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록(楊岐錄)

담주 운개산 회화상 어록 서 (潭州雲蓋山會和尙語錄序)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09:53
 

양기록

 

담주 운개산 회화상 어록 서 (潭州雲蓋山會和尙語錄序)

 

이씨(李氏)가 세운 당나라에 선(禪)으로 걸출한 자가 있으니 마

조(馬祖)대사가 강서(江西)땅 늑담사( 潭寺)에 살면서 문도 84명

을 배출해냈다. 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자로서는 오직 백장 회

해(白丈懷海)스님 한분이 대기(大機)를 얻고 회해스님이 배출한

황벽 희운(黃蘗希運)스님이 대용(大用)을 얻었을 뿐, 그 나머지는

남의 말이나 따라 읊어대는 사람들이었다.

희운스님이 남원 혜옹(南院慧 )스님을 배출하였고, 혜옹스님이

풍혈 연소(風穴延沼)스님을 배출하였으며, 연소스님이 수산 성념

(首山省念)스님을, 성념스님이 분양 선소(汾陽善昭)스님을, 선소

스님이 자명 초원(慈明楚圓)스님을, 초원스님이 양기 방회(楊岐方

會)스님을 배출하였다.

방회스님은 처음 원주(袁州) 땅 양기산(楊岐山)에 살다가 뒤에

장사(長沙) 땅 운개산(雲蓋山)에 머물렀는데, 당시에 말하기를

"회해스님은 대기를 얻었고 희운 스님은 대용을 얻었지만, 둘 다

얻은 자는 방회스님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님께서 12년 남짓 두 법석에 계시면서 강령을 제창하고 납자

들을 맞아 지도하는 동안 많은 말씀을 남기셨으나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양(衡陽)의 수단(守端)스님이 말없이

여러 편을 기억하여 한 축(軸)의 책을 엮어 내었다. 나는 오래 전

부터 은혜로운 스님의 명성을 우러러 오던 차에 이 일로 수단스님

에게 가서 그 책을 구하여 향을 사루고 펴서 읽었다.

위대하시다. 대사의 기변(機辯)이여. 마치 거령신(巨靈神)이 태

화산(太華山)과 수양산(首陽山)을 쪼개 황하의 물살을 급히 흘려

내너 일찍이 막힌 적이 없게 한 듯하니 상상(上上)의 대승근기(大

乘根器)가 아니라면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으랴.

수단 스님이 나에게 서문을 쓰라고 명하시니 스님의 도가 천하

에 널리 퍼짐을 귀하게 여겨서이다. 그러나 방회스님의 명성과 도

는 식자들 사이에 깊게 알려져 모두들 들었을 것이므로 수식은 그

만두고 유서만을 사실대로 적을 뿐이다.

스님은 원주(袁州) 의춘(宜春) 사람으로 성은 냉씨(冷氏)이며,

담주 유양(瀏陽)의 도오산(道吾山)에서 머리를 깎았다. 속세 나이

54세에 운개산에서 돌아가셨으며, 그곳에 탑이 있다.

황우 2년(皇祐 2 : 1050) 중춘(仲春) 16일에

상중(湘中) 비구 문정(文政)이 쓰다.