는 말씀 (제십구편)

 

 만일 이 일을 의논할진대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으며

늙은 사람도 없고 젊은 사람도 없으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으며

날카로움도 없고 둔하고 어리석음도 없음이니,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정각산에 앉으셔서

십이월 팔일 새벽에 샛별을 보고 도 를 깨달으시고,

이에 말씀하시기를 기특하다.

중생이여 부처님의 마음을 깨달은 지혜와 덕망과 상호를 갖추어 있다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이 세가지가 차별이 없다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깨닫는 이법이 평등하여 부처님이라고 높고 중생이라고 낮을 것이 없다 하시니,

 

이미 차별이 없으며 또한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을진대

위로부터 부처님과 조사스님과 옛과 지금의 선지식과 그리고 천하의 노화상이 계합함이 있고

증득함이 있으되 더디어 늦어짐이 있고 빠름이 있으며

어려움이 있고 쉬움이 있음은 필경에 어떠한 이유인고.

 

비유하건대 모든 사람이 여기에 있어 각각 그 가정에 생활해 나가는 사업이 있거든

홀연히 생각을 돌이켜 비추어 보아서 마음 근본 진리에 돌아감을 생각하되

혹 해를 지나서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혹 달을 지나서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혹 날을 지나서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혹 찰라의 순간에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또 죽음에 이르기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대체로 집을 떠나는 것이 집착을 많이 하고 집착을 적게 하는 것이 다름이 있는 고로

마음을 깨닫는 것에도 늦어지고 빠르고 어렵고 쉬운 차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으나 중간에 한낱 사람이 있어 가정의 생활에 가히 돌아가게 없으며

화두를 의심하는 참선 공부도 가히 배울게 없으며

태어나고 죽음의 근본 원인이 되는 번뇌도 가히 항복 받을 것이 없으며

열반도 가히 증득할 것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날이 맞도록 그럭저럭 자유롭게 살고 자유롭게 그럭저럭하나니 만일 점검해서 찾아낸다면

석가와 미륵이 너를 위하여 발우를 펴 주고 병에 든 물을 부어주어

시자의 일을 하더라도 또한 분수밖에 되지 않으려니와,

진실로 혹 그렇지 못할진대 주장자로써 참선 법문하는 법상을 쳐서 두 번 내리고 악! 악!

두 번 할을 해서 말씀하시기를

만일에 다른 곳의 선방에 이르거든 내가 한 말을 간절히 잘못 전달하지 말아라.

다시 말해서 고향집에 이르되 번뇌가 많고 적음에 따라 빨리 깨닫고 늦게 깨닫는

그러한 현실적인 처음으로 배워서 닦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과

또 중간에 어떤 사람은 방편을 초월하여 일체 관념의 생각이 붙지 않는

절대적인 최상승선의 자리는 석가와 미륵의 스승이 되는 것이라

이 말의 뜻을 바르게 알았다면 모르거니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말을 함부로 감히 말할 바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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