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록(洞山錄)

1. 행록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8:19
 




동산록 / (五家語錄)


1. 행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

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

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

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

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

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 山: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775)께선 무정(無

情)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無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

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

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

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 陵) 유현(攸縣)으로 가면 석실(石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雲岩道人)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

네.

  '당장에라도 번뇌(煩惱)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

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

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習氣)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聖諦)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

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喝)! 하고는 나가버렸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

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

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與我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會  方得契如如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長慶 慧稜: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

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당(唐) 대중(大中: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

다. 방편으로 5위(五位)를 열어 3근(三根)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一音)

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萬品)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

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

어주셨다.

  다시 조산(曹山)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

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君臣)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偏位)와 정위(正位)

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宗

匠)들이 모두 추존(推尊)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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