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감변.시중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
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
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
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
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金鷄)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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