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칙1) 태부의 옷소매를 떨치고〔太傅拂袖〕
(본칙)
왕태부가 초경사(招慶寺)에 들어가니, (스님들이) 차를 달이고 있었다.
-작가들이 모였으니 기특한 일이 있겠지. 할 일 없이 등한하다. 모두가 진리를 보는 또 하나의 눈〔一隻眼〕을 갖추었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구나.
이때에 낭상좌(朗上座)가 명초(明招)와 함께 차 끓이는 냄비를 붙잡고 있다가
-모두가 진흙덩이나 희롱하는 놈이로구나. 차 끓일 줄 모르면서 남에게까지 누를 끼치는구나.
낭상좌가 차 냄비를 뒤집어버리자,
-일이 생겼구나. 과연 예상했던 대로구먼.
태부가 이를 보고서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소?”
-과연 재앙이 생겼군.
낭상좌는 말하였다.
“화로를 받드신 신이 있지요.”
-과연 그의 화살에 적중했구나. 참으로 기특하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왜 차 냄비를 엎어버렸오?”
-무슨 까닭에 그에게 본분납자를 기르는 먹이를 주지 않는가? 큰일 났군.
“오랜 동안의 벼슬살이 하루아침에 쫓겨났지요.”
-잘못 지껄였다. 이 무슨 말인가? 엉터리 선객이 삼대 같고 좁쌀처럼 많구나.
태부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분명한 작가로다. 그도 하나의 눈〔一隻眼〕을 갖췄다고 하겠다.
명초가 말하였다.
“낭상좌는 초경사(招慶寺)의 밥을 얻어먹고 도리어 강 건너편에서 떼지어 시끌벅쩍거리는군〔打野木埋〕
-반드시 삼십 방망이를 때려라. 이 애꾸눈 용이 한쪽 눈밖에 없군. 그래도 눈밝은 사람이 점검해 야 할 것이다.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내질렀군. 한 번 잘도 내질렀군. 결국 이처럼 어설픈 죽은 견해를 짓지 말라.
“귀신에게 당했군.”
-과연 진리를 보는 눈〔一隻眼〕을 갖추었구나. 절반쯤 말했다. 한편으로는 치켜올리고, 한편으로 는 깎아내리네.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명초가 그 말을 하자마자,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 버렸어야지.”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겨 무엇하랴. 이와 같다 해도 덕산(德山)스님의 문하객으로는 걸맞지
않다. 날렵하군. 그 가운데서도 기특하다 하겠다.
(평창)
불성의 의미를 알고저 한다면 마땅히 시절 인연을 살펴야 한다.
왕태부는 천주(泉州)의 원님으로서 오랜동안 초경사(招慶寺)에서 참구하였다. 하루는 절로 들어
가자 낭상좌가 차를 끓이다 말고 차 냄비를 엎어버렸다. 태부도 또한 작가인터라 차 냄비를 뒤엎
어버리는 것을 보자마자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이는 말 속에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긴 하나, 처음과 끝이 서로 어긋나고 종지를 잃어버려 칼날
에 손을 다친 꼴이니 이를 어찌하랴. 자신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남까지도 틀리게 한다. ‘이 일’은
득도 실도 없으므로 만일 거량했다가는 여전히 친하고 성김이 있고 검고 흰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의론하다면 말과는 관계가 없지만, 또한 말 속에 생동력 있는 팔팔거림이 있다는 것을 알아
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낭상좌
의 이와 같은 말은 미친 개가 흙덩이를 좇아가는 꼴이다. 태부가 소매를 떨치고 떠나 버린 것은
그를 긍정하지 않은 것이다.
명초의 “낭상좌여, 초경사의 밥을 얻어먹고서도 도리어 강 건너편에서 떼지어 시끌벅쩍거리는군
〔打野木埋〕”라는 말 가운데 ‘야매(野木埋)란 황야에 널려 있는 불타버린 나무토막이라는 뜻이다. 이는 명상좌가 올바른 곳으로 가지 않고 바깥으로 치달리는 것을 밝혀준 것이다.
낭상좌는 이에 내질러서 물었다.
“스님은 어떡하시렵니까?”
“귀신에게 당했군.”
명초에게는 분명히 몸을 벗어날 곳이 있으며 또한 그의 물음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영
리한 개는 어금니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문다”고 한다.
위산 철(潙山喆)스님은 “왕태부는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구슬을 되찾아올 때 수염이 충천했
던 것과 매우 닮았다”고 하였다. 이는 명초가 참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산스님이 만일 낭상좌였다면 태부가 소매를 떨치고 떠나갈 때 차 냄비를 놓아버리고 껄껄거리
며 큰 소리로 웃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고서도 내 것으로 챙기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록 다
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보수(寶壽)스님이 호정교(胡釘鉸)에게 물었던 것을.
“오래전부터 호정교의 소문을 들었는데 혹 호정교가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래 허공에도 못을 박을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그 못을) 떼어보십시오.”
보수스님이 후려쳤으나 호정교가 그를 수긍하지 않자 보수스님은 말하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말 많은 스님이 그대를 점검해줄 날이 있을 것이오.”
호정교가 그후 조주스님을 친견하여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조주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는가?”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붙일 수도 없는데 또다시 그에게 허공을 떼어보라고 하다니.”
호정교가 문득 그만둬버리자 조주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이 하나로 붙여놓은 것에 못을 박아보아라.”
호정교는 이 말에 깨침을 얻었다.
서울의 미칠(米七)스님이 행각을 하고 돌아오자 어떤 노스님이 물었다.
“달밤에 우물 속에 있는 새끼 토막을 사람들은 모두가 뱀이라고 하는데, 미칠스님은 부처를 뭐라
고 하겠습니까?“
“만일 (이러쿵저러쿵) 견해를 짓는다면 바로 중생과 같겠지요”
“그렇지만 천 년 만에 싹이 돋는 복숭아씨 같아 생기가 없군.”
혜충국사(慧忠國師)가 자린공봉(紫璘供奉)에게 물었다.
“공봉은 「사익경(思益經)」의 주해를 냈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그렇습니다.”
“경전의 주해를 내려거든 반드시 부처님의 뜻을 알아야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경전의 주해를 붙인다 하겠습니까?”
마침내 시자에게 물 한 주발을 가져오게 한 후 쌀 일곱 톨, 젓가락 한 짝을 주발 위에 얹어 공봉
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이게 무언가?”
“모르겠습니다.”
“나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부처의 뜻을 말하겠는가?”
왕태부와 낭상좌의 대화는 한결같지 못하다.
설두스님이 맨 끝에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를 밟아서 엎어버렸어야지”라고 말하였는데, 명
초가 그처럼 하기는 했지만 결코 설두스님만은 못하였다.
설봉스님이 동산스님의 회하에 있으면서 밥짓는 일을 하였는데 하루는 쌀을 씻고 있을 즈음에
동산스님이 물었다.
“무얼 하느냐?”
“쌀을 일고 있습니다.”
“쌀을 일어 모래를 버리느냐. 모래를 일어 쌀을 버리느냐?”
“모래와 쌀을 일시에 모두 버립니다.”
“대중들은 무얼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그러자마자 쌀 일던 단지를 쏟아버리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너의 인연은 이곳에 있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설두스님이 말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를 엎어버렸어야 했다”는 말과 같을
수 있겠는가? 설봉스님과 설두스님이 한 행위들은 모두 어떠한 시절 인연들일까? 그들의 용처(用
處)에 이르면 반드시 고금에 뛰어나 팔팔 살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다그쳐 물어오는 것이 찬바람이 일 듯 하였지만
-헛 화살을 쏘지 않았다. 가끔씩은 모양새를 갖추지. 참으로 오묘하구나.
그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
-진흙덩이 주무르는 놈들이 어찌 한둘이랴!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은 것처럼 잘 맞지 않는 군. 작가 선지식에게 제대로 채였구나.
가련하다, 애꾸눈 용(龍)이여!
-한쪽 눈만 있군. (그대를 잡아매는) 말뚝을 얻었을 뿐이다.
결코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니,
-드러낼 만한 어금니와 발톱도 없는데 무슨 어금니와 발톱을 말하느냐? 그러나 그를 속이지 말 라.
어금니와 발톱을 벌리면
-그대들은 보았느냐? 설두스님이 그대로 조금은 나은 편이다. 이러한 솜씨가 있었더라면 차 달이 는 화로를 뒤엎어버려라.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온 대지 사람들이 일시에 몽둥이질 당했네. 천하의 납승들이 몸 붙일 곳이 없군. 비도 안 오는 하늘에 뇌성벽력이다.
바다를 범람시키는 파도를 몇 번이나 겪었던가?
-곤장 72대의 죄가 도리어 150대의 죄가 되었구나.
(평창)
“다그쳐 물어오는 것이 찬바람이 일 듯 하였지만, 그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는 것은,
마치 왕태부가 물은 곳이 도끼를 휘둘러 찬바람을 일으키는 듯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장자
(莊子)」에서 나온 말이다. 영(郢) 땅 사람이 벽에 진흙을 바르다가 작은 틈이 하나 남아 있자 진
흙을 둥실둥실 뭉쳐 그 구멍에 던져 메워버렸다. 그때 조그마한 진흙이 코 끝에 튀겼는데 곁에 있
던 목수가 말하였다.
“틈을 메우는 그대의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다. 나는 이 도끼를 휘둘러 그대의 코 끝에 묻어 있는
진흙을 떼주겠다.”
그의 코 끝에 묻어 있는 진흙은 파리 똥만큼이나 적었으나 목수에게 깎아보라고 하자 도끼를 휘
둘러 바람을 일으키면서 진흙을 모조리 제거하되, 조금도 코를 다치지 않았으며, 영 땅 사람 또한
꼼짝 않고 서 있는 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한다. 이를 두고 이른바 “둘 다 정교하다”고 한
다. 낭상좌가 응수하기는 했으나 훌륭한 말은 못 되었기에 설두스님은 “다그쳐 물어오는 것이 찬
바람 일 듯 하였으나, 그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가련하다, 애꾸눈 용(龍)이여, 결코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지 않더니”라고 명초가 한 말은 매우
기특하긴 하지만 아직은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피워내는 솜씨가 없는 데야 어찌 하겠는가.
설두스님은 곁에서 이를 긍정하지 않고 참지 못하여 그를 대신하여 말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은
연중 그(태부)의 뜻에 맞추어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라고 노래한 것이다.
“어금니와 발톱을 벌리면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바다를 범람시키는 파도 몇 번이나 겪었던
가?”라고 하였는데, 운문스님은 “그대들에게 바다를 범람시키는 파도가 있기를 바라지 않으나 물
에 순응하는 뜻만 있어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활구에서 깨치면 영겁토록 잊지 않는다고 한
다.
낭상좌와 명초의 어구는 죽은 것과 같다. 팔팔 살아 있는 곳을 보려고 하느냐? 설두스님의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라는 말을 살펴보라.
1)제48칙에는 〔수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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