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3.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다 / 경산사 묘고(妙高)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06
 

 

 

3.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다 / 경산사 묘고(妙高)스님


지원(至元) 25(1288)년 봄, 승통(僧統) 양련 진가(楊輦眞迦)는 황제의 칙명으로 강남지방 교종과 선종의 여러 스님을 인솔하여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였다. 황제가 선종에서는 무엇을 종지로 삼느냐고 묻자, 경산사 주지 묘고(妙高)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였다.

”선이란 청정하고 지혜롭고 오묘하고 원만하여 그 바탕이 본래 공적(空寂)하니 견문각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량과 분별(分別)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선종의 조종(祖宗)과 후예를 모두 말하여 줄 수 있겠습니까?”

”선종의 조종과 후예는 석가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황금빛 나는 한 송이 바라화(波羅花)를 들어 두루 대중에게 보이시자 그 당시 가섭존자만이 미소지으시니 세존께서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이를 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습니다. 그후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보리달마에 이르렀는데 달마존자께서는 동쪽나라 이 중국에 대승의 근기가 있음을 바라보시고 바다를 건너오셨습니다. 그리하여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장 사람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이것이 선종입니다.”

황제가 이를 가상히 여기자 묘고스님은 다시 자연스럽게 말하였다.

”선과 교는 본래 하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수백 수천의 다른 강줄기가 모두 바다로 돌아가 한맛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폐하께서 온누리를 다스려 천하가 통일되니 사방 오랑캐가 온갖 조공을 바치고자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찾아오지만 반드시 순성문(順成門)을 통과하여 황금 대궐에 이르러 몸소 용안을 본 후에야 집안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교학가들이 언어문자에 집착하여 현묘한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들은 아직도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며, 선종에서도 예닐 곱 개의 좌복이 낡아 떨어지도록 참선을 했다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들 또한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모두 다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곧 교학을 익히는 자는 반드시 현묘한 이치를 통달해야 하고, 참선하는 자 또한 반드시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 신하들이 오늘에야 몸소 황금 대궐 위에 올라와 한차례 용안을 보고서야 비로소 집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황제는 기뻐하며 음식을 하사한 후 물러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