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칙 취암의 눈썹〔翠巖眉毛〕
(수시)
알았다면 세속에서도 자유자재〔受用〕하여 마치 용이 물을 얻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겠지만, 알지 못하면 세속의 이치〔世諦〕에 끌려 다니니 마치 어린 염소의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고, 말뚝을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것과 같다.
때로는 ‘한 구절’이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자와 같고, 때로는 ‘한 구절’이 금강왕의 보검과 같으며, 때로는 ‘한 구절’이 천하 사람들의 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며, 때로는 ‘한 구절’이 파도와 물결을 따르게도 한다. 만일 세속 속에서도 자유자재하면 지음(知音 : 知己)을 만나 기연의 마땅함을 구별하고 길흉을 알아 서로가 서로를 증명한다.
그러나 만일 세속의 이치에 끌려 다닐 경우 진리를 보는 외쪽 눈〔一隻眼〕을 갖추면 시방(十方)에 틀어박혀 천 길의 벼랑 위에 우뚝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대용(大用)이 눈앞에 나타나니 일정한 준칙이 있지 않다”고 하였다. 때로는 한 줄기의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의 작용을 내기도 하며, 때로는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의 작용을 내기도 한다. 말해보라, 무슨 도리에 의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았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취암스님이 하안거 끝에 대중 법문을 하였다.
“한여름 결제 이후로 형제들을 위해서 설법했는데,
-지껄이기는 했지만 법문축에 들까?
취암스님의 눈썹이 붙어 있느냐?“
-결국 눈알마저 땅에 떨어지고 목숨까지도 잃어버렸다.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갔다.
보복(保福)스님은 말하기를
“도둑질하는 놈은 늘 근심이지”하고
-분명히 (네가) 도적이니까 도적을 안다.
장경(長慶)스님은 “(눈썹이) 솟아났다”하고
-혀가 땅에 떨어졌구나. 점점 잘못을 더하는군. 예상했던 대로구먼.
운문(雲門)스님은 “관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느 곳으로 도망가겠는가? 천하의 납승들이 달아나지 못한다. 졌구나.
(평창)
옛사람은 새벽에는 참례하고 저녁에는 법문을 청하였다. 취암스님이 여름 안거 끝에 이처럼 대중 설법을 하였으니 참으로 고고하기 그지없고 하늘을 놀라게 하며 땅을 뒤흔들었다.
말해보라. 일대장교(一大藏敎)의 5천 4십 8권에는 마음〔心〕과 성품〔性〕, 돈오〔頓〕와 점오〔漸〕의 말들이 결코 없는데, 어디에 이러한 소식이 있더냐?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취암스님이 그 가운데서도 기특하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을 살펴보건대 말해보라, 그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옛사람은 한번 낚시를 던질 때는 끝내 헛되이 하지 않고 모름지기 학인을 제접하는 도리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이를 잘못 이해하고서 “밝은 대낮에 당치 않는 말들을 지껄이며 없는 일을 만들어내다가, 여름 안거 끝에 먼저 스스로 말하며 먼저 자신을 점검하여 다른 사람이 그를 점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들 말하지만, 좋아하시네!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러한 견해를 일러 부처 종족을 없애는 것이라 말한다. 대대로 큰스님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설법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도움이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하려는가?
여기에 이르러 투철하게 알아차린다면, 옛사람들에게는 바야흐로 농부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자의 밥을 빼앗는 솜씨가 있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요즈음 사람에게 물으면 말을 되씹고, 눈썹 위에서 살림살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저 집안 사람들(운문․보복․장경스님)을 살펴보면, 그들은 너무나도 그(취암스님)의 수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디마디 얽힌 어려운 대서도 온갖 변화로써 뚜렷이 벗어날 방법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취암스님)의 말에 기특함이 없었다면 운문․보복․장경 세 사람이 시끄럽게 서로 주고받으며 지껄인들 무엇하겠는가?
보복스님의 “도둑질하는 놈은 늘 근심한다”고 한 말로 인하여 앞에서 많은 알음알이를 지껄였다. 말해보라, 보복스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언어문자로써 그 어른을 절대 이해하려 하지 말라. 그대가 만일 뜻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면 그대의 눈알을 뒤바꿔놓겠다. 그래서는 보복스님이 한 한 토막의 이야기가 취암스님의 발목을 부러뜨렸음을 알지 못한다.
장경스님이 “솟아났다”는 말에 대하여 사람들은 흔히 “장경스님이 취암스님에 좌지우지되었으므로 솟아났다”라고들 말들 하지만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는 장경스님이 스스로 취암스님의 견해를 뛰어넘어서 ‘솟아났다’라고 말한 줄을 모르는 것이다. 서로에게 각각 뛰어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대에게 묻노니, 무엇이 솟아난 것이냐? 이는 마치 작가 선지식 앞에서 금강왕 보검을 대뜸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상류(常流 : 凡夫)의 견해를 타파하고 득실과 시비를 끊어버려야만이 비로소 장경스님이 그들과 주고받은 뜻을 알 수 있다.
운문스님이 “관문이다”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이는 참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운문스님은 한 글자로 선을 말하여 학인을 제접한 경우가 많다. 비록 한 글자이나 그 속에는 세 구절이 갖춰져 있다. 저 옛사람들이 상대방에 적절하게 주고받은 말들을 살펴보면 자연 요즈음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데, (중요한 것은) 즉 한마디 해 붙일 때의 모양이다. 그가 이처럼 말했지만 그 뜻은 결코 그곳에 있지 않다. 그곳에 있지 않는 이상, 말해보라, 어느 곳에 있는가? 그것은 모름지기 자세하게 스스로 참구해야만이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하늘과 땅을 비춰 볼 수 있는 솜씨가 있어 대뜸 팔방으로 영롱하리라. 설두스님은 운문스님이 “관문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나머지 세개까지도 하나로 꿰어 송을 하였다.
(송)
취암스님이 학인들에게 법문하였으나
-이 악당이 남의 애들을 버려놓는구나.
천고에 대답할 자 없었는데
-천 명이나 만 명 중에서 한 명 내지는 반 명이나 있을까?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었다.
관문이라고 대답하자
-참으로 기특한데 못 믿겠는가? 운문 정도는 돼야지 이같은 말을 이해하리라.
(세 사람은) 돈 잃고 죄까지 지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찍소리도 못 하네. 설두스님이 잃은 돈도 적지 않다.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하자마자 대뜸 쳤다.
정신 흐린 보복스님을
-함께 가는 도반이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그런 녀석이) 두서너 명은 되겠네.
칭찬해야 할지 꾸짖어야 할지 모르겠네.
-놓아주기도 하고 잡아들이기도 하는군. 누가 생사를 함께 하겠는가? 그를 비방하지 말아라! 좋아하고 있네. 전혀 관계가 없다.
수다쟁이 취암스님이여,
-이 들여우야! 입 닥쳐라!
분명 도적이로다.
-(이렇게) 말해도 무방하다. 도둑 잡았다.
흰 구슬에 티가 없으니
-알 수 있겠느냐? 천하 사람들이 값을 모르네.
어느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구별하랴.
-가짜가 많은데도 산승은 원래부터 그것을 가릴 만한 안목이 없다. 푸른 눈에 오랑캐(달마스님)라면 또 모르지.
장경스님이 알아차렸으니
-이는 알음알이로 헤아린 것이니 비록 그라 해도 겨우 한 개는커녕 반 개도 얻지 못했구나.
눈썹이 솟아났구나.
-어느 곳에 있는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줄기의 풀잎조차도 없다.
(평창)
설두스님이 이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송을 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찌 선지식이라 불리울 수가 있었겠는가? 옛사람이 이처럼 말한 것은 모두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후학들은 그 말에 집착하여 더더욱 알음알이를 내는 까닭에 옛사람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선상(禪床)을 뒤엎고 큰 소리로 대중을 호령해도 그를 나무랄 수는 없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지만 모름지기 이 경지에 실제로 이르러야만이 된다.
설두스님은 “천고에 대답할 자 없었다”라고 했는데, 취암스님은 그저 “내 눈썹이 있는가”라고 말했을 뿐이다. 무슨 기특한 뜻이 있다고 문득 “천고에 대답할 자 없다”고 하였을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옛사람이 토해낸 일언반구는 괜히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하늘과 땅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안목이 있어야만 된다. 설두스님이 하신 일언반구는 마치 금가왕 보검, 웅크리고 앉은 사자, 전광석화와 같다. 만일 정수리에 눈〔一隻眼 : 진리를 보는 눈〕을 갖추지 않았다면 어찌 옛사람의 본뜻을 알았겠는가? 취암스님의 대중 법문은 마침내 “천고에 대답할 자 없다”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덕산스님의 몽둥이〔德山棒〕와 임제스님의 소리침〔臨濟喝〕을 능가한다. 말해보라, 설두스님이 학인을 제접한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대는 “천고에 대답할 자 없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운문스님이) ‘관문이다’라고 대답하자, (세 사람은) 돈 잃고 죄지었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무엇인가? 설령 관문을 꿰뚫는 눈을 갖춘 사람이라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신중히 하여야만 한다. 말해보라. 취암스님이 돈 잃고 죄지었는가, 아니면 설두스님이 돈 잃고 죄지었는가, 운문스님이 돈 잃고 죄지었는가? 그대가 이를 꿰뚫어 알아차리면 그대가 안목을 갖추었다고 인정하리라.
“정신 흐린 보복스님을 칭찬해야 할지 꾸짖어야 할지 어렵다”하니, 자기를 깎아내리고 어느 곳을 대접했는가?
“수다쟁이 취암이여, 분명 도적이다”하였는데, 말해보라, 그가 무엇을 훔쳤는가? 설두스님이 도적이라고 했지만 그의 말귀나 따라가서는 절대 안된다. 여기에 이르러 모름지기 스스로 갖추어야만 한다.
“흰 구슬에 티가 없다”는 말은 취암스님이 너무도 흰 구슬과 닮아서 자그마한 하자도 없다는 것을 송한 것이다. 누구라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랴? 아는 사람이 드물다. 설두스님은 큰 재주가 있었기에 머리에서 꼬리까지 하나로 꿰뚫을 수 있었다. 뒤에 다시 “장경스님이 알았으니 눈썹이 솟아났다”하니, 말해보라, 눈썹이 솟아난 곳이 어디인가? 어서 살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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