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본지풍광(本地風光) / 바리때를 들고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5:31

 

 

 

본지풍광(本地風光) / 바리때를 들고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뒤에 말씀하셨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賣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遭里)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三頭六臂)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 도다.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둘째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옛 부터 모두들 조사 가운데 영웅은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이라고 말하니,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은 실로 천고에 큰 안목 이라,

이는 총림의 정론입니다.

그 중 덕산스님 밑에서 두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입니다.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습니다.
공양주이던 설봉스님이 이것을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스님은 아무말도 않고 머리를 푹숙이고 곧장 방장方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고하니 암두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하였습니다.

말후구란 선종 최후의 관문입니다.

덕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스님이 은밀히 덕산스님에게 그 뜻을 말해드렸습니다.

그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법문을 하시는데 그 전과 달랐습니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아는구나.

이 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 년뿐이로다” 했는데 ,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그 천고에 유명 한 종문宗門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방화 德山托鉢話입니다.

어떻게 보면 꼭 어린애 장난 같지만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의 골수가 이 법문 속에 다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 법문 속에서 바로 눈을 뜬다면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임의자재任意自在해서 모든 살활殺活과 권실樓實이 자유자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안 公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덕산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천고에 유명한 조사라고 하는 덕산스님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루때를 들고 어디로 가느냐’하는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어째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방장으로 돌이갔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실지로 몰라서 그랬다면 덕산스님이 천고에 유명한 조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암두스님이 말후구도 모른다고 말했으니 과연 그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 하는 것이니 덕산스님이 실지로 대답을 못하고 돌아가니까,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는지 아니면 그 뜻이 딴 곳에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암두스님이 비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럼 암두스님이 그때 무슨 말을 하였는가하는 의문입니다.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 授記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이것이 덕산탁발화의 네 가지 풀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되어 있는데,

실지에 있어서 화두 話頭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확철히 깨쳐서 장안을 바로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복락으로 는 모르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도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도 생각해 볼런지 모르지만 자성을 바로 깨치기 전에는

그 세 분이 말씀하시는 근본 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이 공안은 짐독 斟毒이나 비상 砒霜 같아서 이렇거나 저렇거나 상신실명喪身失命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묻어버리지 말라.

사량분별思量分別인 유심경계有心境界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公寂한 무심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이요,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부수어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옛사람의  입각처 入脚處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공안을 바로 알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 공안을 일시에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격대장부出格大文夫가 되어 금강보검金剛寶劍을 높이 들고 천하를 횡행 橫行하여

죽이고 살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것이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당虛堂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습니다.
“바리때를 들고 방장으로 돌아간 뜻이 무엇입니까?”
“귀하게 사서 천하게 파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또 무슨 뜻입니까?”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조용한 망치를 치느니라”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귀신은 방아를 찧고 부처는 담장을 뛰어 넘느니라?.”
“ 그 다음 날 전과 다르고 또한 말후구를 알아 기쁘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 칼에 맞은 흉터는 없애기 쉬우나 악담 惡談은 없애기 어렵느니라.”

이것이 덕산탁발화에 대한 모범적인 문답입니다.

도림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습니다.
“머리 숙이고 방장으로 들어간 뜻이 무엇입니까?”
“빠른 번개에 불어 번쩍거리느니라.”
“말후구도 모른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서로 따라 오느니라.”
“어떤 것이 암두의 은밀히 말한 곳입니까?”
“만 년 묵은 소나무가 축융봉 祝融峰에 서 있느니라?”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갔으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까?”
“옴 마니 다니 홈 바타”

이것도 말하자면 앞의 허당스님 법문과 같이 덕산탁발화를 바로 전한 소식입니다.
내가 이 법문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두분 큰스님의 문답이 탁발화의 골수를 관철하였으니 실로 고금에 듣기 어려운 바라,

모름지기 간절히 참구하고 간절히 참구하여야 한다.

또 설봉스님이 암자에 살때에 스님이 와서 인사하니
설봉스님이 문을 밀고 나오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 그 스님들도 따라서 ‘이것이 무엇인가? 함으로, 설봉스님이 머리를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 

그스님이 이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슬프다,

내가 당초에 설봉에게 말후구를 일러 주지 않았음을 후회하나니,

만약 그에게 말후구를 일러 주었던들 천하 사람들이 설봉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으리라’

하였습니다.

그 스님이 법문의 뜻을 묻자 암두스님이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스님이 이 암두스님이 설봉스님보다 도가 높구나’생각하고

여기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름 동안 지냈지만 말후구가 무슨 말인지

아무리해도 알수 없어 암두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말후구입니까? ‘왜 일찍이 묻지 않았느냐, 진작 물을것이지 “

어찌 감히 물을수가있습니까?

여름동안정진하여도 그말후구의 뜻을 알지 못해 묻는 것입니다.

그스님이 그렇게 묻자 암두스님이 답하는것입니다.

‘설봉이 비록 나와 한가지에서 나기는 했어도 나와 한가지에서 죽지는 않으니 ,

말후구를 알고 싶다면 다만 이것이다.”

내가 이 법문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법문도 또한 덕산탁발화와그 맥이 서로 통하는 것이니,

네 가지의 난점을 분명히 깨쳐서 알면 다 같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조상이 영험치 못하니 앙화가 그 자손에게 미친다.
뒤에 운문스님의 직계 자손인 설두선사가 송煩 하였습니다.

말후구를 그대 위해 설하노니 밝음과 어둠이 서로 함께비치는 때라
한가지에서 남은 서로 다 알고 한가지에서 죽지 않음은 모든 것 떨어졌도다.
모두 떨어졌음이여, 석가와 달마도 모름지기 잘 살펴야하리라.
남북동서 두루 다녀 와서 깊은 밤 일천 바위에 쌓인 눈을 함께 보노라.

밝고 어둠이 함께한다明暗雙雙는 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암두스님의 제자인 나산스님에게 초경스님이 물었습니다.

암두스님이 늘 밀씀하시기를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하며,

이렇게 하지 않고 또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 하니 나산스님이 ‘쌍으로 밝고 쌍으로 어둡다(雙明雙暗)”고 하였습니다.

0|말씀도 근본 소식을 깨쳐야 알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뜻을 모르는 것 입니다.

실지로 내가 공부를 해서 확철대오하여 명암쌍쌍明暗雙雙한 그 경계를 탑작하면은

말후구를 안 알래야 안 알 수 없고 모를래야모를 수 없는 것입니다.

대중들이여, 이들 공안을 총림에서 흔히들 논란하지마는 산승(山僧)의 견처(貝處)로 점검해 보니, 덕산(德山) 삼부자(三父子)가 말후구는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는 화살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말후구인가?

스님께서 한참 묵묵한 후 말씀하셨습니다.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치고 내려오시다.

주註
*삼두육비(三頭六臂)/기괴한 형상과 분노한 얼굴을 가져서 악마를 항복받고 국토와 백성올 수호하는 팔명왕(八明王) 가운데 불근명왕(不勤明王), 애염명왕(愛梁明王)의 모양을 형용함을 말한다.
*정문정안(頂門定眼)/마혜수라천왕(摩醯首羅天王)의 정수리(頂門)에 있는 또 한 개의 눈. 범인(凡人)이 가진 두 눈 이외에 일체의 사리를 꿰뚫어 아는 지혜의 눈. 마혜안(摩醯眼), 일척안(一隻眼)이라고도 함.
*덕산(德山) 선감(宣鑑)782∼865. 용담(龍潭) 숭신(崇信)의 법사(法嗣), 청원(靑原下)사세(四世).
*총림(叢林)/많은 수행승들이 화합하여 안거하는 큰 선원(禪院)을 말함.
*암두(岩頭) 전할/828∼887. 덕산 선감의 법사, 청원하 오세.
*설봉(雪峰) 의존(義存)/823∼908. 덕산 선갑의 법사, 청뭘하 오세.
*말후구(末後句)/말후는 최후. 향상 절대의 구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