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2. 「능엄경」으로 사대부를 교화함 / 장문정공(張文定公)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7:54

 

 

 

  두기공(杜祁公)과 장문정공(張文定公)이 모두 벼슬에서 물러나 수양(睢陽) 땅에 살면서 서로 정답게 마을을 오갔는데, 주승사(朱承事)는 약방을 차려 생계를 꾸리며 이 두 노인들과 사귀었다.  

두기공은 성품이 곧아서 일찌기 잡학(雜學)을 배우지 않고 장안도(張安道 : 文定公)가 불교에 가까이하는 것을 항시 비웃었으며 손님을 대하면 반드시 이 일을 조롱하였지만, 장문정공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주승사가 한가한 틈에 문정공에게 말하였다.

   “두기공이 천하의 위인(偉人)이기는 하나 불교를 모르는 것이 애석합니다.   

공께서는 힘이 있으시면서도 어찌하여 그에게 발심(發心)을 권하지 않습니까?

   “자네가 나보다 그 노인과 인연이 더 깊으니 나는 자네를 도울 뿐이네.”

   이렇게 하여 주승사는 황공해 하며 물러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두기공이 맥이 끊어질 듯 하여 주승사를 부르자, 주승사는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먼저 가서 상공(相公)에게, ‘「수능엄경」을 읽어 보셨습니까?’ 라고만 여쭈어라.”

   그러자 심부름꾼은 그의 말대로 두기공에게 전하였다.   두기공은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주승사가 도착하자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인사하였다.  

이어서 그를 앉으라고 한 다음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세상사에 막힘없고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 여겨 왔었는데 뜻밖에도 요사이에 보니, 그대 또한 똑같이 못난 사람이로군!  「능엄경」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글이기에 그렇게 탐착하는가.   

성인의 깊은 말씀치고 공자 맹자보다도 더 훌륭한 말이 없는데 이것을 버리고 그것을 택한다는 것은 큰 잘못일세.”

   “상공께서는 이 경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공맹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로는 오히려 공맹보다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수능엄경」첫 권을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상공께서도 한번 읽어 보시지요.”

   두기공은 주승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지 못하여 책을 집어들고 말없이 책장을 뒤적이다가 자기도 모르게 끝까지 다읽고 갑자기 일어서며 매우 놀라 감탄하였다.

   “세상 어디에 이런 책이 있었단 말인가!”

   사람을 보내 나머지 부분을 모두 가져오게 하여 다 읽어 본 후 주승사의 손을 붙잡고 고마워하였다.

   “그대가 참으로 나의 선지식일세.   안도(문정공)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왜 진작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곧장 가마를 준비케 하여 문정공을 찾아가 그 일을 말하자, 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생각지 않게 찾았을 때 찾은 것만을 기뻐할 일이지, 일찍 찾았느냐 늦게 찾았느냐를 따질 것은 없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대와 주군(朱君)의 인연이 더 깊기에 그를 보낸 것이다.  

부처님일지라도 사람을 교화하는 데에는 반드시 동사섭(同事攝)하는 자의 힘을 빌어 법을 전하셨을 것이다.”

   두기공은 크게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