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큰스님들은 산에 살면서 사물에 빗대어 자기의 뜻을 표현한 일이 많았는데, 이는 스스로가 즐기면서 또한 사람을 깨우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를테면 자호 이종(子湖利蹤:800~880)스님의 ‘축견(蓄犬)’* 공안과 도오 원지(道吾圓智:769~835)스님의 ‘무의단홀(巫衣端笏)’* 공안이 이와 같은 예이다. 그러나 설봉 의존(雪峯義存)스님, 귀종 지상(歸宗智常)스님, 서원 사명(西院思明)스님은 모두 주장자[木蛇]를 잡고 있었을 뿐이다. 이에 설봉스님은 서원스님에게 “진짜 납승이라면 칼날의 흔적이 전혀 없지[本色住山人 且無刀斧痕]”라는 게를 보냈다.
내, 원부(元符) 연간(1098~1100)에 소산(疎山)에 이르러 광인(匡仁)스님의 영정을 살펴보니, 스님도 주장자를 잡고 있었다. 한번은 어느 스님이 광인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曹)씨 여인.”*
나는 이 화두를 듣고, 스님의 뛰어난 운치가 뜨거운 번뇌를 시원하게 식혀준 데 대하여 감탄하며 찬(贊)을 지었다.
세 가닥 습기(貪. 瞋. 痴)는
그 독이 치열하여
마음[識心]을 물들이고
얽히고 설켜 있다.
三支習氣 其毒熾烈
薰蒸識心 盤屈糾纏
중생이 이를 몰라서
문득 의심하고 겁에 질려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보고서는
스스로 놀라 나자빠진다.
衆生不明 橫生疑怖
忽然見之 輒自驚仆
허공꽃과 같은 세간은
본디 생멸을 떠난 것이니
드넓게 확트인 시방에
깊숙한 동굴도 모두 드러났구나.
空華世間 本離生滅
廓然十方 露其窟穴
오로지 키 작은 사숙만은
솜씨 좋은 요술장이라
만법을 주었다 빼았다
자유자재 즐기도다
惟矮師叔 是大幻師
與奪萬法 自在娛嬉
이제는 알겠군 ! 대천세계가
모두 그대의 노리개이고
손에 쥔 주장자는
조씨네 여자인 줄을
乃知大千 皆公戱具
手中木蛇 是曺家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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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호축견(子湖蓄犬) : 자호 이종(利蹤)스님은 암자 문앞에다 ‘개조심!’ 이라는 문패를 달고 거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기르는 개는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물고 가운데로는 허리를 물고 아래로는 다리를 문다. 머뭇거리다가는
목숨을 잃으리라.” 새로 온 납자가 인사를 하면 스님은 “개 조심해라!” 고 소리쳐서 그가 고개를 돌리면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 조씨 여인[曹家女]: 후한(後漢)의 문필 반소(班昭). 조세숙(曹世叔)에게 시집갔다가 일찍 과부가 되었다.
박학하고 재주가 뛰어나 왕궁 대인들의 스승이 되었으며 조대고(曹大姑, 혹은 曹大家)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설에는 토지신(土地神)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 도오 무의단홀(道吾巫依端笏): 「전등록」29권에는 ‘무의(無衣)’로 되어 있다. 납자가 도오스님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면 스님은 홀(笏)을 들고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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