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기 6.
어느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서서 설법을 청하거늘
스님이 시자에게 '등불을 켜라'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이야기를 청하던 스님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밀가루 두서너 홉을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는데 그후 이 일로 깨친 바 있어 의발을 받고 한차례 공양을 차렸다.
삼사년을 지나 하직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잘 가라, 잘 가라."
이때 설봉스님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한 번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오는 것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에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놓고, 천화(遷化)하였는데
설봉스님이 보고서 알리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3생쯤 뒤졌다 하리라."
이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병이 나서 열반당(涅槃堂: 절 안에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집)에서 쉬고
한 사람은 간호했다.
어느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소?."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부터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스님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서 가겠소."
그리고는 스님께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스님이 이 법회(法席)에서 공양주(飯頭)를 맡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례로 떠난 것을 보고 스님께 가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까 와서 스님께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 둘이
열반당에서 마주 앉아 죽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비한다면 3생이 뒤졌다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