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6칙 운문의 날마다 좋은 날〔雲門十五曰〕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7:32
 

 

 

 

6칙 운문의 날마다 좋은 날〔雲門十五曰〕


(本則 ; 본칙)

운문(864~949)스님이 말했다. “ 十五日 以前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지만, (擧, 雲門垂語云,十五日以前, 不問汝.)

- 하남(河南) 땅에도 없고 하북(河北) 땅에도 없다. 여기에는 낡아빠진 그런 달력은 없다.(半河南,半河北.這裏不收舊曆日.)


15일 이후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아라.“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 하루란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린다. ‘내일이 16일이니까’라는 따위는 결코 말하지 말아라. 세월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不免從朝至暮.切忌道着來日是十六日.日月如流.)


스스로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나날이 좋은 날이로다 .( 自代云, 日日是好日).”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란 달력을 받아들였군. 새우가 뛰어봐야 됫박〔斗〕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의 집엔들 명월청풍이 없으랴. 알았느냐. 바다 귀신은 (산호가) 귀한 것만 알 뿐 값은 모른다. ( 鰕跳不出斗.誰家無明月淸風.還知麽,海神知貴不知價.)


(평창)

운문스님이 처음 목주(睦州)스님을 참방하자 목주스님은 기연을 움직임이 번개 치듯 하여 참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평소 사람을 맞이함에 문에 들어서자마자 문득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해보라, 말해보라”고 하였으며, 그가 머뭇거리면서 말하지 못하면 바로 밀어 제쳐 쫓아내면서 “진(秦)나라의 탁력찬(車度轢鑽) 같은 무용지물이로구나”하였다.

운문스님이 만나러 갔다가 세 번째 가서 겨우 문을 두드리니, 목주스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문언(文偃)입니다”라고 말하고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목주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해보라, 말해보라”하였다. 운문스님이 머뭇거리자 바로 밀어제쳐 쫓아내었다. 운문스님의 한쪽 발이 아직 문지방 안에 있는데, 목주스님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운문스님의 다리기 치여 부러졌다. 운문스님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완전히 깨쳤다. 후일 말로써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하나같이 목주스님을 빼닮았다.

그후 상서(尙書) 진조(陳操)의 집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목주스님은 그를 설봉스님의 처소로 가도록 하였다. 설봉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대중 가운데 있다가 나와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잠꼬대하지 마라.”

운문스님은 바로 예배하고 줄곧 3년을 지났는데, 그러던 어느날 설봉스님이 물었다.

“그대의 경지는 어떠한가?”

“저의 경지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성인들과 더불어 실낱만큼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영수(靈樹)의 여민(如敏 : ? ~920)스님이 20년 동안 수좌를 뽑지 않고 항상 “내 수좌가 태어났다”고 하였으며, 또한 “내 수좌가 수행〔牧牛行〕을 하고 있다”하였으며, 또다시 “내 수좌가 행각한다”고 말하곤 했다. 갑자기 하루는 종을 치게 하고 삼문(三門) 앞에서 수좌를 맞이한다고 하니, 대중들이 모두 의아해 하였다. 운문스님이 과연 이르자 바로 그를 수좌료(首座療)로 맞이해짐을 풀게 하였다. 사람들이 영수를 일컬어 지성선사(知聖禪師)라 하니 스님은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모두 미리 알았던 것이다.

하루는 광주(廣州)의 왕 유은(劉隱 : 874~911)이 군사를 일으키기에 앞서 몸소 사원을 찾아가 스님께 성패 여부를 알려주기를 청하려 하였다. 영수스님은 이를 먼저 알았으나 가만히 앉아서 입적한 뒤였다. 광주의 왕은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언제 병이 나셨는가?”

시자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병이 나신 적이 없으십니다만, 아까 작은 상자 하나를 봉하여 놓으시고 왕이 오거든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상자를 열어보니 한 통의 편지가 있었는데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은 이곳에 있는 수좌로다”라고 씌어 있었다. 왕이 그 뜻을 깨닫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운문스님에게 세상에 나와 영수의 주지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그 뒤 마침내 운문의 주지가 되었다.

스님께서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니, 국 상시(鞠常侍)가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영수(靈樹)의 과일이 익었는지요?”

“어느 해인들 아직 설익었다〔生〕고 여길 수 있으리요!” 다시 광주 유왕(劉王)을 맞아 그의 전생은 향 장수였다는 인연들을 말해주니, 그후 유왕은 영수스님께 “지성선사(知聖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영수스님은 세세생생에 신통력을 잃지 않았지만, 운문스님은 삼생(三生) 동안 왕이 된 까닭에 신통력을 잃게 된 것이다.

하루는 유왕이 스님에게 조서(詔書)를 보내어 대궐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시게 했다. 몇몇의 큰스님들과 함께 궁궐내의 왕공귀족(王公貴族), 관료(官僚)들의 인사를 받으며 설법을 하는데, 오직 스님만은 말도 안 하고 남들과 가까이 하지도 않았다. 한 직전사(直殿使)가 벽옥전(碧玉殿)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붙여놓았다.

큰 지혜로 수행하는 것이 비로소 선(禪)일지니

선문(禪門)이란 말이 없어야지 시끄러워서는 안된다.

온갖 교묘한 설법이라도 어찌 참다움만하리요.

운문에게 져서 모두 지고 말았네.


운문스님은 평소에 세 글자로 선(禪)을 말하기 좋아하였는데, 즉 “살펴보아라〔顧〕, ‘비추어 보아라〔鑑〕’, ‘아이쿠〔咦〕’”가 그것이다. 또 한 글자로 선을 말하기도 하였는데, 어느 스님이 묻기를,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살해한 자는 부처님 앞에 참회하겠지만, 부처와 조사를 죽이면 어느 곳에서 참회를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운문스님은 “노(露 :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무엇이 정법안장(正法眼藏) 입니까?”라고 묻자, “보(普 : 어디에나 있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람을 꾸짖었으나 만일 한 구절의 말을 했다 하면 마치 쇠말뚝과 같았다.

그 밑에서 네 사람의 철인(哲人)이 나왔으니 동산 수초(洞山守初)․지문 사관(智門師寬)․덕산 연밀(德山緣密)․향림 징원(香林澄遠)스님이다. 그 모두가 대종사(大宗師)였다.

향림스님이 18년 동안 시자를 했는데, 그를 가르침에 다만 “원시자(遠侍者)야!”라고 부르면, 원시자는 “네”하고 대답하였고, 운문스님은 “이 무엇인가?”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하기를 18년만에 어느날 바야흐로 깨치니,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후로 다시는 너를 부르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운문스님이 평소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 목주스님의 솜씨를 많이 썼다. 그런데 그것은 (초신자에게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우리를 속박하는 못과 문설주를 뽑아내는 �찌나 망치〔鉗鎚〕와 비슷했다.

설두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소양(韶陽 : 운문스님)의 참신한 기용(機用)을 사랑한다. (그는)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속박의 못과 문설주를 뽑아주었다.”고 하였다.

질문을 던져서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십오일 이전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하여 한 구절을 말해 보아라”하였으니 이는 대뜸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며, 범부이건 성인이건 관계없다.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라고 하였다.

“십오일 이전”이라 한 말은 이미 천 가지 차별을 좌단(坐斷)한 것이며 “십오일 이후”라 한 말 또한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는 ‘내일이 16일이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뒷사람들이 그저 말에 휘둘려 알음알이를 냈으니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저 운문스님이 종풍(宗風)을 세운 이유는 남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설법을 끝내고서는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하였으니, 이 말은 고금을 관통하여 전후(前後)를 일시에 차단한 것이다.

산승이 이처럼 말하는 것 또한 말을 따라서 알음알이를 낸 것이라 하겠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이러니 저러니 말하자마자 구덩이에 떨어진다. 운문스님의 한 구절 속에 세 구절〔三句〕이 갖춰 있으니, 이는 모두 그의 종지(宗旨)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한 구절의 말일지라도 모름지기 근본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두찬(杜撰)일 뿐이다. 이 일은 많은 말이 필요 없지만, 투철하게 알지 못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 만약 투철하게 깨치게 되면 곧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릴 것이다. 설두스님이 지은 언어문자를 보도록 하자.


(송 : 頌 )

하나〔一〕를 없애버리고 ,( 去却一.)

- 구멍투성이구나. 어느 곳으로 가는고? 내버려두자. (七穿八穴.向什麽處去.放過一着.)


일곱을 들어올리니, (拈得七.)

-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拈不出.却不放過.)


상하 사방에 견줄 것이 없다. (上下四維無等匹.)

- 무엇인고? 위는 하늘 아래는 땅, 동서남북과 사유(四維)에 무슨 견줄 것이 있겠는가? 주장자가 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어찌하랴? (何似生.上是天,下是地,東南西北與四維,有什麽等匹.爭奈柱杖在我手裏.)


천천히 걸으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버리고, (徐行踏斷流水聲.)

- 발 아래를 묻지 말라. 체득하기 어렵다. 언어문자의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구나. ( 莫問脚跟下.難爲體究,打入葛藤窟裏去了也.)


내키는 대로 바라보며 나는 새의 자취도 그려내노라. ( 縱觀寫出飛禽跡.)

- 눈 속에도 이런 소식은 없다. 들여우 같은 알음알이여, 여전히 옛 소굴에 있구나. (眼裏亦無此消息.野狐精見解.依前只在舊窠窟裏.)


풀은 더부룩하고, (草茸茸.)

- 뒤통수의 급소에서 화살을 뽑는구나. 이 무슨 소식일까? 지극한 곳에 들어 있군.(腦後拔箭.是什麽消息.墮在平實處.)


연기는 자욱하다. (煙冪冪.)

- 이 굴에서 아직 나오질 못했군, 발 아래에서 구름이 피어나는구나. (未出這窠窟. 足下雲生.)

수보리(空生)가 좌선하던 바윗가에는 꽃이 가득한데, ( 空生巖畔花狼藉.)

- 어느 곳에 있느냐? 어리석은 놈. 간파해버렸구나. ( 在什麽處.不喞 ? 漢.勘破了也.)


손가락을 튕기며 슬픔을 가누는 순야다신(舜若多神)이여! ( 彈指堪悲舜若多.)

- 사방팔방 온 법계를 순야다신의 콧구멍 속에서 한 구절로 말해보라. 어디 있느냐? (四方八面盡法界.向舜若多鼻孔裏道將一句來.在什麽處.)


꼼짝하지 말라.(莫動着.)

- 앞서 한 말은 어찌 됐는가? 움직이면 어찌하겠는가? (前言何在.動着時如何.)


움직이면 삼십 방망이다. (動着三十棒.)

- 설두 그대가 스스로 나와서 받는 것이 좋겠다.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自領出去.便打.)



(평창)

설두스님의 송고(頌古)가 바로 이와 같았다. 처음에는 금강왕보검을 한 차례 휘둘러 내리치고는 그 뒤에 조금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그렇기는 하나 결국은 두 가지 견해가 있지는 않았다.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드러냈다”하니, 많은 사람들이 숫자의 계산으로 이해하고서 “하나를 버렸다는 것은 십오일 이전의 일”이라 하나, 설두스님이 정면으로 두 구절의 말로 분명히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드러냈다’는 말을 알게끔 하였다. 절대로 언구(言句)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호떡에 무슨 국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많이들 알음알이〔意識〕가운데 떨어져 있으나 모름지기 어구(語句)가 생기기 이전의 것을 알아야만 한다.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나면 자연히 보게 되리라. 그 때문에 석가 어르신네는 성도한 뒤 마갈제국(摩竭提國)에서 스무 하루 동안 이같은 일을 생각하였다.

“모든 법의 적멸한 모습은 말로써 드러내지 못하니 내 차라리 설법하지 않고 어서 열반에 들어가야지.”

여기에 이르러 입을 열 곳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방편으로서 다섯 비구〔五比丘〕를 위하여 법문을 설하고 삼백육십 법회에 이르도록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말씀하셨지만 이는 방편일 뿐이다. 때문에 천자의 의복을 벗어버리고 헤어지고 때묻은 옷을 입고서 부득이하여 얕고 가까운 제이의문(第二義門)으로 많은 제자들을 인도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위로 향하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모두 제시했다면 그것을 이해할 이는 한 명은커녕 반 명도 없었을 것이다.

말해보라, 무엇이 제일구(第一句)인가를. 이쯤에 설두스님은 본뜻을 조금 노출하여 사람들이 알도록 하였다. 그대는 위로는 부처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되고 아래로는 중생이 있다고 알아서도 안되고 아래로는 중생이 있다고 알아서도 안되며, 밖으로는 산하대지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으로는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된다. 마치 완전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길고 짧음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지 말고) 하나로 이루어, 낱낱이 드러내어 끝내 다른 견해가 없도록 하라. 그런 뒤에 적절하게 응용하여야 비로소 그가 말한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드러내니, 상하 사방에 견줄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만일 이 구절을 확철히 알면 “상하 사방에 견줄 것이 없다”는 것을 바로 체득하여, 삼라만상과 초목․인간․축생들이 뚜렷이 자기의 모습을 완전하게 드러내리라. 그 때문에 長慶慧稜( 854--932)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상 가운데 홀로 드러낸 몸은, (萬象之中獨露身.)

오로지 각자(사람)가 스스로 납득해야만이 비로소 깨닫게(親) 되나니, (惟人自肯乃方親.)

옛날에는 잘못되어 길 가운데서 찾았더니,(昔年謬向途中覓.)

오늘에 와 살펴보니 불 속의 얼음과 같구려.( 今日看來火裏氷.)


천상천하에 내가 참으로 존귀하거늘(天上天下唯我獨尊), 많은 사람들은 가지(枝末)을 좇고 근본을 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근본이 바르면 자연히 바람 부는 곳으로 풀이 휩쓸리고 물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는 것 같으리라.

“서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버린다”하니, 서서히 움직일 때에 콸콸 흐르는 물소리 또한 응당 밟아버릴 수 있다. “내키는 대로 바라보며 나는 새의 자취마저도 그려낸다”하니, 보이는 대로 살펴보며 설령 나는 새의 자취라 할지라도 그대로 그려낼 수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확탕(鑊湯)․노탄(爐炭) 지옥이라 할지라도 훅 불어서 꺼버리고, 검수(劍樹)․도산(刀山) 지옥이라 할지라도 큰 소리로 부숴 버리는 것이 전혀 어려울게 없다.

설두스님이 이에 이르러 자비의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경계 속에 주저앉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시 “풀은 더부룩하고 연기는 자욱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두 뒤덮으면 “풀은 더부룩하고 여기는 자욱하다”라는 상태가 될 것이다. 말해보라, 이는 어떠한 사람의 경계인가를. “나날이 좋은 날이로다”라고 해도 괜찮겠는가? 좋아하시네! 아무런 관계가 없구나.

비록 “서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버렸다”고 할지라도 옳지 않으며, “내키는 대로 바라보며 나는 새의 자취마저도 그려낸다”는 것도 옳지 않고, “풀은 더부룩하고 연기는 자욱하다”는 것도 옳지 않다. 설령 모두가 이렇지 않다 하여도 바로 이는 “수보리가 앉은 바윗가에 꽃이 가득한 것”이니, 모름지기 이 부분을 돌이켜 봐야 한다.

왜 듣지 못하였는가? 수보리가 바위에 앉아 선정에 들어 있노라니 하늘 신들이 꽃비를 내려 찬탄했던 일을. 수보리존자는 말하였다.

“공중에서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하늘 신이 말하였다.

“나는 제석천왕(帝釋天王)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찬탄하는가?”

“나는 존자께서 반야바라밀다를 훌륭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야에 대하여 일찍이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찬탄하는가?”

“존자께서는 말씀하심이 없고, 저는 들은 바 없으니, 이것이 참된 반야입니다.”

이에 또다시 땅을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다.

설두스님은 또한 일찍이 이에 대해 송하였다.


비 개이고 구름 머문 새벽 반쯤 열리니,( 雨過雲凝曉半開.)

몇몇 산봉우리 그림처럼 높푸르다. (數峰如畵碧崔嵬.)

수보리는 바위에 앉았다는 생각조차 없는데,( 空生不解巖中坐.)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땅을 진동케 하네.(惹得天花動地來.)

제석천왕이 이미 땅을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으니, 여기에 이르러서 결코 어느 곳에 숨겠는가?

설두스님은 또 말하였다.


나는 도망하려 해도 아마 도망하지 못하리라. (我恐逃之逃不得.)

온 세계의 바깥까지 모두 가득 차 있다. (大方之外皆充塞.)

바쁘고 요란스러움은 언제 다할까? (忙忙擾擾知何窮,)

팔방에 맑은 바람 옷깃을 스치누나. (八面淸風惹衣祴.)  祴(개) 풍류이름. 樂章의 이름.


비록 알몸으로 벌거벗듯 청정하고 해맑아서 전혀 가는 솜털 만한 허물조차 없다 할지라도 지극한 법〔極則〕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야 하는가? 아래 문장-손가락을 퉁기며 슬픔을 가누는 순야다신이여!-을 보라.

범어(梵語)인 순야다(舜若多 : sũnyatā)는 여기 말로는 허공신(虛空神)이다. 이것은 허공으로 몸을 삼아 몸에 감각이나 촉감이 없고, 부처님의 광명이 비춰야만이 비로소 몸이 나타난다. 그대가 만일 순야다신처럼 된다면, 설두스님은 바로 손가락을 퉁기며 슬픔을 가눌 것이다. 또한 “꼼짝하지 말라”하였는데, 움직이면 어떠할까? 백일청천(白日靑天)에 눈뜨고 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