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암두(岩頭)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1:28
 

 

 

암두(岩頭) 화상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고, 악주(鄂州)의 당녕주(唐寧住)에 있었다. 휘는 전할(全·)이요, 속성은 가씨(柯氏)이며, 천주(泉州) 남안현(南安縣) 사람이었다.

  영천사(靈泉寺) 의공(義公) 밑에서 공부하였고, 장안 서명사(西明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열반경』을 강의하는 것으로 업을 삼다가 나중에 덕산에게 참문하였다.

  처음 참문하러 가서 자리를 펴고 절을 하려는데 덕산이 주장자로 방석을 퉁기어 멀리 섬돌 밑으로 던졌다. 그로 인해 선사(암두)는 섬돌 밑으로 내려가 방석을 거두어 가지고 주사(主事)를 만나 수인사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덕산이 한참 동안 그런 선사를 보다가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저 중은 마치 행각하는 사람 같구나!" 

  그리고는 개인적으로 선사를 가슴에다 잘 기억해 놓았다.

  이튿날 아침에 선사가 법당에 올라 덕산을 뵈니, 덕산이 물었다.

  

  "그대는 어제 저녁에 새로 온 그 사람이 아니던가?"

  "예, 그렇습니다." 

  "어디서 그런 허탕을 배웠는가?"

  "저는 한번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덕산이 꾸짖으면서 말했다.

  "저 친구가 뒷날 내 머리 위에다 똥을 갈길 것이다."

  선사가 절을 하고 물러가서 기묘한 근기를 숨기고 머문 지 몇 해 동안에 현묘한 뜻을 모두 깨달았다. 선사는 처음에 와룡산(臥龍山)에 살다가 나중에 암두(岩頭)로 옮겼다.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이나 시종을 물리치고 바로 와룡(臥龍)을 뵙고자 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눈썹을 깜박여 보아라."

  선사가 다음과 같이 요일송(曜日頌)을 읊었다.

  

  기연에 맞추어 눈앞의 참됨을 바로 보였건만

  말만 따르는 무리는 가까이하지 못한다.

  본색인 선타바(先陀婆)가 그토록 허망하니

  암두산(岩頭山)의 소나무 항상 새로워라.

  當據直下現前眞 認語之徒未可親 

  本色先陀如摩· 喦頭檉檜鎭長新

  

  한번은, 세 사람이 동시에 절을 하고, 채 입도 열기 전에 선사가 말했다.

  "세 사람이 모두 틀렸다."

  세 사람이 잠자코 말이 없으니, 선사가 문득 할을 하여 내쫓았다.

  이에 동산이 대신 말했다.

  "단지 화상께서 말씀이 없으실까봐 두렵습니다."

  운문이 대신 말했다.

  "화상께서도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毘盧)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학인이 질문을 하려는데, 선사가 문득 할을 하여 내쫓으면서 말했다.

  "이 둔한 놈아!"

  "고금을 겪지 않는 일이 어떠합니까?"

  "우뚝 솟은 것이니라."

  "고금을 겪는 일이 어떠합니까?"

  "멋대로 썩어문드러진 것이니라."

  "삼계가 앞을 다퉈 일어날 때가 어떠합니까?"

  "앉혀라."

  "화상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여산(廬山)을 이리로 옮겨오면 그대에게 일러 주리라."

  

  나산(羅山)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30년 동안 계시면서도 동산을 긍정치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또 물었다.

  "화상께서는 덕산의 법을 이으시고도 덕산을 긍정치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나산이 또 물었다.

  "덕산을 긍정치 않으신 것은 묻지 않겠거니와 동산에겐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동산은 좋은 부처이건만 광채가 없을 뿐이니라."

  

  설봉이 덕산에게 물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최상승을 여기서는 어떻게 남에게 전하십니까?"

  덕산이 대답했다.

  "나의 종에는 말이 없나니, 실로 한 법도 남에게 줄 것이 없느니라."

  선사가 이 문답을 듣고 말했다.

  "덕산 노장은 척추뼈가 휘어도 꺾이지 않는구나! 그러나 교법을 펴는 부문에는 아직도 조금 모자란다."

  보복(保福)이 이 이야기를 들어서 장경에게 물었다.

  "암두(岩頭)가 평생 세상에 나와 활동한 동안 어떤 말씀이 덕산보다 훌륭하기에 아직도 조금 모자란다 했을까요?"

  이에 장경은 선사가 시중(示衆)한 말을 들어 말했다.

  "선사께서 다음과 같이 시중하셨다. 

  '만일 뜻을 얻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알리라. 하는 일마다 모두 불안한 상황일 때라도 항상 태연자약하여서 부딪치는 상황에 따라 전하니 뜻이 전함에 있다. 머문다면 그냥 머물고, 간다면 그냥 가나니, 반드시 가고자 해도 가지 않고 머물고자 해도 머물지 않는 곳에서 깨달아야 현상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현상에 의거하지 않게 된다. 그래야만 마치 죽은 사람이 옥을 잡거나 만지작거리는 것같이 어떤 사실을 굳게 움켜쥐고 전할 줄 모르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과 다르게 되리라. 나귀 해에 이르러 설사 전할 수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대들을 여기에 모아 놓고 별다를 바 없이 떠들어대고 뚫어 대고 연마해 대면서 곧장 꿰뚫도록 가르치고 끝까지 철오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못내 부끄럽구나! 하지만 들어 보지 못하였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는데 오래도록 연습해야 비로소 명중을 하는 것 같다.' 

  그러자 어떤 이가 물었다. 

  '명중할 때엔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아프고 가려운 것을 모르는 게 아니겠지?'"

  보복(保福)이 다시 물었다.

  "오늘, 화두만을 드신 것이 아닙니다."

  이에 장경이 대답했다.

  

  "이 무슨 마음씨인가?"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산을 옮겨오면 말해 주리라."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덕산 노장은 다만 눈앞의 쓸모 없는 방망이 하나에 의지하여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렸다. 그러나 아직은 약간 틀렸다."

  이에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또 저렇게 하는구나!"

  "어떤 것이 바위 속(岩頭를 가리킴)의 분명한 뜻입니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화상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그대가 지시해 주어서 고맙다."

  

  선사가 설봉과 산밑의 아산원(鵝山院)에 갔다가 눈에 막히어 며칠을 묵게 되었는데 선사는 그저 날마다 잠만 자고 설봉은 날마다 좌선만 했다. 이렇게 7일을 지난 뒤에 설봉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사형, 그만 일어나세요."

  선사가 대답했다.

  "무엇을 하게?"

  설봉이 말했다.

  "금생에 길을 잘못 들어서 문수(文遂) 같은 놈과 더불어 이곳저곳을 다니다 그에게 말려들었는데, 오늘 여기에 함께 와서도 그저 잠만 잘 뿐이구려."

  이에 선사가 할을 하고 말했다.

  

  "그대도 눈을 감고 자거라. 날마다 긴 평상에 앉은 꼴이 마치 칠장이 동네의 토지공 같으니, 뒷날 남의 집 남녀들을 많이도 홀리겠구나."

  이에 설봉이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여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뒷날 외딴 봉우리에 초막을 짓고 대교(大敎)를 널리 퍼뜨릴 것이라 여겼는데 여전히 딴소리나 하는구나."

  그러자 설봉이 다시 말했다.

  "실로 편안치 않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참으로 그렇다면 그대의 견해를 말해 보라."

  설봉이 말했다.

  "제가 처음에 염관(鹽官)에게 갔더니, 관색공의(觀色空義)를 말씀해 주시기에 그로 인해 들어갈 곳을 얻었습니다."

  또 동산이 다음과 같이 읊은 일이 있었다.

  

  절대로 남을 따라 찾지 말라.

  나와 점점 소원해 얻어진다.

  나 이제 홀로 가나니

  곳곳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切忌隨他覓 迢迢與我踈

  我今獨白往 處處得逢渠

  

  그는 지금 바로 나이지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로다.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바야흐로 여여한 이치에 계합하리라.

  渠令王是我 我今不是渠

  應須與摩會 方得契如如

  

  이에 대하여 선사가 할을 하고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해서는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도 끝내지 못하리라."

  설봉이 물었다.

  "뒷날을 어찌합니까?"

  "뒷날, 거룩한 가르침을 크게 드날리고자 한다면 저마다 모두가 자기의 가슴에서 흘려 내어 남을 위해 하늘과 땅을 덮어 버려라."

  설봉이 이 말끝에 크게 깨닫고 절을 하고 일어나서 연거푸 말했다.

  "이것이 바로 아산(我山)에서 도를 이루는 것이로다."

  두 사람이 헤어진 뒤에 선사는 악주(鄂州)에서 사태(沙汰)를 만나 호숫가에서 나룻배 사공 노릇을 하였는데, 호수 양쪽에 판자 조각을 세워놓고, 사람이 와서 한 번 치면 곧 배를 몰고서 물었다.

  "누구인가?"

  "저쪽으로 건너가려는 사람이요."

  그러면 선사는 강을 건네어 주었다.

  

  한편 설봉은 복주(福州)에서 암자를 세우고 지내다가 사태를 만났는데, 나중에 어떤 스님이 둘이 와서 절을 하고 뵈니, 설봉은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자마자 손으로 암자의 사립문을 밀치고 나서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설봉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스님들이 3·5일 묵고 떠나려 하니, 설봉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호남(湖南)으로 가렵니다."

  설봉이 말했다.

  "내 도반 하나가 그곳에 있는데, 그대 편에 그에게 소식을 전하려 하는데 되겠는가?"

  "그리하겠습니다."

  

  이에 설봉이 곧 편지 한 통을 썼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산에서 도를 얻은 뒤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형께서도 아산에서 도를 얻으신 뒤로 어느덧 오늘에 이르셨군요. 함께 공부하던 모모가 사형께 문안 올립니다."

  그 스님이 암두(岩頭)에 이르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방에서 옵니다."

  "설봉에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 화상께 드리라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편지를 꺼내어 선사에게 바치니, 선사가 받아 들고는 이어 물었다.

  "최근 그에게 어떤 가르침이 있던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처음 이르렀을 때, 한 토막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물었다.

  "그 뒤에 그는 무어라 하던가?"

  "아무 말씀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암자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에 선사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차! 내가 당초에 그에게 마지막 한 구절을 일러 주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구나! 만일 내가 그에게 마지막 한 구절을 일러 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름이 끝나는 해제 날 그 스님이 앞의 일을 자세히 들어 선사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마지막 한 구절을 일러 주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하셨는데, 어떤 것이 마지막 한 구절입니까?"

  선사께서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진작 묻지 않았는가?"

  "저는 경솔히 굴 수 없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7 권 > 353 - 362쪽

K.1503(45-233), 

  "비록 덕산이 같은 뿌리에서 났으나 설봉과 같은 가지에서 죽지는 않겠다. 그대들은 마지막 한 구절을 알고자 하는가? 그저 이것뿐이니라."

  

  사태를 만났을 때, 선사가 난삼(欄衫:선비의 복장)을 입고 석모(席帽)를 쓰고 비구니 승방에 갔는데 마침 여승들이 밥을 먹고 있기에 자신 만만하게 부엌으로 가서 밥을 손수 찾아다 먹었다. 사미니가 와서 이를 보고 비구니에게 알리니, 비구니가 주장자를 들고 와서 막 문턱을 넘어서려는데 선사가 손으로 석모의 끈을 풀고 일어서니, 비구니가 말했다.

  "알고 보니 할(·) 스님이었구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사는 할(喝)을 해 쫓아 버렸다.

  

  대언(大彦) 상좌가 처음 선사에게 참문하러 오니 마침 선사가 문 앞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이에 언 상좌가 벙거지를 쓴 채 당당하게 와서 곧장 선사의 앞에 이르러 손으로 삿갓을 두드리고는 손을 들어 말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선사가 풀 한 움큼 쥐어다 그의 얼굴에 던지면서 말했다.

  "생각을 품지 마라, 생각을 품지 마라."

  그가 말이 없자 선사가 세 주먹을 갈겨 주었다. 그제서야 위의를 갖추고 방으로 막 오르려는데 선사가 말했다.

  "이미 만나 보았으니, 올라올 필요 없다."

  언 상좌가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갔다. 이튿날 죽을 먹고 다시 올라와 방장 문턱을 넘어서려 하자 선사가 평상에서 뛰어내려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언 상좌가 대답이 없으매, 할을 하여 내쫓았다. 이에 언 상좌가 개탄하면서 말했다.

  "나는 평소 천하에 사람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늙은 호랑이가 있었구나!"

  

  소산(韶山)이 선사에게 참문하러 왔는데 선사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떨구고 거짓으로 자는 시늉을 했다. 소산이 가까이 다가와 오랫동안 서 있어도 선사가 전혀 개의치 않으므로 소산이 손으로 선상을 두드리고 선사의 손을 한 번 잡아끌었다. 그제야 선사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무엇을 하는가?"

  소산이 말했다.

  "화상께선 좀더 푹 주무십시오."

  이에 선사가 깔깔거리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30년 동안 말을 탔는데 오늘은 당나귀에게 채였구나!"

  

  위산(潙山) 화상이 토방 밑에 매흙질을 하고 있을 때 이군용(李軍容)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위산에게 도를 물으러 왔다. 그리고 위산의 등 뒤에서 단정히 홀(笏)을 들고 섰으니 위산이 고개를 돌려 보고는, 얼른 진흙판을 기울여 진흙을 받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시랑이 얼른 홀을 기울여 진흙을 바치는 시늉을 했다. 이에 위산이 당장 진흙판을 던지고 시랑과 손을 맞잡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선사가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했다.

  "한심하도다! 앞으로 불법이 점점 더 담박해지겠구나! 천하의 위산이 매흙질을 하나도 할 줄 모르다니!"

  

  협산(夾山)에 있던 어떤 스님이 석상에 와서는 문턱을 넘어서자 바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석상이 말했다.

  "그만 되었다, 사리여!"

  "그러시다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 스님이 나중에 암두(岩頭)에 이르러 곧장 올라오면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쉬!"

  스님이 다시 말했다.

  "그러시다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몸을 돌리려는데 선사가 말했다.

  "비록 젊은 친구이지만 제법 예절을 아는구나!"

  그 스님이 돌아가서 협산(夾山)에게 이야기하니 협산이 상당하여 말했다.

  "지난번 암두(岩頭)와 석상(石霜)에게 다녀온 스님은 나와서 법답게 자세히 일러라."

  그 스님이 이야기를 마치자, 협산이 말했다.

  "대중은 알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협산이 말했다.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으니, 노승이 두 줄기 눈썹을 아끼지 않고 말해야 되겠구나! 석상은 살인검(殺人劒)은 있으나 활인검(活人劒)이 없다. 그러나 암두는 살인검(殺人劒)도 있고 활인검(活人劒)도 있도다."

  백장이 대중에게 이렇게 설법했다.

  "그렇게 하면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선사에게 말하니,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그렇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느니라. 만일 그렇게 알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 한 개, 반 개 얻기도 어려우리라."

  장경이 임수택(臨水宅)에서 나산(羅山)과 이 인연을 들어 이야기하다가 문득 나산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은 묻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면 그렇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나산이 대답했다.

  "둘 다 밝기도 하고 둘 다 어둡기도 하다."

  장경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둘 다 밝기도 하고 둘 다 어둡기도 한 것입니까?"

  

  나산이 대답했다.

  "함께 태어났으나, 함께 죽지 않는 것이니라."

  그 뒤에 어떤 사람이 장경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함께 태어났으나 함께 죽지 않는 것입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서로가 입을 다물어야 되느니라."

  그 스님이 다시 나산에게 이야기하여 나산이 긍정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함께 태어났으나 함께 죽지 않는 것입니까?"

  나산이 대답했다.

  "마치 범이 뿔을 가진 것 같으니라."

  "어떤 것이 함께 태어나서 함께 죽는 것입니까?"

  "소에 뿔이 없는 것 같으니라."

  

  선사가 덕산을 하직하니, 덕산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잠시 화상을 하직할 뿐입니다."

  "그대는 나중에 어찌할 것인가?"

  "잊지 않겠습니다."

  "기왕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긍정하지 않는가?"

  "'지혜가 스승보다 나아야 비로소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지혜가 스승과 같다면 스승의 덕을 뒷날에 줄인다' 한 말을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에 덕산이 말했다.

  "옳은 말이다. 잘 보호해 가지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절박한 곳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무어라 말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아까는 소리에 맞춰 보냈거늘

  고개를 숙이고 사리를 모르는구나.

  이 속의 참뜻을 알고자 하는가.

  구름 속에 광채가 있다.

  適來和聲送 低頭不會事

  欲知此中意 雲裡有光彩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작은 고기가 큰 고기를 삼키느니라."

  

  이 밖에도 요긴한 법문이 많으나 그 현묘한 뜻을 다할 수 없다.

  선사가 평소에 예언한 말이 있는데 즉 "이 늙은이가 갈 때엔 한바탕 큰 소리를 지르고 떠나리라" 했다. 중화(中和) 5년 을사년(乙巳年)에 천하가 어지럽고 흉도가 치성하더니, 그 해 4월 4일에 빚을 갚고 임종하였는데, 칼을 맞는 그 순간 크게 외마디를 질렀다. 춘추는 60세요, 승랍은 44세였다.

  동오(東吳)의 스님, 현태(玄泰)가 비명[銘]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선과 악 두 경계에 

  거슬리고 순하고 취하고 버림이

  2조 대사와도 같고

  사자(獅子)존자와도 같아라.

  善惡二境 逆順取捨 

  二祖大師 師子尊者 

  

  칙명으로 시호를 청엄(淸儼) 대사라 하고, 탑호는 출진(出塵)이라 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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