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18. 광인스님 영정찬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20:36

 

 

 

   옛날 큰스님들은 산에 살면서 사물에 빗대어 자기의 뜻을 표현한 일이 많았는데, 이는 스스로가 즐기면서 또한 사람을 깨우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를테면 자호 이종(子湖利蹤:800~880)스님의 ‘축견(蓄犬)’* 공안과 도오 원지(道吾圓智:769~835)스님의 ‘무의단홀(巫衣端笏)’* 공안이 이와 같은 예이다.   그러나 설봉 의존(雪峯義存)스님, 귀종 지상(歸宗智常)스님, 서원 사명(西院思明)스님은 모두 주장자[木蛇]를 잡고 있었을 뿐이다.   이에 설봉스님은 서원스님에게 “진짜 납승이라면 칼날의 흔적이 전혀 없지[本色住山人 且無刀斧痕]”라는 게를 보냈다.

   내, 원부(元符) 연간(1098~1100)에 소산(疎山)에 이르러 광인(匡仁)스님의 영정을 살펴보니, 스님도 주장자를 잡고 있었다.   한번은 어느 스님이 광인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曹)씨 여인.”*

   나는 이 화두를 듣고, 스님의 뛰어난 운치가 뜨거운 번뇌를 시원하게 식혀준 데 대하여 감탄하며 찬(贊)을 지었다.

 

   세 가닥 습기(貪. 瞋. 痴)는

   그 독이 치열하여

   마음[識心]을 물들이고

   얽히고 설켜 있다.

 

   三支習氣    其毒熾烈

   薰蒸識心    盤屈糾纏

 

   중생이 이를 몰라서

   문득 의심하고 겁에 질려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보고서는

   스스로 놀라 나자빠진다.

 

   衆生不明    橫生疑怖

   忽然見之    輒自驚仆

 

   허공꽃과 같은 세간은

   본디 생멸을 떠난 것이니

   드넓게 확트인 시방에

   깊숙한 동굴도 모두 드러났구나.

 

   空華世間    本離生滅

   廓然十方    露其窟穴

 

   오로지 키 작은 사숙만은

   솜씨 좋은 요술장이라

   만법을 주었다 빼았다

   자유자재 즐기도다

 

   惟矮師叔    是大幻師

   與奪萬法    自在娛嬉

 

   이제는 알겠군 !   대천세계가

   모두 그대의 노리개이고

   손에 쥔 주장자는

   조씨네 여자인 줄을

 

   乃知大千    皆公戱具

   手中木蛇    是曺家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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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호축견(子湖蓄犬) : 자호 이종(利蹤)스님은 암자 문앞에다 ‘개조심!’ 이라는 문패를 달고 거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기르는 개는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물고 가운데로는 허리를 물고 아래로는 다리를 문다.   머뭇거리다가는

   목숨을 잃으리라.”  새로 온 납자가 인사를 하면 스님은 “개 조심해라!” 고 소리쳐서 그가 고개를 돌리면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조씨 여인[曹家女]: 후한(後漢)의 문필 반소(班昭). 조세숙(曹世叔)에게 시집갔다가 일찍 과부가 되었다.  

   박학하고 재주가 뛰어나 왕궁 대인들의 스승이 되었으며 조대고(曹大姑, 혹은 曹大家)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설에는 토지신(土地神)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 도오 무의단홀(道吾巫依端笏): 「전등록」29권에는 ‘무의(無衣)’로 되어 있다.   납자가 도오스님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면 스님은 홀(笏)을 들고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