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43. 생사는 무상한 것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53
 

 

 

43. 생사는 무상한 것


형경남(亨景南)이라는 자는 남창(南昌) 만씨(萬氏)집안 자손으로, 어려서 내복산(來福山) 단(端)스님에게 귀의하여 백장사(百丈寺) 여암 우(如菴愚)스님과 용상사(龍翔寺) 소(訴)스님의 회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선정원의 추천으로 향성사(香城寺)에서 개법(開法)하였다. 그 사찰은 오랫동안 폐사로 묵어오다가 일신되었으며, 스님은 그후 상람사(上藍寺)로 옮겨갔는데 도풍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78세가 되던 어느 날 곁에 있는 승려에게 명하여 물을 끓여 목욕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편히 앉아 게를 쓰고는 주장자에 기대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단단한 사리가 매우 많이 나왔는데, 그의 법손 제성(濟盛)이라는 스님이 주장자와 승복과 사리를 거둬 내복산에 부도탑을 세워 갈무리하였다.

상법시대 이후 행각승들이 어느 곳에 가서 자리를 잡으려할 때는 반드시, 생사의 일이란 몹시 무상하고 신속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구도 정신이 간절한 듯하지만 승적(僧籍)을 얻은 후엔 지난날 스스로 노력하겠다던 말을 실천하지 않고 명리만을 분주히 좇을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오늘날 경남스님은 임종 때에도 이와 같았으니 평소의 수행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