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혜선인(慧禪人)에게 주는 글
수료(水 )스님이 마조스님을 뵙고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묻자, 마조스님이 한 번 밟아 버렸다. 그러자 크게 깨닫고는 "모든 법문과 한량없이 오묘한 의미를 한 털 끝에서 근원을 알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하더니 껄껄하고 크게 웃었다. 그 뒤로는 평생토록 대중법문을 할 때면 늘 말하기를, "마조스님에게 한 번 밟히고 난 뒤로부터 지금까지 웃음 그친 적이 없었다"하고는, 다시 껄껄하고 웃었다.
이는 굳게 정성껏 찾았으나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하다가 갑자기 발에 밟히자 문득 깨달아 알아차리고 걸머졌던 짐을 훌쩍 벗어버려 전혀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는 가슴 속에 깨달았던 것을 토해냈으나 그것이 결코 다른 일은 아니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실되게 종사들이 하신 한 마디 한 경계를 실제 체험으로 만나 헤치면서 나아간다면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랴! 다만 근본이 들뜨고 식견이 천박함을 걱정할 뿐이다. 바람이 나무 끝을 스치듯 해 가지고는 천번 만번 들여대도 계합하지 못한다. 그런데 더구나 알음알이를 짓는 자가 이렇게 깨달아 들어갈 일은 없다고 지시해주는 경우야 어떠하겠느냐!
마조스님과 수료스님도 이처럼 한번에 건립하였을 분이다.
이같이 한다면 나귀해가 되도록 꿈에서도 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도를 배우려면 진실한 믿음을 숭상해야만 한다. 혜선인(慧禪人)은 실천에 전념하므로, 부족하나마 이 정도 방편으로 보일 뿐이다.
이 일을 논한다면 부싯돌 불이나 번개불빛과도 같아서, 밝혔거나 밝히지 못했거나 간에 꼼짝없이 목숨을 잃는다. 밝히지 못한 경우에야 목숨을 잃는 것은 굳이 그렇다 치고, 밝혔는데도 무엇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상당한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의심을 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도달하여 명근(命根)이 끊긴 곳에 이르러, 심장과 간장 등 오장육부가 바뀌어서 향상의 경계와 같아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때문에 말하기를, "절벽에서 그대로 손을 놓아버린 뒤에야 생철(生鐵)로 주조한 자가 가시덤불을 뚫고 나왔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으니, 천하 늙은이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아야만 진정으로 참구하고 배울 자격이 있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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