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0:40
 

 

 

제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


(수시)

모양〔相〕이 없으면서도 형상이 시방허공을 가득 메워 반듯하고 넓으며〔方廣〕, 무심(無心)하

여 온 세계에 두루하면서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밝히며, 눈대중으로 탁 보고 착 알아차려 비 쏟아지듯 방망이를 때리

고, 우레가 치듯 ‘할(喝)’을 한다해도 향상인(向上人)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말해보라, 무엇

이 향상인의 일인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그렇긴 해도(외도라 할지라도) 모두 이 집안 사람이므로 약간의 향기가 있구나. 쌍검이 허공에

난다. 묻지 않았기 망정이지.


세존께서 말없이 한참 계시니,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레와 같다. 앉은 사람, 선 사람 모두가 그를 움직일 수 없    다.


외도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

시었습니다.”

-영리한 놈이 한 번 튕겨주자 대뜸 알아차리는군. 소반 위에 구르는 밝은 구슬이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얻었기에 도에 들어갔다 말하였습니까?”

-참으로 사람을 의심케 하

는구나. 그러나 모두가 알아야 한다. 용광로 속에 쇳덩이를 통째로 넣   었구나.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다.”

-말해보라. 무엇을 채찍의 그림자라고 하였을까? (원오스님은) 불자(拂子)를 한 번 내려쳤다. 방

망이 끝에 눈이 있어 해처럼 밝구나. 진짜 금을 식별하려면 불 속에 넣어보아야지. 입으로 밥을   먹을 기회가 왔군.


(평창)

‘이 일’이 언구에 있다면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가 어찌 언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떤 이가

만약 “말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올 필요가 있단 말인가?

예로부터  허다한 공안은 결국 어떻게 해야 그 핵심을 알 수 있을까? 이 한 칙의 공안을 말하는

자는 드물지 않다. 어느 사람은 “말없이 한참 있는 것”이라 하며, 어떤 이는 “기대어 앉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없이 대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아뿔사! 이는 전혀 관계

가 없는 것이다. 어찌 이를 더듬어서 찾으려고 하는가? 이 일은 실로 언구 위에도 있지 않지만 언

구를 떠나지도 않는다.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의논하려 한다면 천리 만리나 멀어질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저 외도가 깨닫고 나서 보니, (‘이것’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지 않았으며, 옳은

데도 옳지 않은 데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음을 알 수 있다. 말해보라, 이는 어떤 것인가를.

천의 의회(天衣義懷)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유마는 말없이 한참 동안 있지 않았으니

기대어 앉아 헤아리면 잘못이다.

취모검갑(吹毛劍匣)속에 싸늘한 광채 차가우니

외도천마(外道天魔)가 모두 손을 못 대는군.


백장 도항(百丈道恒)스님이 법안(法眼)스님을 참방하자 법안스님은 이 화두를 들게 하였는데,

하루는 묻기를 “너는 어떤 인연을 보았느냐?”고 하자, 백장 도항스님은 말하였다.

“외도가 부처님께 질문한 화두입니다.”

“그대는 말해보아라”

도항스님이 머뭇머뭇 입을 열려고 하자, 법안스님은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그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던 것〔良久處〕을 알음알이로 헤아리려고

하느냐?”

도항스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완전히 깨치고 그 뒤에 대중 설법을 하였다.

“백장스님에게는 세 비결이 있으니, ‘차나 마셔라’, ‘잘들 가시오’,‘쉬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러쿵저

러쿵 따지거나 사량(思量)한다면 그대들은 결코 투철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취암산(翠巖山)에 살던 점흉(點胸)이란 별명이 있는 가진(可眞)스님이 이를 들어 말하였다.

“천지사방과 9주(唐代에는 전국이 9州였음)에 청(靑 : 관리)․황(黃 : 도사)․적(赤 : 승려)․백(白

: 속인)이 모두 얽히고 설키어 살고 있구나!”

외도는 ‘네 베다〔四維陀〕’를 이해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일체의 지혜〔一切智)를 얻은 사

람이다”하며, 곳곳에서 사람을 찾아 논의를 하였다. 그는 질문의 실마리를 일으켜 석가부처님의

혀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세존께서는 실낱만큼의 힘도 쓰지 않으셨는데도, 그는 문득 깨

닫고 떠나면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말해보라, 대자대비한 곳이 어디인가를. 세존의 이

한 눈은 삼세(三世)를 관통하였고, 외도의 두 눈동자〔雙眸〕는 오천축국(五天竺國)을 관통하였다.

위산 진여(潙山眞如)스님이 이를 들어 말하였다.

“외도는 지극한 보배를 간직하였고 세존께서 그것을 몸소 끄집어내시니 삼라가 밝게 나타나고

만상이 분명하였다.”

결국 외도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는 마치 개를 도망갈 곳이 없는 담장으로 몰아붙이는 것처럼,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러 도리어 대뜸 활발발한 것과 같다. 만일 계교와 시비를

일시에 놓아버리고 망정이 다하고 견해가 없어지면 자연히 속속들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깨쳤기에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까?”

“훌륭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서도 달려가는 것과 같다.”

뒷날 총림에서는 “또 바람이 나부껴 다른 곡조 속에 섞이고 말았다”고 하였으며, 또한 “용 머리

에 뱀의 꼬리”라고도 하였다. 어느 곳이 세존의 채찍 그림자이며, 어느 곳이 채찍 그림자를 본 곳

일까?

설두스님은 “사정(邪正)을 분간하지 못한 허물은 채찍 그림자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진여(眞

如)스님은 “아난이 황금 종을 거듭 치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 소리를 함께 듣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의 위엄과 영악스러움을 키워

준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기틀의 바퀴를 굴리지 않았으나

-여기에 있다. 과연 한 실오라기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리리라.

-있음〔有〕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없음〔無〕에 떨어지고 동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서쪽   으로 간다. 왼쪽 눈은 반 근이고 오른쪽 눈은 여덟 냥이다.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석가부처님을 보았느냐? 한 번 튕겨주니 대뜸 피하는군. 깨졌군, 깨졌어. 탄로났군, 탄로났어.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

-온 대지가 해탈문이다. 족히 30방망이는 먹여야지. 석가부처님을 보았느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함이여! 미혹의 구름이 열리니

-(방편으로) 작은 길을 하나 터놓았군. 그대가 몸을 비낀 곳이 있는 것을 인정하겠지만 외도인    것을 어찌하랴.


자비의 문 어디엔들 티끌먼지가 일어나랴?

-온 세계 어디에도 결코 숨기지 못하지. 물러서라, 물러서라. 달마스님이 오신다.


생각해보니, 채찍 그림자를 엿보는 훌륭한 말은

-나에게 주장자가 있으니 그대가 나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말해보라, 어디가 채찍 그림자며, 어  디가 훌륭한 말〔馬〕인가?


천 리를 바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온다.

-불전에 올라타고 절문 밖으로 나가는군. 몸을 비꼈다 해도 잘못이다. 용서해줘서는 안된다. (원

오스님은) 쳤다.


아아! 돌아왔구나! (설두스님은) 손가락을 세 번 튕겼다.

-앞으로 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다. 주장자를 꺾고 어느 곳으로 가느냐?

설두스님은 우레 소리만 컸지 빗방울은 전혀 없다.


(평창)

“기틀의 바퀴를 굴리진 않았지만,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린다.” 기틀〔機〕이란 일천 성인의

신령한 기틀이며 바퀴〔輪〕란 본래부터 있는 여러분의 목숨이다. 듣지 못했느냐? 고인(설두스님)

의 말을.


일천 성인의 신령한 기틀 쉽게 친하지 못하나니

용이 용 새끼 낳는 것 그냥 따르지 말라.

조주스님은 몇 개의 성과 맞바꾸는 큰 구슬을 빼앗았으니

진왕(秦王)과 인상여(藺相如) 모두가 목숨을 잃었구나.


외도는 (자신의 본성을) 거머쥐고 주인 노릇을 하여 꼼짝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하면, 그가 말하기를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라고 했

기 때문이다. 이 어찌 온전한 기봉이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세존께서는 풍향에 따라 돛을 걸고 병에 따라 약을 투여할 줄 아셨기에 한참 말없이 계시면서

온전한 기틀을 드러내셨다. 이에 외도는 이를 모두 이해하고 기틀 바퀴〔機輪〕를 빙글빙글 돌리

면서 유(有)로 향하지도 않고, 무(無)로 향하지도 않았으며, 얻고 잃음에도 떨어지지 않았고, 범부

와 성인의 경지에도 얽매이지 않아, 양쪽을 일시에 꼼짝 못하게 했던 것이다.

세존께서 한참 말없이〔良久〕계시자마자 그는 바로 절을 올렸다. 요즈음 사람들은 무(無)에 떨

어지지 않으면 유(有)에 떨어져 오로지 유(有) ․무(無)에 머물고 만다.

설두스님의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라는 말은 꼼

짝하지 않고 한참 말없이 있었을 뿐인데,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린 것처럼 삼라만상의 모습이 이

거울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도는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

니다”라고 말했는데 말해보라, 외도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모두 스스로 참구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나 행주좌와에 높낮이를 묻지 않아도 단박에 그대로 나타나 다시는 한 실오라기 만큼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계교를 부리며 한 터럭만큼이라도 이치로써 따지면 그 자리에서 사람을 얽매

어 도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뒤이어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라는 데 대하여,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 어여쁘고 티끌먼지가 일어나랴”

하고 노래하였다. 온 대지가 세존의 대자대비하신 문이다. 그대들이 이를 꿰뚫을 수 있다면 손 한

번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활짝 열어놓은 문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세존께서 스무하루 동안에 ‘이 일’을 사유(思惟)하시고 “내 정녕 설법을 하지

않고 어서 열반에 들어야겠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해보니, 채찍 그림자를 엿보는 훌륭한 말은 천 리를 바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

온다”는 것은, 바람처럼 달리는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곧바로 천리를 달리지만 되돌아 오

라 하기만 하면 곧바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를 칭찬하여 “똑똑한 사람은 한 번 튕

겨주면 대뜸 알아차리고, 한 번 부르면 문득 되돌아온다. 만일 불러서 되돌아온다면 손가락을 세

번 튕기리라”고 했다.

말해보라, 이는(핵심을) 드러내 밝혀주신 것일까, 모래를 뿌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