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宗門武庫)

98. 지견과 정해가 많은 납자들 / 대혜선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0:05
 









98.  지견과 정해가 많은 납자들 / 대혜선사



스님(대혜)이 입실했던 제자들이 물러간 후 한가이 앉아있다가 갑자기 말하였다.

“요즘 납자들은 지견(知見)과 정해(情解)가 많다.  쓸모없는 말, 긴 이야기를 기억해서 그 속에서 답을 구하는 것은 마치 손에 값을 따질 수 없는 마니주(摩尼珠)를 쥐고 있다가. 어는 누가 손 안에 있는 게 무엇이냐고 하면 갑자기 그 구슬을 버리고 흙덩이를 집어올리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건 멍청이다.  그렇게 참구한다면 당나귀 해가 되도록 참선을 해도 깨치지 못할 것이다.”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내게는 사람들에게 줄 법이 없고 다만 사건에 따라서 판결을 내려줄 뿐이다.  비유컨대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하는 유리병을 가지고 오면 내가 한 번 보고는 너를 위하여 곧 유리병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  네가 그대로 오는 것을 보면 나는 너의 두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  이 때문에 임제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라고 말한 것이다.

말해 보아라.  선지식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를 살펴 보아라.  그것이 무슨 도리인가를.  그런데 요즘 납자들은 공부를 할 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것을 밝혀 나가고자 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며, 이렇게 하거나 하지않거나 모두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느가?

너는 한마디 말[轉語]을 가지고서 이를 밝혀 나가려는가? 영원히 그것을 밝히지 못할 것이다.  옛 사람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러나 너는 단도직입적인 곳으로 가려하지 않고 그저 분명하게 밝히려고만 드니, 이래서 도리어 깨침이 늦어진다.“



스님이 어느날 말하였다.

“나는 평소 남 욕하기를 좋아하는데 현사(玄沙師備:825~908)스님의 어록을 읽다가 그분이 영운(靈雲志勤)스님을 시험한 구절을 보고서 대단히 기뻐하였다.

현사스님이 지근스님에게, ꡐ알긴 잘 알았으나 노형께서는 아직 철저히 깨치지 못했음을 내 감히 보증합니다ꡑ하였는데 이 말은 우뚝 솟은 만길 벼랑같은 느낌이다. 그후 영운스님과 이야기를 마친 후 또다시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ꡐ너는 처음엔 그처럼 깨달은 것 같다가 뒤에는 도리어 이처럼 똥싸고 오줌을 싸느냐?ꡑ

내가 이 이야기를 원오스님에게 물으니 원오선사는 웃으며 말하였다.

ꡐ그가 뒤에 가서 그랬다는 것은 나도 이해할 수 없구나.ꡑ

마침내 요사채로 돌아와서야 비로서 현사스님이 매우 괴상스런일을 꾸몄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오스님에게 말하자 원오선사는 웃으면서 ꡐ기쁘다, 네가 알아냈구나!ꡑ하였다.“

회당(晦堂祖心)스님이 요즘 제방에는 이런 약두(藥頭:약방을 관리하는 스님)가 없는 곳이 많다고 하니 스님은 “절대 말하지 말라, 바깥 사람이 이 험한 소리를 듣겠다”고 하였다.



어느 노스님이 상당법문을 하였다.

“내가 노스님 회중에 있으면서 말후구(末後句)라는 것을 얻었으니, 이를 대중에게 보시   (布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만법과 짝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네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들어마신 뒤에야 너에게 말해 주리라.”

그리고 나서 그 노스님은 법좌에서 내려왔는데 이 모습을 본 스님(대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진 않겠다.  ꡐ내가 노스님 회중에 있으면서 말후구라는 것을 얻었으니 이를 대중에게 거사(擧似:들어 보여줌)하지 않을 수 없구나ꡑ하고서 법좌에서 내려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