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83. 불도를 밝힌 두 편지글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6:40

 

 

 

 대각 회연스님은 지난날 남악(南嶽)의 삼생장(三生藏)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므로 총림에서는 스님을 ‘연삼생(璉三生)’이라 하였으며, 문장과 이론이 훌륭하여 당시 저명한 공경대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내 일찌기 스님이 손신노(孫莘老)에게 보낸 글을 읽어보고 천하에 뛰어난 인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 글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성인께서 일찌기 도의 오묘한 뜻을 주역을 빌어 말하였는데 주나라가 쇠퇴하자 선왕의 법이 무너져 예의가 없어지게 되고 그 이후 기이한 말들과 이단(異端) 술수(術數)가 그 틈바구니에 뒤섞여 생겨나 풍속이 어지럽게 되었다.  

우리 석가의 가르침이 중국에 흘러들어와 순수하게 으뜸가는 이치〔第一義〕를 보여주고 시종 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 또한 그 시대의 요구를 따른 것이다.   

인간이 생존한 이후로 순박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아 삼황(三皇)의 가르침이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것은 봄에 해당하며, 사람의 마음이 나날이 복잡해져 오제(五帝)의 가르침이 소상하면서도 형식이 완비된 것은 여름에 해당한다.  

 

또한 시대와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인정도 날마다 바뀌어 삼왕(三王)의 가르침이 주도면밀하면서도 엄격한 것은 가을에 해당한다.  

옛날 상(商). 주(周)대의 고(誥 : 書經에서 임금이 신하는 일깨우는 敎命)니 서(誓 : 신하가 임금에게 맹서하는 글)니 하는 글들은 후세학자로서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책인데도 당시 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 어기지 않았으니 풍속이 오늘과 비교하여 어떠하였겠는가?   

결국 그 폐단에 의하여 진. 한 대에 이르러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었고, 천하에는 차마 듣고 싶지 않은 일까지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우리 여래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성명(性命)의 이치로 미루어 나가고 자비의 행동으로 가르치시니 이것은 겨울에 해당한다.  

자연에는 사계절이 있어 그것이 순환하면서 만물을 낳고 기르는데 성인의 가르침도 이와같이 서로가 붙잡아 주며 천하를 교화한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모두가 폐단이 없을 수 없다.  

폐단이란 지나간 발자취이지만 도는 매양 한 가지이니, 결론은 성현이 나와서 세상을 구제하는 데 있다. 

   진. 한 대 이후 오늘날까지 천여년 동안 풍속은 더욱 각박해져만 가고 성인의 가르침은 몇 가지로 팽팽히 맞서 서로가 헐뜯고 비난하여 어느 곳을 따라야 할 줄 모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도(大道)는 적막하여 돌이킬 길이 없게 되었으니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차마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불교를 배척한 한퇴지(韓退之)를 비난했던 왕문공(王文公)의 글을 살펴보니, 그 문장의 대의가 이 글과 일치되고 있다.  

 

그의 글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를 배척한 맹자를 좋아하면서도 불교와 노자를 자기의 공부로 삼는 이가 있으니, 아 !  장자(莊子)가 말하는 ‘여름벌레(夏蟲)’* 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가 일년이라면 성인은 한 철〔一時〕에 해당한다.  

한 철에 집착하여 일년인가 한다면 끝내 도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성인의 말씀이란 그 시대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옛적에 옳았던 것일지라도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옛적에 옳았던 것만을 알고 그것이 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변할 수 있는 것은 ‘말’이며 변함없이 항상 한 것은 ‘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봄이란 겨울에서 비롯되지만 겨울이란 끝이다.   

천하의 도를 끝맺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부처님뿐이다.   

여기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모두가 이른바‘여름벌레’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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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벌레 : 여름 한 철 사는 벌레는 얼음 어는 것을 모른다는 뜻으로 견문이 좁아 공연히 의심하는

   자를 비유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