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祖堂集)

운거(雲居) 화상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1:33
 

조당집 제 8 권

  

  정수선사 문등 지음

  김월운 번역

  

  운거(雲居) 화상

  

  동산(洞山)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에 살았다. 휘(諱)는 도응(道膺)이요 성은 왕씨이며, 유주(幽州) 형문(薊門) 옥전(玉田) 사람이다.

  선사가 7, 8세 때에는 모습이 준수하고 천품적으로 아는 지혜가 있어서 또래의 벗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좋은 명성이 특별히 자자했다.

  25세가 되자 유주의 연수사에서 계를 받고 처음에 비니(毗尼)를 익히다가 탄식하였다.

  "대장부가 어찌 자잘구레한 형식에 걸리어 큰 길을 잃겠는가?"

  그리고는 의발과 지팡이를 챙겨서 취미(翠微)를 찾아가서 현묘한 진리의 강에 한 번 목욕한 뒤로 3년의 세월을 보냈다.

  석실에 머물 때였다. 우연히 울긋불긋하고 특이한 의상을 입은 두 사자가 와서 말했다.

  "스님께서는 남쪽으로 가시오. 그러면 반드시 기이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그 뒤에 과연 홍호(洪湖)에서 온 취의(毳衣)를 입은 스님이 "동산 대사가 당대의 대종사[宗匠]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곧 옷매무새를 고치고 동산으로 갔다.

  동산 대사는 격조가 높고 고풍스러웠으며 말씀은 간략하나 뜻은 현묘했다.

  선사가 도착하여 예로써 인사를 마치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선사가 아무라고 이름을 고하였다. 그러자 동산이 말했다.

  "위로 향하는 법을 다시 일러라."

  선사가 대답했다.

  "위로 향하는 도에는 아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내가 운암(雲巖)에 있을 때, 운암에게 대답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로부터 아침에 참문하고 저녁엔 근신하며 청정을 유지하고자 스스로 분발하였다. 또한 황제(皇帝)1)가 적수(赤水)에서 잃어버린 여의주를 찾고자 고심하는 그 심정을 본받고, 온백설자(溫伯雪子)2)가 공자와 눈빛만 마주치고도 그에게 도가 있음을 알아본 훌륭한 오성(悟性)을 모방하였다.

  어느 날 동산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그대가 뒷날 어떤 곳의 주지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물으면 무엇이라 대꾸하겠는가?"

  선사가 말했다.

  "저의 허물입니다."

  

  동산이 또 물었다.

  "듣건대 사대(思大) 화상께서 왜국(倭國)에 가서 왕이 되셨다 하는데, 사실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사대(思大) 화상이라면 부처도 되지 않으셨을 터인데 하물며 국왕(國王)이겠습니까?"

  

  

1) 이 문장은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 "황제유호적수, 유기현주(皇帝遊乎赤水, 遺其玄珠)"의 고사를 참조.

2) 이 문장의 출전은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月擊道存"의 고사(故事)이다.

  이에 동산이 묵묵히 인정하였다. 이로부터 현묘한 법을 남몰래 받고 듣지 못했던 바를 들었으므로 다시 다른 곳으로 가려는 생각도 내지 않고, 배우려는 마음도 쉬었다. 

  처음에는 삼봉(三峰)에 살다가 나중에는 운거(雲居)로 옮기니, 종릉 대왕이 그의 덕망을 높이 흠모하여서 공경하기가 남달랐다. 대왕이 위의 황제에게 주청하여 자의(紫衣)와 법호를 하사하였으나 선사가 재삼 사양하였다. 이로부터 법석이 크게 번창하고 현묘한 법이 널리 퍼지기 15년 동안에 봄, 가을 없이 천 명 대중에서 줄어든 적이 없었다.

  

  선사가 상당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대저 출가한 사람은 오직 자기의 분수에서 결택(決擇)할지언정 절대로 분수 밖에서 찾지 말지니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봇짐을 꾸려야 할 것인가? 또 몸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입에는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말을 하여야 하는가? 몸에 값진 옷을 입었으니, 모름지기 큰 일을 해야 한다. 그대들은 천리, 만리 밖에서 행각(行脚)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여기에서도 다시 쉽게 쉽게만 보내면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니, 사소한 인연으로 큰 일을 그르치지 말라. 큰 일을 끝내지 못했거든 밤낮으로 원래의 인(因)과 하나가 되도록 닦아야 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웃어른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결택함이 마치 얇은 얼음을 밟듯 하고, 부지런히 지극한 도를 구함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라' 하였으니, 더 무슨 여가가 있겠는가. 마치 불길이 몸을 에워싸듯 화급하게 모든 일을 던져 버리고, 오로지 그 속에 뛰어들어 물샘틈 없이 말끔히 거두어 들이여 사물사물마다 모름지기 잘 알고 현상현상마다 능통해야 하나니, 만약 털끝만치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당장에 고달프게 될진대, 하물며 그 많은 길이랴. 그대들이 한 걸음 자칫 실수하면 곧 한 걸음 돌이켜야 한다. 만일 한 걸음 돌이키지 못하면, 아득하기 여러 겁이 될 것이다. 이는 곧 생을 지나게 되며 겁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천 생, 만 생의 일이 단지 한 방향에 달렸으니, 만일 이 소식을 알지 못하면 만 겁, 천 생 동안 우둔하리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지난 겁의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다만 지금에 있을 뿐이니라."

  "지금이란 어떤 것입니까?"

  "지난 겁이 있는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선사가 상당하여 그저 승상(繩床) 곁에 섰기만 하자, 대중들도 한쪽에 서 있으니, 한참 후에 문득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떤 속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내 집에는 솥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 밥을 하면 셋이 먹기에는 부족하나 천 사람이 먹으면 남으니,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선사가 대신 대답했다.

  "다투면 부족하고 사양하면 남는다."

  

  어떤 상서(尙書)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세존께선 비밀한 말씀을 하셨고, 가섭은 숨기지 않았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세존의 비밀한 말씀입니까?"

  선사가 상서를 불러서 상서(尙書)가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모른다 하면 세존께 비밀한 말씀이 있었던 것이고, 그대가 안다면 가섭이 숨기지 않은 것이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했다.

  "행밀(行密:비밀히 행함)입니다."

  

  "무슨 행이기에 그토록 비밀한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대신 말했다.

  "'비록 그러하오나 남들이 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라."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돈 1백 냥으로 사냥개를 한 마리 샀다 하자. 그 개는 그저 발자취가 있는 것만 찾을 줄 아는데, 그러다 갑자기 발을 땅에 대지 않고 나뭇가지에 뿔을 걸고 잠을 자는 영양을 만난다면 자취뿐 아니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이에 어떤 스님이 문득 물었다.

  "영양이 뿔을 걸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6·6은 36이니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자취도 없다 하지 않았느냐?"

  그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가서 이 일을 전하니, 조주가 말했다.

  "운거(雲居) 화상께서 여전히 건재하시구나!"

  그 스님이 문득 물었다.

  "영양이 뿔을 건 때가 어떠합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6·6은 36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크게 인정하는 사람과 크게 버리는 사람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둘이니라."

  "어느 쪽이 가볍고 어느 쪽이 무겁습니까?"

  "크게 인정하는 이는 무겁고 크게 버리는 이는 가벼우니라."

  

  "크게 인정하는 이는 어째서 무겁습니까?"

  "이 사람은 자기의 위로 향하는 일을 마치 더러운 물건 보듯 하기 때문에 공훈(功勳) 쪽에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크게 버리는 이는 자기의 몸이 있다고 보지 않아서 그런 까닭에 공훈 쪽을 향해 나아가게 되나니, 그 어찌 가볍지 않겠는가?"

  

  어떤 이가 물었다.

  "달마(達磨)께서 오시기 전엔 어디에 계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단지 여기에 있을 뿐이다." 

  "어째서 보이지 않았습니까?"

  "서천(西天)으로 갔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귀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눈으로 들릴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눈으로도 듣더냐?"

  "듣는 것은 눈이 아닙니다."

  이에 선사가 스스로 대신 말했다. 

  "'눈으로 듣는다 함은 눈이 아닌 것입니다' 하라."

  

  어떤 이가 물었다.

  "3의(衣)를 입은 것은 이쪽 사람입니다. 어떤 것이 저쪽 사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저쪽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는가?"

  학인이 알지 못하자, 선사가 말했다.

  "실수하지 않는다."

  학인이 물었다.

  "무엇이 실수하지 않는 일입니까?"

  

  "세세생생 간택(揀擇)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도 화상께선 말씀을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 순간에도 멈춘 적이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말하지 않는 이가 듣느니라."

  "화상께서도 들으십니까?"

  "들으면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객지를 헤매던 자식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돌아온 것만이 반갑느니라."

  "무엇을 받들어 올립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아침에 3천 대를 때리고, 저녁에 8백 때를 때리느니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청정한 가람(伽藍)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떤 사람을 살게 해야 되겠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스스로 대신 말했다. 

  "'앉히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원만한 지위에 앉지 않을 뿐입니다' 하라."

  

  어떤 사람이 물었다.

  "대업(大業)을 이룬 사람은 염라왕이 어째서 찾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가 몸을 숨길 줄 알기 때문이니라."

  다시 물었다.

  "갑자기 덮쳐 올 때엔 어떠합니까?"

  "주먹질을 당하고 발길질을 당하느니라."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아득하고 우뚝 하노라."

  이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더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아득하고 또 우뚝하니라."

  학인이 알지 못하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 눈앞에 있는 안산(案山)인데 어찌 모르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가 오는가?"

  "산밑엘 다녀왔습니다." 

  "풀이 푸르던가?" 

  "푸릅디다." 

  "소가 뜯고 있던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스스로 대답했다. 

  "'남고도 남습니다' 하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더는 바라지 않는다'고 하고, '자족하는 것만으로 됐습니다' 하라."

  

  어떤 이가 물었다.

  "2조(組)께서 팔을 끊으신 것은 무엇을 구하기 위함입니까?"

  "조그마한 고통을 위해서가 아니니라."

  "구하면 얻을 수는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 몸으로 화살을 맞으리라."

  

  선사가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시자가 대답했다. 

  "3일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30년이라도 그저 그러할 것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문 밖을 나서지 않는 이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일이 생기지 않느니라."

  "어째서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문 밖을 나서지 않아서 일이 생기지 않느니라."

  그리고 또 말했다.

  "이는 이치의 작용이니라."

  "만나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몹시 굴욕스러우니라."

  "만난 뒤엔 어떠합니까?" 

  "그 또한 몹시 굴욕스러우니라." 

  "만났는데 어째서 굴욕스럽습니까?" 

  "천 겁이 지나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길에 행인들의 자취가 끊겼느니라."

  보복(保福)이 이 일을 들어서 곤산(困山)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만났더라도 굴욕스럽고 만나지 못했더라도 굴욕스럽

  

  다' 하니, 만나지 못해서 굴욕스럽다는 것은 따르겠으나 만난 뒤엔 어째서 굴욕스럽습니까?" 

  곤산이 대답했다. 

  "그대가 행각(行脚)을 다닐 때엔 어떠했던가?"

  보복이 이 말을 긍정하지 않고 스스로 말했다. 

  "전부터 어떻게 해야 옳은 것입니까?"

  또 앞의 말에 대신 말했다. 

  "행각이나 하라."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문수(文殊)가 칼을 들었으니, 누구를 죽이려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움직이는 이가 먼저 죽느니라."

  "만리에 풀 한 포기 없을 때엔 어찌합니까?" 

  "누가 죽임을 당했느냐?" 

  "죽고 사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도 도를 알지 못하나니, 나 스스로 수행하리라' 했는데, 어떤 것이 부처님이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부처와 중생 모두 다 도를 알지 못하느니라." 

  "누가 압니까?" 

  "그대가 아느니라." 

  "화상께서 그대라 하신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닌 자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순전히 돌뿐인 산에 풀은 어디서 납니까?"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8 권 > 393 - 402쪽

K.1503(45-233), 

  선사가 대답했다. 

  "다스리지 않으면 어지럽지 않느니라."

  "갑자기 조각 구름이 밀려올 때엔 어떠합니까?" 

  "보지 마라."

  "그렇다면 텅 비우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동안(同案)이 선사에게 물었다.

  "겹겹의 현묘함이 이르지 못하는 곳은 어떠합니까?"

  "위로 향하는 일은 어떻던가?"

  "중중한 현묘함은 아닙니다."

  "그리해서는 안 되느니라." 

  동안이 긍정하지 않았는데 훗날에 앞의 말을 고쳐서 말했다.

  "누가 이르고 이르지 않음을 말하던가?"

  

  무주(撫州) 자사가 원(圓) 장로에게 물었다.

  "국왕이나 대신이 조그만한 복조차도 없어 보인다 하면 일찍이 어떤 사람을 공양하여야 했습니까?" 

  장로가 대답했다.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했었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실 때엔 부처님께 공양하겠지만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엔 누구에게 공양하겠습니까?"

  장로가 대답이 없자, 선사가 대신 말했다. 

  "어진 이는 숨지 않느니라." 

  보자(報慈)가 대신 말했다.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때를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어떤 이가 물었다. 

  

  "눈을 들어 보기만 해도 곧 뜻을 알 때는 어떠합니까?" 

  "어떤 일이던가?" 

  "보배 구슬을 캐려 할 때는 어떠합니까?" 

  "나찰(羅刹) 귀신의 나라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참으로 애석합니다." 

  선사가 말했다. 

  "다만 그대가 분복이 없을 뿐이니라."

  

  병마(兵馬)가 운거산(雲居山)으로 밀려들자, 대중이 모두 도망을 쳤는데, 오직 선사만이 단정히 않아 요동하지 않았다. 통군사(統軍事)가 절도 하지 않고 마주 앉아서 물었다.

  "세계가 언제 편안해지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장군의 마음이 흡족해진 뒤입니다."

  이에 통군사가 얼른 선사에게 절을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소나무의 싹이 세 치 돋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남에게 의지해 얻지 않는다." 

  "구름조차 그 자리에서 뽑아 버릴 때는 어떠합니까?" 

  "본래의 몸은 아니니라."

  "여전히 사계절에 의지합니까?"

  "모든 유위법에 관계하지 않는다."

  "말과 구절에 의하지 않고도 근원을 통달할 수 있습니까?"

  "그러한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

  "지금 묻고 있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다른 질문을 하여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3천 리 밖에서 운거(雲居)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랜데 3천 리 안의 일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3천 리 안은 온통 진여(眞如)뿐이니라."

  "어떤 것이 진여입니까?"

  "3천의 3천이니라."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苦行)하심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스스로 그 뜻을 세우려는 것이요, 만 가지 법에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이니라." 

  "샛별이 솟을 때 무엇을 보셨습니까?"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느니라."

  "어떤 공부를 하였기에 외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겁니까?"

  "모든 것을 다 쉬느니라." 

  "떨어지고 때묻은 옷을 입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한층 더 높아지느니라." 

  "그러면 교화를 나타내어 여러 근기를 인권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나의 여기에는 뼈를 긁어내는 선법이 있노라' 했다는데, 몸조차 없는데 어떻게 긁어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계속해 긁어내야 하느니라."

  "골수도 없는데 어떻게 긁어냅니까?"

  "긁어내기에 딱 적당하다."

  "긁어낸 뒤엔 어떠합니까?"

  "골수가 아니니라."

  

  불일(佛日)이 물었다.

  "두 용이 여의주를 다투면 얻는 이는 누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업으로 이뤄진 몸을 버리라."

  "업의 몸은 이미 버렸습니다."

  선사가 얼른 되물었다.

  "여의주는 어디에 있었느냐?"

  불일이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불일이 앞의 일을 다시 선사에게 이야기하고 물었다.

  "전에 제가 화상에게 '업의 몸을 이미 버렸습니다' 하고 아뢰었더니, 화상께서 '여의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준비하였는데 화상께서 윽박지르는 바람에 제가 대답을 못했습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와서 '업의 몸을 이미 버렸으니, 여의주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물으면, 화상께선 무어라 대답하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고개를 돌리면 얻지 못하느니라."

  그리고는 또 불일에게 물었다.

  "그 밖에 현묘한 길이 있는데 무엇이겠는가?" 

  불일이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구슬을 찾는 이는 누구인가?"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열 차례 입을 열려다 아홉 차례 그만두나니, 어째서 그렇겠는가? 오직 너희들에게 별다른 이익이 없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니라."

  장경(長慶)이 이 말을 듣고 다르게 말했다. 

  "열 차례 입을 열려다 열 차례 다 입을 다무니, 여러분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다고 말하지 말라."

  어떤 스님이 장경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열 차례 입을 열려다 아홉 차례 입을 다문다' 하였는

  

  데, 옛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러했었습니까?"

  이에 장경이 한 대 쥐어 갈겼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이것이 포대(布袋) 화상의 사진이니라."

  또 말했다. 

  "한 가닥 길이 더 있으니, 스스로 알아보아라."

  

  어떤 이가 물었다.

  "우두(牛頭)가 4조(祖)를 만나기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었느니라."

  "만난 뒤에 어떠합니까?"

  "잊어버렸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만나서 서로 알고 싶으나 차마 말을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아까부터 거의 다 말한 것 같다."

  

  그 밖의 현묘한 진리는 여기서 다 드러내지 않는다.

  천복(天復) 원년 신유 가을에 갑자기 가벼운 병을 얻었는데, 동짓날 초순에 이르러서도 종종 가르침을 내리더니 28일 저녁에 주사(主事)와 삼당의 상좌들이 문안을 드리러 가자, 선사가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 여기에 있으면서 대충 멀고 가깝고 한 것을 알았을 것이다. 죽고 사는 일은 예사로운 것이니, 과히 걱정하지 말라. 못을 끊고 쇠를 자르는 신념으로 불법을 어기지 말고, 죽기를 각오한 심정으로 여래를 저버리지 말라. 일은 많지 않는 게 좋으니, 제각기 알아차려야 되느니라."

  이듬해인 2년 임술 정월 2일에 이르러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설을 지내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내가 출세한 지 꼭 30년이 되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구나!"

  그러더니 3일 인시(寅時)에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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