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스스로 깨치고 남을 지도하려면 / 대혜선사
스님이 말하였다.
ꡒ요즈음 불과 (佛果圓悟) 선사 회중에서 공부한 납자는 불안 (佛眼淸遠) 선사를 뵈려 하지 않고 불안선사 회중에서 공부한 납자는 불과선사를 뵈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많은 봉사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니 어떻게 두 노스님의 뜻을 알겠는가? 그들은 불안선사가 곧 규범을 갖춘 불과선사이며, 불과선사가 바로 규범을 갖추지 않은 불안선사라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다. 사람을 지도할 때 눈 멀게 하지 않으려면 불과선사를 찾아보아야 한다. 만일 불안선사만 본다면 열반당 (涅槃堂) 의 선 (禪) 이니, 스스로는 구제할 수 있어도 남을 지도하지는 못한다. 혜남 (慧南) 노선사의 회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납자들에게 진점흉 (眞點胸:可眞) 선사를 뵙도록 하는 것은 가진선사의 수단이 매섭고 신랄하여 학인을 지도하는 데 남다른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ꡓ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ꡒ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은 마치 파리떼와 같아서 조금만 비린내가 풍겨도 그곳에 머물고 만다.처음부터 그런 것을 모두 뽑아버리고 아무 냄새 없는 곳을 찾아 평지에 머물러야 한다. 예로부터 학인을 잘 지도하는 작가종사로 목주 (睦州道明) 스님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ꡐ너에게 앉을 곳이 있는 것을 보면 곧장 깎아 없애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깎아 나아가야 한다.ꡑꡓ
스님이 또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ꡒ학인을 가르치는 종사는 안주하는 곳 〔落地處〕 이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안주하는 곳이 있으면 학인이 앞에서 떠나가는 꼴을 보게 된다.ꡓ
하루는 또 말하였다.
ꡒ너희는 오직 생각을 불살라 놓고 보아라. 재가 되어 갑자기 화로 밖으로 싸늘한 콩 한 알이 튀어나와야만 아무 일 없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ꡓ
스님이 보봉사 (寶峰寺) 에 있을 때, 원 (元) 수좌가 스님을 보고 지극히 좋아하였다. 하루는 휴가를 얻게 되어 이상노 (李商老) 를 찾아보고 한달쯤이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막상 40일이 넘어서야 돌아오니 원수좌는 스님을 보고서 갑자기 말하였다.
ꡒ아! 세월이 덧없이 빠르구나.ꡓ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 땀을 흘렸다.
스님은 동산 (洞山良介) 선사의 「오도송 (悟道頌)」*을 보다가 ꡐ그 (渠) 도 있고 또 나 (我) 도 있다면 무슨 선 (禪) 이 되겠는가?ꡑ 하는 의심이 생겼다.
이에 담당 (湛堂) 스님에게 다시 가르침을 청하니, 담당스님은 스님에게 도리어 한 번 거론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스님이 거론하자 담당스님은, ꡒ너는 거론하는 것도 모르냐ꡓ면서 밖으로 밀쳐내 버렸다.
원오 (圜悟) 선사가 스님에게 말하였다.
ꡒ달마가 서쪽에서 와 무엇을 전해주었는가?ꡓ
ꡒ모두 둔갑한 여우 〔野狐精〕 의 견해랄 수는 없습니다.ꡓ
ꡒ호랑이 머리에 걸터앉아 호랑이 꼬리를 잡아 당긴다면 제일구에서 종지를 밝혔다고 하는데 무엇이 제일구인가?ꡓ
ꡒ이것은 제이구입니다.ꡓ
스님이 하루는 이렇게 말하였다.
ꡒ여기에는 날마다 향상해 나가는 선이란 없다.ꡓ
그리고는 손가락을 한번 튕긴 뒤, ꡒ만일 이 뜻을 안다면 당장에 법문을 끝내겠다ꡓ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ꡒ요즘 어떤 종사들은 학인을 지도하면서 서너 차례 입실한 뒤에도 그의 경지를 분명히 가려내지 못하고 스스로 깨친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다시 그에게 견처 (見處) 가 어떻느냐고 물으면 학인은 자신의 견처를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도리어 네가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하니, 이런 식으로 해서는 어떻게 학인을 지도하겠느냐?
천 대도 (谷泉大道) 선사가 자명사 (慈明寺) 에 간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였느냐? 자명선사가 곡천선사에게 물었다.
ꡐ조각구름 산골짜기에 피어나는데, 행각하는 이여, 어디에서 왔는가 〔片雲生谷口 遊人何處來〕ꡑ'
곡천스님이 대답하였다.
ꡐ간밤에 어느곳에 불이나서 옛사람의 무덤을 태웠는고 〔夜來何處火 燒出古人墳〕ꡑ
자명스님이 ꡐ아직은 안되겠다. 다시 말하라ꡑ 하여 곡천선사가 대뜸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자 자명선사는 선사만이 임제 종풍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문답 몇 구절을 보면 어디에서 그들의경지를 볼 수 있을까? 모름지기 이래야만 한다ꡓ.
스님이 말하였다.
ꡒ나는 의지가 굳고 정성스런 사람을 기다리되 자질이 되어야 하니, 바로 한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그런 자질을 말한다.
참선에는 반드시 직심 (直心) ․직행 (直行) ․직언 (直言) ․직어 (直語) 가 있어야 한다. 말과 마음이 곧은 까닭에 처음부터 끝까지 지위 중간에 왜곡된 상 (相) 이 영원히 없다.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직지인심 (直指人心) , 견성성불 (見性成佛) 을 제창하였고, 어느 스님이 운문 (雲門文偃) 선사에게 무엇이 부처냐고 묻자 마른 똥막대기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리저리 헤아리는 것도 이미 멀어진 일인데 더구나 거짓말이겠느냐.ꡓ
무애(無礙)선사가 법해(法海)선사의 영정에 찬을 청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상강(上江)지방의 노스님들은 대개가 하강(下江)지방 운문(雲門)의 문하를 비웃는데 각인 (覺印:保寧子英, 운문종)선사만은 비웃지 않았다. 그것은 각인선사가 일찍이 보령 용(保寧仁勇)선사와 진정(眞淨克文)선사를 친견하였고, 원통 법수(圓通法秀: 각인스님의 은사)선사가 일찍이 순 노부(舜老夫)와 부산 원(浮山法遠)선사를 친견했기 때문에 이들을 틀별히 예우한 것이다. 그러나 대본(대본:慧林宗本) 소본(소본: 法雲善本)․부철각(부철각:長蘆應夫)스님 등은 모두 가소롭게 생각한다. 법해선사는 각인선사의 법제자이고 각인선사는 원통선사의 법제자이다.
찬은 다음과 같다.
원통의 문정을 드넓혔고
운문파를 이으셨다
선상에 바로 앉아 온갖 괴물 노려보니
비로인을 차고 마귀와 외도를 굴복시키되
한 마리 법구가 번개불보다 빠르다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삼매에 들었으니
찬양하고 헐뜯는 자 모두 문둥병에 걸리리라.
廓圓通門 續雲門派
燕坐胡牀 虎視百怪
佩毘盧印 摧伏魔外
一句當陽 電光非抉
不動道場 而入三昧
贊之毁之 俱遭白癩
이는 법해 노스님이 터럭 끝에서 끝없는 법계에 노닐었음을 말해준다. 원통선사는 일찍이 수단(白雲守端)스님의 회하에서 수좌가 되었다가 사면사(四面寺)의 청을 받아들여 주지가 되었다. 그당시 법연스님은 해회(海會)선원에서 방아찧는 일을 맡아보다가 원통선사를 뒤이어 수좌가 되었다. 원통선사가 서현사(棲賢寺)의 주지로 옮겨가자 법연스님이 뒤이어 사면사의 주지가 되었다.
수단스님이 지은 ꡐ송고(頌古)ꡑ 가운데 “해가 동쪽에서 뜨니 밤은 서쪽으로 떨어진다 [日出東方夜落西]”는 구절이 있었는데 원통스님이 ꡐ야(夜)자를 정ꡐ(定)ꡑ자로 고치자 수단스님은 웃으면서 그의 뜻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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