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27. 지관(止觀)의 참 뜻은 무엇인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20:09
27. 지관(止觀)의 참 뜻은 무엇인가 ?


지(止)는 본체로서 백천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안주하는 바며,
관(觀)은 작용으로서 갖가지 수행이 일제히 나타나는 것이다.
본체는 작용 밖에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지(缺)는 관(觀) 속에 있으며,
작용은 본체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관(觀)은 지(缺)가 있는 곳으로 귀결된다.
본체는 요동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수미산이 허공 속에 서 있는 것과 같고,
작용은 어둡지 않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해가 양곡( 谷)에 걸려있는 것과도 같다.

지(止)에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파도가 근원자리에서 사라지고,
관(觀)에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광채가 고경(古鏡)에서 소멸한다.
수미산이 허공 속에 있어도
지(止)의 본체는 본래 스스로가 이지러짐이 없으며,
양곡( 谷)이 솟아오르는 햇빛을 간직한다.
해도 관(觀)의 작용은 원래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근원이 공적해지면 파도도 없어지는데 지(止)가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또 거울이 깨지면 광채도 없어지는데 관(觀)을 어디에다 의탁하겠는가?
그렇다면 거울과 근원이 본래 허깨비이고
본체와 작용이 원래 공(空)하여
주관·객관이 함께 없어지면 지(止)·관(觀)도 또한 고요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혼침과 산란 때문에 생사의 바다에 빠지고
 모든 부처님들은 지(止)·관(觀) 때문에
 열반의 언덕에 안주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지(止)로써 산란을 고요히 중지시키고 항상 관조하며,
 관(觀)으로써 혼침을 관조하여 항상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고요와 관조가 쌍으로 나타나고,
 정(定)과 혜(慧)가 융합하여 지(止)가 극치에 이르면 관(觀)이 원만합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무엇에 의지하겠습니까?

 분명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지·관의 명칭이 혼합되었다면
 정·혜의 본체를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명분과 실제가 잘못됐으므로 당신의 말씀은 옳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슬프다. 왜 듣지도 못했더냐.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일승만 진실이고 나머지 이승은 진실이 아니니라' 하지 않았느냐?
 지관·정혜·적조·체용 등은 이치가 본래 다름이 없는데
 명칭만을 달리 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로써 방편에 나아간다면 이변(二邊)이 각각 성립되지만,
 방편을 돌이켜 진실로 귀결한다면 하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방편과 진실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명칭과 모습은 저절로 오류가 된다.

 신령스런 비춤은 상대가 끊겼고 진실한 깨달음은 의지함이 없는데,
 실로 일념(一念)이 홀연히 일어난 것을 연유하여
 만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자못 알지 못했다고 하겠다.
 또 미혹과 깨달음을 구별하여 생각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어찌 두사람에게만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이 베푼 가르침이 백천 가지로 모두 다르지만
 근기에 알맞게 하고 사람 됨됨이에 따라
 허망을 버리고 집착을 제거하게 할 뿐이다.
 이는 모두가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삼매(方便三昧)의 지력(智力)에서 나온 것이다.
 어찌 일찌기 그 사이에 정해진 의식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일찌기 정해진 의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요컨대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야 하는 것이다.

 또 지(止)로써 산란을 그친다 하나 산란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관(觀)으로써 혼침을 관찰한다고 하나 혼침하는 원인을 모르겠다.
 가령 산란을 중지할만한 것이 있다면 마음 밖에 법이 있게 되며,
 혼침을 관할만한 것이 있다면 법 밖에 마음이 있게 되리라.
 이른바 산란이란 공적한 영원(靈源)을 말미암지 않고는
 스스로 발생하지 못하며,
 혼침도 원담(圓湛)한 진체(眞體)가 아니라면
 무엇을 말미암아 스스로 일어나겠는가?

 또 공적하고도 신령스런 근원자리는 동·정이 다르지 않는데
 원망하고 담적한 진체인들 명·암이 어찌 다르겠는가?
 가령 지(缺)가 동·정이 끊어진 근원에 나타난다 해도
 한 줌의 흙을 수미산에 보태는 것과 같으며,
 관(觀)을 명·암을 떠난 본체에 더한다 해도
 작은 등불로 양곡( 谷)을 비추는 것과 같으리라.

 또 한결같고 진실한 지극한 본체를 확연히 밝힌다면
 만법의 허깨비 명칭은 자연히 풀린다.
 지금의 이 생각을 떠나지 못했는데 계단이나 사다리가 어찌 필요하겠는가?
 지·관을 혼침·산란한 장소에서 융합하며,
 정·혜를 생멸이 일어나는 때에도 완전하게 한다.
 그리하여 모든 파도 속에서 맑은 물을 관찰한다면
 청·탁을 누구라서 구분하겠으며,
 5색(五色) 속에서 둥근 구슬을 본다면 염·정이 미혹할 수가 없다.
 지극하도다 이 뜻이여.
 세상에서는 혹 들어본 사람이 드물구나!
 증득해야만 알게 되고, 깨닫지 못하면 헤아릴 수 없다.
 말 이전에 알아차린다 해도 이미 옆길로 샌 것이다.
 의식으로 헤아리고 구하려 한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 격이니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