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48. 방편에는 해로움이 없는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20:35
48. 방편에는 해로움이 없는가 ?


한 가지 일이 앞서 적중하면 한 법이 뒤따라 풀리는 것이
천하고금의 수행법이다.
이는 마치 앉거나 누우면 피로가 풀리고,
음식을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
즉 앞서 적중했던 것은 피곤과 배고픔이며,
뒤따라 풀리는 것은 앉고 눕는 것과 음식이다.
그러나 피곤과 배고픔은 때로는 없어지지만 앉고 눕는 것과
음식은 사념을 떠날 때가 없다.
그것들이 사념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에 점점 습관이 되어
게으름과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덕을 없애고 뜻을 잃으며,
도를 없애고 몸을 망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사람들은 적중하는 것이 해롭다는 것만 알 뿐,
그 적중한 것을 푸는 일도 해롭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세하게 미루어 보면 적중했을 때도 모두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면
거기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일부러 생각하면서 풀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푸는 일도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고 가까이 하여
익숙하게 하면 그와 함께 동화해버린다.
그것이 몸 속에 깊숙이 들어가고 그럴수록 그 해로움은 더하여,
끝내는 이런 자신을 자각하기에는 아주 힘들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유하면 무더운 더위에 불티가 얼굴로 날아드는 것 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비오는 듯한 땀을 씻으면서,
바람과 찬 이슬로 이 더위를 해소하려고 생각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 때에 바람을 쐬이고 찬 이슬을 맞게 되면
너무도 상쾌하고 시원해서 떠날 줄을 모르게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하기를 오래하다 보면
음산한 바람·습한 이슬이 그 사람의 피부와 뼛속까지 침입하여
그 증세가 가벼우면 몸이 뒤틀리고
심하면 온 몸이 마비되는 중풍에 걸리고 만다.

구구하게 한때의 번거로움을 풀려다가 고황(膏 )의 깊은 병을 얻으면서도,
끝내는 해로움이 많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부터 성현들께서
이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이것이 교화가 생기게 된 까닭이다.
사람들이 이 이치를 통달하면 도를 깨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